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ld Mountain Thyme - Sarah Calderwood ♫ LYRICS
서쪽 하늘로 날아가는 기러기~ 모모수게
강물은 흘러 대양으로 드나 흔적은 남긴다
그 고통의 흔적은 새살이 돋으며 덮는다
세월은 흘러가며
험난했던 굽이치고 부서지고 다 잃을 거 같았던 쏘
그 자리엔 다시 길이 나고 생명들이 싹을 틔운다
더 억척스럽고 돈톡 하며 home을 이룬다
아메리카의 서부 개척사를 보면 대양을 건너온, 돌아갈 곳도 없는
이민자들 손에 믿음과 구원이라는 희망하나로 그 길고도 험한 서부를 개척했으리
이제 내 험하게 굽은 손과 내 알토란 같은 손孫들을 보며 삶을 귀추해 볼 나이에 든다
내 길게 실아온 여정旅程
어느새 머리도 희어졌고 기쁨도 슬픔도 또렸지가 않다
손주만 보면 올인하며 그저 좋고 허허 응응하며
바보웃음만 짓는 것이 나 할아비 모습이다
내 글에는 간혹 날개라는 글제로도
굴레라는 부여로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 글들이 많다
감옥이나 빠삐용 같은 내용으로 더 적극적으로 조명해보기도 한다
내가 돌이켜 보면 또 그런 고생을 할까 두렵다
젊을 때의 고생은 돈을 주고 사서도 한다지만
고생이 징그럽고 두렵다기보다는
그때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창피도 하다
40여 년이 지난 그때 나를 가까이서 보아 온 사촌들은
지금도 나를 만나면 "오빠야 삼촌아 고생 많이 했어" 한다
도미할 때의 상황이 하루아침에 바뀌어서
근 2년여를 지내면서
네 댓살 먹은 아이로 다시 태어난 거 같고
한국에 홀로 계신 어머님께 생활비를 보낼 여지도 없어진 데다가
응급상황까지 두어 번 겪으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한국에 도로 나가야 할 사람임을 현실감으로 알고는
그저 한 푼이고 두 푼이고 모아서 한국 나갈 때 갖고 나가려고 더럽게 아꼈다
이태리집 주방 옆 주부들이 일하다가 잠깐 쉴 수 있는 루블 문짝으로 칸 막은 쉼방에서
기거하면서
마침 이 이태리 가족도 이민 1세대였기 때문에
나를 거의 음식재료 값만 내고 있게 해 준 거다
조금만 더 참고 있으면 그 주부의 여동생이 IBM 컴퓨터 회사에서 은실을 다루는 기능공인데
전문적이고 페이도 좋다며
자기들 이태리인과 한국인의 손재주 skill이 좋다며
내가 개집이고 차고 문짝을 수리해 주는 걸 보고는 장인급 솜씨라고 극 칭찬했다
도움을 준 이태리 가족분들
내가 처음 도미할 때는 매형이 건축 설계사무소도 하고 아이스링크와 부틱크도 가지고 있어서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 영주권을 급 취득 시켜 도미했지만
그 사이 누나에게 큰 교통사고가 나서
작은 가게들은 다 처리했고 누나는 장기 입원 생활을 해야하니
나는 점점 그 집에서의 생활이 부담스런 존재가 되었고
영어는 지금 중학생 수준도 안되는데 홀로서기를 해야 하니
뉴욕 5th Ave. 호텔에서 야간 점검하는 잡도 가져보고
뉴욕 외곽지에서 주한 미군이었던 상사와 한국인 부인이 운영하는
낮부터 새벽 03까지 운영하는 투 데이 라운지에서 뒷정리와 청소일로
그리고 고급 양로원에서 안정 되게 일하기도 했다
마을마다 시와 하이스쿨에서 외국인들을 위해서 무료로 영어 공부를 시켜주는 랭귀지 스쿨에서
이태리 가족을 알게 되었으며
나에게 침식을 제공해 준 거고 앞으로의 미국 생활에선
같은 코네티컷 내의 이웃 도시이니 IBM 컴퓨터 회사만큼 좋은 곳이 없다며
나를 적극 미국에 있게 했다
한국에 홀로 계신 어머니께선 다른 자식이 아무도 없으니
내가 빨리 시민권을 받아서 어머니를 모셔와야 하는데(누나는 큰 사고로 발언권이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께서 영문과 출신이라고 하니 빨리 모셔오면 나에게 오히려 도움이 될 거라며
그 자매분들이 형식상 나와 결혼 한 거로 해서 어머니를 빨리 모셔오자고 했다
투 데이 라운지에서의 일은
주한 미군과 결혼하여 함께 들어와서 투데이 라운지라고 하는
새벽 3~4시까지 영업하는 클럽을 운영했는데
나는 영어가 서투르니까 낮에는 집안 도랑을 치우고 일찍 취침한 후에 새벽 3~4시면 기상하여 텅 빈 홀을 정비하고 청소하는 일이다
바닥 청소를 하다 보면 동전들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그걸 모아 카운터 위에 놓아두었더니
오너가 이 일은 네 일이니 이것도 네 것이라며 나를 무척 아껴주었다
난 내 그 배짱이 또 시키지도 않은 지하실의 깨진 빈병들을 모아둔 드럼통을 혼자 옮기다가 평소에도 안 좋은 허리가 삐끗해서 꼼짝 달싹을 못하게 되었다
(그곳서는 캔맥주는 없고 병맥주인데 먹고 난 건 카운터에 있는 홈통으로 버리면 밑에 지하실 드럼통에 떨어지면서 깨지게 되어있다)
오너 내외는 자기 가게에서 아팠고 보험에 가입 돼있으니 자기 집에서 맘 놓고 있으라고 했지만
뜨거운 온돌방만 생각나고
서울에 홀로 계신 어머님께서 고혈압으로 눈으로 코로 코피를 흘리셨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오자마자 미국 경제도 안 좋아져서 누나네 가게도 문을 닫아
귀국을 결심하게 되었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누나도 앞으로도 1년을 병상 생활 해야 한다지
애들은 이미 돌봐 줄 곳을 마련했는데 다가
어머니께서는 한국에서 혈압으로 코피도 쏟고 눈으로도 피를 흘리셨다니
미국 오신다고 해도 막막했다
한국은 내가 있던 직장이 좋은 곳이라서 아직도 많은 도움을 어머니께도 주고 있었지만
그러다가 집안에 쌓아둔 연탄이 넘어가면서 어머니의 허리를 덮치는 사고가 났다
불야불 한국에 선보라 간다고 해야 빨리 주미한국대사관에서 비자가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나오니
서류상 결혼만 해주고 미국 들어가서 함께 살던지 이혼하던지 해도 좋다는
갑부딸들도 중매가 들어오던 미국 미국 하던 시대였지만
6척이 훨 넘는 이태리집 아들들과 함께 / 나에겐 고생기가 돌던 때
내가 성공하면 얼마나 성공하겠다고
또 어머니께서 내가 미국 시민권자가 된 후에 더 늙으셔서 미국 오시면
우선 생활이 배로 힘든데 무엇이 행복할까 해졌다
당시에 최저 임금 시급으로는
남녀도 사랑만 하면 빨리 동거를 하는 거가 한 사람 몫의 방세와 한 사람의 자동차 할부와(자동차가 꼭 있어야 하는 타운들에서는)
생활비도 절감할 수 있어서 일찍이 동거하는 남녀 커플들이 많았다
내가 다시 귀국한다고 할 때
이태리 가족은 극구 말리면서
그동안 모은 현찰을 잘 가지고 가라고 내복에 호주머니를 하나 달아 주면서
또 만나자고 허그해주던 따뜻한 체온이 지금도 잊여지지가 않는다
결국
한국서 어머니 편안히 모시고 좋은 가정 꾸리는 것이
내 달란트 같았고
한 여자와 가정을 가져 애들 키우며 어머니 편히 모시고
부부가 한 이부자리에서 사는 것이 내가 가장 원하는 길 같았다
짧은 기간이지만도 미국서 살아보았기에
내 와이프 내 홈이 얼마나 귀한 보금지리인지를 절실하고 왔고
내 재주라곤 그거 하나만 일거 같았다
이젠 그 이태리 자매도 이태리에 사는 친정 오빠의(교회 신부) 고향으로 도로 돌아갔다니
진즉 한국을 방문하게 초청 못한 아쉬움만 남는다
세월은 지나고 나면 다 견뎌내고 고생한 것도 별것도 아닌냥 잊어지지만 흔적은 남는다
상처가 되든 약이 되든
자신에게도 사회에도 미안한 마음으로 남는다
내가 살던 이태리 가정집(그 집주인 남자가 목수여서 직접 지었음)
내가 근무했던 코네티컷 데리앙 컨벌레스센터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작약이피는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6
아~ 윤송님께서 부연 설명해 주신 말씀을 듣고 보니
이 음악 [♫ Wild Mountain Thyme - Sarah Calderwood ♫ LYRICS]을 선택하기를 잘한 거 같습니다
가끔 소개해 드렸던 이야기들인데
며칠 전에 뉴욕 맨해튼과 LA를 왔다가 갔다 하며 사는 사촌 여동생이
다녀갔는데(이 매제가 쥬엣인데 금융 재널리스트이어서 그때 저에게 뉴욕 5th Ave. 호텔 잡을 소개해줬습니다)
제가 여러가지로 그때의 미국 생활들이 떠올라서
두서없이 급히 적어 본겁니다
실력만 되면 짧았던 여러 미국 생활들을 단편으로도 적고 싶은데
그게 맘 같이 안됩니다
사건도 많았고 맨해튼의 거리도 주야로 겪었고
데리앙에서 일할 땐 눈이 많이 온 날 한 30여리를 걸어서 귀가한 적도 있습니다
여성들은 좋으면 상대방의 직업의 종류를 떠나서 좋아해 주는 것이 역시 여유로운 문화들이었습니다
남자는 어디 가나 자유로운 거 같아도 미안한 마음 또한 항상 갖는 가 봅니다
참 좋은 분이십니다
오늘은 늦게야 제일이 끝나서 이제야 뵈었습니다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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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작약이피는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7
윤송님~
주신 말씀을 또 보고 또 보고 있습니다. 명문(여기에 꼭 맞는 표현인지는 모릅니다만) 입니다
제가 이 글을 더 손 보아서 킵할 때는 윤송님의 이 명문 구절을 서두에 올려 놓아서
빛을 낼까 합니다
윤송님 같으신 분이
어서 오셔서 이 자리를 더욱 빛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꼭 제 청을 들어주시기를 간곡히 원하옵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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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원봉리 작성시간 26.06.07 참 좋은 젊음이 있었네요
대단 합니다
용기도 꿈도 님의 모습이 훤히 보이네요
님의 모습 지난글에서 보니 운동선수 같아보이던데요? -
답댓글 작성자작약이피는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7
지난 글인데
오늘은 더
위 윤송님을 꼭 다시 오시게 하고 싶어서
오기를 잘했습니다
원봉리님 항상 감사드리며 댓글 문을 안 잠그고는 있습니다만
또 언제 어떤 분들이 어떤 말로 사람 마음을 휘저을 까봐서 좀 그렇습니다
주시를 받는 저에게도 문제 있다고 채근해 봅니다
음정원만은 타 카페들처럼 그런 댓글로들 불화가 없는
카페 개원 당시의 이곳 철학과 항상 함께 하는
순수 우리들의 낭만을 위한 음악 카페로 영원 했으면 좋겠습니다
원봉리 님은 이곳 카페의 역사를 다 아시는 오래된 분이시니
더 그 열망이 남다르시는 보배로운 분이십니다
아굴라님등 께서도 포세이방에서 혼자만 방을 독점하시는 같아서
신경 쓰이시는 가 봅니다
님께 응원 부탁드려도 되겠지요?
항상 감사드리며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제가 짧은 미국 생활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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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넘버까지 제 훠스트 이름으로 바꾸어 달고 저에게 자동차 혜택을 준 금발입니다ㅋ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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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작약이피는곳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07 작약이피는곳
한 장만 더~
운동해서 그런지 날렵해서^^
너무 늦어 부모 몰래 들어가야 할 일이 있으면
2층 자기 방으로 넘어가서 현관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도 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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