宣和乙巳奉使金國行程錄(宋·許亢宗)으로 본 "고려(高麗)"는?
선화을사봉사금국행정록(宋 : 허항종(許亢宗)
○ 옛 조선왕조(朝鮮王朝)【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조선(古朝鮮)·기자조선(箕子朝鮮)·위만조선(衛滿朝鮮)·한(韓) 또는 삼한(三韓), 고구려(高駒驪)·백제(百濟)·신라(新羅)·고려(高麗)·조선(朝鮮)등을 총칭(總稱)한다.】가 정말 오늘날의 반도(半島) 땅에 있었느냐? 묻는다면, 별 시답지 않은, 질문(質問)같지 않은 질문(質問)이라는 눈치를 줄 것이 뻔하다.
《아마도 이상(異狀)한 눈으로 쳐다볼 것임에 틀림없다. 저 사람, 머리가 좀 이상(異狀)한 사람 아냐? 하고 말이다.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당연(當然)히, 반도(半島) 땅에 있었고, 있어야 하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質問)이야? 하는 것일 게다.》
○ 그렇다. 이게 대한민국(大韓民國) 오늘의 현실(現實)이다.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반도(半島) 땅에 없었다.”고 하는 필자(筆者)의 머리가 잘못된 것일 게다.
매국노(賣國奴)가, 부역자(附逆者)가 판을 치는, 되레 큰소리치는 오늘의 대한민국(大韓民國)에게 무슨 말을 할까? 서로 헐뜯고, 미워하며, 분열(分裂)하지 말고, 차라리 미국(美國)의 51번째 주(州)로 편입(編入)해달라는 청원(請願)을 할까?
아니면 열도(列島) 일본(日本)의 48번째 현(縣)으로 편입(編入)해 달라는 청원(請願)을 할까?
극소수(極少數)를 제외(除外)하고는, 많은 사람들은 무슨 헛소리냐? 할 것이다. 또 매국노(賣國奴)나 부역자(附逆者)들을 처단(處斷)해야 한다는 것에는 또 “무슨 소리냐?”하면서, 또 나라를 분열(分裂)시키려 하느냐? 할 것이다. 국민(國民)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매국노(賣國奴)나 부역자(附逆者)들을 정치(政治)판으로 보내고, 관리(官吏)로 앉히고… …되풀이 될 것이다. 이게 나라냐? 헛소리만 메아리 쳐 나갈 뿐이다.
○ 반도조선왕조(半島朝鮮王朝)냐? 대륙조선왕조(大陸朝鮮王朝)냐? 결과론(結果論)이지만, “반도조선왕조(半島朝鮮王朝)는 존재(存在)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은 조광윤(趙匡胤)의 송【宋, 960년 ~ 1279년】나라 때, AD 1,127년 여진족(女眞族) 금(金)나라에 의해 개봉(開封)이 함락(陷落)당하고, 황제 흠종(欽宗)과 태상황(太上皇) 휘종(徽宗)이 포로(捕虜)가 끌려간 사건 소위(所謂) “정강의 변(靖康之變)”때 정강패사(靖康稗史)의 일종(一種)인 “선화을사봉사금국행정록(宣和乙巳奉使金國行程錄)”속의 고려(高麗)는 어디에 있었는가? 를 알아보기로 하자.
※ 참고(參考) (1) / 《송막기문[松漠紀聞 : 홍호(洪皓)]이나 선화을사봉사금국행정록[宣和乙巳奉使金國行程錄 : 宋 許亢宗(靖康稗史之一種)]이나 모두 송(宋)나라 때에 금(金)에 포로(捕虜)가 되어 잡혀간 휘종(徽宗)과 흠종(欽宗)등의 귀국(歸國)문제(問題) 때문에 “금(金)”나라에 사신(使臣)으로 간 관리(官吏)들이 기록(記錄)한 것으로, 이들이 여정(旅程)은 오늘날의 동북방(東北方)이 아닌 서북방(西北方) 지대(地帶)의 지세(地勢)와 기후(氣候), 종족(種族)과 나라(國)등을 일컫고 있다.〉
특히 ‘회골(回鶻)=회흘(回紇)’이나 ‘토혼(吐渾)=토곡혼(吐谷渾)’ 또는 ‘당항(党項)’등은, 동북방(東北方)이 아닌 서북방(西北方)지대에 있었던 종족(種族)들로써,
➊ 그들 회골(回鶻)인들은, 《其人卷髮深目,眉脩而濃,自眼睫而下多虬髯. : 그 사람들은 권발(卷髮)이며 눈은 깊고(深目), 눈썹은 짙고 무성하며, 속눈썹은 아래가 많고 구레나룻은 뿔 달린 용과 같다.》고 하였으며,
➋ 연인(燕人)들은, 《婦人類男人白晢,著,青衣,如中國道服.然以薄青紗幂首而見其面. : 부인(婦人) 무리들과 남자들은 얼굴빛이 희며, 푸른 옷을 입고 나오는데, 중국(中國)의 도복(道服)과 같으며, 그 얼굴을 보면 엷은 청사(靑紗)로 머리를 뒤집어쓰고 있다.》고 하였다.
위에서 말하는 종족(種族)이나 부족(部族)들은, 오늘날의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및 그 서(西)쪽에 살고 있던 자(者)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 분포(分布)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참고(參考)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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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宣和乙巳奉使金國行程錄 / 宋 許亢宗【靖康稗史之一種】의 제33정(第三十三程)을 보면:
《自黃龍府六十里至托撤孛堇寨.府為契丹東寨.當契丹強盛時,虜獲異國人則遷徙雜處於此. : 황룡부(黃龍府)로부터 60리를 가면 탁철발근(托撤孛堇) 작은 성(城)에 닿는다. 부(府)는 글란(契丹) 동쪽 성(城)인데, 글란(契丹)이 강성(强盛)할 때에, 이국인(異國人) 포로(捕虜)들을 여기저기로 옮겨 살게 한 곳이다. 南有渤海,北有鐵離,吐渾,東南有高麗,靺(從韋從末)鞨,東有女真,室韋,東北有烏舍,西北有契丹,回紇,党項,西南有奚,故此地雜諸國風俗. : 남(南)쪽에 발해(勃海)가 있고, 북(北)에는 철리(鐵離), 토혼(吐渾)이 있고, 동남(東南)쪽에는 고려(高麗), 말갈(靺鞨)이 있으며, 동(東)쪽에는 여진(女眞), 실위(室韋)가 있고, 동북(東北)쪽에는 오사(烏舍)가 있으며, 서북(西北)쪽에는 글란(契丹), 회흘, 당항(党項)이 있으며, 서남(西南)에는 해(奚)가 있는데, 이곳은 여러 나라의 풍속이 있는 땅이다.》라고 하였다.
※ 위의 지도(地圖)를 보면 : 장춘(長春) 북(北)쪽에 “황룡부(黃龍府)”가 표기되어 있다.
(1) 〈남(南)쪽에는 발해(勃海)가 있다. (南 有 渤 海)〉고 하였으니, 여기 저리로 재볼 필요도 없이 “하북성(河北省) 동(東)쪽과 요녕성(遼寧省) 서(西)쪽의 북방지대(北方地帶) 내몽고(內蒙古) 땅에 황룡부(黃龍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곳의 남(南)쪽 땅에 발해(勃海)가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도(地圖)등을 보면 : ‘황룡부(黃龍府)는 길림성(吉林省)의 장춘(長春) 북(北)쪽에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의 남(南)쪽에 발해(勃海)는 없다. 곧 발해(渤海)는 남서(南西)에 있지, 남(南)쪽이 아니다.
역사통설(歷史通說)은, 곧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이다. 이들의 역사(歷史) 이야기는 뒤죽박죽이요, 막무가내(莫無可奈)다. 황룡부(黃龍府)의 남(南)쪽에 “발해(渤海)”가 있다면, 지도(地圖)에 그려져 있는 황룡부(黃龍府)를 수백(數百)리 서(西)쪽으로 이동(移動)시켜야 그 지리적(地理的) 위치를 확보(確保)할 수 있다. 조선사(朝鮮史)를 왜곡(歪曲), 조작(造作)하는 과정(過程)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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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北)에는 철리(鐵離)와 토혼(吐渾)이 있다.(北有鐵離,吐渾)〉고 하였으니, 이는 곧 「황룡부(黃龍府)의 북(北)쪽에 철리(鐵離)와 토혼(吐渾)이 있다.」는 얘기다.
※ 참고(參考) (2) / 《황룡부(黃龍府)의 북(北)쪽에 철리(鐵離)와 토혼(吐渾)이 있다.〉는 말에 따르면 : 오늘날의 장춘(長春)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철리(鐵離)와 토혼(吐渾) 곧 토곡혼(吐谷渾)이 있어야 한다. -끝-》
‘토혼(吐渾)’은 곧 ‘토곡혼(吐谷渾)’을 말하는 것으로, 4세기 초에 티베트(Tibet)계 유목민(遊牧民)이 청해(靑海) 지방에 세운 나라로,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때 강성(强盛)했으나, AD 663년, 토번(吐番)에게 망한 나라로 설명(說明)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通典 西戎 / 吐谷渾 : 《吐谷渾,本遼東鮮卑也.中略.渾曰:馬是畜生,食草飲水,春氣發動,所以致鬥.鬥在於馬.而怒於人耶?乖別甚易,今當去汝於萬里之外矣.於是擁馬西行,乃西附陰山. : 통전(通典) 서융(西戎) 토곡혼(吐谷渾) : 토곡혼(吐谷渾)은, 본래(本來) 요동(遼東)선비(鮮卑)다. 중략(中略). 혼(渾)이 말하기를 : 말은 본래 사람이 기르는 짐승이며, 풀을 먹고 물을 먹는고, 춘기가 발동하면, 싸움에 이른다. 말이 싸우는 것에, 사람들이 분노하는가? 만리(萬里)의 밖에 떨어져 있다. 이때 말을 몰아 서행(西行)하여, 이에 음산(陰山) 서(西)쪽에 의지하였다.》고 하였다.
역사통설(歷史通說)【오늘날의 역사해설(歷史解說)로,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이다.】로 본다면 : ‘토혼(吐渾)=토곡혼(吐谷渾)’의 지리적(地理的) 위치(位置)는 “청해(靑海)가 그 중심(中心)이다.”
그렇다면 결국(結局), 황룡부(黃龍府)는 ‘토혼(吐渾)=토곡혼(吐谷渾)’의 남(南)쪽에 있었다는 것인데, 역사통설(歷史通說)로 볼 때, 황룡부(黃龍府)가 ‘토곡혼(吐谷渾)=토혼(吐渾)’의 남(南)쪽에 있었다고 한다면 그곳은 청해(靑海)의 남(南)쪽 지대다. 이게 가능(可能)한 역사이야긴가?
여기서 토혼(吐渾)에 대해서 :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는, “티베트(Tibet)계 유목민(遊牧民)”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원전(原典)속에서는 : “요동(遼東) 선비족(鮮卑族)”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티베트(Tibet)족과 선비(鮮卑)족이 똑같은 무리란 말인가?
원전(原典)이나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나 “티베트(Tibet) 유목민(遊牧民)”과 “요동(遼東) 선비(鮮卑)”는 다르다고 하였다.
● 그렇다면, 그 동(東)쪽 지방은 몽땅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영토(領土)”이어야 맞는 말이다. 역사통설(歷史通說) 논자(論者)들아! 그렇지 않느냐? 또
〈通典 西戎 2 : 吐谷渾北有乙弗勿敵國,國有屈海,海周迴千餘里. : 토곡혼(吐谷渾) 북(北)쪽에 을불적국(乙弗敵國)이 있다. 나라에 굽어진 바다(屈海)가 있어, 바다를 도는데 천여(千餘)리이다.眾有萬落,風俗與吐谷渾同.然不識五穀,唯食魚及蘇子.蘇子狀若中國枸杞子,或赤或黑.: 무리가 만 락(萬 落)이 있는데, 풍속은 토곡혼과 같다. 오곡(五穀)은 당연히 모르고, 유일한 것은 물고기와 소자(蘇子)가 먹을거리다. 소자(蘇子)는 중국의 구기자(枸杞子)와 형상이 같은데, 혹은 붉고 혹은 검다.〉고 하였다.
통전(通典)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 토곡혼(吐谷渾)의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을불적국(乙弗敵國)이 있고, 풍속(風俗)등은 토곡혼(吐谷渾)과 같다고 하였다. 그 나라에는 일천(一千)여리에 달하는 내해(內海)인 “굴해(屈海 : 굽어진 바다)”가 있어, 이곳 사람들은 오곡(五穀)을 모르고, 타락(駝酪)과 물고기와 소자(蘇子)만이 식량(食量)이었다고 하였다.
➨ 토곡혼(吐谷渾)이 정말로 오늘날의 청해(靑海)를 중심(中心)으로 있었다고 한다면,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인 하서회랑(河西回廊)이라고 불리는 “량주(凉州:武威)∼장액(張掖:甘州)∼주천(酒泉:肅州)∼돈황(燉煌:瓜州)”사이에 ‘1천 여리’에 달하는 굴해(屈海)가 있어야 맞는 말이다. 이를 증명(證明)할 수 있는 근거(根據)는?
이곳엔 다만 “장액(張掖)과 주천(酒泉) 북방을 흐르는 흑수(黑水:張掖河:弱水)”가 있고, 이 흑수(黑水:張掖河:弱水)는 거연해(居延海)로 들어가며, 거연해(居延海)는 과거(過去) 동해(東海)와 서해(西海)로 각각 나누어져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토곡혼(吐谷渾)은, 요동(遼東)의 선비족(鮮卑族)으로 알려져 있는데, 역사통설(歷史通說)은 ‘티베트(Tibet)’족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위에서 말하는 「을불적국(乙弗敵國)의 을불적(乙弗敵)은, 곧 엽달(嚈噠) 곧 읍달(挹怛)이라고도 한다.」고 하는데, 이들은 오늘날의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아무다리아강’ 남(南)쪽에 있었다.」고 전(傳)해지고 있고, “장안(長安)으로부터 1만 1백리 떨어져 있었다(通典).”고 한다.
오늘날의 중국(中國) 학자(學者)중에서, 「을불적(乙弗敵)은, 고구려(高駒驪) 태왕(太王)의 이름」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그렇다면 “고구려(高駒驪)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로부터 그 동(東)쪽에 걸쳐 있었던 나라였다.”는 이야기다.
오늘날의 “황룡부(黃龍府) 남(南)쪽은 발해(渤海)”라는 이야기는, 지세(地勢)와 자연환경(自然環境), 방위(方位)등을 놓고 볼 때, “전혀 가능성(可能性)이 없다.”
황룡부(黃龍府)와 발해(渤海)를 놓을 땅이 없다. 땅(地)이 없다는 것은, 비교(比較) 자체(自體)가 될 수 없다는 뜻이고, 「전혀 다른 곳의 ‘땅 이름’을 빌려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 동(東)쪽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즉(卽)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요녕성(遼寧省)·길림성(吉林省)등지(等地)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역사해설(歷史解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은, 실제(實際)로는 서(西)쪽으로 1만5천리 떨어진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땅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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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남(東南)에는 고려(高麗), 말갈(靺鞨)이 있다.(東南有高麗,靺(從韋從末)鞨)〉라고 하였다. 위의 글 (2)에서 말한 곳의 남(南)쪽에 황룡부(黃龍府)가 있었다는 설명(說明)인데, 「토혼(吐渾) 곧 토곡혼(吐谷渾)의 동남(東南)【또는 동(東)쪽과 남(南)쪽】쪽에 고려(高麗)와 말갈(靺鞨)이 있다」라는 말과 같다.
➊ 이곳이 어딘가? 왜곡(歪曲), 조작(造作)된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의 해설(解說)에 따라도, 〈토혼(吐渾)의 동남(東南)쪽 땅은 : “감숙성(甘肅省)·영하성(寧夏省)·섬서성(陝西省)·산서성(山西省)·사천성(泗川省)·호북성(湖北省)·하남성(河南省)”등지의 중원(中原)대륙(大陸)의 땅이다.〉
➋ 그러나 실제(實際)의 역사(歷史)는, ‘토혼(吐渾)=토곡혼(吐谷渾)’은, 청해(靑海)나 그 주변(周邊)에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북(北)쪽의 하서회랑(河西回廊) 지대(地帶)에 천리(千里)에 달하는 굴해(屈海)가 없기 때문이다.
➌ 가능성(可能性)은 하나다. 당시(當時) 하서회랑(河西回廊)의 북방(北方) 해발고도(海拔高度)가 낮은 곳에 일천(一千)여리에 달하는 굴곡진 바다(굴해屈海)가 있었으나, 증발(蒸發)되어, 사막(沙漠)으로 변해버렸다고 한다면… …그러나 이러한 지세(地勢)도 (2)의 조건(條件)인 〈북(北)에는 철리(鐵離)와 토혼(吐渾)이 있다.(北有鐵離,吐渾)〉고 하였으니, 이는 곧 「황룡부(黃龍府)의 북(北)쪽에 철리(鐵離)와 토혼(吐渾)이 있다.」는 기록(記錄)을 충족(充足)시킬 수가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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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東有女真,室韋,東北有烏舍. : 동(東)쪽에는 여진(女眞), 실위(室韋)가 있고, 동북(東北)쪽에는 오사(烏舍)가 있다.〉
황룡부(黃龍府) 동북(東北)쪽에 오사(烏舍)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정말 그럴까?
유사(類似)한 기록(記錄)인「송막기문(松漠紀聞) 기록(記錄)도 오늘날의 신강성(新彊省)과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북방지대(北方地帶)의 여행기(旅行記)이다.」란 것을 상기(想起)하면, 황룡부(黃龍府)가 요녕성(遼寧省)과 산해관(山海關) 사이의 북(北)쪽에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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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西北有契丹,回紇,党項. : 서북(西北)쪽에는 글란(契丹), 회흘(回紇), 당항(党項)이 있있다.〉고 하였다.
通典卷第200,邊防16 北狄 七 / 迴紇 : 《迴紇在薛延陀北境,居延婆陵水,去長安萬六千九百里. : 회흘(迴紇)은 설연타(薛延陀) 북경(北境)에 있다. 파릉수(婆陵水)에 퍼져 사는데, 장안(長安)에서 1만6천9백리 떨어져 있다.》고 하였다.
장안(長安)【섬서성(陝西省) 고도(故都) 장안(長安)】에서 “1만6천9백리” 떨어져 있다고 한다면, 러시아(Russia)의 모스크바(Moskva)∼우크라이나(Ukraine)북방지대(北方地帶)를 가리킨다.
자세(仔細)하게 이해(理解)하기 쉽게 말하면, 〈황룡부(黃龍府)의 서북(西北)쪽에 글란(契丹)·회흘(回紇)·당항(党項)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러시아(Russia)의 모스크바(Moskva)∼우크라이나(Ukraine)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그 동남(東南)쪽에 ‘황룡부(黃龍府)’가 있었다는 거다.
동남(東南)쪽이라면 :〈카스피해(Caspi海)∼아랄해(Aral海)∼발하슈호(Balkhash湖)∼자이산호(Zaysan湖) 사이(間)의 땅에 황룡부(黃龍府)가 있었다.〉는 애기다.
● ‘글란(契丹)=거란=요(遼)’와 ‘회흘(回紇)’과 ‘당항(党項)’등은, 모두 동양(東洋)계가 아닌 서양종족(西洋種族)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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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西南有奚,故此地雜諸國風俗. : 서남(西南)에 해(奚)가 있으며, 이 땅에는 여러 나라의 풍속(風俗)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황룡부(黃龍府)의 서남(西南)쪽을 말하는 것인데, 그곳에 해(奚)가 있었다고 했다. 더불어 이 땅에는 여러 나라가 있어 여러 풍속이 있다고 하였다.
황룡부(黃龍府)는 장춘(長春)의 북(北)쪽에 있다. 이곳의 서남(西南)쪽은 :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산동성(山東省)·산서성(山西省)·섬서성(陝西省)·하남성(河南省)등지로 중원(中原)의 요충지(要衝地) 땅이다. 이곳에 한족(漢族)이 아닌 해(奚)가 살았다고 한다면, 중국(中國)역사(歷史)는 존재(存在)할 수 없다.
오직 해(奚)의 역사(歷史)만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해(奚)”는 글란(契丹)의 일족(一族)으로, 고막해(庫莫奚)와 이종(異種)이지만 동류(同類)라고 하였고, 이들의 선대(先代)는, 동호(東胡) 우문씨(宇文氏)의 별종(別種)이다. 또 말하기를 이들은 글란(契丹)이나 해(奚) 모두 모용씨(慕容氏)에게 격파(擊破)되어 송막(松漠)지간(之間)에 숨어 살고 있었던 자(者)들이다.〉라고 하였다.
또 글란(契丹)의 무리들은 그 뒤에 돌궐(突厥)에게 핍박(逼迫)을 당하자 그 무리들 중 만(萬)여가(餘家)가 고구려(高駒驪)에 위탁하여 살았다고 하였다.
➊ ‘황룡부(黃龍府)’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땅의 북방지대(北方地帶)인 「카스피해(Caspi海)∼아랄해(Aral海)∼발하슈호(Balkhash湖)사이의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있었다.」
➋ 이곳의 서남(西南) 땅인 「“카스피해(Caspi海)와 흑해(黑海)”주변(周邊)에 “해(奚)”등의 여러 나라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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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우리가 중국왕조(中國王朝)라고 일컫고 있는 많은 이름들이 실존(實存)했느냐? 또는 가공(架空)된 왕조(王朝)냐? 하는 질문(質問)에서,
〈그들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동구라파(東歐羅巴)·서남아세아(西南亞世亞)등지(等地)에 있었던 나라(王朝)들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대륙(大陸) 땅의 조선왕조(朝鮮王朝)가 몽땅 반도(半島)로 이동(移動)되고 난 후,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대륙(大陸) 땅 이곳저곳에,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동구라파(東歐羅巴)·서남아세아(西南亞世亞)등지(等地)’에 있었던 조그만 왕조(王朝)들의 이야기를 과대포장(誇大包裝)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다.〉 2019년 04월 03일 [글쓴이 : 문무(文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