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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궐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8.10 저도 서안고성같은 대단한 성체가...
그리고 위도상으로도 역사에서 말한 북위38도에 비슷하게 접근한 성체가 조선 경복궁였으면 하지만...
그건 바램일 뿐...역사서들이 증언하는 조선의 한성과 한양은...한결같이 거대 사맥이 둘러친 구도요...동남쪽만이 트인 구조라 했습니다.
저는 서안의 서남쪽 화산+태백산 남쪽 한중(漢中)을 그 자리로 보고...
무안근처의 고지도상 한양(漢陽)이라 늘 표기돼는 동정호 근처의 한양은...남한성계념이 아닐지 싶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궐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8.10 문제는 그 서울의 경복궁자리는...
서울의 풍수상 서북으로 치우친 별궁터자리지...서울의 중심 왕궁터는 안국동이 맞단 겁니다.
도성 정남쪽의 종루가 있는 종각이 안국동 동남쪽이고...안국동 북쪽의 북촌방향이 사간원터와 고루터가 있음은...
과거 안국동이 서울의 중심 궁궐터인데 일제시기 쯤 몽땅 망가지고 모든 유물은 주변 일제건물들의 석재로 쓰이고...서별궁개념의 경복궁과 동별궁개념의 창덕궁만이 그나마 축소돼어 보수돼고...
북경쯤에 임시 이동됐던 경복궁이 다시... 지명이동돼어...도성관문의 간판들이 서울에 리모델링 됀 것이라 봅니다.
덕수궁정문이...대안문(大安門)에서...대한문(大漢門)으로 바뀌는 식으로여... -
작성자 궐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8.11 틀림없이 확연하게 역사서에 기록됀건 이겁니다.
조선 도성의 북쪽 진산은 화산(華山)이라 했고...삼각산(三角山)이라 했단 점...
현 섬서성 서남부의 태백산의 고봉들엔 삼각산이란 명칭이 붙는다...그 동쪽줄기는 화산(華山)이란 분명한 일치...
고로, 그 남단의 한중(漢中)이...역사가 말한 조선 도성이 분명한 이치며...
한중(漢中)의 남단을 두르는 강도 한수(漢水)...그 강을 건너는 다리 이름도 한강대교(漢江大橋)...
너무도 유사하지 않습니까...?
이것 먼저 확실하게 먹고..고대의 영토는 차차 서쪽으로 찾아가도 됍니다. -
작성자 문 무 작성시간13.08.10 심도있는 설명들입니다. 더운 날씨에 조선사를 위해 고생들 많이 하십니다. 조선왕조 도읍지는 한중부였다는 주장은 신빙성이 높은 것입니다. 조선사의 실체는 도성은 섬서성 서안(장안)과 한중(한성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분들의 주장이며, 실제 지형지리 역시 같다고 봅니다. 이곳으로부터 동서남북의 옛 조선사 변경지방을 찾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것 때문에 항상 나는 "북쪽과 서쪽"의 변경지방을 고서에서 찾아내려 하고 있는 것이지요. 동쪽과 남쪽은 밝혀졌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서쪽과 서북쪽과 북쪽지방의 한계를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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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궐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8.11 일본(왜)들의 왜교문서에도...조선왕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막부가 황제폐하만세~!라고 한 구절도 있습니다.
동이의 강역내에선 조선이 단연 동방의 천자격이나...거란과 금나라 원나라에 연이어 밟이면선 그 지위가 상당히 떨어지고...특히 서북 제후였던 청나라에 밟히면선 만만한 대국정도가 됐다 봅니다.
결정적인건...고려왕들이 백성들을 버리고 강도(강화)로 숨어들때부터 시작해...
조선 선조가 백성들을 버리고 서북으로 도망가 여차직하면 명나라로 도망칠 준비였단 것으로...
스스로 천자임을 포기한 사건들 때문였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