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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有) 아편전쟁때 서양연합군이 중국문화재 부순 수준 ....jpg

작성자대부여| 작성시간15.01.18| 조회수519|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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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대부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1.18 윗 사진과 동일한 그림을 본적이 있는데 우리가 알고있는 청나라 황제가 의자에 앉아 집무를보는광경인데 장소와 그림이 아주 똑같다. 아편전쟁때 불타버렸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청나라는 양자강 을 기준으로 그 밑에 있었던 나라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서북방이 아니고 동남방 일거같은 증거가 여렀 있다. 한번 찾아보시길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5.01.19 원명원에서 사용된 수 많은 석재들이 어디에서 채석한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그 원명원에 사용된 석재는 평범한 대리석이었을까요...?
    연행기사 문견잡기에 분명히 나와 있읍니다. 그 돌은 '연척(碝磩)'이라는 옥돌입니다.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5.01.19 연행기사 문견잡기 상
    서산(西山)에 이르면 석재(石材)가 더욱 많아서 공사(公私)의 비석과 집들에 각종 돌로 만들어진 것이 모두 웅장하고 사치스럽다. 개천을 쌓고 길에 깔고 교량(橋梁)ㆍ성지(城池)에 쓰는 것까지 모두가 거대한 돌이고, 궁궐ㆍ단묘(壇廟)에 쓴 것은 모두 연척(碝磩)이라는 돌로서 그 빛이 옥 같다. 그래서 서산(西山)에서 취하지 않는 것이 없다. 모용씨(慕容氏) 이래로 지금까지 캐다가 썼는데도 없어지지 않는다. 안으로 경성(京城)에서 밖으로 관동(關東)까지 돌의 품질이 같으니 모두가 같은 산의 돌인 때문이다.
  • 작성자 맑은영혼 작성시간15.01.19 여기에서 '서산(西山)'에서 취했다 했는데 그곳(서산)을 찾으면 이른바 청(淸)에 관하여 어느정도 알수있지 않을까 합니다. 연행사들이 갔던 북경도 자연히 어디인지 알게 되겠죠....'안으로 경성(京城)에서 밖으로 관동(關東)까지 ' 같은 품질의 돌이라 하니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한 것이라는것을 알수 있읍니다.
  • 작성자 대부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1.24 윗 사진에서 아편전쟁은 1840년대에 일어난 전쟁인데 1860년 이라한것은 바로 이때 북경성이 함락됐다는 것을 잘못알고 주석을 단것같군요.그렇다면 윗 사진자료처럼 북경은 특히 원명원은 석재건축물이었다는증거가 확실합니다. 이곳이 연경이자 북경이라면 중국 서북방 신강성 그어디쯤에 있는 유물일까요? 아니면 어디에 위치해 있는 유물일까요? 그것만 알 수 있다면 연경은 쉽게 발견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 작성자 대부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1.25 윗 사진의 돌기둥에 화려한 용무늬 조각은 연행록에서 익히 본 기록과 일치하는군요. 갑자기 위에 화려한 궁전을 보고 "황성 옛터"란 노래가 생각나는 까닭은 왜 일까요? 이제 서적에서 가르키는 연경의 위치와 윗 사진자료에서 말하는 연경의 소재를 파악하기만 하면 더이상 연경을 찾아야할 수고가 덜어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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