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문무의 조선사 해설

마한(馬韓)의 후국(後國) 정안국(定安國)

작성자문 무|작성시간18.12.02|조회수1,343 목록 댓글 4


                         마한(馬韓)의 후국(後國) 정안국(定安國)

                    高駒驪舊壤, 渤海遺民들로 馬韓之地에 있다.

 

○〈마한(馬韓)”하면 뭐… … 삼한(三韓)의 한 나라였고, 우두머리 격이었던 옛 우리들의 선조(先祖)나라!우리나라 역사(歷史)에 관심(關心)이 별로인 국민(國民)들도 금세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알려진 내용(內容)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韓半島)와 옛 왕조(王朝)들의 위치(位置)를 그린 지도(地圖) (출처 : 두산백과) 이런 지도(地圖)를 보면, 선대인(先大人)들의 통곡(痛哭)소리가 들리듯 하다.

 

 

     그런데 여기서, 그렇다면 그 마한(馬韓)”은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질문(質問)에는 대답(對答)하기가 참 애매모호(曖昧模糊)하다.

 

     첫 번째 대답은, 마한(馬韓)은 고구려(高句驪)라고 했으니, “오늘날의 북한(北韓)과 만주(滿洲)일부(一部) 땅이다.”라고 할 것이고,

 

     두 번째 대답(對答), “마한(馬韓)은 충청(忠淸)과 전라도(全羅道) 땅이다.”라고 자신(自信)있게, 큰소리로 말할 것임이 대부분(大部分)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위에서 말하는 마한(馬韓)”의 강역(疆域), ‘, 그 지리적(地理的) 위치(位置)가 전혀 다른 것이다. 의 경우(境遇), 삼국사기(三國史記)나 또는 중국(中國) 사서(史書)에 기록(記錄)된 것이고,

 

     의 경우(境遇), 대부분(大部分)의 국민(國民)들이 생각하는 상식(常識)에 포함(包含)된 것이리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공교육(公敎育) 현장(現場)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누굴 탓하는 이야기가 아닌 진실(眞實)의 눈으로 바라보자는 희망(希望)이 담긴 이야기를 한 번 해 보자는 것이다.

 

역사서(歷史書)에서 마한(馬韓)’을 찾아보면 :

 

   (1) 신라(新羅)사람으로 당()과 신라(新羅)에서 활동(活動)한 최치원(崔致遠)은 말하기를 :마한(馬韓)은 고구려(高句驪), 변한(弁韓)은 백제(百濟), 진한(辰韓)은 곧 신라(新羅)라고 하였다.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도 이를 인용(引用)하고 옳다고 하였다. 또한

 

     동국통감(東國通鑑)에서 말하기를 : 又上大師侍中狀云.伏聞東海之外有三國.其名馬韓,弁韓,辰韓.馬韓則高句麗.弁韓則百濟.辰韓則新羅也.高句麗,百濟全盛之時.强兵百萬.南侵吳越.北撓幽燕齊魯.爲中國巨蠹.中略. : 또 상태사시중장(上太師侍中狀)에서 말하기를 : 삼가 신()이 듣자오니, 동해(東海) 밖에 세 나라가 있습니다. 그 이름은 마한(馬韓변한(弁韓진한(辰韓)인데, 마한(馬韓)은 곧 고구려(高句驪), 변한(弁韓)은 곧 백제(百濟), 진한(辰韓)은 곧 신라(新羅)입니다. 고구려(高句驪)와 백제(百濟)의 전성시대에는 강한 군사가 100만이나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남()쪽으로 오(()나라를 침범하고, 북쪽으로 유(((() 땅을 어지럽혔습니다. 이러한 것은 중국(中國)에 커다란 해()가 되었습니다. 중략(中略).》【고운집(孤雲集) / 고운 선생 사적

 

     동사보유(東史補遺)는 말하기를 : 東史補遺.按馬韓爲高句麗.辰韓爲新羅.弁韓爲百濟.崔致遠已有定論.此非致遠創爲之說.自三國相傳之說也.金富軾地理誌.亦以致遠之論爲是. : 살펴보건대 마한(馬韓)이 고구려(高駒驪)가 되고, 진한(辰韓)이 신라(新羅)가 되고, 변한(弁韓)이 백제(百濟)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최치원(崔致遠)의 정론(定論)이 있다. 이것은 최치원(崔致遠)이 처음으로 만들어 낸 설이 아니요, 삼국(三國) 이래로 서로 전해 온 설이다. 김부식(金富軾)의 지리지(地理誌)에도 최치원(崔致遠)의 이 주장이 옳다고 하였다.》【고운집(孤雲集) / 고운 선생 사적

 

     최치원(崔致遠), 9-10세기(世紀)를 살다간 신라(新羅)인이자, 고려(高麗) 초기(初期)를 살다 간 사람이다. 이때만 하더라도 마한(馬韓)은 고구려(高句驪), 진한(辰韓)은 신라(新羅), 변한(弁韓)은 백제(百濟)라고 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內容)이라고 본다.

 

     이는 곧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三國史記)로 이어지는데, 고려(高麗) 인종(仁宗) 23서력(西曆)1145때도 변함없이,마한(馬韓)은 고구려(高句驪), 진한(辰韓)은 신라(新羅), 변한(弁韓)은 백제(百濟)라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2) 한치윤(韓致奫)의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는 말하기를 : 첫 번째는 마한(馬韓)이고, 두 번째는 진한(辰韓)이고, 세 번째는 변진(弁辰)이다. 마한(馬韓)은 서(西)쪽에 있는데 54()이며, 그 북()쪽은 낙랑(樂浪)과 연접하였고, ()쪽은 왜()와 연접하였다. 진한(辰韓)은 동()쪽에 있는데 12국이며, ()쪽은 예()()과 연접하였다. 변진(弁辰)은 진한(辰韓)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며, ()쪽은 역시 왜()와 연접하였다.고 말한다.정조(正祖순조(純祖)때의 사학자(史學者) 한치윤(韓致奫)이 편술한 본편 70권과 그의 조카 한진서(韓鎭書)가 보충한 속편 15권 등 모두 85권으로 된 역사서(歷史書)이다.

 

     한치윤의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는 :

 

     마한(馬韓), (西)쪽에 있는데, 54개국이며, ()족은 낙랑(樂浪)과 연접(連接)하고, ()쪽은 왜()와 연접(連接)하였다.

 

     진한(辰韓), ()쪽에 있는데, 12개국이며, ()쪽은 예(()과 연접(連接)하였다.

 

     변진(弁辰), 진한(辰韓)의 남()쪽에 있는데, 12개국이며, ()쪽은 왜()와 연접하였다.

 

     해동역사(海東繹史), 19세기(世紀)에 편찬(編纂)된 것이다. 위에서 말하는 ++의 마한(馬韓진한(辰韓변진(弁辰)의 설명(說明)대로 한반도(韓半島) 땅에 배치(配置)를 해보자. 어떤 일이 일어나는 말이다.

 

     마한(馬韓)의 남()쪽은, ()와 연접(連接)했다는 말은, 마한(馬韓) 땅과 왜()의 땅이 서로 맞닿아 있었다.는 뜻이고, 진한(辰韓)의 남()쪽에 변진(弁辰)이 있고, ()쪽은 왜()와 연접(連接)했다는 말은, 변진(弁辰)의 북()쪽이 진한(辰韓)이고, ()쪽은, ()의 땅과 맞닿아 있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의 역사통설(歷史通說), 위의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 말하는 내용(內容)대로 한반도(韓半島) 땅에 삼한(三韓)을 그려보면 :

 

     ➨➨➨ 한반도(韓半島)의 남()쪽 땅과 일본열도(日本列島), 19세기(世紀)까지도 함께 붙어있었는데, 19세기 중기(中期) 이후, 어느 날 천지개벽(天地開闢)으로 갈라져 나누어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현재(現在)의 한반도(韓半島)지세(地勢)로 보면 : 마한(馬韓)의 남()쪽에 왜() 땅이… … 변진(弁辰)의 남()쪽에 왜() 땅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 지형지세(地形地勢)로 볼 때, 한반도(韓半島)라는 특이지형대(特異地形帶)에서는 불가능(不可能)한 얘기다.

 

 

   한반도(韓半島)와 일본열도(日本列島) 지도(地圖)”를 보면서, 해동역사(海東繹史) 기록(記錄)을 보면, 불가능(不可能)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을 가능(可能)한 인간(人間)의 일로 만들어보자면 :

 

     ➊「중원(中原) 대륙(大陸)의 하()로부터 장강(長江)이북(以北)에 삼한(三韓),

 

     장강(長江)의 남()쪽 무이산맥(武夷山脈)과 남령산맥(南嶺山脈) 이남(以南), ()가 있었다.고 한다면, 지형지세(地形地勢)와 방위(方位), 토산물(土産物)등으로 볼 때 딱 좋은 곳이다.

 

 

   지도출처 : 두산백과

 

  -------------------------------------------------------------------------------------

 

   (3) 무오연행록 제2/ 무오년(1798, 정조 22) 12[7-22]

 

     10: 연산역(連山驛) / 10: 사하소(沙河所)동관역(東關驛)은 옛 해빈현(海濱縣) : 마을 북편에 절이 있으니, 이름은 해비사라. ()나라 해서가 지은 것이요, ()나라 만력(萬曆) 연간에 중수(重修)하였으며, 법당(法堂)사대천신전(四大天神殿)’이라 하고, 뜰에 비()가 하나 있으니, 비를 지은 사람의 성명은 손방이요, ()에 기록하여 말하되,

 

     이는 본래 삼한(三韓) 지방이라.’ 하였으니, 삼한은 곧 기자조선(箕子朝鮮) 말년에 나라가 셋으로 나뉘어 마한(馬韓)과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이라 칭하니, 이것이 삼한(三韓)이라. 여기서 압록강(鴨綠江)1500 리 되니, 그때 조선의 북원(北原)이 넓었음을 알러라.하였다.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 한글필사본으로, 1798(정조 22) 10월 삼절연공 겸 사은사(三節年貢兼謝恩使)의 서장관으로 연행(燕行)하였던 작자(作者)서유문{徐有聞)가 다음해 4월 초2일 복명(復命)하기까지 왕복 160여일을 일기로 쓴 기행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18세기(世紀)의 기행문(紀行文)이다.

 

     이때 사신단(使臣團) 산해관(山海關)가까이에 와 있다. 산해관(山海關)에 도달(到達)하기 전()의 땅이란 요서(遼西)땅에 속한다. 이곳이 옛 삼한(三韓)의 땅이었다.는 것이 저자(著者)의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당시(當時)의 사회상(社會相)과 저자(著者)의 역사(歷史)를 바라보는 관점(觀點)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말이다. 저자(著者)가 이틀 후무오년(1798, 정조 22) 1212일이다. 산해관(山海關)에 도착했는데 말하기를 : 소송령(小松嶺)에 이르니, 이즈음에서 동북(東北)으로 바다가 보이는데, 물빛이 검고 푸르러 하늘에 닿아 끝이 없으니, 이는 발해(渤海)라 하는 바다요, 서북으로 또 큰 산이 막혔으니, 산허리에 만리장성이 굽이굽이 둘러져 있으니 이는 진시황(秦始皇)이 쌓은 것으로, 임조(臨洮)란 땅에서 시작하여 요동(遼東)에 이르러 넓이와 길이가 만여 리라. 중략(中略). 처음 들어가는 성은 장성 줄기니, 외성(外城)은 성을 둘러 문을 내고 문루(門樓)가 없으며, 내성문(內城門)산해관이라 썼으니. 중략(中略). 현판에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이라 하였으니, 중략(中略).하였다.

 

     사신단(使臣團)은 분명 의무려산(醫巫閭山)에서 서남(西南)쪽을 향해 가, 금주(錦州)에 도착(倒着), 계속(繼續) 서남(西南)쪽으로 산해관(山海關)을 바라보며 갔을 것인데,

 

     산해관(山海關) 가까이에서야 생뚱맞게 동북(東北)쪽에 발해(渤海)가 있다는 말은 무엇이고, 이곳의 서북(西北)으로는 큰 산()에 막혔고, 산허리에 만리장성(萬里長城)이 보인다.”는 말은 또 뭐냐는 것이다.

 

     이건 분명(分明) 오늘날의 요녕성(遼寧省)과 하북성(河北省)의 지세(地勢)가 될 수 없음은, 너무도 명확(明確)한 이야기다.

 

     더더욱 중요(重要)한 사실(事實), 이곳이산해관(山海關) ()쪽의 땅을 말한다.옛 삼한(三韓)의 땅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역사통설(歷史通說)에서 삼한(三韓), 반도(半島) 땅 한강(漢江)이남(以南)으로 못 박고 있다. 곧 한강(漢江)이남(以南) 땅에,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변진(弁辰)과 왜()79개 나라()()도 포함(包含)된다.가 땅을 연접(連接)하고 살고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마한(馬韓)의 남(), 변진(弁辰)의 남()쪽 땅에, ()와 연이어져 있다(連接)고 하였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실제(實際) 이러한 나라()들이 있어야 할 땅()이 없으니, 이를 어쩐다?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역사해설(歷史解說) 논자(論者)들이다.


  -------------------------------------------------------------------------------------

 

   21세기(世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역사통설(歷史通說)필자(筆者)는 이를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이라고 칭한다.에서는,


     (1) 마한(馬韓)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경 한강(漢江) 유역으로부터 충청·전라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던 여러 정치 집단의 통칭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한 [馬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마한[馬韓] / 두산백과 :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분포한 삼한(三韓) 중의 하나. 대체로 BC 1세기~AD 3세기에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 분포한 54개의 소국(小國)을 가리킨다.


     (3) 마한(馬韓) / 학습용어 개념사전 : 고대 삼한 가운데 경기도·충청도·전라도 지방에 걸쳐 있던 나라. [네이버 지식백과] 마한 [馬韓] (학습용어 개념사전, 2010. 8. 5., ()북이십일 아울북)

 

     (4) 마한(馬韓) / 한국고전용어사전 : 한국 초기국가 형성발전기에 지금의 경기충청전라도 지역에 있었던 소국 연맹체(小國聯盟體). [네이버 지식백과] 마한 [馬韓] (한국고전용어사전, 2001. 3. 30., 세종대왕기념사업회)

 

     (5) 마한(馬韓) / 문화원형 용어사전 :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분포한 삼한(三韓) 중의 하나. 대체로 BC 1세기~AD 3세기에 경기·충청·전라도 지방에 분포한 54개의 소국(小國)을 가리킨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한 [馬韓]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 용어사전), 2012., 한국콘텐츠진흥원)

 

     (6) 마한(馬韓)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마한(馬韓)은 고대 한민족의 54개 부족국가 연맹체이다. 마한은 삼한의 기간(基幹)으로서 가장 넓은 지역에 걸쳐 있었다. 그 범위는 한강 유역(경기도)으로부터 충청·전라에 퍼져 있었으며, 목지(目支)[1]·백제(伯濟)[2] 54개국이 지역적 연합체를 이루고 있었다. 후에 부여 등 북방계 유이민을 중심으로 형성된 백제(百濟)국이 마한세력을 통일했다. 중략(中略).

 

     위에서 인용(引用)한 것들이 마한(馬韓)”에 대한 역사통설(歷史通說)이다. 기괴(奇怪)하고, 망측(罔測)하고, 이해(理解)불가(不可)한 이야기들이다.

 

  ------------------------------------------------------------------------------

 

○「정안국(定安國)은 사서(史書)에서 말하기를 : 본래 마한(馬韓)의 종류(種類).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서(史書)의 기록(記錄)을 보면 : 언뜻 이해(理解)가 되지 않는 것은, 충청(忠淸전라(全羅)의 한강(漢江)이남(以南) 땅에 있었다던 마한(馬韓)”의 족속(族屬)이 어떻게 발해(渤海)에 있었으며, 또 어떻게 종족(種族)을 보존(保存)하여 발해(渤海)가 망()한 후(), 또 나라정안국(定安國)을 세울 수 있었겠는가? 하는 합리적(合理的) 의심(疑心)인 것이다.

 

   신라(新羅)가 당군(唐軍)에 수만(數萬)의 군대(軍隊)를 지원(支援)하여, 백제(百濟)와 고구려(高駒驪)를 격파(擊破)한 뒤에, 또 다시 당군(唐軍)과의 싸움으로 대동강(大同江)이남(以南)을 다스렸다고 하니, 충청(忠淸전라(全羅) 땅에 있었던 마한(馬韓)족속(族屬)이 집단(集團)으로 신라(新羅)에게 반란(反亂)을 일으키고 도주(逃走)하지 않은 이상(以上), 오늘날의 압록강(鴨綠江) 이북(以北) 땅에서 나라를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도 발해渤海 : 698926가 망()한 후에 말이다.

 

   가장 합리적(合理的)인 추론(推論): 마한(馬韓)은 고구려(高駒驪)였다는 것이다. 고구려(高駒驪)가 망하고, 그 유민(遺民)들에 의해 발해(渤海)가 세워지고, ()에 의해 발해(渤海)가 망()하자, 또 다시 고구려(高駒驪) 일파(一派)인 마한(馬韓)족속(族屬)들이 정안국(定安國)”을 세운 것이다.라고 하면,

 

   가장 무리(無理)없는, 인간사(人間事)가 될 것이다.

 

   (1) 송사(宋史)를 보면,宋史 491列傳250 外國 7 / 定安國 : 定安國本馬韓之種,爲契丹所攻破,其酋帥糾合餘衆,保於西鄙建國改元,自稱定安國. : 정안국(定安國) : 정안국(定安國)은 본래 마한(馬韓)의 족속(族屬)으로, 글란(契丹)이 공격하여 격파되자, 그곳 추장(酋長)이 나머지 무리들을 규합하여, (西)쪽 변두리에서 보존하고, 나라를 세우고 연호(年號)를 고쳐, 스스로 정안국(定安國)이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2) 東史綱目 6 . / 己卯年 景宗 4宋 太宗 太平興國 4, 경종 乾亨 元年, 979: 按 宋 元 綱 目 : 여진 정안국(定安國)은 마한(馬韓)의 종족인데 거란이 쳐서 깨뜨리자 그 추수(酋帥)가 남은 무리를 모아 서쪽 변두리를 차지하고 나라를 세워 개원(改元)하였었다.고 하였다.

 

   (3) 燃藜室記述 別集 19 歷代典故고구려의 속국 모두 고구려 본기에 보인다. : 정안국(定安國) : 본래 마한의 종족으로 남은 무리를 거두어 서쪽 변두리 정안국을 보전하였다.고 하였다.

 

     위의 글 (1)+(2)+(3) 을 보면 : 본래(本來) 마한(馬韓)의 족속(族屬)으로 발해(渤海)에 속해 있었는데, 글란(契丹 : 거란=)이 발해(渤海)를 공격(攻擊) 격파(擊破)하자, 나머지 무리들을 모아서 서(西)쪽의 변두리 땅에 이르러, 정착(定着)하고 나라()를 세우고, 개원(改元)하여, 정안국(定安國)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의문(疑問)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마한(馬韓)의 종족(種族) 또는 족속(族屬)이란 것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大韓民國) 한국사(韓國史) 해설(解說), “마한(馬韓)은 한강이남(漢江以南)의 충청(忠淸전라(全羅) 이라고 침을 튀긴다.

 

     그렇다면 한강이남(漢江以南)의 충청(忠淸전라(全羅) 땅의 마한(馬韓)54개 나라종족(種族)들이 무슨 재주로, 한강이북(漢江以北)으로, 다시 압록강(鴨綠江)을 도강(渡江)하여,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자리 잡았느냐? 하는 것이다.

 

     마한(馬韓)54개 나라 족속(族屬)들이 발해(渤海)에 있었다면, 한강이남(漢江以南)의 충청(忠淸전라(全羅) 땅에 마한(馬韓)이 있었다는 말은 무엇이고, 무인지경(無人之境)의 충청(忠淸전라(全羅) 땅에 누가, 어떤 재주로 나라()를 세웠을까? 기막힌 이야기다.

 

     두 번째는, (西)쪽 변두리 땅이라는 거다. (西)쪽 변두리 땅! 발해(渤海)의 서(西)쪽 땅이란 이야긴가? 글란(契丹)은 발해(渤海)의 서(西)쪽에 있었고, 발해(渤海)는 글란(契丹)의 동()쪽 땅에 있었다.

 

     그런데 서(西)쪽 땅이란 이야기는 뭔가? 발해(渤海)의 서(西)쪽 땅이란 글란(契丹)과의 접경지대(接境地帶)를 말하는 것일 게다. 이게 과연(果然) 가능(可能)한 일일까? (西)쪽으로부터 글란(契丹)의 수많은 병사(兵士)들이 공격(攻擊), 격파(擊破)되어 나라가 망()했다면, 나머지 무리들은, 멀리 동()쪽이나 북()쪽으로 도주(逃走)하는 것이 이치(理致)일 것임에도, 반대(反對)로 글란(契丹)의 본거지(本據地)로 무리들을 이끌고 간다?

 

     그리고 나라()를 세운다? 역사해설(歷史解說)인가, 코믹드라마용 시나리오인가?

 

     海東繹史 16 世紀 16 諸小國 편을 보면 : 동사(東史)를 보면, 신라(新羅)와 고려(高麗) 시대 때 소소한 속국(屬國)들이 이루 다 기록(記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고 하였다.

 

     기록(記錄)할 수 없을 정도로 조그만 나라(小國)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기록(記錄)할 수조차 없을 정도(程度)로 많았다던 나라(小國)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일까?

 

     한국사(韓國史)의 역사통설(歷史通說)을 보면 : 정안국[定安國] / 두산백과 : 10세기 초 만주 북서부에서 발흥한 거란족(契丹族)이 요()나라를 세우고 칭제를 하여 세력을 확장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중략(中略). 10세기 전반 발해(渤海)가 거란(契丹)에게 망한 뒤, 발해의 일부 유민들이 압록강 중·상류로 피난하여 세운 소국이었으나, ()는 정안국을 1차 침공하였고(983~984), 2차 침입(985~986)으로 결국 정안국(定安國)은 패망하고 말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또 다른 설명(說明)에서는 : ()나라는, 2차 침공 때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정안국(定安國)을 멸망시키고 포로(捕虜) 10여만 명과 말() 20여만 필을 노획하였으며, 그 땅에 4개 주()를 설치하여 직접 지배하였다. 이로써 248년간 지속되던 정안국은 발해 부흥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멸망(滅亡)하였다.고 설명한다.

 

     위에서 : 발해(渤海)의 일부 유민(遺民)들이 압록강(鴨綠江) (상류(上流)로 피난하여 세운 소국(小國)이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 1) 그러나 이런 역사해설(歷史解說)이 해괴망측(駭怪罔測)한 것은, 발해(渤海)의 일부 유민(遺民)이 왜 마한(馬韓)의 종족(種族)뿐이냐? 하는 것이고,

 

     - 2) 압록강(鴨綠江)의 중류(中流)와 상류(上流)가 서(西)쪽의 땅이냐? 하는 거다.

 

     (西)쪽 땅이라면, 오늘날의 압록강(鴨綠江) 하류(下流) 또는 요동(遼東)반도(半島)측이나 또 요수(遼水)가 있는 심양(瀋陽), 그 서(西)쪽 요서(遼西)지방이 서(西)쪽 땅이어야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거다.

 

     만약(萬若) 위에서 말하는 대로, 압록강(鴨綠江) 중류(中流), 상류(上流)가 서(西)쪽 땅이라면 무슨 얼어 죽을 해동성국(海東盛國)이 될 것이며, 무슨 얼어 죽을 대진국(大震國)이었단 말일까?

 

     - 3)()가 두 번째에는, 대규모(大規模) 병력(兵力)을 동원하여 정안국(定安國)을 멸망(滅亡)시키고, 포로(捕虜) 10여만 명과 말() 20여만 필을 노획하였으며, 그 땅에 4개 주()를 설치하여 직접 지배하였다.고 했을 때,

 

     우리가 알고 있었던 소국(小國)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는 포로(捕虜) 십여(十餘)만과 20만에 마리의 말()을 노획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더더구나 송()과 연합(聯合)하여 글란(契丹)을 공격(攻擊)코자 하였으나, 실행(實行)되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중요(重要)한 점은, 송사(宋史)宋史卷四百九十一.列傳第二百五十.外國七.定安國에 기록(記錄)되어 있기를 : 정안국(定安國) ()이 송() 황제(皇帝)에게 서신(書信)으로 이르기를 : 臣 本 以 高 麗 舊 壤, 渤 海 遺 黎, 保 據 方 隅 : 신은 본시 고구려의 옛 땅에, 발해(渤海)의 남은 무리들을 가지고, 한 모퉁이에 보존하여 의거하고 있다.하였고,

 

     () 황제(皇帝)가 이르기를 : 奄 有 馬 韓 之 地.: 마한(馬韓)의 땅을 가지고 있으니하였다.

 

     위의 글 송사(宋史)편을 보면 : 정안국(定安國)은 고구려(高駒驪)의 옛 땅, 발해(渤海)의 유민(遺民)으로써, 마한의 땅(馬韓之地)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한반도(韓半島) 한강이북(漢江以北)으로부터,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인 요녕성(遼寧省)과 길림성(吉林省) 일대(一帶)도 마한(馬韓)의 땅이었다.는 얘기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오늘날의 한국사(韓國史)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은, 마한(馬韓)의 땅은, 한강이남(漢江以南)의 충청(忠淸전라(全羅)당이라고 하는데,

 

     10세기(世紀) 당시(當時)를 살았던 정안국(定安國) ()과 송() 황제(皇帝), 마한(馬韓)의 땅은 한강이북(漢江以北)과 만주일대(滿洲一帶) 땅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니, 기막힌 경우(境遇)가 아니더냐!

 

     죽은 자()가 산 자()의 목덜미를 잡고 있는 형국(形局)이 아니냐?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필자(筆者)는 이를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이라고 칭한다.들의 역사해설(歷史解說),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이야기로 전락(轉落)되어 버렸다.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의 역사해설(歷史解說)을 깨뜨리고, 순수(純粹)하고 진실(眞實)과 마주한 조선사(朝鮮史)를 찾고자 하는 것은, 우리 후손(後孫)들의 미래(未來)를 위함이다.

 

     자국(自國) 중심(中心)이 아닌 사대주의(事大主義)의 매국사학(賣國史學)친일(親日)과 친미(親美)를 외치는 대국(大國) 의존주의자(依存主義者), 철저(徹底)하게 배척(排斥)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筆者)의 생각이다.

                              20181202글쓴이 : 문무(文武)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12.02 위의 첫번째 지도를 보면 : 얼마나 친절하게 그려 놓았는지, 직산이 목지국(目支國)이라고 해 놓았다. 그러나 위서에서는 목지국이 아니라 월지국(月支國)이라고 했다. 누구 마음 내키는 대로 월(月)자가 목(目)자로 순신간에 바뀌어버렸다. 이 자들이 바로 한글해설서를 만든 자들이다.
    위의 지도를 보면, 마한과 변진의 남쪽은 바다(海)다.
    그러나 말하기를, 마한의 남쪽은 왜(倭)와 연접(連接)하였다고 하였고, 또한 변진(弁辰)의 남(南)쪽도 왜(倭)와 연접(連接)했다고 말한다.
    위의 지도에서는 왜(倭)를 쏙 빼 놓고 그려 놓았다. 반도 남쪽의 토착민들은 왜(倭)인들이란 비판을 숨기기 위함인가? 조선사를 조작한 것을 숨기기 위함인가?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12.02 반도(半島) 땅은 조선사의 영역 일부는 될 수 있어도, 조선사 전부를 담을 수 없다.
    식민사학자들은 이제 영면(永眠)에 들어가시기를 바란다.
    언제까지 국민들을 속이려 하시는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 작성자정발장군 | 작성시간 18.12.03 감사합니다.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12.03 안녕하세요. <정발장군>님!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