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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상곡(上谷)의 땅은 어디일까?

작성자문 무|작성시간11.02.07|조회수490 목록 댓글 1

                                                      상곡(上谷)의 땅은 어디일까?

 

      여유당전서(강역 고. 예맥 고) 薉 貊 考 <2>

 

    【1<본문/원문> : 史記匈奴傳云.左方王將居東方直上谷以往者.東接穢貉朝鮮.司馬貞云..卽濊也.: 사기(史記) 흉노(匈奴)전에서 이르기를, 좌방(左方)왕장이 사는 곳은 곧바로 상곡(上谷)에 간 자들이다. 동쪽에 예맥(穢貉)조선(朝鮮)과 연이어져 잇다. 사마정이 이르기를, ()은 곧 예()이다.

 

    ○ 상곡(上谷)”!!!!!!!!!!!!!!!!!! 역사서(歷史書)를 보면서, 수없이 반복되는 의문(疑問)중의 하나가 바로 상곡(上谷)”이란 지명의 위치(位置). 대륙(大陸)사에서는,

 

    ➊ 오원 五原 : 섬서(陝西) 북방 내몽골을 흐르는 황하(黃河) 북안(北岸)에 있는 지명(地名)으로 전한(前漢), 후한(後漢)시절 이곳에 도요(度遼 : 요수 또는 요하를 건너다) ()이 설치되었던 곳이다.북방 900 리에 조양(造陽)”의 옛 성()이 있었다고 하며, 조양(造陽)”은 상곡 군(上谷郡)에 속해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양(造陽)”()의 장수 진개가 조선(朝鮮)의 서쪽 땅 일천리를 획득하고, 조양(造陽)에서 양평(襄平)까지 성을 쌓았다.고 하는 곳이다.

 

    ➋ 사기지명 고에서는, 색은(索隱)이 상고해 이르기를, 태강지기(太康地記) / 秦 塞 自 五 原 北 九 里九 百 里, 謂 之 造 陽. 東 行 終 利 賁 山 南, 漢 陽 西 是 也. : ()의 성채(요새. 변경)는 오원(五原) 북쪽 9 900 에 있는데, 조양(造陽)이라 일컫는다. 동쪽으로 끝나는 곳은 이 분 산(利賁山)의 남쪽이며, 한양(漢陽)의 서쪽이다. 구 백리 (900 ) : 자치통감과 통전 등에서는 9 리가 아닌 900 리로 되어 있다는 점을 참고

 

    ➌ <史記 韓王 信 傳>: <聞 冒 頓 居 代 上 谷 : 흉노 모돈이 대(). 상곡(上谷)에 살고 있다는 것을 듣다.>에서 정의(正義) ()에서 이르기를, 今 嬀 州 (지금의 규 주이다.)라 하였다.

 

    ➍ <사기(史記) 정의(正義) : 상곡(上谷)은 지금의 규 주(嬀州)인데, 유주(幽州)서북 700 리에 있다.하였고,

 

    ➎ <화식(貨殖)>에서 이르기를, 상곡(上谷)으로부터 요동(遼東)은 땅이 너무 멀어, 백성은 별로 없는데, 수차례 침구(侵寇)당하였다.고 했으며, 또한 조양(造陽)은 규 주(嬀州)의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➏ 사기(史記) 흉노(匈奴)전에서 말하기를, 5, 롱 성(蘢 城)에서 큰 회합을 하였다.고 했으며, 색은(索隱)이 이르기를, 한서(漢書)()이 용()이다.하였다. 최호(崔浩)가 이르기를, 서방 오랑캐들이 믿는 것은 용신(龍神)이며, 옛 부터 큰 대회를 치루는 곳은 용성(龍城)”이다. 상고해보면 ; 흉노(匈奴)들이 해마다 큰 회합을 갖는 곳은 막북(漠北)의 탑 미 이 하(塔米爾河) 경계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➐ 사기(史記) 대완(大宛)전을 보면, 대월(大月)씨 나라는, 대완(大宛) 서쪽 2,3천리 정도에 있는데, 규수(嬀水)의 북쪽에 살고 있다. 그 남측에는 대하(大夏)가 있으며, 서쪽에는 안식(安息)나라가 있고, 북쪽에는 강거(康居)가 있다.고 하였다.

 

    ➑ 규 주(嬀州)는 하천의 이름에서 취한 것을 알 수 있는데, 규수(嬀水)에서 지명(地名) 차용, 취한 것이다. 서역(西域)도고(圖考)에서 이르기를, 규수(嬀水)()”오 호 하(烏滸河) 또는 오 호 수(烏 滸 水)를 말하는 것인데, 또 다른 이름은 박 추하(縛芻河)”이며, 지금의 이름은 아모 하(阿母河)"이다. 위에서 말하는 규수(嬀水); 오 호 수(五 滸 水)로써,

 

   【현대의 설명을 보면 ; 오 호 수(烏 滸 水)는 아무다리아강(A m u, D a r y a, 러시아어: Амударья, 페르시아어:آمودریا, D a r y a (바다를 의미함)는 파미르(총령(蔥嶺) 고원에서 발원을 해, 힌두쿠시 산맥을 빠져서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국경 지대의 북서(北西)쪽에서 흐르는 강이다. 원래는 아랄 해로 흘러서 들어갔지만, 현재는 사막(沙漠) 쪽에서 사라지고 있다. 연장 1450km (원래는 2400 km)."다리야"는 터키어로 ""의 의미이므로 "아무 강"이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위의 것을 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통전 서역(西域)편을 보면서 인용해보자>

 

    ※ ( ) <挹 怛 同> :( ) 噠 國, 或 云 高 車 之 別 種, 或 云 大 月 氏 之 種 類. 其 源 出 於 塞 北. 自 金 山 而 南, 在 于 闐 之 西, 東 去 長 安 一 萬一 百 里. 至 後 魏 文 帝 時, 已 八 九 十 年 矣. 衣 服 類 胡, 加 以 纓 絡, 頭 皆 翦 髮. 其 語 與 蠕 (), 高 車 及 諸 胡 不 同. 部 眾 可 十 萬. 依 隨 水 草. (中略). 又 兄 弟 共 娶 一 妻, (中略). : ( ) 달 국 : 혹 이르길 고차(高車)의 별종이라 하였고, 혹은 대월(大月)씨의 종류라 하였다. 그 나라는 본시 새북(塞北)에서 나왔는데, 금산(金山)이남의 우전(于 闐)서쪽에 있다. 동쪽으로 장안(長安)10,100 리를 가야한다. 후위 문제시에 이르러 이미 8, 90년이 되었다. 의복(衣服)은 호와 같은 것을 입고, 갓끈을 이어(纓 絡) 더하며, 머리는 모두 털을 자른다. 그 나라의 말은 연연(蠕蠕)과 같다. 고차(高車)와 여러 호()와 같지 않다. 부족의 무리는 십만이며, 수초(水草)를 따라 산다. 또 형제(兄弟)는 공동으로 한 아내를 맞이한다.(중략).

   《 挹 怛<읍 달>. 至 隋 時 又 謂 挹 怛 國 焉. 挹 怛 國, 烏 滸 水 南 二 百 餘 里, 大 月 氏 之 種 類 也. <: 뜰 읍. : 슬플 달> : 읍 달 국 위의 ( ) 달 국과 같다. : ()나라 때 이르러 이르길 읍 달 국이다. “읍 달 국의 서울(도읍지)은 오 호 수(烏 滸 水) 남쪽 200여리에 있는데, 대월(大月)씨의 종류이다.

    ○ 위와 같이 신강(新疆)의 서쪽지방인 아랄 해 남쪽주위에 있었던 나라들의 언어(言語)가 연연(蠕蠕)의 말을 사용(使用)했다.는 것은 이 나라들이 연연(蠕蠕)에 오랫동안 복속(服屬)되었거나, 또는 같은 부류(部類)일 때만이 가능(可能)한 이야기이며, 이때 연연(蠕蠕)이란 나라는 이들의 동서남북(東西南北) 가까운 곳에 있었을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5천리(千里), 또는 7천리(千里), 1만 리(萬里)이상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면 당시의 사정(事情)으로 보아 불가능(不可能)한 이야기다. 또한 이러한 연연(蠕蠕)과 고구려(高句驪)가 모의(謀議)하여, 북쪽에 있던 국가(國家)를 쳐, 빼앗아 그 땅을 나누어 갖자고 했을 때, 연연(蠕蠕)과 고구려(高句驪)의 땅은 근접(近接), 인접(隣接)하고 있었을 때만이 가능(可能)한 것이다. 이러한 연연(蠕蠕)종족들 역시 고구려(高句驪)와 같은 부류(部類)라 할 수 있다. 이들 역시 수초(水草)를 따라 다니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이목(移 牧), 유목(遊牧)종족들이었다. 이러한 유목(遊牧)종족들에게서 소위 말하는 고려장(高麗葬)”이란 속설(俗說)이 생겨난 것이다.

    ● 고려장(高麗葬)”에 대해 통상적 역사해설반도(식민)사관을 말한다.에서, 하나는 집안의

    늙은 어버이를 내다 버리는 장례 풍습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무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었다는 설이다. 이러한 주장(主張)과 설()에 대해서 대부분 일제 식민지(植民地)시절의 미와 타 마 키(三 輪 環) 192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동화집, 이병도(李丙燾)1,939년 판국사대관및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은자의 나라 한국(Corea : The Hermit Nation)에서는 “K o-r a i-c h a n g”(고려장)이라는 용어가 1882년 초판서 기록하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에서 필요부분 요약함>

    ● 『고려장(高麗葬)이란 고려(高麗) 곧 고구려(高句驪)의 장사 지내는 방법 또는 관습을 말한다.고 정의할 수 있는데, 수십 차례에 걸쳐 설명할 것처럼 고구려(高句驪)는 본래 유목국가(遊牧國家)였다는 것을 인식(認識)해야만 한다. 유목종족(遊牧種族)들은 지금 거주하고 있는 곳의 계절 또는 환경(環境)이 바뀌어 물()이 메마르거나, ()이 말라버리면, 그들의 생명 줄인 소, , , 낙타 등의 가축을 기를 수 없기 때문에 다른 환경을 찾아 먼 이동(移動)을 해야만 했다. 가축의 가죽과 털은 그들이 거주하는 집을 만드는 중요 재료이며, 또한 의복이 되며, 고기와 유즙은 양식이며,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이것들은 이들의 생명(生命)과도 같았다. 현대(現代)인들이 이런 옛 사람들의 생활(生活)을 이해(理解)하지 못한다면 인간(人間)으로 자격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이것은 이들 유목종족(遊牧種族)들에게는 숙명(宿命)적인 일이다.

    이럴 때 병자(病者), 또는 이동(移動)할 때 장애(障碍)가 되는 나이 많은 노인들을 격리(隔離)하여, 그들 부족(部族)들이 계절이 바뀌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살아갈 수 있는 양식(糧食)을 두고, 대부분의 부족(部族)들은 이동(移動)을 하게 된다. 수개월이 지난 후 그들이 돌아왔을 때 살아있다면 다행일 것이며, 죽었다하더라도 그것은 이상할 것 없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유목(遊牧) 또는 이목(移牧)족들에게는 이것은 하늘의 뜻일 뿐이다. 병자 몇 명, 또는 나이 많은 불편한 사람 몇 때문에 부족(部族) 또는 종족(種族)전체가 굶어 죽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풍습(風習), 관습(慣習)을 가지고 무식하다거나, 야만인(野蠻人)이라거나, 비인간적(非人間的)인 처사(處事)라고 하는 자들은 인간(人間)의 역사(歷史)에 대해 말할 자격조차 없다.

   『고려장(高麗葬)이란 고려장(高驪葬)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제(日帝)의 사학자와 이병도(李丙燾)을 위시한 친일 사학자들의 농간(弄奸)으로 비인간적(非人間的) 장례(葬禮)풍습으로 변질되었다고 본인(本人)은 주장(主張)한다. 이러한 친일(親日) 사학자들의 영향(影響)을 받은 오늘날의 학자(學者)들이나, 백성(百姓) 역시도 똑같은 경우이다. 본인은 국민(國民)이란 말을 사용하기를 꺼린다. 왜냐, 현재야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국민이겠으나, 대한민국(大韓民國)이전의 역사(歷史)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百姓 : 백가지 성을 가진 여러 민중들을 말한다.이란 단어(單語)를 즐겨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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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곡(上谷)은 옛 조선(朝鮮)의 영토(領土)였다. 상곡 군(上谷郡)의 면적이 얼마만한 것이었는지 문헌(文獻)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으나, ()의 장수(將帥) “진개(秦開)”가 동호(東胡)의 볼모로 잡혀 있다가 풀려나 연()의 동쪽지방조선(朝鮮)의 서쪽지방을 정벌, 1천 여리2천리라는 주장도 있음의 땅을 빼앗은 후, 이곳에 오군五郡 : 상곡(上谷), 어 양(漁陽), 우 북 평(右北平), 요서(遼西), 요동(遼東)을 설치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땅은 예맥(穢貉=濊貊=穢貊), 부여(扶餘), 그리고 그 후엔 고구려(高句驪)가 이곳을 차지하였다.

    통상적 역사해설반도(식민)사관로 보는 조선(朝鮮)의 영토(領土),

    ➊ 당시 연()진개(秦開)”가 조선(朝鮮)의 서쪽 땅을 탈취하기 전()의 조선(朝鮮)의 영토(領土); ► 『중원(中原) 서북방 영하회족자치구 은천(銀川)시 북방의 내몽골과 외몽골 땅으로부터 산서(山西)북방 전 지역과 하 북 성 및 동북의 3요녕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흑룡강성(黑龍江省)일부땅과 반도(半島)를 아우르는 큰 제국(帝國)이었다.는 결론(結論)이며,

    대륙조선사(大陸朝鮮史)로 보면,

    ➋ <사기(史記) 정의(正義) : 상곡(上谷)은 지금의 규 주(嬀州)인데, 유주(幽州)서북 700 리에 있다.하였으므로, 당시 규수嬀水 = 규 하(嬀河)가에 있었던 규 주(嬀州)가 상곡(上谷)이었다고 했으니, 이를 기준 한다면, 중앙아시아 아랄 해동쪽지방으로부터 신강(新疆) 및 현 대륙과 반도(半島)까지를 아우르는 거대(巨大)한 땅을 가진 제국(帝國)조선(朝鮮)”이라 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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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를 뒷받침하는 대륙의 기록을 보면 ; 여기서 중요한 것은 5 ()지역이 어딘 가이며, 5 (五郡)은 대륙 5 (五郡)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냐 하는 점이다. 조선사와 대륙 사에서는 이상하게도 대륙 사에 등장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 조선사(朝鮮史)에 등장한다.

    ● 대륙(大陸) 북방 5 (五郡)롱 서. 삭 방. 북 지. 상 군. 운 중 군이다. 대륙 사(大陸史)에서 말하는 ► 《 5 (五郡)북해北海=한해(瀚海)=신강(新疆) 북방과 서북(西北)쪽에 있다고 대륙(大陸)사는 기록(記錄)하고 있음서남(西南)에 있다.』》고 하였다.

   《 사기(史記) / 衛 霍 傳 / 正義 : 五郡謂隴西.北地.上郡.朔方.雲中,並是故塞外,又在北海西南. 위 청. 곽 거 병 열전 / 정의 : 5 군은 롱서. 북지. 상군. 삭방 군. 운 중군인데 나란히 옛 새외(塞外 : 변경 밖)에 있다, 북해(北海) 서남(西南)에 있다.

    ● 조선(朝鮮) 서쪽지방에 설치한 연()5 (五郡)의 이름을 보면, 상곡(上谷), 어 양(漁陽), 우 북 평(右北平), 요서(遼西), 요동(遼東)으로, 이들 지명(地名)을 보면, 하천을 중심으로 한 상곡(上谷), 요서(遼西), 요동(遼東)”서쪽의 북 평(右北平)” 및 주()의 제후국이었던 어 양(漁 陽)”이다. 문제는 이들 5 군의 위치(位置)가 대륙사로 해설하면, 중원(中原) 서북방의 황하(黃河) 서쪽이며, 어 양(漁陽)과 상곡(上谷)은 신강과 그 서쪽지방에 있었다는 것이다.

    ● 이러한 결과(結果)로 보면, 동호(東胡)란 신강(新疆)지방을 포함한 그 동쪽지방에 살고 있던 자들을 말하는 것이며, 당시 연()은 신강(新疆)일부와 그 서(西)쪽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 진개 (秦 開)는 전국(戰國)시대 연()나라 소왕(昭 王) 때 장군(將軍)이다. 형가의 부장(部將) 진 무양(秦 舞 陽)의 조부(祖父)이다. 진개(秦開)는 기원전 3세기 초에 동호(東胡)에 볼모로 잡혀 있었다. 이때 동호(東胡)의 신임을 얻은 진개(秦開)는 동호(東胡)의 허실(虛實)을 모두 정탐(偵探)하였으며, 돌아온 뒤 동호(東胡)를 공격(攻擊)하여 1천여 리의 영토(領土)를 정복(征服)하였다. 또한 고조선(古朝鮮)도 공격하여 2천여 리의 영토(領土)를 정복하고 만반한(滿 潘 汗)을 경계로 삼았다. ()나라는 이렇게 정복한 지역에 상곡(上谷), 어 양(漁陽), 우 북 평(右北平), 요서(遼西), 요동(遼東)5개 군을 설치하였으며, 요동(遼東)에까지 이르는 장성(長城)을 쌓았다고 한다. {중국(中國) 문물 국이 2000년 발굴한 대 릉 하길목의 요 녕 성 건창 현(建 昌 縣) 동대장자(東 大 杖 子)촌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에서 청동(靑銅)단검(短劍)과 연()나라 토기들이 함께 출토(出土)되었다. 보고서(報告書)에는 무덤의 주인공이 연()나라 시대의 장군(將軍)의 무덤이라고 하였다. 무덤의 주인공이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라고 비정하는 학자들이 있다.} 진개의 손자는 진 무양(秦 舞 陽)으로, 진시황제(秦始皇帝) 암살(暗殺)을 꾀하였던 자객(刺客) 형가荊軻 ?~기원전 227) ()나라 출신으로 중국 전국시대의 자객이다. () 시 황제(始皇帝)을 암살하려 했던 인물이다.를 도왔던 사람이다. 출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위의 인용 글에서 { }한 부분을 보면, 역사 왜곡을 어떻게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예를 볼 수 있다. {중국(中國) 문물 국이 2000년 발굴한 대 릉 하길목의 요 녕 성 건창 현(建 昌 縣) 동대장자(東 大 杖 子)촌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에서 청동(靑銅)단검(短劍)과 연()나라 토기들이 함께 출토(出土)되었다. 보고서(報告書)에는 무덤의 주인공이 연()나라 시대의 장군(將軍)의 무덤이라고 하였다. 무덤의 주인공이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라고 비정하는 학자들이 있다.} 라고 설명하는데, 그 무덤이 연나라의 토기라는 증거(證據)는 무엇이며, 무덤의 주인공이 ()의 장수 같다.” 하고는 혹시 진개(秦開)의 무덤이 아닐까 비정, 또는 추정하는 학자도 있고 하였다.

    우선 위의 글을 보면, 그곳 지방이 옛 ()”나라 땅이었다는 것을 이미 고정시켜놓고(기정사실화 해놓고), 발굴된 토기가 어느 때 제작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이미 이곳이 옛 연()의 땅이라고 확정 해놓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의 것으로 인정해 버린다. 또 무덤에서 청동(靑銅)단검(短劍)이 나오니 아! 이것은 장군(將軍)의 무덤 같은데, 그렇다면 옛 조선(朝鮮) 땅을 이곳이라 하였으니 이곳 조선(朝鮮) 땅을 정벌한 진개(秦開)”의 무덤이 아닐까? 해버리는 것이다. 이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조선(朝鮮)”의 영토는 이곳의 동쪽지방으로 확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역사를 왜곡(歪曲)하고, 조작(造作)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➒ 결론(結論)을 내어보면,

    『상곡(上谷)은 본래 위 오 호 수 (烏 滸 水)烏滸水는 오호 하(烏滸河)이며, 규수(嬀水)를 말하는 것이고, 또 아모 하(阿母河)를 말하는데, 중앙아시아의 아무다리아강을 말한다.주변에 있었다는 것이며, 이후 1, 2차 이동(移動)되는 과정(科程)을 거치게 된다. 마지막 이동된 것이 중원(中原) 북방 내몽골을 흐르는 황하(黃河) 북안(北岸)에 있는 오원(五原) 서북방 900 리 외몽골 땅에 있었던 조양(造陽)”상곡 군(上谷郡)”의 속현이었다.는 것을 알면 조선(朝鮮)사의 숨겨진 비사(秘史)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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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본문/원문> : 貨殖傳云.燕北鄰烏桓.扶餘東綰穢貉,朝鮮,眞番之利. : 화식전에서 이르기를 ; ()의 북쪽에 오환(烏桓)과 이웃하고 있으며, 부여(扶餘) 동쪽에는 예맥(穢貉)과 얽혀 있는데, 조선(朝鮮), 진번(眞番)의 이로움이 있다.

 

    ●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예맥(穢貉)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예맥(穢貉)의 위치를 찾으면 자연스럽게 조선(朝鮮)”의 영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 북쪽에 오환(烏桓)”이 이웃하고, ()의 동쪽에 예맥(穢貉)”이 있었다.는 것이므로, 우선 역사서(歷史書)에 기록된 오환(烏桓)”의 위치를 찾아보면, ()나라의 정확한 영토(領土) 및 그 위치(位置)를 찾을 수 있다. 통상적 역사해설반도(식민)사관을 말한다.에서 옛 ()”의 영토(領土)를 현 하 북 성(河北省)지방으로 해설(解說)하고, 지도(地圖)에 그렇게 그려져 있다. 과연 그럴까?

 

    ◎ 후한서(後漢書) 오환(烏桓)열전을 보자. ;

 

    ➊《烏桓,本東胡也.漢初,匈奴冒頓滅其國,余類保烏桓山,因以為號焉.俗善騎射,弋獵禽獸為事.隨水草放牧,居無常處.以穹廬為捨,東開向日.食肉飲酪,以毛毳為衣.貴少而賤老,其性悍塞.(中略). : 오환은 원래 동호(東胡 : 동쪽 오랑캐)이다. ()나라 초에 흉노(匈奴) 모돈(冒頓)이 그 나라를 멸하자, 그 나머지 무리들을 오환 산(烏桓山)에서 지켜, 이로 인하여 그들의 호칭이 되었다. 풍속이 말을 타고 활을 쏘며, 금수(禽獸)를 수렵, 사냥하는 것을 업으로 하고, 수초(水草)를 따라 방목(放牧)하여, 사는 곳이 일정치 않다. 궁려(窮廬)로 폐하고, 해를 향해 동쪽을 열어 놓는다. 고기를 먹고 유즙(乳汁)을 마신다. 털로 짠 피륙을 옷으로 입는다. 귀함과 천함이 있고, 그 성질이 사납다.

 

    ➋ 沙漠之中.其土多蝮蛇,在丁令西南,烏孫東北焉. : (그들의 땅은) 사막(沙漠)의 가운데에 있는데, 그 땅에는 뱀. 살모사가 많다. 정령(丁令)의 서남(西南)에 있으며, 오손(烏孫)의 동북(東北)쪽이다.

 

    ➌《烏桓自為冒頓所破,口遂孤弱,常臣伏匈奴,歲輸牛馬羊皮,過時不具,輒沒其妻子.及武帝遣驃騎將軍霍去病擊破匈奴左地,因徙烏桓於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五郡塞外,為漢偵察匈奴動靜.:오환(烏桓) 그들은 모돈(冒頓)에 의해 깨뜨려져, 홀로 떨어져 약해져, 상시 흉노(匈奴)의 신하로 복종했다. 대대로 소와 말과 양피(羊皮)를 날랐는데, 모자랄 때에는 그들의 처와 자식을 번번이 몰수당했다. 그리고 한()무제(武帝)가 보낸 표기장군(驃旗將軍) “곽 거병(霍去病)”이 흉노를 쳐 좌지(左地 : 동쪽 땅)에서 깨뜨리자. 이로 인하여 오환(烏桓)<상곡(上谷). 어 양(漁陽). 우 북 평(右北平). 요서(遼西). 요동(遼東)> 등의 5군 요새(要塞) 밖으로 옮겨가자, ()나라에서는 흉노의 동정을 정찰(偵察)하였다.

 

    ● 오환(烏桓)!!!!!! 그들이 살고 있었던 땅은 사막지중(沙 漠 之 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곧 사막의 가운데라는 말로써, 특이(特異)한 지형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는 것이지만 사막(沙漠)”이란 현존하는 지구상에서 예나 지금이나 특이(特異)한 환경(環境), 그로 인해 특이(特異)한 기후, 특이한 동, 식물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이에 따라 중원(中原)지방의 대륙과 신강 성(新疆省)지방, 중앙아시아 지방 등의 사막지대를 살펴보자. 근세기에 자연적 환경변화 및 인위적인 환경변화로 생겨난 사막(沙漠)지대를 제외하면, 중원(中原) 서북방의 돈 황(燉煌)을 위시한 고비사막과 그 주변. 신강(新疆)의 타클라마칸 사막과 중가리아 사막, 신강(新疆)서쪽의 카라쿰사막과 키질쿰 사막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고비(戈壁) 사막 : 신강(新疆)과 외몽골 접경(接境)지대의 알타이산맥(山脈)에서 흥 안 령(興 安 嶺)산맥 서쪽에 걸친 동서(東西) 1,600km, 남북(南北) 5001,000km 정도이며,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라 하며, 암석사막(岩石沙漠)으로 형성되었으며, 모래사막(沙漠)으로 된 지역은 매우 적고, 돈 황(燉煌)과 옥문(玉門)관 유역(流域)은 모래사막 지대(地帶)이나, 고비사막 안에는 넓은 초원(草原)지대가 있다. <과벽(戈壁) : 몽고(蒙古)에서 사막(沙漠)을 칭할 때 과벽(戈壁)이라 칭하는데, 대막(大漠)지대를 말함>

 

    (2) 아 랍 선 사막 (阿 拉 善 沙 漠) : 고비사막의 동남(東南)부를 말하는 것인데, 동서(東西) 550km, 남북(南北) 300km이다. 고비사막(沙漠)의 남단(南端)부를 이루며, 내몽고(內蒙古)서쪽지방과 하란 산(賀 蘭 山) 서쪽지방, 하서주랑(河西走廊=하서회랑) 이북(以北)지방으로, 내몽골과 외몽골의 접경지대를 말하는 것으로 약수(弱水 : 흑수 : 거연) 동쪽에 있는 사막(沙漠)과 파단길림(巴 丹 吉 林)사막(沙漠), 등 격리(騰 格 里)사막(沙漠) 및 오 란 포 화(烏 蘭 布 和)사막(沙漠)을 통틀어 아랍선(阿拉善)사막(沙漠)이라 한다. 저지대(低地帶)에는 함수호(鹹水湖). . 소택지 등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고, 남부(南部)는 모래언덕(沙丘)이 펼쳐져 있다.

 

 

    ※ 고금지명대사전 : 대막(大漠)이란 대 사막(大 沙漠)을 칭한다. 동쪽의 흥 안 령(興安嶺) 서쪽에서 일어나, 흑룡강(黑龍江). 찰 합이(察哈爾). 외몽고(外蒙古)변경으로, 서쪽으로 천산(天山)의 동단(東端)까지이다. 바로() 액 제 납(額濟納 : 내몽골 최 서쪽). 외몽고(外蒙古). 신강(新疆) 변경(邊境)이다.

 

    동북(東北)에서 비스듬하게 서남(西南)으로 향하였는데, 무릇 36백리이며, 남북(南北)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12백리에서 22백리이다. 지세(地勢)의 높이는 바다로부터 4천척(千尺)이며, 평탄(平坦)하며, 광 막(廣漠)하다. 한 번 바라보면 넓고 멀어서 끝이 없다(一望無際). 수 백리사이에 물을 발견할 수 없어 옛 부터 경작(耕作)은 할 수 없다. 축목(畜牧)도 마땅히 할 수 없다. 계절(季節)에 따라 시들고 떨어진다. 4월에는 광풍이 일어나 모래와 돌을 날리는데, 옛 부터 유사(流沙)”라 한다. 이로 인하여 사막(沙漠)이라 한다.

 

    ㈠ 몽고(蒙古)는 둘로 나누는데, 막남(漠南)은 내몽고(內蒙古)이며, 막북(漠北)은 외몽고(外蒙古)이다.

 

    ㈡ 액 노 특 몽고(額魯特蒙古) 역시 둘로 나누는데, 막남(漠南)은 하서 액 노 특(河西額魯特)이요, 막북(漠北)은 금산 액 노 특(金山額魯特)이다. 대막 부(大漠府)는 당나라 때의 기미 부(羈靡 府)부인데, 신강(新疆)의 토 노 번(吐魯番) 경이다.

 

    (3) 준갈이분지(準 噶 爾 盆 地) : 신강(新疆) 천산산맥(天山山脈) 북쪽에 있으며, 면적 70정도이며, 동쪽은 높고(평균 높이 1,500m), 서쪽은 낮다(평균높이 200m).겨울과 여름의 기온차가 40-50도 이르며, 대륙성 기후로 강수량은 년 200미리 미만이다.

 

    (4) 타클라마칸(塔 克 拉 瑪 干) 사막 : 포창해蒲昌海 : 염택(鹽澤) : 르포노르호()서쪽지방의 사막(沙漠)을 말하는 것으로 100m 안팎의 크고 작은 모래언덕(砂丘)이 이어지며, 이러한 사구(砂丘)가 바람에 따라 이동(移動)하기 때문에 이곳을 통과하는 것은 죽음을 부르는 것과 같아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땅이라고 불렸다. 포창해(蒲昌海) 동쪽과 옥문(玉門)관 사이는 백용 퇴(白龍堆)라 부르는데, 암석(岩石)으로 이뤄진 사막이며, 이곳은 여름과 겨울의 날씨는 혹서(酷暑)와 혹한(酷寒)으로 유명하다.

 

    (5) 카라쿰 사막 : ()아무다리야”, (西)카스피 해연안사이의 사막지대를 말한다.

 

    (6) 키질쿰 사막 : 붉은 모래사막이란 뜻으로, 중앙(中央)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걸쳐 있는 사막으로, 북서(北西)쪽은 아랄 해, 북동(北東)쪽은 시르다리야 강, 남서(南西)쪽은 아무다리야 강 사이의 사막지대를 일컫는다.

 

    ● 본인은 위의 사막(沙漠)중에서 (2) (3)의 사막(沙漠)지대를 오환(烏桓)과 연결시키고 싶다. 물론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근거(根據)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몽고(蒙古)는 오환(烏桓) ()쪽에 있었다.고 했으며, 본시 몽고(蒙古)종족들이 살고 있던 곳은 내만, 외라, 구성, 회골의 고성, 화림등지의 땅을 말하고 있는데 이곳은 외몽골의 최 서쪽 천산북로(天山北路)의 땅, 또 신강(新疆)의 서쪽지방과 카자흐스탄과 옛 석 국(石 國) 땅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남쪽지대에 오환(烏桓)이 있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 따라서 貨殖傳云.燕北鄰烏桓.扶餘東綰穢貉,朝鮮,眞番之利.이란 기록을 대입해보면 ;

 

    (1) ()나라는, 현 신강(新疆)성 지방과 그 동쪽 알타이산맥 주위에,

 

    (2) ()의 북쪽인 천산북로(天山北路)와 알타이산맥을 포함한 그 이북지방에 오환(烏桓),

 

    (3) ()과 오환(烏桓)의 동쪽지대인 알타이산맥과 항 애 산맥(杭愛山脈)사이에 예맥(穢貉)과 부여(扶餘)가 있었는데, 하서회랑(河西回廊)의 장성(長城) 북쪽지방에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4) 조선(朝鮮)은 부여(扶餘)의 동()쪽과 그 동남(東南)지대에 있었다는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지리적 구도는 대륙 사(大陸史)의 기록을 충족시킬 수 있다. 평양(平壤)성 서쪽에 옥저(沃沮)가 있고, 옥저(沃沮) 서쪽에 개마대산(蓋馬大山)이 있다는 후한서(後漢書)의 기록과 같은 맥락(脈絡)이다.

 

    ○ 조선사(朝鮮史)에 대해 식자(識者)들은 말씀하시기를, {잃어버린 역사, 빼앗긴 역사}를 되찾아야 한다고 하면서 열심히 반도(半島) 조선사(朝鮮史)에 대해 설명한다. “. . . . 를 외우면서 말이다. 또한 각 T. V 방송국에서는 수십억(?)씩 백성(百姓)들의 혈세(血稅)를 동원(動員)하여, 혈세(血稅)를 어디에다, 어떻게, 누구에게, 쏟아 부을까 머리가 싸매고 터지도록 잔머리를 굴린다.

    그리고는 ○○○. ○○○등의 역사물을 열심히 찍어 안방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방 영물에서 나오는 지명(地名)이나, 위치(位置), 영토(領土)는 반도조선사(半島朝鮮史)와 식민사학(植民史學)의 범위에서 0.001 %도 벗어나지 못하고, 다람쥐 체 바퀴 돌듯 한다. 이러한 불행(不幸)한 사태는 반도조선사(半島朝鮮史)와 식민사학(植民史學)을 전파하고, 더욱 견고(堅固)하게 고착(固着)화시키는 일등공신(一等功臣) 역할을 150% 초과달성(超過達成)할 것이다.

    ○○○! 그 분의 활동상황과 생전에 조정(朝廷)을 위해, 백성(百姓)들을 위해, 국력(國力)을 키우고, 노심초사(勞心焦思)하였을 것으로 묘사할 것이나, ○○○왕이 자신(自身)이 몸담고 있는 왕조(王朝)와 백성(百姓)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에 대해서야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 문제는 어디에 있던 왕조(王朝)를 위해서, 어디에 있던 백성(百姓)들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노력했는가가 가장 중요한 핵심(核心)인 것이다.

    그것의 답은 ○○○왕이 몸담고 있던 왕조(王朝)의 영토(領土)가 반도(半島) 서남(西南) 모퉁이 외진 땅이었는가? 아니면 서역(西域)의 땅으로부터 동진(東進)하여, 대륙의 땅 요충지를 할 거 (割據)하다가 장강(長江) 유역에서 최후(最後)를 맞은 왕조(王朝)였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중요한 핵심부분을 모조리 빼고, ()의 치적(治積)만을 내세울 때, 누구를 위한 치적(治積)이겠는가 반문(反問)할 수밖에 없다. 나라()가 존재하려면, 영토(領土)와 백성(百姓)과 왕조(王朝)의 이 세 가지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조선(朝鮮 : 총칭)이 신()의 국가(國家)가 아닌 이상 우선 영토()가 있어야 백성(百姓)들이 그곳에서 삶을 살며, 먹고사는 것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을 제도하고, 다스릴 군주(君主)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어디에 있었던, 어떤 곳의 땅인지도 모른 채..........웃기는 얘기다.

    ▣ 희극戱劇 : 실없이 하는 행동(行動)이나 익살을 부리는 연극(演劇)의 각본처럼 써진 조선사(朝鮮史)가 하루라도 빨리 소멸되어야 할 것이다.

                                                       20110207<글쓴이 : 문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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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Юрий(유리) | 작성시간 11.04.02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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