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東夷)의 영역(領域)은 어디까지?
● 동이(東夷)의 영역(領域)은 과연 어디까지였을까?
(1) 통상적 역사해설에서 <동이(東夷)>라면 <현 대륙의 동쪽 일부지방과 현 만주지방과 반도(半島)와 열도(列島)등지에 살고 있었던 이족(夷族)을 말한다.>고 하며,
(2) 대륙조선(大陸朝鮮)사에서는 <하늘(天)을 떠받치고 있는 천주(天柱)가 있어 이곳이 천하(天下)의 중심(中心)지라는 곤륜산(崑崙山)으로부터 그 동쪽지방에 살고 있는 아홉 종족들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옛 역사서에 기록된 동이(東夷)는,
❶《爾 雅 疏》.九 夷 卽 玄 菟、樂浪、高麗、滿 飾、鳧 臾、索 家、東 屠、倭人、天 鄙。《論語正義》與《爾 雅 疏》同 : 《이 아 소》구이(九夷)는 곧 현토. 낙랑. 고려. 만식. 부수(부여). 색 가. 동도. 왜인. 천비이다. 이는 “이아 소”나 “논어정의”에 같게 기록되어 있다.
❷《東夷 傳》九 種。一 曰 玄 菟. 二曰樂浪.三曰高驪.四曰蒲飾.五曰鳧臾.六曰索家.七曰東屠.八曰倭人.九曰天鄙。: 《동이전》아홉 종. 1.현토 2.낙랑. 3.고려. 4. 만식. 5. 부수. 6. 색 가. 7. 동도. 8. 왜인. 9. 천비
❸《後 漢 書》。東 夷 九 種。畎 夷、于 夷、方 夷、黃 夷、白 夷、赤 夷、玄 夷、風 夷、陽 夷。又 有 藍 夷。《후한서》동이 아홉 종. 견이. 우이. 방이. 황이. 백이. 적이. 현이. 풍이. 양이 또 “람 이(藍 夷)”가 있다.
❹《三國遺事》引 新 羅 僧「安 弘」記。變 九 夷 作 九 韓 曰。日本、中華、吳越、乇 羅、鷹 遊、靺鞨、丹 國、女眞、濊貊。《삼국유사》에 신라 승 “안 홍”기를 인용하여 구이(九夷)는 구한(九 韓)인데 이르기를, 일본. 중화. 오월. 탁라. 응 유. 말갈. 단국. 여진. 예맥이다.
거의 대부분 역사서(歷史書)에는 위의 범주(範疇)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동이(東夷)에 대한 영역(領域)에 대해 진서(晉書)의 기록은, 이것을 뛰어넘어 거리상으로 보면 현 유럽 북방(北方)지대까지를 기록한 내용이 있으니, 참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대륙조선사(大陸朝鮮史), 아시아/조선, 반도조선> 등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조선(朝鮮)의 강역(疆域)을 찾기 위한> 것이므로, 상호간에 오해(誤解)는 없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 밝힌다.】
-------------------------------------------------------------------------
● 晉 書 卷 九 十 七 列 傳 第 六 十 七 <四夷> 동이(東夷)편을 보면 ;
【1】東 夷 【夫 餘 國 / 馬 韓 / 辰 韓 / 肅慎 氏 / 倭 人 / 裨 離 等 十 國 : 부여국, 마한, 진한, 숙신 씨, 왜인, 비리 등 10국】을 기록하고 있다. 이 중에서 비리국(裨離國) 10개국을 설명한 것을 보니,
《裨 離 國 在 肅 慎 西 北 , 馬 行 可 二 百 日 , 領 戶 二 萬 。養 雲 國 去 裨 離 馬 行 又 五 十 日 , 領 戶 二 萬 。 寇 莫 汗 國 去 養 雲 國 又 百 日 行 , 領 戶 五 萬 餘 。 一 群 國 去 莫 汗 又 百 五 十 日, 計 去 肅 慎 五 萬 餘 里 。 其 風 俗 土 壤 並 未 詳.》
《 “비리국”은 숙신(肅愼) “서북(西北)” 에 있는데, 말을 타고 200일쯤 가야하며, 2 만호(萬戶)이다. “양운 국”은 비리국(裨離國)으로부터 말을 타고 가 또 50일 쯤 떨어져 있으며, 2 만호(萬戶)이다. “구 막 한국”은 양운 국으로부터 또 백일을 가는 만큼 떨어져 있으며, 5만여호이다. “일군 국”은 막한(구 막 한국)으로부터 또 150일을 갈만큼 떨어져 있는데, 모두 숙신(肅愼)으로부터 5만(萬)여리 떨어져 있다. 그 풍습, 풍토는 나란히 잘 알지 못한다.》
※ “비리국”은 ‘숙신(肅愼)’으로부터 <하루에 20-30리를 간다고 볼 때, 200 일을 간다면, 4,000-6,000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또 “양운 국”은 ‘비리국’으로부터 하루에 20-30리를 간다고 보면, 1,000리-1,500 리 떨어져 있으니, ‘숙신’으로부터는 5,000 리-7,500 리 떨어져 있는 것이 되며,
“구 막 한국”은 또 ‘양운 국’으로부터 하루에 20-30리를 간다고 볼 때 100일을 가야하니, 2,000 리-3,000 리 떨어져 있으니, ‘숙신’으로부터는 7,000 리-10,500 리 떨어져 있는 것이 된다.
또 “일군 국”은 ‘구 막 한국’으로부터 150일을 가야 한다니 하루 20-30리를 간다고 보면, 숙신으로부터 10,000 리-15,000 리 떨어져 있는 것이 된다.
말미에는 <숙신으로부터 5만 리 떨어져 있다.>고 한다면 도대체 “동이(東夷)”의 영역(領域)은 어디까지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대륙조선을 주장하는 분의 다른 주장은 위의 “비리국(裨離國)”을 고구려(高句驪)의 선대(先代)국가라고 주장(主張)하기도 한다.】
위 기록으로 볼 때
➊ 숙신(肅愼)국을 동북(東北)지대【반도 동북】로 본다고 해도 이곳으로부터 서북(西北)방향으로 5만(萬)리까지【외몽골의 바이칼 호를 지나 신강의 북방을 지나 러시아의 모스크바를 통과하여 핀란드, 스웨덴까지의 거리가 아닐까?】 동이(東夷)들의 나라가 있었다는 것은 『동이(東夷)』라는 것에 대해 새로운 정의(正義)가 필요하지 않을까?
➋ “숙신 씨” 나라는 “조선(朝鮮)과 같다”고 보면, 산해 경(山海經)의 방향으로 보면, 산해 경(山海經)의 중심으로 “서북(西北)에서 서(西)쪽”까지므로, 산해 경(山海經) 중심을 중원(中原)으로 기준하면, “유럽의 북방지대까지” 모두 동이(東夷)강역이라는 말이 된다.
➌ 동이(東夷)라는 개념(槪念) 정의(正義)를 다시 해야 되지 않을까?
《泰 始 三 年 , 各 遣 小 部 獻 其 方 物 。 至 太 熙 初 , 復 有 牟 奴 國 帥 逸 芝 惟 離 、 模 盧 國 帥 沙 支 臣 芝 、 于 離 末 利 國 帥 加 牟 臣 芝 、 蒲 都 國 帥 因 末 、 繩 余 國 帥 馬 路 、 沙 樓 國 帥 釤 加 , 各 遣 正 副 使 詣 東 夷 校 尉 何 龕 歸 化. : 태시 3년, 작은 부락들이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태 희 초에 이르러, 다시 모노국의 우두머리 ‘일지유리’, 모여국의 우두머리 ‘사지신지’, 우리말이국의 우주머리 ‘가모신지’, 포도국의 우두머리 ‘인말’, 繩 余 國의 우두머리 ‘마로’, 사루국의 우두머리 ‘釤 加’, 등 각 정, 부사 등이 동이교위 ‘何 龕’에게 와 귀화하였다.》
● 이들 나라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 위에서 말하는 나라는 모두 오리지널 “동이(東夷)”를 말하는 것이다. 동이(東夷)속에 “왜인(倭人)” 포함되며, 이 “왜(倭)”는 <정통 동이중의 하나>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특별한 존재(存在)도 아니요, 그렇다고 비천(卑賤)한 존재도 아닌 그저 평범한 변방(邊方)지대에 살던 동이(東夷)였을 뿐이다.
===================================================================
【2】조선(朝鮮)이란 나라는 결코 반도(半島)니 그 북방(北方)에 존재할 수 없으며, “조선(朝鮮)”은 대륙(大陸)의 넓은 땅에 있었다는 것이 『대륙조선사(大陸朝鮮史)』라 말할 수 있다. 본인은 여러분들에게 그러한 사실을 옛 역사서에 기록된 것을 가지고 확인시키려 하는 것이지, 역사서를 조작(造作)한다거나, 왜곡(歪曲)하여 확인시키려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서에 기록된 것,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있을 수 없다.
【“반도(半島)와 열도(列島)” 역시 “조선(朝鮮)의 강역(疆域)”이었으나, 다만 “황도(皇都)”가 그곳에 없었다는 뜻이다.】
아래의 기록을 보면서, <문 무(文武)>라는 자가 계속 “대륙조선(大陸朝鮮)”을 주장하고 있는지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 자치통감 진기(晉紀) / 烈宗孝武皇帝上之中.太元五年.庚辰,公元三八零年): 《 洛(幽 州 刺 史. 苻 洛)攘袂大言曰:孤計決矣,沮謀者斬!於是自稱大將軍,大都督,秦王.以平規為幽州刺史,玄菟太守吉貞為左長史,遼東太守趙贊為左司馬,昌黎太守王蘊為右司馬,遼西太守王琳,北平太守皇甫傑,牧官都尉魏敷等為從事中郎.分遣使者徵兵於鮮卑,烏桓,高句麗,百濟,新羅,休忍諸國,遣兵三萬助北海公重戍薊. 〕
〔‘낙【유주자사 부 낙】’이 소매를 물리치며(攘 袂; 양몌) 큰소리로 말하기를 ; 술책을 부려 가로막는 자는 목을 베겠다!, 하고는 자칭 “대장군, 대도독, 진왕”이라 하고, ‘평 규’를 유주자사로, 현토태수 ‘길 정’을 좌 장리로, 요동태수 ‘조찬’을 좌 사마로, 창 려 태수 ‘왕 온’을 우 사마로, 요서태수 ‘왕 림’, 북 평 태수 ‘황 보 걸’, 목관도위 ‘위 부’ 등을 “종사 중 랑”으로 하고, 사신을 나누어 “선비, 오환, 고구려, 백제, 신라, 휴인 국” 등 여러 나라로 보내어 징병(徵兵)케 하고, 파견 병 3만을 북해 공 '중’에게 구원 군을 보내어 계(薊 : 어 양)를 수비케 하였다.〕
○ 여러 나라에게 병력을 요청했다는 것인데, 이 나라 중에서 “휴인(休忍)”이라는 나라가 있다. 듣지도, 기록을 보지도 못한 나라 이름인 휴인(休忍)국! “휴인(休忍)국”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나라란 말인가? 분명하게 역사서(歷史書)에서는 삼국(三國)의 동쪽에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위에서도 보듯, 3만【여러 나라에서 징집된 군사를 뜻한다고 보여 진다.】이란 군사를 도움 받았으니(助), “북해 공”으로 하여금 계(薊)지방을 엄하게 지키라고 하지 않았는가?
● 휴 인 국(休 忍 國)에 대해서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記憶)한다. : 《『명 통지(明 統 志)』에서 이르기를【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함】 : 『신라(新羅)의 동(東)쪽에 있으며. 또한 삼한(三韓)의 속국(屬國)이었는데, 후에 백제(百濟)에 병합(倂合)되었다.』 하였다. 지금 그 땅을 자세히 알 수 없다. 진(晉) 나라 효 무제(孝 武 帝) 태 원(太 元) ‘경진 년’에 진왕(秦 王) 부견(符 堅)이 부락(苻 洛)을 정벌할 때에 휴인國에서 군사를 징발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 대륙조선사(大陸朝鮮史)를 주장하는 본인은 반도(半島)인이다. 나의 아버지께서도 반도에서 사셨고, 조부모(祖父母), 증조, 고조(高祖) 역시 반도에서 사셨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반도사학(半島史學)은 이해할 수 없는 지형지리(地形地理)를 보여주고 있을까? 이게 못내 아쉬운 것이다.
반도사학(半島史學)에서의 휴인(休忍)국! 분명 삼한(三韓 : 삼국)의 <동(東)>쪽에 있었다고 한다면, 현 열도일 수밖에 없다. 이곳은 신라(新羅)의 속국(屬國)이었으나, 후에는 백제(百濟)의 속국(屬國)이 되었다고 한다. 병사들을 징집(徵集)할 정도의 나라였다면 울릉도(鬱陵島)나 독도(獨島)는 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현 열도(列島)라는 얘기인데, 열도(列島)가 또 왜(倭)라는 말은 무엇인가?
조선사(朝鮮史)는 위와 같이 꼬이고, 꼬여 도대체 무엇이 진실(眞實)인지를 알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밀운【密雲 : 두껍게 낀 구름】속을 쳐다보듯, 형체를 찾을 수 없다.
➊ 대 청일통지(大 淸 一 統 志)를 인용하여 ; 휴인 국(休忍 國)은 신라의 동쪽에 있으며, 역시 삼한의 족속이다. 동진(東 晉) 때 연(燕)에 복속하였다가 부진(符 秦)이 연(燕)을 멸망시키자 드디어 진(秦)에 속하였다. 부락(苻 洛)이 용성(龍城)에서 반란을 일으킴에 미쳐서 선비(鮮卑)ㆍ오환(烏桓)ㆍ고구려(高句麗)ㆍ백제(百濟)ㆍ신라(新羅)ㆍ휴인(休 忍) 등 여러 나라에서 징병하였고, 그 뒤에 백제에 병합되었다. (해동역사) :
【<부진(符 秦)이 연(燕)을 멸망시키자 드디어 진(秦)에 속하였다.>라는 말은 연(燕)에 속했으나, <연(燕)이 망하니, 진(秦)에 속하게 되었다.>라는 얘긴데, 그렇다면 이것은 열도(列島)가 될 수 없다. 결국 대륙(大陸)의 광활(廣闊)한 땅에서 벌어졌던 사건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신라(新羅)의 동쪽에 있었는데, 연(燕)나라가 망하니 “진(秦)”에 예속했다가, 다시 신라(新羅)에 예속됐다.』는 얘기다. 그럼 ➊『신라(新羅)는 “휴인(休忍)국”의 서쪽지방에, 연의 동쪽지방에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➋ 연(燕)나라가 삼한(三韓)의 한 나라 곧 마한【馬韓 : 고구려 / 본인 주 : 마한(馬韓)은 마한(馬漢)과 같다고 본다. 곧 마한은 고구려이며, 마한은 한(漢)과 같다고 보는 것이다.】일 때 이러한 지리적(地理的) 구도(構圖)가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지리적(地理的) 구도(構圖)는 아주 중요한 것으로, 조선사에는 연(燕)의 유민(遺民) 또는 유민(流民) 기록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앞으로 대륙조선사(大陸朝鮮史)의 연구과제이며, 연구방향이다.
➋ 통감(統監)을 인용하여, “진 효 무 제(晉 孝 武 帝) 태 원(太 元) 5년 (380)에 진(秦)의 강북장군 유주자사 행 당 공(江 北 將 軍 幽 州 刺 史 行 唐 公) 부락(苻 洛)이 스스로 진왕(秦 王)이라 칭하면서 사신을 나누어 파견하여 선비ㆍ오환ㆍ고구려ㆍ백제ㆍ신라ㆍ휴인 등 여러 나라에서 군사를 징발하였는데, 모두 “우리는 천자를 위하여 번방(藩邦)을 지키고 있으므로 행 당 공(行 唐 公)을 따라 역적이 될 수는 없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휴인 국의 지계(地界)를 지금은 알 수가 없다. (해동역사)
➌ 『명 통지(明 統 志)』에서 이르기를【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함】 : 《휴인(休忍)국은, 『신라(新羅)의 동(東)쪽에 있으며. 또한 삼한(三韓)의 속국(屬國)이었는데, 후에 백제(百濟)에 병합(倂合)되었다.』 하였다. 지금 그 땅을 자세히 알 수 없다. 진(晉) 나라 효 무제(孝 武 帝) 태 원(太 元) ‘경진 년’에 진왕(秦 王) 부견(符 堅)이 부락(苻 洛)을 정벌할 때에 휴인(休忍)국에서 군사를 징발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 삼한(三韓)의 속국! 삼국(三國)의 속국! 휴인(休忍)국은 반도(半島)의 동쪽 어디에 있었던 나라일까? 지형지리(地形地理)로 보면, 반도(半島) 동쪽은 바다이며, 그 건너에는 열도(列島)가 있을 뿐이다.
-------------------------------------------------------------------------
【3】서융(西戎)편【 吐 谷 渾 焉 耆 國 龜 茲 國 大 宛 國 康 居 國 大 秦 國 】을 보면 <관심부분 만>
○ 대 완국(大宛國) : 《大 宛 西 去 洛 陽 萬 三 千 三 百 五 十 里 , 南 至 大 月 氏 ,北 接 康 居 , 大 小 七 十 餘 城 。 土 宜 稻 麥 , 有 蒲 陶 酒 , 多 善 馬 , 馬 汗 血 。 其 人 皆 深 目 多 鬚 。 : 대 완국(大宛國)은 서쪽으로 낙양(洛陽)에서 13,350 리 (낙양(洛陽)에서 서쪽으로)떨어져 있으며, 남쪽으로는 대 월 씨, 북쪽으론 강거(康居)와 접하였는데, 크고 작은 70 여성이 있다. 땅은 벼稻)와 보리(麥)에 적당하며, 포도주(葡萄酒)가 있고, 한혈마, 좋은 말이 많다. 그 사람들은 모두 눈이 깊고, 수염(鬚 : 수염 수)이 많다. 》
● 『대완(大宛)』이란 나라는 현재의 지리적 구도로 보면, 『중앙아시아지방』에 있었다 할 것이다. 이들은 현재의 신강 성(新疆省)지방의 동쪽 종족과는 인종(人種)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이 깊게 들어가 있으며, 수염이 많다는 것은 색목인(色目人)으로, 오늘날의 중앙 아시아인들이라 할 수 있다.
-------------------------------------------------------------------------
○ 강거(康居) : 《 康 居 國 在 大 宛 西 北 可 二 千 里 , 與 粟 弋 、 伊 列 鄰 接。 其 王 居 蘇 薤 城 。 風 俗 及 人 貌 、 衣 服 略 同 大 宛 。 地 和 暖, 饒 桐 柳 蒲 陶 , 多 牛 羊 , 出 好 馬 。: 강거(康居)국은 대완(大宛) 서북(西北) 2,000 리쯤에 있고, <粟 弋>, <이열>과 인접(隣接)하였다. 그 나라의 왕은 “소해(蘇 薤)성”에서 산다. 그 나라의 풍습과 사람들의 모양, 의복등 대완(大宛)과 같다. 땅은 따듯하고 좋으며, 오동나무. 버드나무. 포도. 질그릇 등이 넉넉하며, 소와 양이 많으며, 좋은 말이 산출된다. 》
● 강거(康居)는 대완(大宛)과 같은 종족(種族)이며, <낙양으로부터 15,350 리 떨어져 있었다.>는 말과 같다.
○ 이러한 나라들의 있었던 <현 신강 성(新疆省) 서쪽지방>에 살던 종족들은 전형적인 유목종족이며, 『이들의 주식(主食)은 가축의 고기(肉)와 유즙(乳汁)이며, 이들의 생김새는 눈이 움푹 들어가 있고, 많은 종족들은 색목인(色目人)이었으며, 신체에는 털이 많이 나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양의 종족(種族)들이 살던 곳이 “중국(中國)지방(地方)”이라고 하기엔 많은 무리가 따른다. 또 조선의 중앙조정을 이루고 있는 자들이 황인종이 아닌 “백인”이라는 말은, 인종구도 자체에 혁명이 일어나야 가능한 이야기다.
○ 사기 <대완(大宛)>전의 주해(註解) 편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 康 泰 外 國 傳 云 :外 國 稱 天 下 有 三 眾 : 中 國 為 人 眾 ,秦 為 寶 眾 ,月 氏 為 馬 眾 也. : 강태외국전에서 이르기를, 외국에서 일컫기를 천하(天下)에는 세 가지 많은 것이 있는데, 중국(中國)은 백성(百姓)이 많고, 진(秦)은 보배가 많고, 월 씨(月氏)는 말(馬)이 많다.》하였다.
○ 통전(通典) : 대완(大宛)사람들의 생김새는《其 人 皆 深 目 , 多 髭 髯 : 그 사람들은 모두 눈이 깊고, 콧수염과 구레나룻 수염이 많다.》<자(髭) : 콧수염 자. 염(髥) : 구레나룻 염>
○ 통전(通典) : 大 月 氏 : 이들의 소도(所都)는 藍 氏 城(람 씨 성)이라 하는데, 이 나라에서 한 개의 봉을 가진 낙타가 나온다고 하였다. < 出 一 封 橐 駝. 脊 上 高 起. > 현재의 지도로 보면, <아프가니스탄 카불> 주위이다. <총령(蔥嶺)의 서쪽이다.>
● 확대재생산(擴大再生産)이란 아주 어울리는 말이 있다. 옛 역사(歷史)를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그 어떤 사실, 사건을 확대재생산(擴大再生産)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스런 현상이다.
조선(朝鮮)이란 나라가 만약 그 “조정(朝廷)”이 사막(沙漠) 또는 초원(草原)지대라 불리는 곳에 있었다고 가정한다면, 거기에 걸 맞는 <지리 지형(地理地形)적인 면, 기후, 산업, 동식물, 인종, 종족, 특정 지형(地形)물, 특이 기후 등등> 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조정(朝廷)” 홀로 그곳에 만년(萬年)창창(蒼蒼)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인종(人種)”에 대해서는 <특이 지형과 특이 기후대에 따라 그곳에 살고 있는 인종의 모양새가 각각이다.> 이들이 먹고 살아야하는 본능(本能)을 해결(解決)하기 위해 이동(移動)한다고 하더라도 기존(旣存)의 토착(土着)민들과 피 터지는 전쟁(戰爭)과 싸움을 승리(勝利)로 이끌 때만 가능하다.
아프리카의 황량(荒凉)한 지대에서 땅 좋고, 기후 좋은 곳으로 가고 싶다 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방글라데시에서 좀 더 나은 환경을 가진 땅으로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지도자가 이러한 결정을 했다면 전 부족(部族)이 전멸(全滅)할 각오(覺悟)가 있어야 가능하며, 또한 죽을 각오(覺悟)가 있다고 해서, 승리한다는 보장은 결코 없다. 더하여 기존의 토착민들은 그들의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움에 임할 것이다. 이러한 인간(人間)의 자연법칙(自然法則)에 반(反)하는 특정(特定)집단(集團)의 이야기는 특정(特定)집단(集團)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보편적(普遍的)인 “인간 집단”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 조선(朝鮮)의 “중국(中國)”인이 <백인(白人)>이라는 일부의 말은 <백인(白人)우월주의자> 입장에서나 가능한 말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편찬한 “김부식”의 모양새를 기록한 것을 보면【이미 전에 설명한 적이 있다.】그는 덩치가 큰 흑인【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오해 없으시길】으로 생각할 만큼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면 “고려(高麗) 조정(朝廷)은 흑인(黑人)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김부식”이란 분이 특이한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에 기록된 것이며, 이는 고려(高麗)인들의 일반적 모습과 다름에 그 같은 사실이 기록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더 들어보자. 혹자들 소수가 『“민비 또는 민 황후”는 백인이었다.』고 말한다. <조선조정이 모두 백인(白人)이었다면 ‘민 황후’가 백인(白人)이었다는 말은 필요 없는 것이다.> 조선조정 자체가 백인(白人)이 아닌 황인이었을 때, 백인(白人)이란 말이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본인이 항상 주장하는 것은 <보편(普遍)타당(妥當)한 상식적인 역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지, 특수집단이나, 특정집단의 이야기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 샤머니즘 역시 똑같은 맥락이다. 인간의 공동체에서, 진화하고 변화하는 것은 예견되는 일이며, 그 진화와 변화는 공동체에서 더욱 발전된다. 이는 공동체라는 곳은 경쟁의식 때문이며,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하는 인간의 본능에서 시작된 것이다. 태양을 숭배하고, 특정지형이나 산, 강, 나무 등 특이한 것에 대한 신성(神聖)스러움은 곧 자연(自然)이라 말 할 수 있다. 천신(天神)에 대한 숭배나, 제사는 인류의 대부분 지방에서 거행되며, 특이한 산이나, 지형, 나무 등에 대한 신성(神聖)스러운 존경(尊敬)은 그것에 대한 연륜과 큼에 있다. 특이 동물에 대한 신성시하는 것 역시 지구의 어느 종족, 부족이나 대상만 다를 뿐 대동소이하다. 만약 이러한 것을 조선(朝鮮)과 비교하여 그 대상이 비슷 또는 같다고 하여 “조선(朝鮮)”이라 한다면, 이 지구는 모두 “조선의 것”이다. 누가 이러한 것들을 이해하고, 납득하고, 인정하겠는가?
● 하신(河神)은 황하(黃河)의 신(神)이며, 황하(黃河) 물의 신(神)이다. 물속에 신(神)이 있겠는가? 또 고구려(高句驪) 시조의 어머니가 하(河)의 수신(水神)의 딸이라면 믿겠는가? 하(河)에 대한 경외(敬畏)감으로, 하백(河伯)이란 분이 하(河) 주위를 다스렸을 때 이러한 말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고구려가 하(河)와는 전혀 관계없는 곳에 있었다면, 시조(始祖)의 어머니에 대한 “하신(河神)의 딸”이란 말이 나올 수 있겠는가! 우린 좀 더 객관적이라야 한다.
=========================================================================
【4】南 蠻 <林 邑, 扶 南>
(1) 林 邑 國 : 《林 邑 國 本 漢 時 象 林 縣, 則 馬 援 鑄 柱 之 處 也, 去 南 海 三 千 里. 中略. 四 時 暄 暖, 無 霜 無 雪, 人 皆 ( ) 露 徒 跣, 以 黑 色 為 美. 貴 女 賤 男, : 임 읍 국, 한(漢)나라 대의 상림 현인데, ‘마원’의 철을 부어 만든 기둥이 있는 곳이며, 남해(南海)로부터 3천리(千里) 떨어져있다. 중략. 사계절이 따듯하고(훤 : 暄) 온난하여(暖), 서리가 없고, 눈과 없으며, 사람들은 모두 이슬을 맞으며, 맨발로 徒, 검은 것이 아름다운 것으로 여긴다. 여자는 귀하고 남자는 천하다.(중략).》
● 임 읍(林邑)은 통상 현 ‘베트남’지방을 말한다고 한다. 이곳이 “남해(南海)로부터 3천리(千里)” 정도 될까? 지도를 보면, 『남해(南海)』라는 지명이 『복건(福建)과 광동(廣東)사이 바다 가』에 있으니, 이곳으로부터 베트남의 남쪽지방의 “임 읍(林邑)”과는 3천리 정도 떨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 자치통감(資治通鑑) 진기(晉紀)를 보면, 임 읍(林邑)이 구진【九眞 : 베트남 북부지방】을 침략(侵略)하는 기록이 있으며, 진(晉)에서는 이때 이들을 치기 위해 교주(交州)와 광주(廣州)의 병사들이 동원되었다.
(2) 扶 南 國 : 《扶 南 國 西 去 林 邑 三 千 餘 里, 在 海 大 灣 中, 其 境 廣 袤 三 千 里, 有 城 邑 宮 室. 人 皆 醜 黑 拳 髮, 裸 身 跣 行. 性 質 直, 不 為 寇 盜, 以 耕 種 為 務, 一 歲 種, 三 歲 穫 . 中略. 文 字 有 類 於 胡, 喪 葬 婚 姻 略 同 林 邑. : 부남(扶南)국은 ‘임 읍(林邑)’ 서쪽 3천 여리 떨어져, 바다의 큰 만【바다가 육지 속으로 쑥 들어온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형지리(地形地理)로 된 곳을 찾아보면 수확이 있을 것이다.】중에 있으며, 그 지경은 넓어 길이가 3천리이며, 성읍(城邑)과 궁실(宮室)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주먹에 까만 털이 있어 추하다. 벌거벗은 몸으로 맨발로 다닌다. 성질은 곧고, 도적질을 하지 않으며, 농사는 씨를 한해에 1번 뿌리고, 3 번 수확한다. (중략), 문자는 있으나 호(胡)와 비슷하며, 사람이 죽어 장사를 지내는 것이나 혼인(婚姻)등은 대략 임 읍(林邑)과 같다. 》
● 『부남(扶南)』은 현 역사지도를 보면, 『베트남의 바로 서쪽지방』에 접(接)하고 있기 때문에 붙어있다고 본다. 그러나 위 역사서 기록에는 『“임 읍(林邑)”으로부터 서쪽 3000 리 떨어져 있었다.』고 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差異)가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일단 큰 만(灣)이란 것과 임 읍(林邑) 서쪽 3,000 리라는 것을 대입하면, <인도와 방글라데시> 연안 지방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
(1) 자치통감 98권 <晉紀20> 孝宗穆皇帝.永和四年.戊申,公元三四八年)
《夏, 四 月, 林 邑 寇 九 真, 殺 士 民 什 八 九. : 여름 4월, 임 읍(林邑)이 구진(九眞)을 노략질 하여 사민(士民 : 평민과 양반) 십에 팔, 구를 죽였다. 【열 사람 중 여덟, 아홉을 죽였다는 말임】》
※ <구진(九眞)>은 현 베트남 <하노이 남쪽>지방에 있었다고 하며, <교지(交阯)>는 하노이쯤 될 것이다.
(2) 孝宗穆皇帝上之下永和五年.己酉,公元三四九年)
《桓溫遣督護滕畯帥交,廣之兵擊林邑王文於盧容,為文所敗,退屯九真. : <환 온이 보낸 독호(督護) ‘滕 畯’ 가 인솔한 교주(交州)와 광주(廣州)의 병사들이 임 읍 왕 “문(文)”이 있는 ‘노용’을 쳤으나, 임 읍 왕 ‘문’에게 패하여, 퇴각하여 ‘구진(九眞)’에 주둔하였다.》
(3) 孝宗穆皇帝中之上永和九年.癸丑,公元三五三年)
《三 月, 交 州 刺 史 阮 敷 討 林 邑, 破 五 十 餘 壘. : 3월, 교주(交州)자사 ‘완부(阮敷)’가 “임 읍(林邑)”을 토벌하여, 50 여 진(壘)을 깨뜨렸다.》
● 위와 같은 기록으로 보면, 분명 <“임 읍(林邑)”이란 나라는 현 “운 남(雲南)성” 남쪽지방인 현 베트남지방이 맞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자치통감(資治通鑑) 진기(晉紀)의 기록으로 봤을 때 이야기다.> 만약 그렇지 않다고 보면, <구진(九眞), 남해(南海), 교주(交州)>등의 지명(地名)에 대한 재해석이 우선되어야 한다.
2011년 11월 05일 <글쓴이 : 문 무>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1.06 '대륙조선'도 허망한 사람들의 장난질이라고 하는 마당에, 아시아가 조선이다. 유럽도 뭐........아예 말도 하지말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것은 과거를 수천년 살아 볼 수 없는 까닭에, 그 사회에 대한 여러 상황을 알 수 없으니, 기록이나 유물등으로 판단을 합니다. 인간의 삶이란 자연과의 조화, 싸움의 연속이거든요. 당연히 자연을 경외합니다. 만년내내 천자국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다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입니다. 왜냐구요. 있을 수 없는 일이까요. 망하고, 흥하고, 이것은 자연 법칙입니다. 조선이란 연합체가 자리바꿈을 했다는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요.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1.06 그리고 "왜"와 "해적집단"과는 전혀 다릅니다.
유럽의 섬나라는 미개했다고 보는 것이야, 그러나 그들이 '왜'집단과 같은 짓을 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들이, 기록된 "왜"라는 말은 고증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는 동이입니다. 이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11.06 저는 카페가 커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것은 반도 역시 조선이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있는 곳, 이곳이 최우선 이기 때문입니다.
-
작성자궐한 작성시간 11.11.06 그 부남은...현재의 버마(미안마)겠지요...?
-
작성자도서편 작성시간 11.11.08 전에 아는 몽골인에게 현재 몽골 동쪽에서 서쪽까지 말로 며칠 걸리냐 질문하니 하는 말이 거의 3달 정도 걸린다 했네요 이 부분도 참고하시어 거리를 측정한다면 더 정확한 위치나 거리등이 계산 되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