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랑도(海浪島)의 수우(水牛:물소)와 조선(朝鮮) (제1편)
○ 자연환경(自然環境)과 ‘동물(動物)·식물(植物)·인간(人間)’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關係)에 있다. 인간(人間)이 살아갈 수 있는 최적(最適)의 조건(條件)을 갖춘 곳은, “번성(繁盛)하여 많은 인구와 도회지(都會地)와 문물(文物)의 발전(發展)을 가져와 인간(人間)다운 삶의 질을 높여 살아가려고 노력(努力)을 기울인다.”
그러나 인간(人間)이 살아가기에 좋지 않은 환경(環境)을 가진 곳에서 사는 인간(人間)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연장(延長)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먹어야 삶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렵(狩獵)으로 살아가는 인간(人間) 무리(衆)나 가축(家畜)을 끌고 다니며, 수초(水草)를 따라 이동하는 유목(遊牧) 또는 이목(移牧) 무리(衆)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땅의 자연환경(自然環境)은, 척박(瘠薄)한 곳이 대부분(大部分)이다.
자연환경(自然環境)이 다름으로 해서, 인간(人間)의 삶의 종류(種類)가 달라지고, 풍속(風俗) 또한 달라진다.
○ 북극(北極)·남극(南極)…툰드라 등의 한대(寒帶)…사계절(四季節)이 뚜렷한 온대(溫帶)…열대(熱帶)…초원(草原)…사막지대(沙漠地帶)…저지대(低地帶)…고지대(高地帶)…도서지방(島嶼地方)등등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行星)【지구(地球)】안엔 수많은 자연환경(自然環境)과 이에 따른 다양(多樣)한 삶의 방식(方式)이 존재(存在)한다.
또한 동물(動物)과 식물(植物)등의 생태계(生態系)도 자연환경(自然環境)에 따라 그 분포(分布)가 달리지게 되며, 종류(種類) 또한 다양(多樣)하다. 〈자연환경(自然環境)은 행성(行星)내의 모든 것들을 변화(變化)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나라(國) 영토(領土) 곧 강토(疆土)안에서의 생태계(生態系) 역시(亦是), 영토(領土)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다양(多樣)한 자연환경(自然環境)이 있으며, 그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반도(半島) 땅에서는 : 〈낙타(駱駝)나 물소(水牛), 코뿔소(犀牛)등의 특정지역(特定地域)에서만 살고 있는 동물(動物)들이 무리를 이뤄 자생(自生)하고 있었다는 징후(徵候), 증거(證據), 유적(遺蹟), 정황(情況)등이 없다.〉 곧 반도(半島) 땅의 자연환경(自然環境)은, 위와 같은 특정(特定)동물(動物)들이 살아갈 수 없는 곳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歷史家)들이 설명(說明)하는 조선왕조(朝鮮王朝)의 강토(疆土)안에서는,〈우리나라에서 물소(水牛)를 많이 기르는데(我 國 多 畜 水 牛), 물소(水牛)를 이용(利用)한 밭갈이가 익숙하지 못하니, 농구(農具)를 갖춰 시험해 보라고 각도(各道)의 감사(監司)에게 내리는, 군주(君主)의 어명(御命)이 있었다.〉고 전(傳)한다.
위와 같은 말은, 당시(當時)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여러 지방에서 물소(水牛)가 가축(家畜)으로 많이 길러지고 있었다는 것을 증거(證據)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말이다. 웃기는 것은, 〈반도(半島) 땅에는 애시당초 “물소(水牛)가 없었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理解)해야 될까?
이 말을 역순(逆順)시키면 :「당시(當時)의 조선왕조(朝鮮王朝) 영토(領土 : 疆土)는, 반도(半島) 땅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의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일제(日帝) 식민지(植民地)때야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해방(解放)이후(以後), 72년 동안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지금 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지금도 일제(日帝)의 식민지(植民地) 망령(亡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미(美)합중국(合衆國)의 속민(屬民)으로, 성조기(星條旗)를 흔들며, 구국(救國)의 일념(一念)으로, 이스라엘 기(旗)를 함께 흔들며, “우린 기독교(基督敎) 가족(家族)이오니, 그저 살려만 주세요!” 두 손 모아 기도(祈禱)만 올리고 있는 것일까?〉【일부 극우(極右) 기독교(基督敎)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해(誤解)없으시길 바랍니다.】
허기야 서울대학교 교수(敎授)를 지냈다는 혹자(或者)는, 「일제강점기에서 근대 발전의 단초를 찾는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主張)을 하는 자(者)도 있는 판국이니 무슨 말인들 없겠는가!
○ 작금(昨今)의 반도(半島) 땅은, 어지러운 세상(世上)이다. 잘난 자(者)들이 넘쳐나, 반도(半島) 땅은 아열대(亞熱帶)지방에서 자생(自生)하는 물소(水牛)처럼 되어가고 있다.
〈부탁하건대, 조선왕조(朝鮮王朝)의 후예(後裔)라고 자칭(自稱)하는, 반도(半島) 땅의 주인(主人)들은, 과거(過去)를 되돌아보는 혜안(慧眼)을 가져야 한다.〉고 외치는 바다.
자! 본론(本論)인 물소(水牛)편으로 들어 가보자.
----------------------------------------------------------------------------------
(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燕山 24卷, 3年(1497 丁巳 / 명 홍치(弘 治) 10年) 6月 24日(甲午) : 《下書于諸道監司曰 : 我國多畜水牛,而不習耕田,無益於用.其令各官具農器習耕,能耕與否聞奏. : 각도 감사에게 글을 내리기를 : 우리나라에서 물소(水牛)를 많이 기르는데, 밭갈이에 익숙하지 못하니, 실용에 도움 될 것 같지 않다. 각 고을에서 농구를 갖추어 갈기를 익혀 보게 하여, 밭갈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 아뢰라고 하였다.》
〈下 書 于 諸 道 監 司 曰 : 각도(各道 : 여러 도(道)의 감사(監司)들에게 임금께서 글을 내리기를〉하였다. 이런 말은 즉(卽) 조선(朝鮮)의 임금께서 예하(隸下) 여러 도(道)에 나가있는 감사(監司)들에게 어명(御命)을 내린 것이다.
즉(卽) 〈우리나라의 여러 지방(地方)에서 물소(水牛)를 많이 키우고 있으나, 밭갈이에 이용(利用)하려 하나 익숙하지 못하니, 맞는 농구(農具)를 갖추어 물소(水牛)가 적응(適應)할 수 있도록 하고, 결과(結果)를 보고(報告)하라〉는 명령(命令)을 내렸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기록(記錄)에 따르면 : 연산군(燕山君)이 임금(王)에 있었던 왕조(王朝)의 강토(疆土)안에서는, 물소(水牛)가 많이 키워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연산군(燕山君)은 중국(中國)의 임금(王)이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는 얘기다.
➊ 혹자(或者)들은 왕조실록(王朝實錄)을 근거(根據)로, 「외국(外國)에서 헌상(獻上)한 물소(水牛)를 번식(繁殖)시켜, 대대적(大大的)으로 보급(普及), 반도조선왕조(半島朝鮮王朝) 땅에 퍼지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항변(抗辯)할지도 모른다.
➋ 좋다. 그렇다면 지금(只今), 반도(半島) 땅의 여러 도(道)에서, 많은 백성(百姓)들이 길렀다는 물소(水牛)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가? 하는 생각쯤을 하고 항변(抗辯)하는 것인가? 또 외적(外敵)들이 침략(侵略), 노략질하여 모조리 잡아먹어, 씨를 말렸다고 할 텐가!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아이들에게는 미안(未安)한 이야기지만, 연산군(燕山君)【재위 1494∼1506. 열 번째 임금(王)】은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열 번째 임금(王)이었다. 이때 연산군(燕山君)이 임금으로 있었던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땅은,
➤〈물소(水牛)가 자생(自生)하고 있었던 풀이 무성한 정글을 흐르는 커다란 강(江)이 많고, 늪지가 많은, 아열대(亞熱帶) 기후(氣候)를 갖고 있는 땅이었다. 서(西)쪽과 북(北)쪽은 사막지대(沙漠地帶)나 스텝(steppe)건조기후대로 낙타(駱駝)가 살아갈 수 있었던 땅, 그 땅에 조선(朝鮮)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2)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成宗 296卷, 25年(1494 甲寅 / 명 홍치(弘 治) 7年) 11月 11日(丙申) : 《義禁府啓:金自松等,潛渡海,入海浪島,捕水牛,載皮肉而來,罪律該斬不待時.命議之. :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 김자송(金自松) 등이 몰래 바다를 건너 해랑도(海浪島)에 들어가 물소(水牛)를 잡아 가죽과 고기를 싣고서 온 죄는, 율(律)이 참부대시(斬不待時)에 해당합니다하니, 명하여 이를 의논하도록 하였다. (중략).》
(3) 宋㑹要 :《新羅地宜槖駞水牛出人參水銀麝香松子榛子石決明松塔子防風白附子茯苓大小布毛施布草席䑕毛筆. : 송회요(宋會要) : 신라(新羅) 땅에서는 마땅히 탁타(橐駝 : 駱駝). 물소(水牛). 사향(麝香). 송자(松子). 진자(榛子). 석결명(石決明). 송탑자(松塔子). 방풍(防風). 백부자(白附子). 복령(茯苓), 크고 작은 포(布)와 모시포(毛施布), 초석(草席), 쥐 털로 만든 붓이 나온다.》고 하였다.
(4) 諸蕃志 :《新羅地宜槖駞水牛不用錢以米博易民家器皿悉以銅為之地出人參水銀麝香松子榛子石決明松塔子防風白附子茯苓大小布毛施布銅磬瓷器草席䑕毛筆等商舶用五色纈絹及建本文字博易. : 제번지(諸蕃志) : 신라(新羅), 땅은 마땅히 낙타(駱駝)와 물소(水牛)가 난다. 돈은 사용치 않으며, 교역은 쌀로써 한다. 민가(民家)의 그릇(器皿)은 모두 구리(銅)로 만들어져 있으며, 땅에서는 인삼(人參)·수은(水銀)·사향(麝香)·송자(松子)·개암(榛子)·석결명(石決明)·송탑자(松塔子)·방풍(防風)·백부자(白附子)·복령(茯苓)·크고 작은 포(大小布)·모시포(毛施布)·동경(銅磬)·자기(瓷器)·초석(草席)·쥐털로 만든 붓(䑕毛筆)등이 난다. 상인들은 선박을 이용하여 오색(五色)힐견(纈絹)과 건본(建本)문자(文字)?를 거래한다.》-【諸蕃志 : 1,225년 남송(南宋)의 조여괄(趙汝适)이 지은 지리서(地理書)】-
----------------------------------------------------------------------------------
○ 위의 글 (1)에서 (4)까지를 보자.〈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송회요(宋會要) 또는 제번지(諸蕃志)〉등의 기록(記錄)으로 보면 :
「신라(新羅) 땅은, 낙타(駱駝)와 물소(水牛)가 마땅히 난다.」고 하였으니, 〈사막지대(沙漠地帶)와 스텝(steppe)건조기후대(乾燥氣候帶)【건조기후대(乾燥氣候帶)는 건조지대(乾燥地帶)와 사막지대(沙漠地帶)로 나눠지는데, 스텝(steppe)이란 말 자체가 키가 작은 풀로 이루어진 건조 지역의 초원을 가리키는 말이다.】가 펼쳐져 있었고, 남방(南方)지대(地帶)는, 아열대(亞熱帶) 기후대(氣候帶)에 속해 있었다.〉는 것이다.
또 고려(高麗)의 땅과 백성(百姓)들을 그대로 물려받은【역성(易姓)혁명(革命)으로 군주(君主)의 성씨(姓氏)만 바뀌었다.】조선(朝鮮) 땅의 「여러 도(諸道)」에서는 : 물소(水牛)가 광범위(廣範圍)한 지역(地域)에서 백성(百姓)들에 의해 가축화(家畜化)되었으며, 이는 농사(農事)에도 이용(利用)되었다.」고 전해진다.
○〈역사(歷史)통설논자(通說論者)【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들〉은 : 오늘날의 한반도(韓半島) 땅에, 위에서 열거(列擧)한 “신라(新羅) 또는 조선왕조(朝鮮王朝)”가 있었다.〉고 하면서, 침을 튀튀 튀기며 열변(熱辯)에, 열변(熱辯)을 토(吐)한다.〉
➊ 그렇다면 「오늘날의 한반도(韓半島) 땅에, 낙타(駱駝)와 물소(水牛)등의 동물(動物)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반도(韓半島)는 자연환경(自然環境)으로 볼 때, 낙타(駱駝)나 물소(水牛)같은 특이(特異)동물(動物)등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環境)이 아니다. 스텝(steppe)건조기후대(乾燥氣候帶)도 아니요, 아열대기후(亞熱帶氣候)를 가진 곳도 아니기 때문이다.
반도사학(半島史學)=식민사학(植民史學) 논자(論者)들은 :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이런 이야기를 전파(傳播)하는 것일까?
이 자(者)들과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위정자(爲政者)들은 :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갖고 공교육(公敎育)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역사교육(歷史敎育)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➋ 서력(西曆) 1,497년 당시의 반도(半島) 땅에는, 물소(水牛)를 가축(家畜)으로 각 지방(地方)에서 많이 길렀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위 실록(實錄)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각지(各地)의 백성(百姓)들이 기르고 있는 물소(水牛)를 이용(利用)해 밭갈이를 해야 하는데, 이게 익숙하지 않아 불편(不便)하니, 알맞은 농기구(農器具)를 만들어 시험해 보라는 군주(君主)의 명(命)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위의 실록(實錄) 말대로 보면 : 당시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여러 지방(地方)에서 물소(水牛)를 가축화(家畜化)하여 일반 백성(百姓)들이 많이 기르고 있었다고 한다면,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여러 도(道)의 자연환경(自然環境)은 물소(水牛)가 살아가기에 알맞은 기후(氣候)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그렇다면 그곳이 “반도(半島) 땅인가?” 하는 질문(質問)은, 어리석은 질문(質問)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반도(半島) 땅에 물소(水牛)가 있었다는 근거(根據)나, 징후(徵候)나 유물(遺物)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물(動物)들은 21세기 현재(現在)에도, 풍토(風土)가 전혀 맞지 않는 곳에서는 사육(飼育)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동물(動物)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자연환경(自然環境)이 있는 곳으로, 조선왕조(朝鮮王朝)의 강토(疆土)를 옮겨야 마땅한 것이다.
-----------------------------------------------------------------------------------
수우(水牛) : 물소
[네이버 지식백과] 물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서식장소 : 풀이 무성한 정글을 흐르는 커다란 강 근처나 늪지
분포지역 : ‘인도, 네팔, 미얀마, 인도차이나, 말레이시아’ 등이다. ‘아시아물소’라고도 한다. 몸길이 240∼280cm, 몸높이 160∼190cm, 꼬리길이 60∼85cm, 몸무게 수컷 1200kg, 암컷 800kg이다. 몸은 잿빛이 도는 검은색이고 다리는 발끝부터 무릎까지 회색빛이 도는 흰색이다. 턱 밑에는 초승달 무늬의 흰 띠가 있다. 뿔은 무겁고 뒤로 젖혀져 있다. 발굽 부분의 관절이 잘 움직여지므로 진흙 속에서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풀이 무성한 정글을 흐르는 커다란 강 근처나 늪지에 서식한다. 강에서 사는 형과 늪에서 사는 형의 2종류가 있으며, 늪에서 사는 형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서 야생화 되어 있다. 물을 좋아하며 몸통에 곤충의 피해가 많은 때는 물속으로 들어가서 코만 내놓고 있다. 임신기간은 310일이며 한 배에 1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수명은 약 18년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오래 전부터 가축화되었으며 농경용과 사역용으로 큰 몫을 하고 있다. 지금도 인도와 파키스탄 등에서는 도로에서 짐을 운반한다. 야생종은 인도·네팔·미얀마·인도차이나·말레이시아에 분포하며, 가축종은 아시아·남아메리카·유럽·북아프리카 등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어떤 학자는 물소를 2개의 종으로 나누어서 야생의 물소(Bubalus arnee)와 가축화된 물소(Bubalus bubalis)로 다르게 보기도 한다. 또한 가축화된 물소를 2개의 아종으로 구분하는 학자도 있는데, 늪에 사는 물소(Bubalus bubalis carabanesis)와 강에 사는 물소(Bubalus bubalis bubalis)로 나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물소 [Asiatic water buffalo]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우리나라에 물소가 전해진 것은 고구려 광개토왕 때 연나라 왕이 선물로 보낸 것을 효시로 하여 고려 중기는 송나라에서 선물로 보내왔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농경용·우차용으로 본격적인 사육을 시도한 일도 있다. 그러나 풍토가 맞지 않아서 중종 이후에 멸종되어버렸고 현재는 사육되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는 주로 뿔이 활의 재료나 띠의 장식으로 이용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물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인용(引用) / 끝 -
===================================================================================
○ 수우(水牛)란 어떤 동물이며, 어느 곳에서 사는 동물(動物)인지를 알아보자. 우선 “水牛”라고 했을 때 “물에서 사는 소”를 말하는 것이다. 찾아보니,
㉮ <다음백과> : 물소는 소과의 동물(動物)이다. 몸높이는 1.5-1.8m, 몸무게 720-800kg 정도이다. 머리는 비교적 길고 앞머리 부분이 높다. 일부는 가축화하여 농사에 이용한다. 뿔은 암수 모두 가지고 있으며 바깥쪽과 뒤쪽은 구부러져 거의 원을 이룬다. 뿔의 단면은 삼각형이고 윗면은 편평하고 뚜렷한 가로융기가 있다. 뿔의 길이는 2m 정도로 수평이다. 털은 매우 적고 짧으며 거칠다. 호수나 늪이 있는 초원에서 큰 무리를 지어 살며 주로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먹이를 찾아다니고 낮에는 풀이 무성한 곳에서 되새김질을 하며 지낸다. 또한 외부 기생충 등을 방지하기 위해 자주 진흙 목욕을 한다. 무리는 암컷과 새끼들이 중심이 되고, 수컷은 단독 또는 작은 무리를 지어 주변을 배회한다. 야생물소는 사나워서 큰 사자나 호랑이와 대적할 정도이다. 아시아물소는 오랜 옛날부터 논농사에 이용되었고, 아시아에서 대규모의 벼농사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번식 기에는 수컷이 많은 암컷을 거느린다. 임신기간은 10-11개월이며, 한배에 한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야생물소는 현재 무자비한 포획으로 그 수가 급격히 감소하였고 오래전부터 가축화되어 각지에서 사육되고 있다. 또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는 가축물소가 다시 야생화 하여 약 20만 마리의 물소가 살고 있으나 사람들이 스포츠로, 또는 가죽과 고기를 목적으로 한 살육이 극심한 상황이다. 물소의 털가죽은 질기고 두꺼워서 좋은 가죽으로 사용된다. 또한 젖은 영양분이 풍부해서 가축소의 젖보다 지방이 많다. 물소의 천적은 호랑이·들개 등이다. 야생종은 네팔·아삼 등지에 분포한다.
㉯ <카페>에서는, indian buffalo라고도 함. 소과(―科 Bovidae)에 속하는 반추동물. 아시아에서 옛날부터 사육되었고, 600년경 이탈리아에 전래되었으며 지금은 세계의 온대지역, 특히 중국·동남아시아·이집트·프랑스·이탈리아에서 힘 드는 일에 사용된다. 몸집이 크고 육중한 동물로, 어깨까지의 높이가 1.5m를 넘는다. 몸은 윤이 나지 않는 검은색이나 진회색이고 털이 거의 없다.
㉰ <다음 문화원형>에서는, 조선시대(17세기) 작자미상의 작품 <물소>는 물가 언덕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유로운 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소의 몸체는 먹의 흑백 대비를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부드러운 질감과 입체감을 강조한 음영(陰影) 등이 돋보이는데, 이는 조선중기 소 그림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소들은 중국 강남(江南) 지방의 물소로서 머리가 다소 길고 질감이 매끈하여 엄밀히 볼 때 한국의 소와는 형태상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배경의 언덕과 멀리 보이는 산에도 흑백의 대비가 강하게 표현되어 있어, 절파화풍(浙派畵風)을 반영한 조선중기 그림의 특징들을 전해주고 있다.
㉱ 국어사전에서는, 물소1 : [명사] [동물] 1. 솟과의 물에 사는 짐승을 통틀어 이르는 말. 인도종, 아프리카종이 있다. 2. 솟과의 포유동물. 몸의 길이는 2미터, 어깨의 높이는 1.8미터 정도이며, 회색 또는 잿빛을 띤 흑색이고 활 모양의 검고 긴 뿔이 있다. 털은 짧고 거칠며 이마의 가운데가 불거지고 귀가 짧다. 운반용, 경작용 가축으로 기른다. 인도, 미얀마, 타이, 필리핀, 중국, 대만 등지에 분포한다.
㉲ 세조 28권, 8년(1462 임 오 / 명 천순(天順) 6년) 4월 13일(무인) / <유구국에서 올린 물소 2두를 사복시 관원에게 창덕궁 후원에서 기르도록 하다> : 이 앞서 유구국(琉球國)에서 올린 물소[水牛] 2두(頭)를 웅천(熊川)에 두고 기르다가, 이에 이르러 사복시윤(司僕寺尹) 박서창(朴徐昌)을 보내어 취하여 오게 하였는데, 물소의 성질이 더위를 두려워하고 물속에 깊이 엎드려 있거늘, 명하여 창덕궁(昌德宮) 후원(後苑)에서 기르게 하고, 사복시(司僕寺) 관원으로 하여금 윤차(輪次)로 보살펴 기르도록 하였다 또 의경(醫經)과 제서(諸書)의 양우법(養牛法)을 초록(抄錄)하여 의생(醫生) 4인으로 하여금 익히도록 하였다.
㉳ 오우(吳牛) : 물소를 달리 이르는 말. 오(吳)나라에서 많이 났기 때문에 이 이름이 있음. (백과사전)
- 인용(引用) / 끝 -
-----------------------------------------------------------------------------------
○〈수우(水牛) 곧 물소〉는, 반도(半島)에서 자생(自生)하는 동물(動物)이 아니다. 물소(水牛)는, 말 그대로 물속에서 살아가는, 호수(湖水) 또는 늪지대 등, 물가에서 살았던 동물(動物)이란 것을 알 수 있으며, 현 대만(臺灣), 대륙(大陸)의 강남(江南)지방, 태국(泰國), 인도(印度), 캄보디아(Cambodia), 필리핀(呂宋) 등의 아열대(亞熱帶)지방의 따뜻한 기후(氣候)에서 살아가는 “소(牛)”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선(朝鮮)왕조실록(王朝實錄)을 보면 : ‘해랑도(海浪島)’라는 곳에서 조선인(朝鮮人)들이 몰래 들어가 물소(水牛)를 잡아왔다고 하는 많은 기록(記錄)이 있고, 이곳에 군대(軍隊)를 보내, 토벌(討伐)하기에 까지 이른다.
도대체 해랑도(海浪島)는 어디에 있었던 섬일까? (제2편으로 계속)
2018년 03월 16일 〈글쓴이 : 문무(文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