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옥사하지 않았다" 100년간 전 국민이 완벽하게 속은 위인전의 섬뜩한 진실

작성자문 무|작성시간26.03.11|조회수79 목록 댓글 3

D / 역사 만화 공장장

 

 

"그는 옥사하지 않았다" 100년간 전 국민이 완벽하게 속은 위인전의 섬뜩한 진실

 

조회 14,1532026. 3. 6.

 

두 발로 조선 팔도를 세 번이나 돌고, 백두산을 여덟 번이나 오르며 피땀 흘려 지도를 완성한 사내. 하지만 어리석은 나라의 지도자는 "적국에 기밀이 샐 수 있다"며 분노했고, 결국 그를 차가운 감옥에 가두어 죽인 뒤 지도를 새긴 나무판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우리가 어릴 적 교과서와 위인전에서 수없이 읽으며 분노했던, 너무나도 익숙하고 뼈아픈 역사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이 눈물겨운 비극이 누군가에 의해 아주 교묘하게 조작된 완벽한 거짓말이라면 어떨까?

 

지도를 지키려다 피를 토하며 죽어간 천재 지리학자의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100년 넘게 우리를 완벽하게 속여온 섬뜩하고도 기막힌 진실의 문을 지금 바로 열어본다.

1. 전국을 세 번 돌았다는 초인적인 전설의 허구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전국 팔도를 세 번이나 직접 걸어서 답사하고 백두산을 여덟 번이나 올랐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합니다. 하지만 지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 개인이 두 발로 걸어 전국을 측량해 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대동여지도에는 무려 2만여 개가 넘는 마을 이름, 산성, 나루터 등의 정보가 아주 빽빽하게 담겨 있습니다. 만약 현대의 기술을 빌리지 않고 오직 혼자서 이 모든 곳을 방문하여 땅의 모양과 거리를 재고 지도를 그렸다면, 평생을 바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실제 조선의 실학자 최한기가 김정호의 지도를 보고 쓴 글을 보면, "김정호는 오랫동안 지도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찾아 그 장단점을 살핀 후 지도를 만들었다"라고 뚜렷하게 적혀 있습니다. 직접 걸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2. 옥사설과 목판 소각설, 그 섬뜩하고 불순한 출처

가장 충격적인 반전은 흥선대원군이 김정호 부녀를 감옥에 가두어 죽게 만들고 지도를 새긴 나무판(목판)을 압수해 모조리 불태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극적인 결말은 사실일까요? 정답은 '완벽한 거짓'입니다.

 

불타 없어졌다고 여겨졌던 대동여지도의 원본 나무판들은 놀랍게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무려 11장이나 아주 온전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숭실대학교 박물관에도 1장이 남아 있습니다. 단 한 번도 불에 탄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끔찍한 거짓말은 누가, 왜 만들어낸 것일까요? 이 거짓말이 처음 활자로 뚜렷하게 등장한 것은 1934년,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가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펴낸 '조선어 독본'이라는 교과서에서였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치밀하고 소름 돋는 목적을 가지고 이 거짓말을 꾸며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김정호 같은 훌륭한 천재가 나와도,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너무나도 어리석고 꽉 막혀서 인재를 감옥에서 죽이고 훌륭한 작품마저 불태워버리는 미개한 나라다.

 

그러니 똑똑한 일본이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라는 이른바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역사관(식민사관)을 우리 민족의 머릿속에 깊숙이 심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무려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제가 만든 교묘한 함정에 빠져 우리의 지도자를 욕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3. 위인전이 놓친 진짜 천재 김정호의 위대함

그렇다면 김정호는 어떻게 그토록 거대하고 정교한 지도를 만들 수 있었을까요? 진짜 진실은 무작정 산을 오르는 육체적인 고생담보다 훨씬 더 지적이고 과학적입니다.


조선은 이미 세종대왕 시절부터 꾸준히 거리 측정 기구를 발명하고 전국 방방곡곡의 거리를 재어 중앙으로 정보를 모으는 등 지도 제작 기술이 상당히 발달한 나라였습니다. 김정호 이전에 이미 정상기의 '동국지도' 등 훌륭한 지도들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김정호의 진짜 위대함은 바로 뛰어난 '정보 편집자이자 데이터 과학자'였다는 점입니다. 그는 흩어져 있던 수십 종의 옛 지도와 65종에 달하는 지리 책들을 모두 모아 철저하게 비교하고 팩트 체크를 했습니다. 그리고 바둑판 모양으로 선을 긋는 방법(방안도법)을 도입하여 전체 지도를 일정한 비율(축척)로 통일시켰습니다. 가로 80리, 세로 120리의 크기로 지도를 규격화하여, 필요할 때마다 블록 장난감처럼 착착 접어서 들고 다닐 수 있는 놀랍도록 실용적인 '휴대용 대형 지도'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그는 발로 뛰는 고집쟁이가 아니라, 앞선 시대의 지식과 기술을 모두 집대성하여 백성들이 가장 보기 쉽고 정확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한 19세기 조선 최고의 '빅데이터 분석가'였습니다. 거짓된 고생담을 걷어낼 때, 우리는 비로소 김정호라는 인물의 진짜 눈부신 천재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에디터의 노트

"일제가 조작한 '비운의 걷기왕'이라는 가짜 타이틀을 벗어던질 때, 19세기 조선 최고의 '데이터 과학자' 김정호의 진짜 위대함이 빛을 발한다."

글/기획 : 역사 만화 공장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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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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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11 * 그것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처럼
    이야기하는 분들도
    참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 그래도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인가 싶다.


  • 작성자태양해 | 작성시간 26.03.12 고산 김정호가 대동여지도 완성 한지 70년 흐른 뒷 일본에서 수정하여 발표한 겁니다,,,
    그 이유는 간도 땅 팔아 먹은 죄 감추기 위한 음모 이며 또한 한민족의 대륙역사를 반도사로 축소 시키기 위한 음모로 역사서에서 잠자고 있는 김정호를 찾아 내어 의지의 한국인으로 영웅 만든 음모 입니다
    그래서 애국심이 사라지게 흥선 대원군을 악질로 꾸민 겁니다 더 이상 속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70 년 전에 만들어 진 거면 대원군과는 아무런 연관성과 연결 고리가 없습니다
    대동여지도 완료 시점 1861년 2년 후 대원군 섭정 1863년 ~ 1873년 입니다,,,,,
  • 작성자문 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12 "태양해"님!
    안녕하세요.
    조금씩, 빠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다는 것, 이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지 않았으며, 김정호라는 인물은 누군가가 만들어낸 가공의인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는데... ...
    왜냐하면,
    이렇게 큰 업적을 쌓은 분에 대한 그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없습니다.
    언제 태어나서, 언제 조선팔도를 걷고, 달리고, 측량해가며... ...언제 지도를 만들고, 언제 죽었는지, 그의 자손들은 있는지, 없는지 그 아무것도 남겨 놓은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조금씩이라도 변화가 보입니다.
    관심과 성원,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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