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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勃海)가 범람(汎濫)하였다. (도요장군 2편)

작성자문 무| 작성시간14.11.20| 조회수359|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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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마포대사 작성시간14.11.20 그렇죠.
    장마가 와도 바다는 넘치지 않습니다.
    내륙해가 아니고서 있을 수 없는 일이네요.
  • 답댓글 작성자 마포대사 작성시간14.11.21 만약에 발해가 범람했다는 주장을 한 사람도 사실을 말한 것이고
    실지로 그런 일이 일어난 배경이 지금의 발해라면 이런 가정을 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흔히 실록에서 장마철을 매우(梅雨)라고 하더군요. 다는 아니고 비교적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이 경우 태풍이나 장마를 그렇게 표현합니다. 장마나 태풍이 비슷한 계절에 발생한다는 가정하에
    늦장마가 왔는데 태풍이 왔다. 그러면 범람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원본에 매우 이거나
    태풍이 왔다라는 조건이 충족 되어야 하겠지요. 생각이 나서 적어 봤습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내륙해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겠지요.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 최남석 작성시간14.11.21 좋은 글 입니다 / 친일파 역사 학자들은 일본의 입맛에 맞게 곡학아세하여 부자가 된 것이 아니고요! 그들이 곧 [대동신사보] 라는 책에 나오는 신사 들로 고종의 측근들이며 한반도의 땅들을 나누어 갖은자들 입니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헌병들을 호위병으로 데리고 다니며 원주민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렇게 강탈한 토지에 자기들 비석이나 사당 또는 서원을 세워 거짓 뿌리를 만들어 놓으니 그것이 우리의 역사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할아버지들 입니다 이 당시의 역사학자들은 고종을 비롯한 야쿠자 메이지의 충실한 어용학자 일 뿐 입니다
  • 작성자 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11.21 두 분 감사합니다. 어용학자 또는 매국사학자등등의 단어는 그들에게 당연히 그렇게 불러 두고 두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들이 비석이나 사당 또는 족보를 얻고, 돈과 명예를 얻은 것은 기정사실이며, 이들의 자손 또는 직계 후배들은 지금도 이 나라의 학계를 좌지우지합니다. 이들을 처단하지 않고는 민족의 정기를 바로세울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조선사의 영토찾기는 대륙의 원전만 보더라도 대륙 땅임이 분명한 것인데, 한반도는 자연스럽게 소속된 땅이라고 봅니다. 거짓과 진실의 차이 발견은 사실 큰 것이 아닙니다. 국민의 의식수준이 먼자라고 봅니다. 대륙 땅이 조선! 하면 정신나간 사람취급하거든요.
  • 작성자 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11.21 간혹 조선사의 진실에 대한 여러 문헌을 접한 분들은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대부분은 "정신 나간 자들의 넋두리 쯤으로 매도합니다." 물론 공교육의 탓이겠지요. 그러나 소위 공영방송이니 각종 언론매체는 무엇하는 곳인지, 정말 이해곤란합니다. 정권의 나팔수보다는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매일 매 시간 식민사관을 선전할 것이 아니라, 진실의 문을 열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고싶습니다.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11.21 발해 북해 요해 등등은 내륙해로 서로 비슷한 류의 내륙호이거나 같은 내륙해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합니다.
    조조가 오환을 정벌하러가는데 7월에 큰 비가 내려 바닷길이 통하지 않았다 <秋 七 月 , 大 水 , 傍 海 道 不 通> 는 대목에서 보듯이 여기서의 바다는 내륙해이고 강물이 흘러 들어와 넓은 들에 퍼진 그런 바다입니다. 발해 역시 마찬가지로 강을 끼고 있는 바다(내륙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연행록의 요수에 대한 기록도 마찬가지로..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11.21 길의 폭은 수레 열 대가 다닐 만한데, 매 여름철에 요수(遼水)가 들에 범람하면 길 가는 사람들이 그 버드나무가 있는 데를 보고 의지하여 길을 잃지 않았다. 그 나머지 큰길도 모두 그러하였다.(연원직지 제1권 출강록 임진년(1832, 순조 32) 11월28>
    즉 요수가 범람하거나 너른 들에 물이 넓게 퍼저 있는곳 바로 그것이 바다(발해, 북해)입니다.
    ‘요해는 요수의 상류를 말한다.(遼海卽遼河上源也)’ 는 성경강역고의 내용도 마찬가지죠....요수의 상류에 요해가 있으면 이는 내륙호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것도 강을 끼고 있는 (양자강이 동정호와 포양호를 낀 것과 같은)그런 곳이죠...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11.21 또 하나 유의 해야 할 것은 ....큰 비가 내려 범람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그 계절이 주로 6, 7, 8월로 여름철이자 장마철입니다. 즉 장마가 발생하는 곳임도 빼 놓을수 없는 fact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11.21 이와 같은 요동 들판+바다(요해)는 비가오지 않는 겨울철에 물이 말라 땅(뻘흙)이 들어나는데 이것이 더 마르면 엄청난 먼지를 일으킴니다. 그리고 그 흙은 매우 부드러운 석탄 앙금으로 그 지방이나 강의 상류에 수 많은 노천 탄이 있었음을 짐작할수 있읍니다. 유주의 땅은 검다 했으니 이런 연유 입니다.
    유연(幽燕) 지방은 모래 개천의 불모지이므로 토지의 소출이 없는데, 황경(皇京)은 사방의 재물이 모두 모여드는 도회이므로, 이에 의지하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승정원일기 고종9년 1872 4 4>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11.21 대개 산해관 안팎이 다 너른 들이요, 검은 흙이라. 여기에 이르러 지기(地氣)가 명랑(明朗)하여 갑자기 별계(別界)를 이루었으니, 먼 산이 푸른빛을 띠어 출몰(出沒)하여 고움을 드리우며, 일대 난하 물이 둘러 반월형(半月形)이 되었는지라<무오연행록 6권 1799 2 15>
    바람이 불면 길 가는 사람은 눈을 뜨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북경이 가장 심한데, 이곳은 석탄(石炭) 앙금으로 된 지방으로서 가루가 쌓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옛날 문자의 ‘치진(緇塵 세상 풍진 속에 분주하여 의복이 더럽혀짐)’이란 것이 곧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연원직지 유관별록 천지산천>
    많이 나온 이야기라 다 아시리라 생각 됩니다만.....
  • 작성자 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11.22 옛 선인들이 남기신 보배같은 기록들을 잘 살펴야겠지요. 조선사의 중요한 몇 가지 지형지물과 특이지형들만이라도 확실하게 찾는 다면 아주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생각됩니다. 우선 발해의 동쪽지방이 조선왕조의 터전이요, 백두산 남쪽이 조선의 터잔이요, 요수=요하의 동쪽(한 때 요서지방도 경략했음)이 조선의 터전이요, 또 운중지방의 동쪽과 동북지방이 유주지방이라는 몇 가지는 이미 밝혀졌다고 봅니다. 조선사의 세세한 줄거리는 그 틀안에 있기 때문에 크게 논할 필요성이 적다고 봅니다. 추후의 일이기 때문이죠. 성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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