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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갈로(羯虜)와 여진족(女眞族)

작성자문 무|작성시간20.01.03|조회수398 목록 댓글 2

 

                    갈로(羯虜)와 여진족(女眞族)

            후금(後金)의 터전, 건주위(建州衛:瀋陽)는 장백산 동()쪽에 있다.           

             

조선왕조(朝鮮王朝)가 오늘날의 반도(半島) 땅과 그 북방일부(北方一部) 땅에서 반만년(半萬年) 시대(時代)를 이어왔다면, 자연환경(自然環境)적 요소(要素)인 지형지세(地形地勢)나 기후(氣候)등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면,

 

    인종(人種)으로부터 종족(種族)이나 부족(部族) 또는 나라() 또는 토산물(土産物)이나 금수(禽獸)또는 지명(地名), 대부분의 것들이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정리(整理)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서(歷史書) 또는 시대(時代)를 살았던 선인(先人)들의 기록(記錄)을 보면, 한반도(韓半島) 땅과는 전혀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을 기록(記錄)으로 남겨 놓았고, 그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수많은 지명(地名)들을 기록(記錄)해 후세(後世)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게 문제(問題)인 것이다.

 

谿谷先生集卷之三十.七言律.一百六十首 / 聞瀋陽不守二首 : 심양(瀋陽)이 함락(陷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은 시(). 두 수 출처 : 고전번역원db : 관심부분 발췌(拔萃)


    《遼河消息不堪聞.羯虜南來氣若雲.方略舊稱熊御史.摠戎新失賀將軍.金戈未蹀氈裘血.粉黛都隨鐵馬群.廊廟諸公皆肉食.擬將何策靜妖氛. : 요하(遼河)의 소식을 어찌 차마 들으리요. 오랑캐들(羯虜) 구름처럼 남침(南侵)했다네. 방략으로 이름났던 웅()어사 뒤를 이어, 총사 하()장군을 지금 또 잃었구려. 창끝에 전구의 피를 묻혀 보지도 못한 채, 분 바른 미인들 기마병(騎馬兵)에게 끌려갔네. 조정의 제공 모두 고기 먹고 있는데, 장차 무슨 계책으로 요기(妖氣)를 몰아낼꼬. 聞說遼陽事轉危.天驕新拔漢旌旗.毉巫山下煙塵暗.太子河邊鼓角衰.但使中原管仲在.不敎東海魯連悲.倡優鐵劍看消長.回首蒼梧淚自垂. : 요동(遼東)사태 갈수록 위태해지는 중에, 교만한 하늘 한()나라 깃발 뽑았다는 새 소식, 전쟁 티끌 하늘 덮은 의무산(醫巫山) 자락, 고각소리 시들해진 태자하 강변, 중원에 관중(管仲)만 건재하다면, 동해를 밟는 노련의 슬픔 없게 할 수 있으련만, 창우와 철검 따라 바뀌는 흥망성쇠, 창오(蒼梧)를 뒤돌아 바라보니 눈물이 저절로 떨어지네.하였다.

 

    ※ 계곡집(谿谷集) : 조선(朝鮮) 중기(中期)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중 한 사람인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선생의 문집이다.고전번역원db / 인용

 

    (1)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 누루하치(奴爾哈赤)후금(後金) 초대 왕()(1559~1626) / 姓愛新覺羅氏,諱努爾哈齊, ‘장백산(長白山)=백두산(白頭山)’ 동남(東南)쪽에서 시원(始原)했다고 하니, 당시(當時)의 여진족(女眞族)들은 장백산(長白山)=백두산(白頭山)’ 동남(東南)쪽에서, 서북(西北)쪽으로 진출(進出)하여, 심양(瀋陽)오늘날의 요녕성(遼寧省)땅에 자리 잡게 되고,

 

    이곳 심양(瀋陽)”에서 점진적(漸進的)으로 힘을 키워, (西)쪽으로 진군(進軍), 마침내 서남(西南)쪽 발해만(渤海灣) 물가에 있던 산해관(山海關)을 깨뜨리고진장(鎭將) 오삼계(吳三桂)가 후금(後金)에게 투항(投降)파죽지세(破竹之勢)로 북경(北京)을 함락(陷落), () 왕조(王朝)를 붕괴(崩壞)시켰다고 전해진다.

 

    ◇ 그러나, 그 당시(當時)를 살았던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유학자(儒學者)이자 조정(朝廷)의 관리(官吏)를 역임(歷任)했던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선생(先生),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남겨 놓고 있다.는 사실(事實)이다.

 

    여진족(女眞族)이 심양(瀋陽)을 점령(占領)할 때, 남침(南侵:南來)했다고 말씀하시고 있다는 거다. 이 말대로라면 여진족(女眞族), 본시(本是) 심양(瀋陽)의 북()쪽에 웅거(雄據)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장백산(長白山) 또한 심양(瀋陽)의 북()쪽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事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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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 : 위에서 본 예시(例示) 聞瀋陽不守二首 : 심양(瀋陽)이 함락(陷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은 시()에서 말하는 내용(內容),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當時) ()의 군대(軍隊)가 심양(瀋陽)을 지키지 못하고(不守) 패하는 바람에 함락(陷落)되었을 그 때를 살았던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선생(先生)은 말하기를 : 심양(瀋陽)의 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쪽으로 침략(侵略)남래(南來)하여, 심양(瀋陽)에 있던 명군(明軍)을 깨뜨렸다.는 것이다.


    ◇ 또 다른 원전(原典)에서 이르기를 : ()나라를 건국(建國)한 노이합적(奴爾哈赤), 본시(本是) 백두산(白頭山) ()쪽에서 발흥(發興)했는데, 당시 요좌遼左 : 요동(遼東)의 군벌(軍閥)이었던 요동(遼東) 총병관(摠兵官) 이성량(李成梁)’에게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죽었고, 그도 죽음 직전(直前), 예사로운 인물(人物)이 아님을 안 이성량(李成梁)에 의해 풀려나, 그의 딸과 함께 북()쪽으로 도주(逃走)할 수 있도록 하여 생명(生命)을 부지(扶支), 뒤에 막북(漠北)의 건주(建州)’에서 일어나 청() 태조(太祖)가 되었다.고 하였다.

 

    결국(結局) () 시대(時代)를 살았던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말씀이나, 또 다른 원전(原典)에서 말하는 여진족(女眞族)과 노이합적(奴爾哈赤)에 대한 설명(說明), 똑같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는 사실(事實)이다.

 

    ◇ 여진족(女眞族)이자 만주족(滿洲族)이라는 청()나라! ()나라를 건국한 자()는 노이합적(奴爾哈赤)이고, 그는 막북(漠北)’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나라가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시원(始源)한다는 말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막북(漠北)’이라고 불리려면 :압록강(鴨綠江)과 두만강(豆滿江) 이남(以南)은 모두 사막지대(沙漠地帶)여야 가능한 말이고, 그 남()쪽은, 막남(漠南)이란 별칭(別稱)으로도 불려야 한다.()나라가 반도(半島)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일어났다는 말은, 조작(造作)된 역사해설(歷史解說)이다. 조선왕조(朝鮮王朝)를 해체(解體)한 후(), 반도(半島) 땅에 처박고, 이식(移植)하기 위한 것이다.

 

    ◇ 조선사(朝鮮史)와 대륙사(大陸史): 백두산(白頭山) ()쪽에서 시원(始原), 발흥(發興)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가 막북(漠北)”에서 일어났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냐? 도대체 무엇이 진실(眞實)인가? 할 것이다.

 

    다 옳은 말이다. 왜냐하면 백두산(白頭山)은 본시 불함산(不咸山)’으로 대황(大荒)중에 있다고 하였는데, 바로 막북(漠北)’에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당연히 조선(朝鮮)의 땅이었다. 아래 청사고(淸史考)를 보자.

 

    清史稿卷1,本紀1,太祖本紀,太祖 :居長白山東俄漠惠之野俄朵里城,號其部族曰滿洲.滿洲自此始.元於其地置軍民萬戶府,明初置建州衛. : 장백산(長白山) ()쪽의 아타리성(俄朶里城)에서 살았는데, 그 부족(部族)을 이르기를, 만주(滿洲)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만주(滿洲)라고 부른 시초(始初). ()나라 때는 그 땅에 군민(軍民)만호부(萬戶府)를 두었고, ()나라 초에 건주위(建州衛)을 두었다.라고 하였다.

 

    지들여진(女眞) 곧 만주족(滿洲族)스스로 말하기를 : 장백산(長白山) ()쪽의 아타리성(俄朶里城)에서 살았는데, 부족(部族) 이름을 왈 만주족(滿洲族)이라 했고, 그 땅은 원()때에는 군민(軍民)만호부(萬戶府)였고, () 때는 건주위(建州衛)를 둔 곳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뭐가 좀 이상(異常)하지 않은가?

 

    ➊ 장백산(長白山)은 곧 백두산(白頭山)이요,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 말하는 반도(半島) 땅의 영산(靈山)인 해발고도(海拔高度) 2,774m의 백두산(白頭山)의 동()쪽이라면 그곳은 조선(朝鮮)의 함경도(咸鏡道)함경북도(咸鏡北道)땅이다.

 

    ➋ 〈이곳 함경도(咸鏡道) 땅에 아타리성(俄朶里城)이 있고, 이곳에 살던 무리들을 만주족(滿洲族)이라 했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今始初聞)이요, 더불어 이곳에 원()나라가 군민(軍民)만호부(萬戶府)를 두었다는 것 역시(亦是), 금시초문(今始初聞)이다. 더불어 이곳에 명()나라가 건주위(建州衛)를 두었다는 것, 이것 역시 금시초문(今始初聞)이다.이런 역사(歷史) 기록(記錄)은 없다는 뜻이다.

 

    ➌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 말하는 건주위(建州衛), 그곳장백산(長白山) ()쪽 함경도(咸鏡道) 으로부터 서(西)쪽으로 1천리(千里) 이상(以上) 떨어진 오늘날의 요녕성(遼寧省) 심양(瀋陽) 땅에 두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논자(論者)들의 조선사(朝鮮史) 왜곡(歪曲)이 극()에 달해, 국민(國民)들을 사기극(詐欺劇)에 동참(同參)시켰다. 곧 세뇌(洗腦)시켰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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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갈로(羯虜)란 도대체 뭐냐?

 

    위의 예()로 든 谿谷先生集卷之三十.七言律.一百六十首 / 聞瀋陽不守二首 : 심양(瀋陽)이 함락(陷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은 시(). 두 수에 의하면 :갈로(羯虜)들이 수많은 기마(騎馬)를 앞세워 구름처럼 남침(南來)했다고 하였다.

 

    여진족(女眞族)이 갈로(羯虜)인가? 아니면 명()에 사대(事大)하고, 여진(女眞)을 야만족(野蠻族)으로 비하(卑下)하여 갈로(羯虜)라고 했을까? 여진(女眞)은 이미 야만족(野蠻族)이요, 오랑캐().

 

    그러나 한 가지 이해(理解)불가(不可)한 대목은 : 여진족(女眞族)은 말갈(靺鞨)이요, 물길(勿吉)이요, 읍루(挹婁), 숙신(肅愼)이라고 하였다. 강단(講壇)이든 재야(在野)든 조선사(朝鮮史)에서는,

 

    숙신(肅愼)은 단군(檀君)의 통치(統治)를 받았다, 또는

    숙신(肅愼)은 고조선(古朝鮮)의 일원(一員)이다 또는

    조선(朝鮮)은 숙신(肅愼)이다 또는

    말갈(靺鞨)은 고구려(高駒驪)에 복속(服屬)되어 일원(一員)이 되었다는 등 조선왕조(朝鮮王朝)의 한 일원(一員)으로 취급(取扱)되었는데, 어떻게 여진(女眞)을 가리켜 야만족(野蠻族)으로 취급(取扱)했는가하는 점이다. 더더구나

 

   〈갈로(羯虜)에서 ()”서방오랑캐를 말하는 것이고, ‘흑양(黑羊)=갈양(羯羊)’을 키우고 살던 갈족(羯族)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은 서방(西方)오랑캐다.

 

    ‘谿谷(계곡) 선생(先生)’께서는, 무엇 때문에 극동(極東)에 살고 있었던 조선왕조(朝鮮王朝)와 친숙(親熟)했던, 때로는 속국(屬國)으로 조선(朝鮮)을 위해 부족(部族) 수천(數千), 수만(數萬)이 전사(戰死)할 만큼 조선(朝鮮)을 위해 죽음을 불사(不死)했던 종족(種族) 여진(女眞), “갈노(羯奴)=갈로(羯虜)”라는 치욕적(恥辱的)인 야만종족(野蠻種族)으로 비하(卑下)했을까?

 

    갈족(羯族)은 오랑캐이나, 그들은 동방(東方)이 아닌 서방(西方)의 여러 오랑캐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갈족(羯族): 눈이 크고 깊으며, 코가 높고, 수염이 많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현재(現在)의 인종(人種)구도(構圖)와도 별 차이(差異)없는 전형적(典型的)인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인들이다. 눈이 크고 깊으며, 코가 높고, 수염이 많다고 한, 갈족(羯族)들의 흔적(痕迹),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지방에만 있을 뿐, 중원대륙(中原大陸)에서는 찾을 길이 없다.

 

    〈唐會要 西域 吐火羅國편을 보면 : 吐火羅.在蔥嶺之西數百里.與挹怛雜居.勝兵五萬.其國土著多男子.少婦人.故兄弟通室.婦人五夫.中略.產名駒汗血馬.北界接西域大宛之地. : 토화라(吐火羅): 토화라(吐火羅)는 총령(蔥嶺)의 서쪽 수백(數百)리에 있는데, 읍달(挹怛)과 함께 섞여 산다. 승병이 5만이며, 그 나라의 토질은 남자가 많고 부인이 적어, 무릇 형제(兄弟)가 방에서 통하며, 한 부인이 다섯 남편이 있다. 중략(中略). 여기서 나오는 망아지가 한혈마(汗血馬)이다. 북쪽 지경으로 서역(西域)의 대완(大宛)의 땅과 접하였다. 獻大鳥.高七尺.其色元.足如駝.鼓翅而行.日三百里.能噉鐵.夷俗謂之駝鳥. : 대조(大鳥)를 헌상했는데, 높이가 7척이며, 그 새의 색깔이 으뜸이었는데, 낙타의 발과 같았다. 날개로 북을 치며 가는데, 하루에 3백리를 가는데, 능히 쇠를 씹을 수 있다. 오랑캐풍속에서 말하는 타조(駝鳥)이다. 中略.龍朔元年.授烏涇波使持節月氐等二十五州諸軍事月氐都督. : 용삭원년, 오경피(烏涇波)에게 사지절 월저(月氐)25주 제군사 월저(月氐)도독(都督) 벼슬을 내렸다. 天寶八載.其葉護失理忙伽羅遣上表曰.臣鄰境有一胡.號曰.居在深山.中略. : 천보8, 그 나라의 엽호(葉護) 실리망가라가 사신을 보내 글을 올려 말하기를, ()은 국경 가까이 인접한 유일한 오랑캐인데, 부르기를 갈사(羯師)’라고 합니다. 산속 깊은 곳에서 삽니다. 중략.라고 하였다.

 

    갈족(羯族):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지방에서 살던 종족(種族)으로, 눈이 크고 깊으며, 코가 높고, 수염이 많은, 이들의 후예(後裔)들이 바로 현()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인들이다.

 

    갈양(羯羊) : 여기서 가장 중요(重要)한 것이 갈양(羯羊)‘이다. 종족(種族)이름이, ()의 이름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만(數十萬), 수백만(數百萬) 인간집단(人間集團), 무슨 쥐라기 또는 백악기 때의 공룡(恐龍)무리들도 아닌 바에야, 어느 날 갑자기 멸종(滅種)될 수 있었을까? 정복(征服)당한 종족(種族), 서서히 동화(同化)되어 본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인간사(人間事).

 

    흔적(痕迹)도 없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주변(周邊) 종족(種族)이나 부족(部族)에게, 또는 정복자(征服者)에게 동화(同化)되어 그들만의 특징(特徵)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인종(人種) 분포(分布)를 보면 : 기원전(紀元前:BC) 200-300년경() 또는 서한(西漢)=전한(前漢)’시대(時代)이나, 기원후(紀元後:AD)21세기(世紀) 작금(昨今)의 시대(時代) 2020년이나 그 분포(分包)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우리가 오늘 의무교육(義務敎育) 현장(現場)에서 가르치며, 한 편으로는 배우는 조선사(朝鮮史)=한국사(韓國史)’, 실제(實際)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일제(日帝)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들과 함께 부역(附逆) 매국노(賣國奴)들이 만들어 놓은 한반도(韓半島) 조선사(朝鮮史)… …오늘도 열심히 교육현장(敎育現場)에서 가르치며, 배우고 있는 중이다. 기막힌 이야기다.  20200103[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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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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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다가세 | 작성시간 20.01.04 갈로 여진족은 현재 중국의 회족들이 아닐까요??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1.05 안녕하세요. <노다가세>님!
    회족들과 현 중앙아세아 인종의 모습과 위에서 말하는 "갈족"의 형상은 매우 흡사합니다.
    사실 중앙아세아는 여러 종족과 부족, 이민족간의 혼혈이 많다고 보아지는데........이곳이 동방과 서방의 충돌지역이기 때문이겠죠. 관심과 성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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