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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 무 작성시간13.10.14 만약 성도에 있는 왕릉인 "영릉"이 왕건의 릉이라면, 당연히 이곳에 있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촉왕이 바로 "왕건"이며, 전촉은 성도를 무대로 활동했던 왕조였기 때문인데, 이것은 조선사를 왜곡시킨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자치통감의 당기에 기록된 말을 이중재 선생님이 처음 인용하신 것인데, <"중국근간야사이지엽야(中國根幹也四夷枝葉也)-중국사람들의 뿌리는 사이(四夷)의 가지와 잎에 해당한다" >고 하였는데 문제가 있어 보이는 구절입니다. 곧 <중국은 뿌리와 줄기이다. 사이는 가지와 잎이다>라는 뜻입니다. 위의 책은 이미 수년 전에 본 책들인데, 한 번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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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 무 작성시간13.10.16 재야에서 "조선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워낙 교류가 힘들고, 경제적인 이유와 시간등의 여러 제약 때문에 스스로, 홀로, 십년 이십년 오랜 세월을 계속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처음 입문할 때의 사관은 연구를 계속해도 지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벗어나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대륙조선>이란 큰 그림을 생각치 못하는 경우, 중앙아세아지방이나 서구의 동쪽 변방지대에서 발견되는 조선과 관계되는 것들을 대륙조선의 영향으로 생각치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주원장은 조선의 제후로서, 군주중의 군주라는 황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는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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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 무 작성시간13.10.16 근대조선(구분 상)의 건국자인 "이성계"를 여진계 타타르인, 또는 몽고계 고려인등등으로 생각하고, 평가절하하려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 분은 분명 조선인이며, 일시적으로 몽고나 여진등에 의지하여 살았다고 할 지라도 그 분의 혈통은 분명 조선인이며, 고려인이었습니다. 그 분이 세운 왕조가 500-600년을 이었다는 것 만도 그 분은 조선인이라는 증거이며, 그 분이 만약 조선의 혈통을 갖지 않았다면 "역성혁명"은 수없이 일어났을 것이며, 그 명분은 "조선인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을 것이나, 이러한 사건이 없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주원장은 고려인으로써, 고려의 장군으로써, 제후였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