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갈(靺鞨)에 대하여!
○ 우리들의 통상적 역사 해설에서 『말갈(靺鞨)』이라고 하면,
【말갈(靺鞨) <위-키 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말갈(靺鞨; 중국어 정체: 靺鞨, 간체: 靺鞨, 병음: Mòhé, 모 허)은 6~7세기경, 만주 북동부에서 한반도 북부까지 거주한 퉁구스계 민족으로, 주나라 때에는 숙신, 한나라 때에는 읍루라 불렸다. 본래 쑹화 강 (松 花 江) 유역의 물길(勿吉)이 지배하였으나, 6세기 중엽 물길의 세력이 약화되자, 각 부족들이 자립하였는데, 이들을 총칭하여 말갈이라 부른다. 이후 고구려, 발해에 복속했었으며, 발해 멸망 이후 요나라 때부터 여진(女眞)이라 불렸다가 청나라 때에는 만주족이라 하였다.《삼국사기》에는 1세기 무렵부터 말갈이 신라, 백제와 교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이 시기 등장한 "말갈"을 “예 족”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말갈족은 후에 여진족으로 불렸으며,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에 의해 지배를 당하지만 “아구다”가 부족을 통합하여 세력을 확장해, 금나라를 세우고 만주와 북중국을 지배하였다.】라고 설명한다. 다른 역사서나 해설서 대부분 위의 내용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내용이다.
【 이러한 말갈(靺鞨)은 시도 때도 없이 반도(半島) 북부(北部)지방에서 신라(新羅)와 백제(百濟)의 변경(邊境)지방을 침략, 공격하고, 고구려(高句驪)와 함께 백제(百濟)와 신라(新羅)를 공격하기도 했다고 전하며, 당(唐)나라와 신라(新羅)에 의해 백제(百濟)가 망(亡)하고 난 뒤, <백제(百濟) 땅을 신라(新羅)와 함께 나누었다.>고 역사서는 적고 있으며, 고구려(高句驪)와 당 태종(太宗)과의 전투에선 용감무쌍(勇敢無雙)하게 싸우니, 당 태종(太宗)이 이들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다가, 마침 포로(捕虜)로 잡힌 말갈(靺鞨)병사 삼천(三千)여명을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시켜 화를 풀었다고 전한다.】
● 도대체 “말갈(靺鞨)”이란 종족(種族)들이 어디에 살고 있었기에, 조선사(朝鮮史)에 빠지지 않고 등장(登場)하고 있는 것일까. 『특히 삼국【三國 : 고구려. 백제. 신라】시절의 말갈(靺鞨)의 정체와 이들이 살고 있었던 곳을 찾을 수만 있다면 당시 조선【朝鮮 :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토(領土)를 찾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대륙(大陸)의 역사서를 찾아 “말갈(靺鞨)”이 있었던 곳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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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舊唐書 列傳 第149 北狄 / <鐵勒> 편을 보면 ;
《鐵勒,本匈奴別種.自突厥強盛,鐵勒諸郡分散,眾漸寡弱.至武德初,有薛延陀,契苾,回紇,都播,骨利干,多覽葛,僕骨,拔野古,同羅,渾部,思結,斛薛,奚結,阿跌,白霫等,散在➊磧北.薛延陀者,自雲本姓薛氏,其先擊滅延陀而有其眾,因號為薛延陀部.其官方兵器及風俗,大抵與突厥同. : 철륵(鐵勒) : 본시 흉노(匈奴)의 다른 종이다. 돌궐(突厥)이 강성할 때, 철륵(鐵勒)의 여러 군(郡)은 분산(分散)되어, 무리는 점점 적고 약해졌다. 무덕(武德)초에 이르러, 『설연타(薛延陀). 글필(契苾). 회흘(回紇). 도파(都播). 골 리간(骨利干). 다람갈(多覽葛). 복골(僕骨). 발 야 고(拔野古). 동라(同羅). 혼 부(渾部). 사결(思結). 곡설(斛 薛). 해결(奚結). 아 질(阿跌). 백 습(白霫)』등이 있었는데, ➊『적 북 (磧 北)』에 흩어져 있었다. 설연타(薛延陀)는 본시 성(姓)이 “설(薛)”씨이다. 그 선대에 연타 (延 陀)를 격멸시킨 그 무리들인데, 이러 인해 호칭이 ‘설연타(薛延陀)부’라 하였다. 그들은 사방에 관청과 병기가 있고, 풍속은 대저 돌궐(突厥)과 같다. 》
《復建牙於大漠之北郁督軍山下,在京師西北六千里.➋東至靺鞨,西至葉護,南接沙磧,北至俱倫水,回紇,拔野古,阿跌,同羅,僕骨,口諸大部落皆屬焉. : 아장【牙帳: 본영. 왕도】 을 『대막(大漠)의 북쪽, 욱 독 군 산【郁 督 軍 山 : 천산(天山)을 말한다.】』아래(下)에 다시(復) 설치하였다. 경사(京師 : 장안?)로부터 서북 6000 리에 있다. ➋동(東)쪽으로 “말갈(靺鞨)”에 이르고, 서쪽으론 “엽호 (葉 護)”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사적(沙磧=沙漠)”에 접하였으며, 북쪽으로는 “구륜 수”에 다다른다. 『회흘. 발 야 고. 아 질. 동라. 복골. ( )』의 여러 큰 부락들이 모두 이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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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舊唐書 列傳 第149 北狄 / <鐵勒> 편을 보면 ; “말갈(靺鞨)”의 위치를 기록하였다. 우선
➊『적 북(磧北)』:【철륵(鐵勒)의 여러 부족(15개 부)은 『적 북(磧北)』에 흩어져 살았다.】에서 『적 북(磧北)』은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1) 【蓋 沙 陀 者 大 磧 也 ,在 金 莎 山 之 陽 ,蒲 類 海 之 東 ,自 處 月 以 來 居 此 磧 ,號 沙 陀 突 厥。: 모든 “사타”는 “대적(大磧)”이다. “금사 산”의 북쪽(陽)에 있으며, “포 류 해”의 동쪽이다. “처 월”이래로 “적(磧)”에 살았으며, 호칭하기를 “사타돌궐‘이라 하였다. 】
2) 이러한 옛 기록에 따르면 “적(磧)”의 중심(中心)은 “포 류 해(蒲類海) 동쪽지방”이다. 지리(地理), 지형(地形)적으로 보면, 포 류 해(蒲類海)와 알타이 산맥(山脈)사이의 땅을 말한다. 이곳은 천산(天山)의 북쪽이다. <이미 전회에 자세한 설명을 하였으므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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➋ 위 본문 중에서 철륵(鐵勒)의 동쪽 한계(限界)를 말하기를, 『東 至 靺 鞨 : 동(東)쪽으로 “말갈(靺鞨)”에 이르고』하였다.
1) <동(東)쪽으로 “말갈(靺鞨)”에 이르고,(東 至 靺 鞨)>에서 “지(至)”는, <이를 지>로써 보통, <이르다. 다다르다. 도달하다. ∼까지>의 뜻으로 사용된다. <東 至 靺 鞨>은 <동쪽으로 말갈(靺鞨)까지, 동쪽은 말갈에 이른다.>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말갈(靺鞨)의 거점 지를 설명한 반도사관(半島史觀)은, 【만주 북동부에서 한반도 북부까지 거주한 퉁구스계 민족으로, 주나라 때에는 숙신, 한나라 때에는 읍루라 불렸다. 본래 쑹화 강 (松 花 江) 유역의 물길(勿吉)이 지배하였으나, 6세기 중엽 물길의 세력이 약화되자, 각 부족들이 자립하였는데, 이들을 총칭하여 말갈이라 부른다.】고 설명한다. 위 구당서 철륵(鐵勒)전의 철륵(鐵勒)부족들의 동쪽 한계(限界)가 <만주(滿洲) 북동부 또는 반도(半島) 북방>이라고 한다면, 당시 철륵(鐵勒)부족들은 <현 카자흐스탄 북부지방과 신강(新疆)의 북부지방 및 외몽골을 지나 현 만주 북동부까지 직선거리 무려 4,000km 쯤>에 걸치는 광활한 영토(領土)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2) 위 본문 설명은 당시 철륵(鐵勒)의 영토를 말하는 것으로, 철륵(鐵勒) 여러 부족(部族)들이 살아가던 경계(境界)를 나타내는 것이다.
● 아장【牙帳 : 군중(軍中)의 장막(帳幕). 옛적에 군문에 세우는 기가 상아(象牙)로 꾸며져 있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은 곧 군영(軍營)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의 중심(中心)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대막(大漠)의 북쪽 “욱 독 군 산【郁 督 軍 山】아래』에 설치(設置)하였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그들 부족(部族)들이 살던 방향(方向)과 경계(境界)지역을 말하고 있다.
● 우선 아장(牙帳)이 있는 곳은 『경사(京師 : 장안?)로부터 “서북(西北) 6,000 리”떨어져 있다.』고 하였다. 6,000 리 떨어져 있었다고 보면, 대략 『신강(新疆)과 외몽골과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접경지역쯤 될 것이다.』 이곳엔 “벨루하 산【해발고도 4,508m : 현 카자흐스탄 영토 내】” 이 있다. 이곳은 “알타이산맥” 서북(西北)쪽 최고 봉우리이다.
● 자치통감(資 治 通 鑒)의 주석(註釋)에 따르면, “욱 독 군 산(郁 督 軍 山)”은 “천산(天山)”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대막(大漠)의 북쪽지방>이라고 한 것과 <경사(京師 : 장안(長安)기준)로부터 서북(西北) 6,000 리>의 조건을 충족시키려하면 <알타이산맥 서북쪽 최고봉>이 유력하다.
3) 이들의 『남쪽 한계(限界)』는 사적(沙磧)지대로, 신강 “토 노 번(吐 魯 番)으로부터 합 밀(哈密)”북쪽지대의 포 류 해(蒲類海)에 이르는 곳이다.
4) 이들의 서쪽 한계(限界)는 『“엽호 (葉 護)”에 이르고』에서 ; 엽호(葉護)라는 지명은 없으며, 통전(通典) 북적(北狄) 6의 돌궐(突厥) 하(下)편에, 돌궐(突厥)가한(可汗)의 이름이 “엽호(葉護)가한(可汗)”이다. 당시 엽호가한(葉 護 可 汗)의 땅은, 【統 葉 護 可 汗, 勇 而 有 謀, 善 攻 戰. 遂 北 并 鐵 勒, 西 拒 波 斯, 南 接 罽 賓, 悉 歸 之, 控 弦 數 十 萬, 霸 有 西 域, 據 舊 烏 孫 之 地. : 과감하며, 지략이 있었으며, 전쟁에 좋은 공로가 있었다. 북쪽의 철륵(鐵勒)을 아울러 따르게 하고, 서쪽으로 ●파사(波 斯)를 막고, 남쪽엔 계빈(罽 賓 : 캐시미르지방)과 접하여 다하고는 돌아왔는데, 활을 쏠 수 있는 자가 수십만이며, 서역(西域)의 으뜸이 되었는데, 옛 오손(烏孫)의 땅에서 거(據)하였다.】
● 파사(波 斯) : 即 條 支 之 故 地 也. 條 支, 漢 時 通 焉. 去 陽 關 二 萬 二 千 一 百 里, 在 蔥 嶺 之 西. 城 在 山 之 上, 周 迴 四 十 餘 里. 臨 西 海, 海 水 曲 環 其 南 及 東, 北, 三 面 路 絕, 唯 西 北 隅 通 陸 道.
● 계빈(罽 賓) : 캐시미르지방
● 오손(烏孫)의 옛 땅 : 통전(通典)의 오손(烏孫) - 장안(長安)에서 8,900 리 떨어져 있다. 후에 연연(蠕蠕)에게 패하여 총령(蔥嶺)의 서쪽으로 이주(移住)하였다. <地 平. 多 雨. 寒. 山 多 松 樠.(땅은 평평하고, 비가 많으며, 춥다. 산에는 송만(松 樠)이 많다.> 이러한 여러 가지 조건으로 보면, 당시 『오손(烏孫)은 현 카자흐스탄의 <알 마 타> 중심으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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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철륵(鐵勒)의 영토(領土) 한계(限界)를 볼 때, 동쪽의 “말갈(靺鞨)”은 외몽골 서쪽지방의 “항 애(杭 愛)산맥 지대”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 말갈(靺鞨)의 선조(先祖)는 읍루(挹婁)이며, 읍루(挹婁)의 선조(先祖)는 숙신(肅愼)이다. 숙신(肅愼)은 이미 주(周) 나라 때부터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살고 있던 곳은 “산해 경(山海經)”에서 찾아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산해 경(山海經)에서는 “숙신(肅愼)”은 서쪽과 북쪽사이 곧 서북(西北)방향에 있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산해 경(山海經)”의 기록은 후대(後代)의 역사서 기록과 잘 부합되는데, 문제는 역사서의 열전 “말갈(靺鞨)”편을 보면, “경사(京師) 동북(東北) 6천리”라고 되어 있다는 점이다. <靺鞨,蓋肅慎之地,後魏謂之勿吉,在京師東北六千餘里.東至於海,西接突厥,南界高麗,北鄰室韋. : 말갈(靺鞨). 모두 숙신(肅愼)의 땅이다. 후위(後魏)때는 물길(勿吉)이며, 경사(京師) 동북(東北) 6천리에 있다. 동쪽은 해(海)까지이며, 서쪽은 돌궐과 연이어져 있으며, 남쪽은 고려(高麗)와 경계하며, 북쪽에는 실위와 인접하였다.>고 당서(唐書)는 적고 있다.
● 산해 경(山海經) 7 / 해외서경 (海 外 西 經)편에, <海 外 自 西 南 陬 至 西 北 陬 者 1>
<주석(註釋)> : 1 畢 沅 云 : 淮 南 子 墬 形 訓 云 : 自 西 北 至 西 南 方 , 起 修 股 民 肅 慎 民 , 此 文 正 倒 。 知 此 經 是 說 圖 之 詞 , 或 右 行 則 自 西 南 至 西 北 起 三 身 國 , 或 左 行 則 自 西 北 至 西 南 起 修 股 民 。 是 漢 時 猶 有 山 海 經 圖 , 各 依 所見 為 說 , 故 不 同 也 。이라 하여 해외서경의 방위는 서남(西南)에서 서북(西北)모퉁이까지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곳에 등장하는 『숙신(肅愼)의 나라는 서남(西南)쪽에서 서북(西北)쪽 사이에 있었다.』는 설명이다.
또 <肅 慎 之 國 1 在 白 民 北, 有 樹 名 曰 雄 常, 先 入 伐 帝, 于 此 取 之.>
<주석(註釋)> : 1 珂 案 :大 荒 北 經 云 :大 荒 之 中, 有 山 名 曰 不 咸. 有 肅 慎 氏 之 國. 淮 南 子 墬 形 篇 有 肅 慎 民, 周 書 王 會 篇 云 :稷 慎 大 麈. 孔 晁 注 云 :稷 慎, 肅 慎 也 。이라고 하면서 주석 편에는 “대 황 북경”을 인용하여 말하고 있는데, 『아주 먼 황폐한 땅 가운데, 불함산(不咸山)이 있고, 숙신(肅愼)의 나라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 위 두 설명을 보면,
서남(西南)에서 서북(西北)사이의 숙신(肅愼)의 나라와
아주 먼 북쪽지방에 있었던 “숙신(肅愼)의 나라”로 압축된다.
● 서쪽지방의 숙신(肅愼)과 북쪽지방의 숙신(肅愼)은 가능할지 모르나, 동북(東北) 방위의 6,000 리라는 기록은 알 수 없는 내용인 것이다. 문제는 경사(京師)가 어느 곳에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현 대륙의 요충지(要衝地) 땅이 “조선(朝鮮)”의 영토임을 확인한 이상 당시 “당(唐)”나라는 중원(中原)지방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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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흑수말갈(黑水靺鞨)
○ 흑수말갈(黑水靺鞨) 역시 말갈(靺鞨)의 한 종류이다. 다만 이들이 흑수(黑水)주위에서 살았기 때문에 부족의 명칭이 된 것이다. 반도사관(半島史觀)의 역사 해설은,
<위-키 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흑수말갈, 흑수말갈 (黑水靺鞨)은 말갈족의 한 부족이다. 흑수말갈은 지금의 헤이룽장 성(黑龍江省)지방에 거주 하였다. 안 차 골부(安 車 骨 部)의 동북에 있으며 현재의 동강(同 江)에서 백 력(伯 力)까지의 흑룡강(黒龍江) 유역이다. 그들의 활동 지역은 지금의 雙 鴨 山 市, 佳 木 斯 市, 鹤 崗 市, 伊 春 市 및 러시아 연해주의 하바롭스크 크라이 (러시아어: (абаровский край) 지방이며, 비킨(Бикин), 뱌젬스키 군 (Вяземский), 라조 군 (имени Лазо), 하바롭스크 (Хабаровск) 등을 포함한다. 725년 당나라 안동도호부의 설 태(薛 泰)는 흑수말갈에 흑수주도독부를 설치하고 그 수령을 도독으로 하여, 각 부 부족장을 자사(刺史)로 하였다. 후에 발해가 강성하게 되자 일부가 이에 복속하였다. 흑수말갈은 발해의 멸망 이후 거란족에 의해 여진족(女眞)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생여진(生女眞)과 숙여진(熟女眞)으로 분리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알 수 없는 일이다.
(1) 자치통감 唐 紀 2 9 / 玄 宗 中 之 上 / 開 元 十 四 年
【是歲,黑水靺鞨遣使入見,上以其國為黑水州,仍為置長史以鎮之.(註釋)) ➡黑 水 靺 鞨 在 ▶流 鬼 國 西 南, 女 真 即 其 遺 種 也.: 흑수말갈(黑水靺鞨)이 사신을 보내 조정에 들어와 뵈니, 상(皇帝)께서 이 나라를 흑수(黑水)주로 하고, 거듭 장사(長史)와 진을 두었다. (주석(註釋) : 흑수말갈은 유귀(流鬼)국의 서남(西南)에 있다. 여진(女眞)은 곧 그 유종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 【흑수말갈(黑水靺鞨)은 “유 귀 국(流 鬼 國) 서남(西南)”에 있다. 】고 하였으니, “유귀(流鬼)국”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알면 당시의 “흑수말갈(黑水靺鞨)”의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통전/변방 전/북적7의<庫莫奚.契丹.室韋.地豆于.烏落侯.驅度寐.霫.拔悉彌.流鬼.迴紇.骨利幹.結骨.駮馬.鬼國.鹽漠念>중에 “유귀(流鬼)”가 있다.
<유 귀(流 鬼)> : ➡ 流 鬼 在 北 海 之 北. (유귀는 북해의 북쪽에 있다.)
●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북해(北海)”이다. <흑수말갈(黑水靺鞨)은 유귀(流鬼)의 서남(西
南)지방에 있고, 유귀(流鬼)는 북해(北海)의 북(北)쪽에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북해(北海)의 서남(西南)지방이라면,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1) 북해(北海) : 바이칼 호수 - 이곳의 서남(西南)이면, 고비사막과 항 애 산맥이다.
2) 북해(北海) : 고비사막(한해(澣海) - 장액. 주천. 돈 황 지방이다.
3) 북해(北海) : 대막(大漠)의 북쪽 - 알마티. 타슈켄트지방으로 아랄 해 동쪽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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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舊唐書/ 本紀/ 下 : 15년
【十一月.中略.癸酉,薛延陀以同羅,僕骨,迴紇,靺鞨,霫之眾度漠,屯于白道川.命營州都督張儉統所部兵壓其東境;兵部尚書李勣為朔方行軍總管,右衛大將軍李大亮為靈州道行軍總管,涼州都督李襲譽為涼州道行軍總管,分道以禦之 : “설 연 타 외 동라, 박골, 회흘(回紇), 말갈(靺鞨), 습(霫)”>등의 무리가 사막(漠)을 건너 백도 천(白 道 川)에 진을 쳤다. 명을 받은 영주도독 “장 검”의 여러 부대를 통솔하여 그들의 동쪽지경을 압박하고, 병부상서 “이 적”이 삭방행군총관과 우위대장군 “이 대량”이 령 주 (靈 州 : 오원서북방)도 행군총관, 량 주 도독 “이 습 예”가 량 주 도 행군총관이 되어 나누어서 길을 나와 방비하였다.】
● <‘설 연 타’ 외 ‘동라’, ‘박골’, ‘회흘’, ‘말갈’, ‘습’>등의 부족들이 무리를 이뤄 사막(沙漠)을 건너 백 도 천(白 道 川)에 진을 치니>, <영주도독 “장 검”의 여러 부대를 통솔하여 그들의 동쪽지경을 압박하고, 병부상서 “이 적”이 삭방행군총관과 우위대장군 “이 대량”이 령 주 (靈 州 : 오원서북방)도 행군총관, 량 주 도독 “이 습 예”가 량 주 도 행군총관>이 되어 나누어서 길을 나와 방비하였다는 설명이다.
● 이들이 사막(沙漠)을 건너 “백도 천”에 진을 쳤다면 <‘설 연 타’ 외 ‘동라’, ‘박골’, ‘회흘’, ‘말갈’, ‘습’>등은 최소한 ➊ 고비사막이나 ➋ 준갈이 사막(沙漠)을 “건너왔다”는 뜻이다.
● 우리 스스로 생각해보자. <말갈(靺鞨)과 습(霫)>은 “흑룡강(黑龍江)성” 주위에 살고 있었던 옛 종족이라고 우리는 가르치고, 열심히 배워왔다.
● 대륙(大陸)의 원전(원문)내용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적혀있다. <말갈(靺鞨)과 습(霫)> 종족이 현 “흑룡강(黑龍江)성” 주위에서 현 “신강(新疆)성” 북방의 “준갈이사막” 북쪽 주위 일만(一 萬)리를 이동(移動)하였다면 역사가들은 그에 합당(合當)한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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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新 唐 書 卷 220. 列 傳 145. 東 夷 (高 麗. 百 濟. 新 羅, 日 本. 流 鬼) 중에서 〔流 鬼〕편을 보자.
【북해(北海)의 북쪽에 있다고 하는 “유귀”열전이 동이(東夷) 곧 『고구려. 백제. 신라. 일본』 편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
【 流 鬼 : 去 京 師 萬 五 千 里, ➡直 黑 水 靺 鞨 東 北, 少 海 之 北. : 경사(長安)로부터 15,000 리이며, 흑수말갈의 동북지방에 있고. 작은 바다 북쪽이다.】
● 이는 곧 <유귀(流鬼)의 서남(西南)지방에 흑수말갈(黑水靺鞨)이 있다>란 것이 된다. ➡우선 흑룡강(黑龍江)성에 있는 흑룡강(黑龍江)의 동북(東北)지방은 <사할린 섬과 오호츠크 해(海)>이며, 이 바다는 소해(少 海)라고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바다이기 때문에 역사서에 기록된 내용과는 전혀 부합될 수 없다.
● 우리가 주목(注目)해야 할 것은 “철륵(鐵勒)의 여러 부족과 말갈(靺鞨)과 습(霫)”등의 여러 부족들이 함께 무리를 이뤘다는 내용이다. 무리를 이루려면, 『“같은 땅 또는 이웃하는 땅”에서 가능한 것이지, 5,6 천리나 1만 리쯤 떨어져 있는 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따라서 옛 조선(朝鮮)과 함께하는 주위의 많은 나라들의 역사 역시 함께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말갈(靺鞨)의 남쪽지방엔 “고려(高麗)”가 있다하였으므로, 당시 고려(高麗)는 고구려(高句麗)를 말하는 것으로, 영토(領土)의 서쪽 한계(限界)는 현 신강(新疆)과 그 서쪽 일부지방【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의 동쪽변경지방과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지방】까지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대륙의 옛 원전(原典)에 근거로 한 것이며, 자치통감(資治通鑒), 통전(通典), 당서(唐書)등이다. 반도사관(半島史觀)이나 식민사관(植民史觀)의 논리(論理) 가지고는 조선사(朝鮮史)와 사건이 전개된 영토(領土)의 한계(限界)는 결코 찾을 수 없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 스스로 반도사관(半島史觀)을 한층 공고히 쌓아 장막(帳幕)을 치고, 다른 어떤 주장(主張)이나 논리(論理)가 전혀 끼어들지 못하도록 디스크 공간을 비워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 이유(理由)는 전혀 알 수 없다. 또 설명해 주지도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판단하라는 것일까?
아마도 진실(眞實)의 역사(歷史)적 사실(事實)들은 영원히 미궁(迷宮)으로 빠져들고, 반도사관(半島史觀)만이 활개를 치면서, 그 아성(牙城)은 철옹(鐵甕)성이 될 것이며, 그들만의 잔치가 벌어질 것이다. 힘이 없는, 무리가 없는 주장이나 논리는 P. C 속의 휴지통과도 같은 역할만 가능할 것이다.
<2011년 03월 23일 글쓴이 : 문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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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Юрий(유리) 작성시간 11.03.23 북해가 러시아 북극해라면 유귀(流鬼)는 빙하 위에 살았다는 소리인데 유귀인들이 에스키모? 저의 소견에 유귀인들은 유목민들로 알고 있는데 얼음 위에서 말을 키웠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북해는 러시아 북극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북해를 북극해(라고 믿고 싶어한)로 알고 있었던 저의 고정관념을 파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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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망국의 한 작성시간 11.03.25 흑수를 찾는 다면 조선사의 절반을 찾는 것입니다. 문제는 흑수가 여러 번 지명 이동을 했기에 원 흑수를 찾기가 여간 쉬운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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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3.29 맞습니다. 반도를 제외한 북 3성 및 현 대륙엔 수십개의 "흑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흑수는 보통명사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흑수는 1) 내몽골 서쪽 약수(장액하) 2) 흑해와 카스피해 주위의 하천 등으로 요약이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조선사를 찾는 다는 것, 진짜 어려운 작업입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으로 되어 있어 어느 곳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 지
참으로 답답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