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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몽골)이 바로 고구려(맥고려)일까 한다.

작성자궐한| 작성시간14.06.22| 조회수941|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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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신짜오 작성시간14.06.23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글이군요. 중국 후한서와 북사를 읽어보고 돌궐비문을 살펴보면 위 글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굴이 페르시아어로 몽골을 가리키는 모굴과 연관되기는 하지만, 몽골은 고구려가 아닙니다. 그리고 무쿠리라는 나라는 무굴이 아닙니다. 무굴과 무쿠리 물론 몽골과는 관련이 있지만 말입니다.
  • 작성자 신짜오 작성시간14.06.23 무쿠리는 목골려(木骨閭)로서 과거 몽골에 있었던 유연국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맥이(貊耳)로서 뫼클리로 불려졌습니다. 둘은 엄연히 다릅니다. 유연국과 무굴제국은 다른 시대에 존재했던 다른 나라이며 국명이 몽골과 연관이 있다고 해도 정치, 종교, 종족 구성, ... 등 여러가지가 달랐습니다. 고구려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 작성자 신짜오 작성시간14.06.23 맥고려라는 명칭은 어느 사서에 있는지 가르쳐드릴 수 있으십니까? 아무리 사서를 뒤져봐도 맥고려니 맥구려니 하는 말은 보이지가 않더군요. 그리고 뫼클리와 무쿠리를 왜 같은 나라로 연결시키려 하나요? 이는 즉 고구려와 유연국은 같은 나라이며, 또한 고구려가 몽골 고원에 있었다는 기이한 상황을 연출시키게 합니다.
  • 작성자 신짜오 작성시간14.06.23 고구려는 지금의 북한의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 중국 만주의 극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있었던 나라입니다. 고구려가 유목 국가니 뭐니 하는 소리는 말갈족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당시 말갈족은 북한의 함경도와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 중국 만주에서 활동을 했던 부족으로 고구려와 많은 교류를 했습니다.
  • 작성자 신짜오 작성시간14.06.23 이를 가지고 고구려가 유목국가와 연관시키고, 유목국가인 유연국과 동일시하기 위해 이상한 말을 주장하는 일은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위 글이 펌한 글이기는 하지만 잘못된 글을 쓰는 거나 잘못된 글을 알리는 거나 오십보백보의 차이라고 봅니다. 역사는 사서, 고고학자료, ... 등으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궐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4.06.23 네.
  • 작성자 최남석 작성시간14.06.23 송동건 저 [고구려와 흉노] 그 책이 굉장히 궁금 합니다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06.24 위의 글중에...
    오골산은 (고구려)국의 서북에 있으니, 동이(東夷) 말로 지붕(屋山)이라고 한다. 평양(平壤) 서북 700리에 있다. 동서에 두 개의 산이 있는데, 깎아지른 절벽이 천인(天)이나 된다. 산 아래서 정상까지는 모두 창석(蒼石)으로 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그 험준함이 형문(荊門) 삼협(三峽)을 닮았다. 산 위에는 초목이 별로 없으며 오직 푸른 소나무만 자란다. 길게 뻗은 줄기는 구름에 닿아 있다......란 부분요..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06.24 위글에 보이는 오골산은 분명 연행록에 보이는 봉황산입니다. 좌우에 천여인이되는 절벽과 푸른 돌로 이루어젔다는 내용이 일치 합니다. 봉황산에서 좀더 가면 연산관이 있는데 이 연산관은 옛 아골관이라 하는데 아골관은 아골산(鴉鶻山)에 있을것입니다. 깎아지른 절벽이 천인(天)이나 되고 산 아래서 정상까지는 모두 창석(蒼石 ; 푸른돌)으로 되어있는곳을 찾으면 바로 그곳이 봉황산이자 고구려의 오골성이 있는곳일 것입니다.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06.24
    봉황성(鳳凰城) 책문(柵門) 밖에 봉황산이 있으니, 바위 봉우리가 펼쳐지고 동서로 마주 보고 서 있어서 마치 봉황의 두 날개와 같았다. 옛날에 축조한 석성(石城)이 두 산을 감싸고 있는데, 가운데에는 10여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상서(象胥 역관(譯官))들이 이 성을 가리켜 말하기를, “이곳은 바로 옛 안시성(安市城)이다.” 하였는데,<약천집 제2권 시 봉황산>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06.24 산은 봉성 책문 사이에 있고 산 밑을 빙 둘러 작은 길이 있는데 바로 지름길이었다. 이 길을 거쳐 가면서 우러러보니, 푸른 봉우리가 1000길이나 우뚝 솟아 있었다. 관(關) 안팎 2000여 리 사이에는 오직 창려현(昌黎縣)의 문필봉(文筆峯)만이 약간 서로 겨룰 만하다고 한다.<연원직지 5권 회정록 1833 3 4>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06.24 책문(柵門)에서 봉성(鳳城)까지 30리였다. 봉황산이 그 사이에 있는데 산밑을 빙 돌아 길이 나 있다. 지난 섣달 책문에 들어와 서쪽을 우러러보니, 푸른 산이 우뚝 천 길이나 솟아올라 있는데,<담헌서 외집 9권 봉황산>


    누각에 올라가서 봉황산을 바라보니, 파란 하늘 위로 우뚝 솟아 있어서 남색 절벽과 퍼진 산봉우리가 손바닥을 쪼개어 손가락을 갈라 놓은 것 같아서<몽경당일사 1855 11 1>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4.06.24 그곳은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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