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旅行 제35편]
ㅡ 프랑스 시골 축제 ㅡ
{78년도}ㅡ 댓글주시면 교정하겠습니다.
유럽축제(축제 본부 CIOFF초청) 동안 오래간만에 오징어 볶음과 쌀밥을 얻어 먹고 모두 기운들이 났다.
나이트클럽 쇼 축제무대 같은대서 피서객들을 상대로 60분 공연을 하였다.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이라 질은 좋았다. 돌아와 밤 2시에야 취침하였다.
이튿날 아침 9시 반에 떠나 그레노블Grenoble을 지나 오후 3시가 다되어 발랑스Valence에 도착했다.
르노Rhoe 강가의 알프스 바람이 불어오는 골짜기에 자리잡은 남불의 지방도시이다.
도중에 피크닉식 점심을 먹고 카페테리아에서 40분을 줄을 서서 겨우 저녁 한 그릇을 얻어먹고 저녁 9시부터 플라자의 야외무대에서 80분 공연을 하였다. 십오야 밝은 달이나 북두칠성 별자리나 서울과 같고 식물상도 북반구는 거의 같다.
다음날도 9시 반에 출발하여 로르강을 따라 북상하여 1천 161m의 고지대를 지나 생테티엔느Sant Etienne를 지나 6시간만에 인구 150명의 생테렌스라는 중부 프랑스의 벽촌에 도착했다.
도중에 남불의 농촌풍경은 목초지의 젖소들 하며 노랗게 익은 밀밭 속의 붉은 기와집들이 한폭의 목가적인 전원풍경이 있다.
그리고 이들 마을 사람들도 소박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마을입구에 들꽃으로 장식한 환영 아치를 세웠고 초등학교 교정에 가설무대를 설치하여 주변의 각처에서 모여든 1백여 명의 시골사람들을 상대로 공연하였다.
숙소는 초등학교 교실이었고 화장실도 재래식 이었다. 공동샤워장 뿐 참가자들이 불편했다.
불평하는 참가팀들도 있는 반면,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교실 야전침대에 잠을 청하며 1층은 남자숙소, 2층은 여성숙소가 있다고 전편에 기록한 바 있다.(이곳 시골축제는 비슷~)
아침에 일찍 짜온 젖소의 우유를 대접 받았다.
이튿날 점심 때 클레르몽에 도착하여 공원무대에서 1백여 명 관중을 상대로 공연하였는데 프랑스 여자와 결혼한 "김상태"라는 한국사람이 찾아와서 7년 만에 한국사람을 만난다고 반가워하였다.
한국에서 입양한 고아를 데리고 구경 온 프랑스인 양모도 있었다.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 마저 만날 수 없는 이곳에 한국인 입양아들만 있는 곳에서 특별공연도 한 바 있다.
유럽 여러 곳에서 이같은 입양 고아들을 만났다. 벨기에의 페르빌렌 씨의 말처럼 ~
"전쟁고아는 할 수 없겠지만 공장 고아는 좋지 않다. 자기나라 고아는 자기나라가 책임져야 한다"
에델바이스 페스티벌 뒤 1주일을 여기저기 팔려다니다가 22일 낮에 비시Vichy의 옆의 가나Cannat에 도착했다.
참가팀들 모두 지쳐서 공연할 의욕이 없어 보여 첫째 날과 둘째 날 행사참가가 힘들었으나 9일간의 페스티벌 기간 중 옛성터로의 피크닉과 기타 쉬는 날도 있어 다소 여독들이 회복되었다.
그러나 공동샤워장 밖에 없는 학교 기숙사 방에 남녀 합숙이라 편치는 않았다.
프랑스의 CIOFF 페스티벌은 가는 곳마다 숙소는 여름방학에 비어있는 고등학교 기숙사를 이용하였고 식사 기타 서비스는 그곳 가정부들이 맡아서 자원봉사 하고 있었다.
제6회 가나 페스티벌에는 영국, 한국, 이스라엘, 페루, 폴란드, 루마니아, 소련(몰다비), 등 8개 외국팀과 피네레와 오베른 두 팀이 프랑스 국내팀으로 참가하여 모두 열 팀 이었다.
9일간의 제작 총비용은 50만 프랑이나 입장료는 어른 25프랑, 아이는 10프랑인데 프랑스와 기타 다른 나라에서 자기 차를 몰고 온 피서객(관광객)들이 구경 오는 것이다. 78~21.6.5. ㅡ (연재~)
飛松 최창주 평론가 석좌교수.
전 세종문화회관 뮤지컬기획담당(실장)
전 한예종 교수 연희학과장
사진 설명
ㅡ가나 페스티벌 개회식 장면
ㅡ가나 페스티벌 퍼레이드(태극기: 최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