반딧불이
朴 明 淳
어둠 속에서 작은 불이 나르고 있다.
난 그 희미한 불을 따라 잔디밭으로 들어갔다. 아주 조그만 불들은 어둠이 내려앉은
풀밭 여기저기에서 작은 불꽃을 피어내고 있다.
“저 불빛들이 꼭 반딧불이 같아.” “맞아요, 반딧불….” 딸의 대답이다.
이역만리 이곳에서 반딧불 이를 만나다니. 외출 후 돌아올 때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얘기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우리나라에만 있다고 생각한 것이 멋쩍어 웃음이 나왔다. 미국의 큰 땅덩어리에도
저 작은 벌레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다. 더군다나 도심 속에서, 그것도
아파트 현관 앞의 잔디밭에서 반짝이는 그 불꽃이 신기하고 환상적으로까지 보여,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나의 모습은 아직도 꿈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매번 감탄하며 걸음을 멈추자, 옆에 있던 아들이 얼른 한 마리를 잡아서
내 손에 쥐어주었다. 꿀벌보다도 작은 몸체에서 이토록 신기하게 밝은 빛을 품어내고
있다니. 손바닥의 온기로 상처를 입을까봐 풀밭 위에 얼른 놓아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살포시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꽁무니엔 호롱불을 매단 채,
사뿐히 그리고 조용히 예쁜 자태로 떠오르며 멀어져 갔다.
반딧불은 아름다운 사랑의 몸놀림이다. 암컷이 꽁무니에 은은한 빛을 내어 위치를
알려주면, 수컷은 그곳으로 날아가 더 밝은 빛을 낸다. 자신만의 사랑을 위해 수컷은
온힘을 다해 불을 밝혀 암컷의 사랑을 찾는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인가. 자신의
온몸을 불태워가며 그리운 이를 찾는 반딧불이의 뜨거운 사랑은, 그래서 밤하늘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지 모른다.
여름날 강한 빛을 내면서 밤하늘을 수놓는 이 수컷의 반딧불을 사람들은 ‘그리는
짝을 청하는 사랑의 등불’이라고 한다. 그래서 반딧불이 에게 더 애정이 가는지도 모른다.
생명이 있는 그 순간까지 온몸을 사르는 사랑이, 열정적이다.
어릴 적 6.25 피난시절의 고향 생각이 난다. 밤마다 깜깜한 어둠 속 곳곳에서 나르는
작은 불빛을 보았다. 반딧불이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그 시절, 움직이는 작은
불빛을 보면 두려웠고, 어린 마음에 그것은 도깨비불이 날아다니는 거라고 무서워했었다.
그러나 그 불빛이 일궈낸 값진 이야기도 많다. 그 중에서도 차윤과 손강이 반디와 눈에서
결과와 보람을 찾는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고사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준다.
옛날 중국 진나라시대 가난하여 주머니에 반딧불 이를 잡아넣고 다니며, 그 불빛으로 책을
읽어 상서랑 이라는 관직에 올랐다는 차윤지형(車胤之螢)이나, 역시 가난으로 기름을 살
수 없어 겨울이면 눈빛에 책을 읽었다는 손강영설(孫康映雪)의 고사이다.
문득 서울의 한강 야경이 떠오른다. 한강 고수부지에는 낚시를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인공호수가 있다. 반포대교 근처인 그곳에서 자주 낚시를 하였다. 밤에는 희미한 불 빛
때문에 야광찌를 낚시 끝에 매달고, 그 찌를 바라보며 낚시를 했다. 낚싯대 끝에 달린
야광찌가 물결 위에서 찰랑일 때마다 그것은 찌가 아닌 물속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었다.
그 불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곧잘 동심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면 스쳐
지나가는 세상 이야기 속에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노래도 불렀었다.
어두운 호수 위에 일렁이는 잔물결을 보며 많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이제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아니 지금도 사람들은 많이 있겠지만 그때 그 사람은 없다. 지난 날 그
호수의 반딧불이가 풀밭 위로 아련히 펼쳐지며 풋풋한 초여름의 냄새가 주위에 머문다.
사랑의 한을 품고 죽은 반딧불이라는 전설도 있지만, 많은 사랑을 담고 조용히 풀밭을
날고 있는 사랑의 빛인 반딧불이. 반딧불의 그 환한 불빛에 가이없는 사랑과 행복을 담아본다.
*저자약력 (朴明淳) :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회원
한국수필가협회이사, 타래문학회장
동포문학상, 수비문학상 수상
저서 : 「어떤 외출」「메모리스」외 공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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