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쓴 이 : 김기태
큰 딸 영아가 올 가을에 시집을 간단다. '첫 사랑이 마지막 사랑이 되어' 함께 살고 있는 아내와 결혼 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 . . . . . 벌써 큰 딸이 좋은 사람 만나 새로운 삶을 출발하려 한다.
이번 여름엔 딸 출가를 앞두고 가족끼리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큰 딸을 막상 시집 보내려 하니 서운하기도 하고, 뭔가 미리 이별 연습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가족여행을 통하여 '친정에서의 정(情) 떼기와 시집에 가서 정(情) 붙이기' 에 길 들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나만 몇 번 다녀왔지 아내와 애들은 처음 가는 여행이었다. 물론 직장에서의 출장 명목으로 자주 갔지만, 집에서 살림과 학교에 다니느라고 아직 바다 바깥(海外)여행이 처음인 가족들한테는 미안했다.
온 가족은 흐믓한 마음 들뜬 기분으로 높은 상공에 떠 있는 비행기 안에서 제주도를 향 하였다. 기내(機內)에서 창 밖 저 멀리 두둥실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딸애를 보니 지난 나의 총각시절이 생각이 난다.
내 나이 스물 두 살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시던 장인 어른 될 분을 찾아가 무릅을 꿇고 용기있게 말씀을 드렸다.
"둘째 딸과 사귀고 있는 0 00입니다. 저희를 결혼하게 해 주십시요." 그러자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안돼?"
간신히 용기를 내어 찾아간 나는 완전하게 KO패 당하고 씁쓰레하게 돌아서야만 했다. 당시는 세상이 급변하게 돌아가던 시절이었다. 저 멀리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월남전이 벌어져 아군끼리도 구별 못할만큼 전쟁양상이 극으로 치달아 젊은이들이 죽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군에도 안 갔다 온 새파란 학생이었다. 그리고 사귀는 여자랑 함께 살아 갈 직장도 구하지 못한 처지였다. 더욱 학교에서 배운 학과도 전국을 누비고 살아가야 할 토목을 전공한 사람에게는 딸을 안심하고 맡길 수 없다는 장인 어르신 생각에서 였을 것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염려하신 군대에도 무사히 다녀오고 직장도 구하고 나서 장인 어른에게 재도전하게 되었다. 그러자 첫 말씀이 이랬다.
"그래, 자넨 꿈이 뭔가?"
"예, 토목을 전공한 토쟁이입니다.. 전국을 누비고 다녀야 하는 직업이지만, 한 장의 벽돌을 쌓는 마음으로 건설에 젊음을 바치겠습니다."
"으음 . . . . . 그으래. . . . . ?"
"예, 장인어른.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자신 있게 살겠습니다."
". . . . . . . ?"
그런 7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나는 둘째 사위로 인정을 받아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큰 마음 먹고 찾아간 미래의 백년손님이자 사위인 나 한테 차 한 잔 주지 않고 매정하게 대해주시던 그 때 장인 어른이 왜 그리 야속하던지 몰랐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소중한 딸을 둔 장인 어른의 마음을 이해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 하셨는지 모른다.
"너희가 훗날 커 장가 가서 아이를 낳아보아야 어미의 심정을 알고, 딸을 시집 보내봐야 아비의 근심을 깨우치느니라!"
지금 큰 딸을 데려갈 사위감은 그 때 내가 갖춘 조건하고는 전혀 다르다. 이미 그는 군대에도 갔다 왔다. 자기가 전공한 분야에서도 전문서적을 한 권 저술할 정도이고, 기술도 인정을 받는다고 했다. 취미로 시작한 격투기도 수준급이라 한다. 그렇다면 전공과 취미가 뚜렷하여 시간 관리와 자기 주변관리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렵고 험난한 사회를 살아가는데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근심이 든다.
"이 녀석들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 . . . . .?"
하는 염려가 앞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 . . . .? 하물며 그 옛날 군대도 다녀오지 않고, 직장도 없고, 대학에서의 전공도 맘에 안드는 나를 보고 장인 어른 될 분이 과연 이런 말씀을 기대했을까?
"오-냐, 잘 왔다. 내 딸 데려다 살거라!"
분명 이것은 아닐것이다. 장인 어른께서는 지금의 나 보다 더 많은 우려와 걱정이 있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당시 나는 장인 어른이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며 굳은 각오로 출발을 하였다. 모든 조건이 덜 갖추어진 여건에서 검소하고 바르게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했다. 생활에 눈 높이를 정하고 일하는 것을 취미삼아 내가 할 몫을 다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노력한 결과 내 전문분야에서 별다른 허물없이 아직까지 직장을 다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게로 특히 큰 딸에게는 성장 해 가는 과정에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든다. 성장하면서 장녀로써의 책임감을 실천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부터는 부모의 도움 없이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딸에게 대견하다는 마음으로 마음 써주지 못한 점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제 석 달이 지나면 결혼을 한다. 지금까지 바쁘다는 이유로 여름 휴가를 같이 못했는데 가족들의 의견을 모아 이번에는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이별 여행을 가는 것이다. 막상 시집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아쉽고 처연해 보였다. 이것이 아비의 모습인가 자책도 해본다.
내 사랑하는 영아야!
아빠와 엄마가 만나 30여년을 살아보니 가정에서의 여자가 해야 할 일은 참으로 중요하더라.
어떻게 사는 것이 가정에서 여자가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인지 한번 들어보려무나. 너를 보내면서 몇가지 당부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교훈으로 삼았으면 한다.
첫째, 남편과 살아가면서 남녀 평등(平等)을 강요(强要)하지 마라.
맞벌이 부부일 경우에는 어차피 각자 협의하여 역할 분담하여야 되겠지만 한평생 살면서 우월적(優越的) 지위에 머물러 있는 기간(期間)이 여자에게 더 많더라. 세상에는 나이 50살이 넘어 아내의 경제권, 아니면 의사결정에서 자유(自由)로운 남편(男便)은 없단다. 남편을 좀 이해하고 져 준다해서 손해보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둘째는 가정에서 남편(男便)의 권위를 세워주지 않으면 자녀 교육(敎育)은 엉망이 된다는 사실이다 . 뼈대있는 종가(宗家)에서는 온 가족이 지키는 규범이 있다. 지키기는 어렵겠지만 인기 있는 아버지가 아닌 존경(尊敬)받는 아버지로 자식(子息)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여기에서 어머니의 연출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세째, 남편은 돈을 벌어 와서 한 가정(家庭)을 지탱해야 하지만, 그러나 현명賢明)한 아내는 좋은 가문(家門)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식을 잘 키운 어머니는 지식(知識) 있는 엄마가 아니고, 지혜(知慧)로운 엄마였단다. 부모가 살아가는 모범적(模範的)인 생활을 보여 주는 것도 자녀에게는 제일(第一) 좋은 교육(敎育)이더라.
네 번째는 시댁과 친정(親庭)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균형(均衡) 있게 처신하여라.
남편이 잘못하면 한 집안이 망하지만, 아내가 잘못하면 두 집안이 망한다. 또 올케가 친정 아버지 어머니를 잘 모시기를 기대 한다면 그런 마음으로 시아버지 어머니를 잘 모셔라.
가정의 근본은 효에서부터 발생한단다. 뒤에서 자식들이 부모가 그 부모한테 하는 행동을 항상 보고 자란다.
다섯 번째, 남편이 의리(義理)를 앞세운 실속 없는 단순한 행동(行動)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지만, 그러나 곤경(困境)에 처할 때는 온 가족이 운명을 걸고 큰 용기(勇氣)를 불러주어야 한다.
어려움이 처할 때 아내의 용기(勇氣)는 절대적이다. 함께 포장마차 할 마음이면 세상(世上)을 살아가는데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남편의 기를 꺾는 행동은 하지 마라.
여섯 번째, 결혼 후에는 가문이 함께 하는 종교를 가져라.
종교가 다를 경우 '우리'라는 종교적 개념(槪念) 차이 때문에 가문과 가족이 화목(和睦)에서 분열(分裂)되는 경우가 많다. 한 가족, 한 가문(家門)에서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면 불행(不幸)하다. 이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만 생각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한 집안에 두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지구상에서 종교로 인해 발생한 전쟁이 80%를 넘는다고 한다.
일곱번째,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比較)하지 마라.
남편은 백마(白馬)를 탄 기사(騎士)도 아니고, 생활(生活)을 위한 필수품도 아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同伴者)일 뿐이다. 항상(恒常) 신혼(新婚) 초기 마음으로 살아라. 연애 할 때처럼 살면 세상이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는다.
여덟번째, 삶의 주거지는 비탈진 산밑에나, 큰 하천 옆에, 그리고 반 지하에, 집을 정하지 말라. 또 남편이 차(車를) 운전(運轉)할 때도 옆 좌석에 앉아 열심히 조잘거려라. 단 한번 잘못 된 기회(機會)에 재앙으로 부터 온 가족이 불행(不幸)을 겪는 경우가 있다.
아홉번째, 전 가족이 추구하는 외형적인 조건(條件), 물질적인 조건들의 수위를 정하여, 되도록 검소(儉素)하고 모범적인 가정(家庭)을 이끌어라.
지금 우리는 없어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남과 비교해 적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팔자는 옛날 임금님 팔자보다 훨씬 좋은 편이다.
열번째, 결혼(結婚)으로 인해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아라.
대전 댁(宅), 새댁, 누구 엄마라는 호칭으로, 안방에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을 가지고 웃지만 말고, 내가 있어 세상(世上)이 즐거운 나를 만들어라.
이것이 세상을 바르고, 주관있게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여 아버지가 시집가는 너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결혼은 소풍가는 것처럼 즐거운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항상 이상형의 현실이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그 곳에는 책임과 의무 예절 효 모든 것이 어울러져 나타내는 복합적인 삶이다.
뚜벅뚜벅 다소 늦더라도 실수하지 않고 걸어가는 삶. 단 한번의 실수가 신용을 추락하고 주변으로부터 홀대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화려한 옷이 필요 없듯이 의무와 책임을 중시하고 온 가족이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라. 그리고 가문을 바르게 일으켜 세우는 일도 생각해보아라.
더러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때는 혼자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걱정하지 말고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오손도손 의논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가족은 상하수직(上下垂直)의 서열이 아니고 함께 나란히 길을 걸어가는 평행의 동반자이니까 말이다.
우리의 큰 딸! 영아야,
너희들에 행복한 결혼을 축하한다.
너를 사랑하는 '아브지가. . . '
큰 딸 영아가 올 가을에 시집을 간단다. '첫 사랑이 마지막 사랑이 되어' 함께 살고 있는 아내와 결혼 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데 . . . . . . 벌써 큰 딸이 좋은 사람 만나 새로운 삶을 출발하려 한다.
이번 여름엔 딸 출가를 앞두고 가족끼리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큰 딸을 막상 시집 보내려 하니 서운하기도 하고, 뭔가 미리 이별 연습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가족여행을 통하여 '친정에서의 정(情) 떼기와 시집에 가서 정(情) 붙이기' 에 길 들여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나만 몇 번 다녀왔지 아내와 애들은 처음 가는 여행이었다. 물론 직장에서의 출장 명목으로 자주 갔지만, 집에서 살림과 학교에 다니느라고 아직 바다 바깥(海外)여행이 처음인 가족들한테는 미안했다.
온 가족은 흐믓한 마음 들뜬 기분으로 높은 상공에 떠 있는 비행기 안에서 제주도를 향 하였다. 기내(機內)에서 창 밖 저 멀리 두둥실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는 딸애를 보니 지난 나의 총각시절이 생각이 난다.
내 나이 스물 두 살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시던 장인 어른 될 분을 찾아가 무릅을 꿇고 용기있게 말씀을 드렸다.
"둘째 딸과 사귀고 있는 0 00입니다. 저희를 결혼하게 해 주십시요." 그러자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안돼?"
간신히 용기를 내어 찾아간 나는 완전하게 KO패 당하고 씁쓰레하게 돌아서야만 했다. 당시는 세상이 급변하게 돌아가던 시절이었다. 저 멀리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월남전이 벌어져 아군끼리도 구별 못할만큼 전쟁양상이 극으로 치달아 젊은이들이 죽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군에도 안 갔다 온 새파란 학생이었다. 그리고 사귀는 여자랑 함께 살아 갈 직장도 구하지 못한 처지였다. 더욱 학교에서 배운 학과도 전국을 누비고 살아가야 할 토목을 전공한 사람에게는 딸을 안심하고 맡길 수 없다는 장인 어르신 생각에서 였을 것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염려하신 군대에도 무사히 다녀오고 직장도 구하고 나서 장인 어른에게 재도전하게 되었다. 그러자 첫 말씀이 이랬다.
"그래, 자넨 꿈이 뭔가?"
"예, 토목을 전공한 토쟁이입니다.. 전국을 누비고 다녀야 하는 직업이지만, 한 장의 벽돌을 쌓는 마음으로 건설에 젊음을 바치겠습니다."
"으음 . . . . . 그으래. . . . . ?"
"예, 장인어른.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자신 있게 살겠습니다."
". . . . . . . ?"
그런 7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나는 둘째 사위로 인정을 받아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큰 마음 먹고 찾아간 미래의 백년손님이자 사위인 나 한테 차 한 잔 주지 않고 매정하게 대해주시던 그 때 장인 어른이 왜 그리 야속하던지 몰랐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하니 소중한 딸을 둔 장인 어른의 마음을 이해 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이렇게 말씀 하셨는지 모른다.
"너희가 훗날 커 장가 가서 아이를 낳아보아야 어미의 심정을 알고, 딸을 시집 보내봐야 아비의 근심을 깨우치느니라!"
지금 큰 딸을 데려갈 사위감은 그 때 내가 갖춘 조건하고는 전혀 다르다. 이미 그는 군대에도 갔다 왔다. 자기가 전공한 분야에서도 전문서적을 한 권 저술할 정도이고, 기술도 인정을 받는다고 했다. 취미로 시작한 격투기도 수준급이라 한다. 그렇다면 전공과 취미가 뚜렷하여 시간 관리와 자기 주변관리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렵고 험난한 사회를 살아가는데 충분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근심이 든다.
"이 녀석들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 . . . . .?"
하는 염려가 앞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 . . . .? 하물며 그 옛날 군대도 다녀오지 않고, 직장도 없고, 대학에서의 전공도 맘에 안드는 나를 보고 장인 어른 될 분이 과연 이런 말씀을 기대했을까?
"오-냐, 잘 왔다. 내 딸 데려다 살거라!"
분명 이것은 아닐것이다. 장인 어른께서는 지금의 나 보다 더 많은 우려와 걱정이 있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당시 나는 장인 어른이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며 굳은 각오로 출발을 하였다. 모든 조건이 덜 갖추어진 여건에서 검소하고 바르게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했다. 생활에 눈 높이를 정하고 일하는 것을 취미삼아 내가 할 몫을 다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노력한 결과 내 전문분야에서 별다른 허물없이 아직까지 직장을 다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바쁘다는 핑게로 특히 큰 딸에게는 성장 해 가는 과정에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든다. 성장하면서 장녀로써의 책임감을 실천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부터는 부모의 도움 없이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딸에게 대견하다는 마음으로 마음 써주지 못한 점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제 석 달이 지나면 결혼을 한다. 지금까지 바쁘다는 이유로 여름 휴가를 같이 못했는데 가족들의 의견을 모아 이번에는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이별 여행을 가는 것이다. 막상 시집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아쉽고 처연해 보였다. 이것이 아비의 모습인가 자책도 해본다.
내 사랑하는 영아야!
아빠와 엄마가 만나 30여년을 살아보니 가정에서의 여자가 해야 할 일은 참으로 중요하더라.
어떻게 사는 것이 가정에서 여자가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인지 한번 들어보려무나. 너를 보내면서 몇가지 당부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살아가면서 마음속에 교훈으로 삼았으면 한다.
첫째, 남편과 살아가면서 남녀 평등(平等)을 강요(强要)하지 마라.
맞벌이 부부일 경우에는 어차피 각자 협의하여 역할 분담하여야 되겠지만 한평생 살면서 우월적(優越的) 지위에 머물러 있는 기간(期間)이 여자에게 더 많더라. 세상에는 나이 50살이 넘어 아내의 경제권, 아니면 의사결정에서 자유(自由)로운 남편(男便)은 없단다. 남편을 좀 이해하고 져 준다해서 손해보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둘째는 가정에서 남편(男便)의 권위를 세워주지 않으면 자녀 교육(敎育)은 엉망이 된다는 사실이다 . 뼈대있는 종가(宗家)에서는 온 가족이 지키는 규범이 있다. 지키기는 어렵겠지만 인기 있는 아버지가 아닌 존경(尊敬)받는 아버지로 자식(子息)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여기에서 어머니의 연출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세째, 남편은 돈을 벌어 와서 한 가정(家庭)을 지탱해야 하지만, 그러나 현명賢明)한 아내는 좋은 가문(家門)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식을 잘 키운 어머니는 지식(知識) 있는 엄마가 아니고, 지혜(知慧)로운 엄마였단다. 부모가 살아가는 모범적(模範的)인 생활을 보여 주는 것도 자녀에게는 제일(第一) 좋은 교육(敎育)이더라.
네 번째는 시댁과 친정(親庭)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균형(均衡) 있게 처신하여라.
남편이 잘못하면 한 집안이 망하지만, 아내가 잘못하면 두 집안이 망한다. 또 올케가 친정 아버지 어머니를 잘 모시기를 기대 한다면 그런 마음으로 시아버지 어머니를 잘 모셔라.
가정의 근본은 효에서부터 발생한단다. 뒤에서 자식들이 부모가 그 부모한테 하는 행동을 항상 보고 자란다.
다섯 번째, 남편이 의리(義理)를 앞세운 실속 없는 단순한 행동(行動)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지만, 그러나 곤경(困境)에 처할 때는 온 가족이 운명을 걸고 큰 용기(勇氣)를 불러주어야 한다.
어려움이 처할 때 아내의 용기(勇氣)는 절대적이다. 함께 포장마차 할 마음이면 세상(世上)을 살아가는데 어려울 것이 없다. 그러나 남편의 기를 꺾는 행동은 하지 마라.
여섯 번째, 결혼 후에는 가문이 함께 하는 종교를 가져라.
종교가 다를 경우 '우리'라는 종교적 개념(槪念) 차이 때문에 가문과 가족이 화목(和睦)에서 분열(分裂)되는 경우가 많다. 한 가족, 한 가문(家門)에서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지면 불행(不幸)하다. 이 경우는 우리나라에서만 생각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한 집안에 두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지구상에서 종교로 인해 발생한 전쟁이 80%를 넘는다고 한다.
일곱번째, 남편을 다른 사람과 비교(比較)하지 마라.
남편은 백마(白馬)를 탄 기사(騎士)도 아니고, 생활(生活)을 위한 필수품도 아니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同伴者)일 뿐이다. 항상(恒常) 신혼(新婚) 초기 마음으로 살아라. 연애 할 때처럼 살면 세상이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는다.
여덟번째, 삶의 주거지는 비탈진 산밑에나, 큰 하천 옆에, 그리고 반 지하에, 집을 정하지 말라. 또 남편이 차(車를) 운전(運轉)할 때도 옆 좌석에 앉아 열심히 조잘거려라. 단 한번 잘못 된 기회(機會)에 재앙으로 부터 온 가족이 불행(不幸)을 겪는 경우가 있다.
아홉번째, 전 가족이 추구하는 외형적인 조건(條件), 물질적인 조건들의 수위를 정하여, 되도록 검소(儉素)하고 모범적인 가정(家庭)을 이끌어라.
지금 우리는 없어 불행한 것이 아니라, 남과 비교해 적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팔자는 옛날 임금님 팔자보다 훨씬 좋은 편이다.
열번째, 결혼(結婚)으로 인해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아라.
대전 댁(宅), 새댁, 누구 엄마라는 호칭으로, 안방에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을 가지고 웃지만 말고, 내가 있어 세상(世上)이 즐거운 나를 만들어라.
이것이 세상을 바르고, 주관있게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여 아버지가 시집가는 너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결혼은 소풍가는 것처럼 즐거운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항상 이상형의 현실이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그 곳에는 책임과 의무 예절 효 모든 것이 어울러져 나타내는 복합적인 삶이다.
뚜벅뚜벅 다소 늦더라도 실수하지 않고 걸어가는 삶. 단 한번의 실수가 신용을 추락하고 주변으로부터 홀대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화려한 옷이 필요 없듯이 의무와 책임을 중시하고 온 가족이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라. 그리고 가문을 바르게 일으켜 세우는 일도 생각해보아라.
더러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때는 혼자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걱정하지 말고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오손도손 의논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가족은 상하수직(上下垂直)의 서열이 아니고 함께 나란히 길을 걸어가는 평행의 동반자이니까 말이다.
우리의 큰 딸! 영아야,
너희들에 행복한 결혼을 축하한다.
너를 사랑하는 '아브지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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