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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말 놀랬습니다.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놈이었군요.

작성자로터스|작성시간17.07.19|조회수3,499 목록 댓글 5

덕수궁이 없다는 새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조선사 연구회에서 하는걸

보았는데 정말 한반도는 우리민족이

살던곳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등박문/ 이토 히로부미의 본명을 알아냈습니다. 조선 이름은 림춘모, 아버지는 림세장.

 이웃추가

이등박문/ 이토 히로부미의 본명을 알아냈습니다. 조선 이름은 림춘모, 아버지는 림세장.

이놈이 조선인이면서 매국매족 매혼노였습니다.

<태극훈장을 두개나 단 림춘모>

1850년대 대륙에서 이땅으로 넘어와 왜족으로 변신했습니다. 1876년 초대 통감으로 이 땅 한반도를 통치하였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안중근의사의 총탄에 척살됩니다.

이자가 현재의 덕수궁을 지었고, 현판 현액을 대한문 덕수궁으로 썼습니다.
조선은 덕수궁이 없었고 남송때 현 중공 항주에 있었습니다.


이놈을 기리는 사당이 현 신라호텔 짓기전 박문사로 세웠습니다.

또 이놈은 정동 바위에 대한을 영원히 식민지배 통치 다스리겠다는 뜻을 새겨넣었습니다.     

「寶祚之隆與天壌無窮」 (보조지융여천양무궁) 
大勳位 候爵 伊藤博文 謹題 
(대훈위 후작 이등박문 근제) 
1905년 11월 彫之(새김)

천황폐하께 업드려 바치오니 영원히 무궁하옵소서.

이등박문의 아버지 임씨가 일본의 개노릇으로 출세하기 위해 일본과 이땅으로 와서는 자기 자식들도 매국매족 매혼노로 만들어 이땅을 천황폐하께 업드려 바치오니 영원히 다스려 달라는 뜻이다.

(소산선생 페북글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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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문 무 | 작성시간 17.07.19 놀라운 일이긴 합니다.
    다만 위에서 주장하는 본시의 왜(倭)가 아닌, 조선(朝鮮)인이었다는 주장에 대한 논거가 설득력과 증거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하는 거라고 봅니다.
    본시 왜는 조선에 속한 종족이었죠. 그러나 중앙조정에서 밀려나 변방의 울타리노릇을 했습니다.
    현재 서울에 있는 소위 조선왕조 왕궁은 모조품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왜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죠.
    정확한 건축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허수아비 조선왕조를 반도를 만들면서 함께 건축된 것이라고 봅니다.
    좋은 정보, 대단히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 답댓글 작성자비천 | 작성시간 17.07.31 본문에서 이토가 1841년생인데
    1850년에 일본으로 넘어오고 1876년 초대통감이 되었다는데
    을사늑약이 1905년이고 을사늑약 이후에 초대통감이 되는데 늑약하기 30년전에 통감부터 먼저 한다?
    1904년 화재로 불탄 덕수궁을 1904년부터 1906년까지 중건 했는데 1905년 12월에 통감이 된 이토가 만들었다?

    이런 감정섞인 소설류의 글이 오히려 사실을 왜곡한다고 생각됩니다.
  • 작성자Romantic | 작성시간 17.07.24 보다 많은 정보가 있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서 사람은 있는데 어디 사람이라는 것이 없잖아요. 호적등본 같은 거나 족보 같은 게 뒷받침 되면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고, 어렷을 적 친구들의 후손들이나 뭐 이런 객관적인 자료들이 더 나오면 대박일 것 같습니다.
  • 작성자비천 | 작성시간 17.07.31 이토 히로부미의 본명을 이글에서는 임춘모라고 하는데
    보통 <임이조(林利助)- 하야시 도스케 >라고 알려졌습니다.
    보통 조부가 조선계 하급통역관이었다고 알려졌고
    부친(<임십장林十蔵)-하야시 주조> 이 농민이었는데
    1854년 조슈 번의 하급 병사인 이토 나오에몬(伊藤直右衛門)의 양자가 되면서
    이토 성을 따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가 이토 히로부미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이라고 하네요.
    이토가 조선통감이 된 것은 본문에서는 1876년이라고 하는데
    아직 늑약도 안했는데 통감을 할수가 없죠.(이토-1841년생)
    통감은 30년후 을사늑약(1905년) 후인 1906년 3월 부임합니다.
  • 작성자비천 | 작성시간 17.07.31 또한 덕수궁이 대륙 항주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한반도의 덕수궁은 이토가 만든게 아니라
    성종때부터 있던 건물이고
    1904년 화재로 불타서 1904년부터 1906년 사이 중건했고
    경운궁이라 하던 것을 순종황제 즉위 후 아버지 고종의 장수를 기려 덕수궁으로 바꾸었죠.
    덕수궁 대한문은 1906년 수리하면서 대안문(大安門)을 은하수를 상징하는 한(漢)으로 고쳐서 바꾸라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대한문...큰 하늘 문)
    이토가 몰래 썻는지는 몰라고 당시 궁정대신 남정철이 썼다고 알려져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대한문 덕수궁이라고는 안하지요. 덕수궁 대한문이라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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