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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평양대극장 공연 방송을 보며

작성자탈꾼|작성시간26.06.06|조회수32 목록 댓글 0

ㅡ 오늘 평양공연 방송을 보면서 ㅡ
(서울예술단 외에)ㅡ 댓글주시면 교정하겠습니다.

2018년 6월 6일(수) 현충일 오전 TV방송에서 ㅡ 1차 남북고향방문단 및 예술단 상호교류 함에 있어 동시에 방문했다는 사회자와 함께 출연자들의 의견 교환을 하고 있었다.

1985년 서울예술단(국, 시립, KBS, 5단체 선발) 역사에서 거론한 바 있지만 ㅡ
우리는 1985년 9월 21일 새벽에 남산적십자사에 모여 38선으로 향해 출발하였다. 당시는 문제가 있을 경우 上, 下경의 극단적인 행위가 있을 것이라고 예견도 있었으나 ㅡ
그러나 우리 서울예술단 단원들은 이런 상황을 모르지만, 모두 긴장과 설레임되어 굳은 표정이었다. 전체 방문단은 고향방문단(50명)과 서울예술단(50명), 기자단(50명), 단장 1명, 총 151명이 동시에 38선을 통해 육로로 넘었다.

서울예술단원 외에 30세 정도의 하ㅊ화, 나ㅎ아, 입술재간꾼인 남ㅂ원, 백ㄴ봉, 김ㅈ구, 김ㅎ갑, 이ㄱ도, ㅇㅇㅇ. 김ㄷ건(사회) 등, 38선에서 버스를 타고 개성역에서 유럽식 기차를 갈아 타고 평양으로 가는 길에 사리원역을 지날 때에 봉산탈춤 춤꾼으로 봉산이 생각나서 혹시 <경암루>가 어디에 있지? 보고 또 보았다.

오늘 방송출연자들은 당시 평양대극장에서 열심히 공연을 한 과정을 설명하며, 박수가 없었다고 서운한 마음을 회상, 사진을 공개, 상상하면서 대담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보안문제로 공개를 못했지만 오늘 방송으로 필자도 용기를 내어 공개를 해본다.(사진참고: 하ㅊ화의 안내원, 필자의 안내원 등)

귀향 공연을 세종문화화관에서 했는데, 당시 대통령이 공연을 보고 너무 흡족하여 우리만 보고 있을 수 없으니 지방 큰 도시 정도를 순회하라고 지시를 받아, 순회공연 도중 ㅡ 필자는 출연과 공연관리로 지쳐 대구에서 공연하다가 쓰러져 응급차에 실려 경희의료원에 한달을 입원하여 완치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건강한 편이다.
후에 "85예평회" 를 조직하여 평생동지회로 만나고 있었지만, 김ㅎ갑, 김ㅈ구, 백ㄴ봉님은 소천하셨다.

당시 무대 파견자는 음향, 조명관계자 외 유경환무대감독 뿐이었다. 제작진 파견이 한계가 있어, 필자는 무대출연도 해야 하겠지만, 스태프가 없어 평양대극장에서 전쟁을 치루듯 무대준비도 함께 했던 기억이 난다. 따라서 고려호텔 방에서 잠을 자는데 ㅡ

1986년에도 재교환상호공연 교류 추진, 방문을 하려고 준비하였으나, 우리 서울예술단이 85년도에 너무 메시지 있는 좋은 공연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상호교류는 못하게 되었고, 그 후에 ~ 2003년 등 평양공연을 하고 싶으면, 북한에서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일방적으로 평양을 다녀온 팀이 있다고 했다지만. ㅡ
우리는 지금 한 민족이 두 민족이 되어 총뿌리를 겨누고 있으나, 이제 앞으로 남북교환상호방문 교류가 이루어 질 것이다.
정치는 적을 만들고 예술은 친구를 만들고, 앞으로는 화해무드로 가고 있으며, 핵이 없어지니까? 문화(文化)는 보이지 않는 핵폭탄이 될 것이다.

飛松 최창주 평론가 석좌교수
전 세종문화회관 뮤지컬기획담당(실장)
전 한예종 교수, 연희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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