範<史>以東夷九種為嵎夷, 必有根據..
범<사>이동이구종위우이, 필유근거..
▶ 동이(東夷)의 구종(九種)은 우이(嵎夷)이라고 했으므로..
우이(嵎夷)의 실체를 보면 다음 아래와 같다..
堯時嵎夷為青域, 測景自當在朝鮮也..
요시우이위청역, 측경자당재조선야..
▶ 요나라(堯) 시대, 우이(嵎夷)는 청주(靑州) 지역이고,
조선(朝鮮)에 있을 때에는 스스로 측경(測景)을 했다는 것이다..
# 즉, 요나라(堯) 당시,
고조선(古朝鮮)은 청주(靑州) 지역의 우이(嵎夷)를 포함하여 지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蓋嵎夷, 羲和之所宅, 朝鮮, 箕子之所封, 不應在化外..
▶ 대개 우이(嵎夷)는 희화(羲和)의 소택(所宅)이며.. 조선(朝鮮)이요, 기자(箕子)가 봉하던 곳이라고 했다..
# 보다 상세한 기록을 찾아서 인용하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漢武所開樂浪·元菟二郡, 皆古嵎夷之地.. 在青州之域者, 嵎夷羲仲所宅, 朝鮮箕子所封不應在化外..
▶ 한나라(漢)의 무제(武帝)가 소개(所開)하는 낙랑(樂浪)·원토(元菟) 두 군은 모두 옛 우이(嵎夷)의 땅이다..
청주(青州)의 지역이고, 우이(嵎夷)·희중(羲仲)의 소택(所宅)이다..
조선(朝鮮)의 기자(箕子)는 그 곳에 봉해졌지만, 화외(化外)에 거두어지지 않았다..
{ # 化外 : 왕화(王化)가 미치지 못하는 외국(外國) }
※ 요점정리 ::
우이(嵎夷)는 동이(東夷)의 구종(九種)이라고 했으므로,
본질적으로 우리 민족은 태고부터 동이(東夷)의 뿌리에 굳건히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우이(嵎夷)는 낙랑(樂浪)·원토(元菟) 지역이라고 했고, 기자(箕子) 조선(朝鮮)의 영역이라고 했다..
통념상 현재 위치대로 찾는다면..
현 산동성(山東省)의 청주(靑州)와 내주(來州) 등지가 바로 기자(箕子) 조선(朝鮮)의 영역에 속하던 곳이다..
즉, 위 지도에 붉은색 사각형으로 표시된 곳 내주(來州) 옆에 청주(靑州)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우이(嵎夷) 지역이다..
{{ # 앞서 설명하기 전에 본인의 견해가 아닌 보통 강단사학계의 범주에 해당하는 재야사학계 측면으로서 보겠다.. }}
[後漢書]及杜氏[通典], 皆以東夷九種為嵎夷;
其地在漢樂浪玄菟郡界; 而[青州]首書"嵎夷既略", 則朝鮮·句麗諸國禹時實皆在青域..
[후한서]급두씨[통전], 개이동이구동위우이;
기지재한낙랑현토군계; 이[청주]수서"우이기략", 견조선·구려제국우시실개재청역..
▶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두우(杜佑)의 통전(通典)에 의하면,
모든 동이(東夷)의 구종(九種)은 우이(嵎夷)이다;
그 지역은 한나라(漢) 당시의 낙랑(樂浪)·현토(玄菟) 군등의 경계(안)에 있고;
청주(青州)는 수서(후한서)가 이르기를 "우이(嵎夷)가 이미 다스린 곳"이고,
보기에 조선(朝鮮)· 고구려(高句麗) 등 여러 나라가 우(禹) 임금시대에 실제 다 청주지역에 있었다..
# 그 청주(靑州) 지역은 통념상 현재 위치대로 찾아야 한다면,
현 산동성(山東省) 안에 위치하는 지역이었고..
태고부터 고조선(古朝鮮)의 영역에는 이미 구이(九夷) 등의 동이(東夷)가 살던 나라 자체였다는 것이다..
※ 따라서, 일본(日本)·왜(倭)의 조상이자 도래인은 원래 우리 민족에서 온 것같이,
실은 중화(中華)·지나(支那)의 도래인은 원래 우리 민족에서 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
蓋[禹貢]嵎夷之地.. 唐一行所謂"北戒山河, 抵恒山之右, 乃東循塞垣, 至濊貊·朝鮮, 以限戎狄者"是也..
개[우공]우이지지.. 당일행소위"북계산하, 저항산지우, 급동순새한, 지예맥·조선, 이한융적자"시야..
▶ 모두 우공(禹貢)이 이른 바대로 우이(嵎夷)의 땅이다..
당일행(唐一行)에 의하면, 소위 "북계(北戒)의 산과 강이고, 항산(恒山)의 서쪽(右 : 서쪽)에 다다르고,
급히 동쪽으로 새한(塞垣)에 돌며, 예맥(濊貊)·조선(朝鮮)까지 이르니, 이한하여 융적(戎狄)이다"이니 옳다..
※ 우이(嵎夷)는 구이(九夷)의 종족으로서 현 산동성(山東省) 뿐만 아니라..
현 산서성(山西省)의 항산(恒山) 서쪽까지 활동하는 주무대였기 때문에..
현 산서성(山西省)도 역시 예맥(濊貊)·조선(朝鮮)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음을 자연히 알 수 있다..
# 유물은 기록을 뒷받침해야 하는 것이지,
유물론설만으로도 주 정설로 취급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하고..
더불어 유물 유적 출토지가 어떤 나라에 속하여 있는가 입장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