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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난경(灤京)은 어디며, 이곳에 왜 이릉(李陵)유적(遺迹)이?

작성자문 무|작성시간16.09.03|조회수383 목록 댓글 1

                    난경(灤京)은 어디며, 이곳에 왜 이릉(李陵)유적(遺迹)?

 

         ○ 조선사(朝鮮史)를 찾는다!

   말로 한다면야 이보다 더 쉬운 일은 없을 거다. 조선사(朝鮮史), 우리 스스로 잃어버린 것인지, 망각(忘却)해 버린 것인지, 외세(外勢)에 의해 왜곡(歪曲조작된 것인지 조차 제대로 판단(判斷)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조선사(朝鮮史)를 찾겠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근거(根據증거(證據문헌(文獻)고증(考證유물(遺物)유적(遺蹟)등이 있어도, 조선사(朝鮮史)를 복원(復元)한다는 것은, 요원(遙遠)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時代的) 환경(環境)이다.

    이러함에도근거(根據증거(證據문헌(文獻)고증(考證유물(遺物)유적(遺蹟)등을 찾으려 하지 않고, “카더라()의 말만 무성(茂盛)한 것이 오늘의 현실(現實)이다.

    조선사(朝鮮史)를 공부(工夫), 연구(硏究)하며, 그 진실(眞實)을 찾아 가야 함에 있어, 필독서(必讀書)가 있다면, 조선사(朝鮮史)는 모든 것이 복원(復元)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 그 필독서(必讀書)의 내용(內容)에서 진실(眞實)과 거짓을 누가 판단(判斷)하는가? ‘참고(參考)할만한 책, 추천(推薦)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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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경(灤京)이란 어디에 있는, 어떤 나라의 도읍지(都邑地)를 말하는 것일까? 왜 그곳에 전한(前漢) 기도위(騎都尉) 이릉(李陵)의 유적(遺蹟)이 있다고 하였을까?

       灤京送別用閔及庵韻(난경에서 송별하며 민급암의 시운을 쓰다) / 이곡(李穀)

 

       曉 餞 城 東 露 浥 筵 : 새벽 성동 송별연에 이슬이 흠뻑 적셨는데

       灤 京 百 里 好 風 煙 : 난경 백리를 바라보니 풍경도 좋을시고

       家 家 駿 馬 便 弧 矢 : 집집이 준마 있어 활쏘기도 편리하고

       處 處 高 樓 鬧 管 絃 : 곳곳 누대에 풍악소리도 요란하네.

       劉 保 舊 居 雲 滿 谷 : 유보 살던 집 골짝엔 구름만 가득

       李 陵 遺 迹 草 連 天 : 이릉의 유적은 풀만 하늘에 닿았구나

       及 庵 好 古 詩 無 敵 : 급암의 시를 당할 이 없으니

       壯 觀 應 須 子 細 傳 : 오늘에 본 이 장관을 자세히 꼭 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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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경(灤京), 고죽국(孤竹國)의 도읍지(都邑地) 황낙성(黃洛城)!

 

    (1) 경자연행 잡지(庚子燕行雜識) 잡지(雜識) / () : 난하(灤河)에 이르렀다. 수양산(首陽山) 아래에서 난하(灤河)의 남쪽에 이르기까지 조그만 성()이 하나 있다. 성문(城門)에는 돌로 고죽성(孤竹城)’ 석 자를 새겼고, 중략. 올라가서 보니 난하(灤河) 한 줄기가 10여 리 산골짜기로부터 두 갈래로 나뉘어 흘러내리는데, 중간에 길이가 200여 보쯤 되는 조그만 섬이 있는데 고죽군(孤竹君)의 사당이 그 위에 있다. 중략. 그 서북쪽에 산 하나가 있는데, 속담에 전하기를, 서산(西山)이라고 한다. 중략. 대개 난하(灤河)의 뛰어난 경치는 유주(幽州), 연경(燕京) 수천 리 사이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비록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산과 물이라 해도 역시 여기에 비교하기 어려울 것이다. ()의 안 기둥의 좌우에는 각각 연구(聯句)를 썼는데,

 

                           산 좋고 물 좋은 고죽국에 / 佳 山 佳 水 孤 竹 國

                      난형난제한 현인이시다 / 難 兄 難 弟 古 賢 人 이라 하였다.

 

    (2) 동사강목(東史綱目): 오운(吳澐)이 말하기를, 수서(隋書) 배구전(裵矩傳)고려(高麗)는 본래 고죽국(孤竹國)이다.’ 하였고, 상고하건대 고죽국이 뒤에 요서(遼西)의 땅에 이르렀으니, 그 강역(疆域)이 멀리 뻗어 지금의 요심(遼瀋) 지대가 된다. 고구려(高句麗)가 요동(遼東)을 차지하였으니 배구(裵矩)의 말도 믿을 만하다.하였다.

 

    (3)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영평부(永平府) 서쪽 15 리에 고죽국 군()의 봉한 땅이 있다.” 하였으며, 부성(府城) 서북쪽에 고죽국의 삼군(三君)의 무덤이 있고, 또 백이(伯夷)숙제(叔齊)의 사당이 있으니, 이곳이 고죽국(孤竹國)인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다.” 하였다.

 

    ● 난경(灤京): 난하(灤河)가에 있으며, 고죽국(孤竹國)의 왕성(王城)황낙성(黃洛城)을 말한다. 이곳을 난주(灤州)라고도 불렀고, 난경(灤京)이라고도 한다. ‘전한(前漢)=서한(西漢)’기도위(騎都尉) 이릉(李陵)’이 발 길이, 오늘날 하북성(河北省) 땅에 닿았다고 말하며, 무슨 유적(遺蹟)이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위의 시() 구절(句節)을 보면 : 이릉(李陵)의 유적(遺迹), 돌보는 이 없어, 풀만 가득 하늘까지 닿았다고 하였으니, 무엇인가 이릉(李陵)’과 관계되는 유적(遺蹟)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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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➊ 전한(前漢)의 기도위(騎都尉), 흉노(匈奴)를 치기 위해, 보기(步騎) 5000을 이끌고 거연성(居延城) 서북(西北) 일천(一千)여리에 출정(出征)했다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흉노(匈奴)에게 포위(包圍)당하여 몰살(沒殺) 직전(直前), 항복(降伏)하여, 그의 사위()가 되었다는 롱서(隴西) 사대부가(士大夫家) 출신(出身) 기도위(騎都尉) 이릉(李陵)’, 갑자기 이만(二萬)리를 훌쩍 뛰어넘어, “난경(灤京)”에 무슨 일로 발걸음하고, 유적(遺蹟)을 남겨 놓았을까?

 

    ➠ 결과론(結果論)이지만 : 북해(北海)를 바이칼 호수(湖水)로 만들기 위한 수작(酬酌)이다. 이게 바로 조선사(朝鮮史) 왜곡(歪曲)이요, 조작(造作)이다.이런 외세(外勢)들의 간악(奸惡)한 수작(酬酌)을 모르는 반도(半島) 땅의 불쌍한 백성(百姓)들은, 간악(奸惡)한 외세(外勢)의 앞잡이, ‘매국노(賣國奴)와 친일분자(親日分子)’들이 만들어 놓은 반도조선사(半島朝鮮史), 성전(聖典)인 냥 받들어 모신다. 또 간악(奸惡)한 외세(外勢)의 앞잡이 매국노(賣國奴)와 친일분자(親日分子)가 지금까지도 청산(淸算)되지 않고 있어, 오늘날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정통성(正統性)과 정체성(正體性)을 확립(確立)해 가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흉노(匈奴) 사위() ‘이릉(李陵)’, () 하북성(河北省) 난경(灤京)에 발걸음을 했고, 중랑장(中郎將) 소무(蘇武)는 흉노(匈奴)의 온갖 협박(脅迫)에도 굴하지 않고, 북해(北海)바이칼 호수(湖水)’ 주변에서 유배(流配)를 당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릉(李陵)을 만나 서로의 회포(懷抱)를 풀었다.는 고사(古事)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야 고대(古代) 조선(朝鮮), 북해(北海)로부터 남천(南遷)하여, 반도(半島)북방(北方)에 자리 잡았다는 증거(證據), 문헌(文獻)고증(考證)을 만들기 위해서다. 결국(結局), “이릉(李陵)과 소무(蘇武)”, 시공간(視空間)을 초월(超越)하여, 2만 리(萬里)를 누비고 다닌 셈이 되고, 외계인(外界人)이 되어 버린 것이다.

 

 

    ➋ 그런데 말이다. 옛 전한(前漢)의 서울()이었다는 장안(長安)으로부터 서북방(西北方) 2만 여리(餘里) 쯤에 살고 있었던, 붉은 머리에, 녹색눈동자를 가진, 코가 큰 자()우랄산맥 서(西)쪽이다.속에, 머리가 까맣고, 눈동자가 까만 황인종(黃人種)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이릉(李陵)의 후예(後裔).」》라는 역사서(歷史書) 기록(記錄)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해국도지(海國圖志) 56 아라사(俄羅斯): 直回紇西北三千裏,南依貪漫山地,夏沮洳,冬積雪,人皆長大,赤發,皙麵,綠瞳,以黑發為不祥,黑瞳者必曰陵苗裔也.男少女多. 中略. : 곧바로 회흘(回紇)서북(西北)삼천(三千)리이며, ()쪽 탐만산(貪漫山)땅에 의지하였는데, 여름()에는 축축하고, 겨울에는 눈이 쌓이며, 사람들은 모두 장대(長大)하고, 붉은 머리에, 윤곽은 확실하고, 초록눈동자(綠瞳)이며, 검정머리털을 가진 자는 자세하지 않은데, 검은 눈동자를 가진 자들은 틀림없이 이능(李陵)”의 후손들이다. 남자는 적고, 여자는 많다. .

 

    ➌ 해국도지(海國圖志) 아라사(鵝羅斯)편에는 : 일통지(一統誌)를 인용(引用)하여, 중국(中國)경사(京師)로부터 2만 여리(餘里) 떨어져 있다. 一 統 誌 曰去 中 國 京 師 二 萬 餘 裏고 하였다. 이러한 곳에 사는 종족(種族)들은 모두 장대(長大)하고, 붉은 머리에, 윤곽은 확실하고, 초록눈동자(綠瞳)를 가졌다.그런데 이 중에서검정머리털과 검은 눈동자를 가진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필()히 이릉(李陵)의 후예(後裔)들이다.라고 말한다.

 

    ➍ 이러한 기록(記錄)대로라면 : 당시(當時) 이릉(李陵)이 출정(出征)했다는 거연성(居延城) 북방(北方) 일천(一千)여리(餘里)라는 말은, 우랄산맥 남()쪽인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아랄 해()와 카스피 해()’ 인근(隣近)에서, 그 북방(北方)으로 출정(出征)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 당시(當時)의 흉노(匈奴) 역시 오늘날의 러시아를 구성(構成)하고 있는, 색목인(色目人)들일 가능성(可能性) 많은 것이다.

 

    ➎ 난경(灤京):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와 총령(葱嶺)사이, 붉은 머리에, 녹색눈동자를 가진, 코가 큰 자()들인 색목인(色目人)과 황인종(黃人種)들이 사는 동방(東方)과 그 사이()에 있었으며, 동방(東方)왕조(王朝)의 서(西)쪽 변경(邊境)지방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➏고죽국(孤竹國)의 황낙성(黃洛城) : 왕성(王城) : 난경(灤京)이다.이런 이야기는 왜 요사(遼史) 남경도(南京道) 편에 기록(記錄)되어 있는 것일까? 遼史地理志 四 / 南京道 : 南京析津府 : 난주(灤州) : 灤州,永安軍,,刺史.本古黃洛城.灤河環繞,在盧龍山南. 란주(灤州), 영안군(永安軍), (), 자사(刺史). 본시 옛 황락성(黃洛城)이다. 란하(灤河)가 띠를 두른 듯 감싸있는데, 노룡산(盧龍山)의 남쪽에 있다. 齊桓公伐山戎,見山神俞鬼,即此.秦為右北平.漢為石城縣,後名海陽縣,漢水為公孫度所有.()나라의 환공(桓公)이 산융(山戎)을 정벌할 때, 산신(山神) 유귀(兪鬼)를 보았다는, 곧 이곳이다. ()나라의 우북평(右北平)이다. ()나라의 석성(石城)현이며, ()에 이름이 해양(海陽)현이며, 한수(漢水)는 공손도(公孫度)가 소유(所有)했다. 晉以後屈遼西.石晉割地.在平川之境.太祖以俘戶置. : ()나라 이후 요서(遼西)에 굽혔다. 석진(石晉)이 땅을 할()을 쪼갰는데, 평천(平川)지경이다. 태조(太祖)가 사로잡은 호구를 두었다. 灤州負山帶河,為朔漢形勝之地.有扶蘇泉,甚甘美,秦太子扶蘇北築長城嘗駐此란주(灤州)는 뒤에 산이 있고, 하천이 띠를 두고 있는, ()나라 북쪽의 형승지지(形勝之地 : 지세나 경치가 매우 뛰어난 땅)이다. 부소천(扶蘇泉)이 있는데, 물맛이 아주 감미로운데, ()태자 부소(扶蘇)가 북쪽의 장성(長城)을 쌓는 곳에 일찍이 이곳에서 머물렀다. 臨榆山,峰巒崛起,高千餘仞,下臨渝河.統縣三 : 림유산(臨楡山)의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일어나 있으며, 높이가 천여(千餘)()인데, 아래에 림유하(臨渝河)가 있다. 세 개의 현()을 거느린다.

 

    ➐ 황락성(黃洛城) : 고죽국(孤竹國)의 왕도(王都)라고 하며, 난경(灤京)이라고도 한다. 우북평(右北平), 말 그대로, (西)쪽 지방(地方)에 있는 북평(北平)이란 뜻이다. 북평(北平)은 또 어디에 있는가? 북평(北平)이 없다면, 우북평(右北平)은 존재(存在)할 수 없다.

 

    ➑ 그렇다면 : ()나라의 남경도(南京道)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북부(北部)지방이며, 이곳에 카스피 해()와 아랄 해()가 있고, 그 북()쪽이 중경도(中京道)요 우랄산맥 서(西)쪽에 서경도(西京道), 우랄산맥 동()쪽에 동경도(東京道)가 있어야 한다.

 

       요()는 결국(結局) 러시아지방의 우랄산맥 동서(東西)지역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서요(西遼)니 흑요(黑遼)니 하고 떠들지만 말이다. 이들이 요택(遼澤)에서 살았다는 말은, 곧 아랄해() 및 발햐슈호() 및 자이산호() 주변에 있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➒ 선비(鮮卑)=오환(烏丸)·말갈(靺鞨)·글란(契丹)·몽고(蒙古)등은 한 때, 동서(東西)지역을 넘나들며 대제국(大帝國)을 건설(建設)했다(?)고 하는 종족(種族)들이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종족(種族)들이 오늘날 지구(地球)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정말 사라진 것일까? 사라진 것처럼 인위적(人爲的)으로 왜곡(歪曲), 조작(造作)한 것일까?

 

       간악(奸惡)한 외세(外勢)들이 조선사(朝鮮史)를 반도(半島)로 만들기 위해 인위적(人爲的)으로 사라진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이지 않는 옛 종족(種族), 이 자()들이 바로 조선(朝鮮)을 해체(解體)한 당사자(當事者)들이며, 오늘날의 외세(外勢)들이다.

 

                           20160903<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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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9.04 고전문헌의 인종분포와 현대의 인종분포를 보면,
    아세아와 구라파, 그리고 그 중간지역의 중아아세아지방에서의 인종분포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도는 전한(前漢)시대로부터 21세기 현대를 말합니다.
    조선사를 이루는 주류 세력은 바로 우리들이죠. 이걸 착각하면 모든 것이 착각속의 환상이 되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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