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댓글

뒤로

아라사(俄羅斯)는 본시 우랄산맥 서(西)쪽의 소국(小國)!

작성자문 무| 작성시간14.10.05| 조회수577| 댓글 14

댓글 리스트

  • 작성자 최남석 작성시간14.10.06 원의 대도가 알마티인줄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오늘 이글을 읽으니 위치비정이 더 확실해집니다
  • 작성자 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10.06 해국도지 속에는 그동안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많은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시간이 나면 전체적으로 세밀하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서.........중요부분이라도 조선사와 관계되는 부분을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최남석님! 조선사 연구에 많은 성원,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10.06 해국도지 북양 아라사 연혁에, 진 한때 정령, 당나라때 골리간, 원때 아라사의 위치가 어디였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현 러시아의 주요부가 모스크바일대라 하더라도 , 청과 러시아의 국경조약(1689년 네르친스크조약, 1727 캬흐타조약, 1858년 아이훈조약)은, 해국도지가 쓰여질 때(1844~1852의 개정작업)때 보다 이른 시기임을 생각한다면, 현 몽골의 북부지방은 러시아의 영토(?)였고, 이를 감안하여 해국도지가 쓰여졌다면 정령, 골리간의 위치는 지금의 몽골 북쪽인 투바공화국 일대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 앙가신의 땅 혹은 앙가랄하 라는명칭이 지금의 앙가라강에 남아 있어 정령 골리간의 위치는 시얀산맥 일대가 아닐까요?
  • 답댓글 작성자 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10.07 청과 러시아의 국경조약이란 말에서 "청"이 현 대륙 땅에 있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대륙조선사에서는 청이 현 대륙 땅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구요. 따라서 "국경조약"이란 자체가 없는 것이 됩니다. 또 다른 사서는 회골의 서북방 3천리에 아라사가 있었다고 했기 때문에 당시의 아라사는 우랄산맥 서쪽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10.06 위글의 주석에 ‘지금 있는 아라사의 동번은 원나라가 있을 때 만(蠻)의 옛땅이며 아라사에 속한 것은 아니었으며 근래에 아라사가 이곳을 병합하였다’ 고 했는데, 만(蠻)의 위치를 우랄산맥 동쪽이라 하심은 이해할수 없습니다. 네르친스크 조약과 캬흐타조약은 왜곡된 것일까요...현 러시아와 중국(청)의 국경 조약은 언제 일까요.. 해국도지가 쓰여진 이후에 형성된것일까요....
    러시아사람들은 푸른 눈에 붉은 수염은 맞지만 검정머리털에 검정눈동자를 가진이가 이릉의 후손이란 것 역시 황인종을 말하고 지금 투바공화국 인구의 70%이상이 황인종이라 하니
    정령과 골리간의 위치는 현 투바공화국(시얀산맥) 일대가 아닐런지요...
  • 답댓글 작성자 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10.07 중요한 것은 "아이태산맥과 흥안대령사이라고 했는데, 흥안대령이란 현 역사통설에서 말하는 대흥안령이 아니라는 것이죠. 또 이릉의 후손이란 수많은 인구를 가질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 이릉이 흉노선우와 싸우다가 포로로 된 곳 역시 현 외몽고 북방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이란 명칭은 황제의 교화기 미치지 못한땅을 이야기 하는 것이며, 현 유럽 땅 역시 "만"의 땅이라고 했습니다. 청과 러시아의 국경조약이란 없었다고 보며, 만약 러시아와 국경조약이 있었다고 한다면 "조선과 러시아의 국경조약"이 될 것입니다. 청은 여진이며, 여진은 우랄산맥 남쪽의 흑해와 카스피 해 주변과 그 동쪽 일부지방이 원토입니다.
  • 작성자 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10.07 현재 말하고 있는 많은 역사해설은 조선을 해체한 후, 빈자리를 메꾸기 위한 역사조작과 서구열강들의 땅뺏기 역사였다고 봅니다. 이것은 여기저기에 산재되어 있는 많은 원문을 보면서 느끼는 점입니다. 많은 성원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10.07
    청나라의 위치가 현 중앙아시아(천산부터 흑해까지)라 가정하고, 해국도지가 쓰여졌을 당시(1844) 청의 문자는 한자(漢字)라 봄이 타당할 것입니다. 지금 해국도지의 원문이 한자니여...아니면, 본래 그들(청)의 문자(만주어?)가 있었고 그들의 문자로 책(해국도지)를 완성한후 훗날 다시 한자로 번역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일까요...중앙아시아에서 한자가 쓰여졌을 개연성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10.07 아뭏튼, 정령 골리간 아라사는 러시아고, 해국도지가 쓰여졌을 당시(1844), 아라사(정령 골리간)은 우랄산맥 서쪽이었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보통, 청의 멸망은 1911년으로 되어있는데 (물론 서서히 망국의 길을 걸었겠지만요..) 1844년 이후부터 아라사는 청을 멸하고 천산 북동쪽(현 시얀산맥 북쪽의 중앙 시베리아)의 조선령과 극동인 블라디보스톡까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그들의 점령지를 넓혔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불과 50년 사이에 가능할까요...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10.07 청나라(중앙아의 청)는 러시아의 동진(東進)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도 궁금합니다.
    청과 러시아와의 국경조약도 없었고 두 나라는 언제 합병되었으며 1911년 청의 멸망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천산 서쪽의 청(淸)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알려진 것이 없으니 .....
    또 천산 서쪽의 청(淸)과 동쪽의 조선은 엄연히 서로 다른 두 나라였다는 이야기인데 역사적 사건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로 그 궤를 같이했다는 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런지요.... 가령 조선의 동학과 청의 태평전국의 난...등
  • 작성자 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10.07 태평천국이 동학이요, 동학이 태평천국이라는 발상전환을 해 보면 어떨까요?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설명할 수 있다면 "조선사"는 이미 완성된 것과 다름이 없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므로 해서 하나 하나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닐까요. 우선적으로 지리적인 위치, 지명, 종족, 부족들의 본래로부터 말입니다. 일사천리로 가능합니다. 그것은 조선이 이미 힘을 잃었기 때문이며, 이때 러시아는 우랄산맥 동쪽으로 진출하여 중앙아시아 및 신강성 북방에서 남하했습니다. 역사설명(현재의)에서 보면, 청과 러시아는 신강성 북지방에서 충돌을 많이 합니다. 여기에 서구열강들과의 복밥한 관계가 설정이 됩니다.
  • 작성자 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10.07 이러한 설명은 기존의 역사통설로도 설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서구열강들의 적극적인 침략은 1세기만에 온 지구상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근세기의 여러전쟁이나 서구열강들의 침략으로 인한 중앙아세아의 영토분쟁, 아프리카의 국경긋기, 이슬람 국가들의 땅뺏기등등 수없이 많은 일들이 1세기 간에 걸쳐 대부분 일어났던 사건들입니다. 골리간이든 정령이든 이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당시의 <아라사국>이 핵심입니다. 일본(일제)는 수십년 만에 아시아를 절반 정도 침략했으며, 대륙의 오지인 내몽고 서쪽과 감숙성 신강성까지도 일부 부대가 침투했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를 함께 감안해 생각해 봅니다.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10.07 동학과 태평천국은 하나의 사건으로 대륙조선에서 일어났다 생각합니다. 하나의 사건을 둘로 쪼개놓은 것이죠...마찬가지로 청의 건륭제와 조선의 영조도 동일인일 가능성이 있고, 이자성의 난과 이괄의 난 역시 같은 사건으로 생각됩니다.
    지난번 환국고려님께 드렸던 질문인데요 ..천산 서쪽에 있었다는 청(淸)의 실체가 모호합니다. 우선 국호가 청(淸)인지부터, 그들은 한자를 사용했는지, 연행록에 나오는 문화들은 있었는지..등등요..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10.07 모든것을 일관되게 다 설명할수는 없겠지만, 천산 서쪽의 세력이 동으로 처 들어와(병자호란) 조선의 황경을 접수했다 란 설정은 이해하기 어렵고,또한 대륙조선에서 천산너머로 연행갔다는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심양지나서 거의 북경(연경)까지 버드나무를 심었다 했는데 가능한 일인지요...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
카카오 이모티콘
사용할 수 있는 카페앱에서
댓글을 작성하시겠습니까?
이동시 작성중인 내용은 유지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