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학 지도입니다(중국강단사학자들의 사용지도)
강도라면 고려시대의 강화도인데 양주부에 있습니다.
강도군
호북성 강릉부
개주. 충주
경기도와 동경 남경
경주와 원주
광주, 광산(광산 김씨의 고향?)
건주(낙양 위쪽에 위치한 건주여진?)
개주, 평주, 안주, 광주
장백산의 위치
심양, 개평중둔위의 위치
안동과 해주의 위치
장안성
요동성 관련자료(아직 미정 자료 수집중?)
장안성과 유리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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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맑은영혼 작성시간 15.09.05 <요사지리지에 ; 귀덕주(貴德州) 영원군(寧遠軍)은 본디 한나라의 양평현(襄平縣) 지역이다. 통할하는 현은 2개이다. 귀덕현(貴德縣)은 본디 한나라 양평현으로, 발해에서 숭산현이라고 하였다.> 라 하여 영원군은 귀덕주에 있고 귀덕주에 귀덕수가 흐르고 이 귀덕수는 ‘潞 ’<『로(潞)』는 『귀 덕 수(歸德水) 이름 로(潞)』 참조 (문무님의 글)> 로 현 감숙성 귀덕현을 흐르는 황하의 옛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潞’를 사전에서 찾으면 산서성에서 발원하는 강으로 나오고, 또 노안 [潞安]은 ; ‘창즈(Changzhi)’의 이전 명칭.으로 나옵니다. 창즈는 산서성 동남부의 지명으로 ....
潞州,下 ; 唐初為潞州,後改上黨郡,又仍為潞州 -
작성자맑은영혼 작성시간 15.09.05 潞州,下 ; 唐初為潞州,後改上黨郡,又仍為潞州。당(唐) 초기에 로주라 하였고 후에 상당군으로 고첬다 했습니다.
또 명사에 ; 瀋陽中衛元瀋陽路。洪武初廢。三十一年閏五月置衛。洪武二十四年建沈王府。永樂六年遷於山西潞州。東有東牟山。南有渾河 ; 심양중둔위는 원나라 심양로였다. 홍무24년(1391년) 심왕부를 건설했다. 영락6년(1408년에 산서의 로주로 옮겨서 설치했다. 동쪽에 동모산이 있다.
라 하니 현 만주 심양의 심양중둔위가 1408년에 산서 로주로 옮겨 설치했다는 말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요 .... -
작성자맑은영혼 작성시간 15.09.05 결론은 이렇습니다. 귀덕현(貴德縣), 귀덕주,영원군, 양평현, 귀덕수, 숭산현, 로(潞), 로주, 로안, 창츠, 상당군, 청주, 심양, 심수, 동모산(고구려..)등등.. 의 지명들은 서로 같은곳이거나 가까이에 붙어있는 지명입니다. 이러한 지명들은 현 감숙성 귀덕현으로 또는 현 만주로, 또는 반도의 청주 (청주시 상당구)등으로, 왜곡자들의 입맛에 따라 뿔뿔히 흩어졌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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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맑은영혼 작성시간 15.09.05 한명회(韓明澮, 1415년 ~ 1487년) 는 ; 조선시대 전기의 문신, 군인, 정치인이며 외척이다. 본관은 청주, 자(字)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압구(狎鷗)·사우당(四友堂)이며, 별칭은 칠삭동이,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의정부영의정을 역임했으며 1457년 상당군(上黨君)에 봉군되고 1461년 진봉하여 상당부원군이 되었다. 만년에는 권신이자 외척으로서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명나라 사신을 사사로이 접대한 일로 삭탈당하였다.<위키>
한명회는 본관이 청주이고 상당부원군으로 잘 알려저 있읍니다. 이른바 대륙사와 조선사는 이렇게 얽혀져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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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문 무 작성시간 15.09.06 고대지도 또는 현 대륙 아이들이 참고하는 지도, 이 모두는 일단 의심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중요한 몇몇 지명은 이동 또는 이식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고 보는데, 대부분의 지명은 원 사서속의 기록과 지도상의 위치가 전혀 다른 경우가 허다하며, 전혀 아닌 곳에 지명을 고착해 놓은 것들이 많습니다. 고지도를 신용한다면 반도조선을 신용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고지도는 참고는 할 수 있되, 이것을 가지고 옛 왕조들의 영토를 논하다 보면, 곧 반도조선왕조롤 만들게 됩니다. 이러한 결과로 인해 <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이 바로 오늘날의 역사통설이 되어버렸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