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새기는 문장文章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길을 내는 손길이 있다
차갑고 단단한 대지 파고들며 거친 돌멩이 품어 안는 곳,
그곳에 나의 뿌리가 살고 있다
화려한 꽃잎 눈부실 때도, 초록 잎 무성히 바람에 춤출 때도
뿌리는 아래로, 더 깊은 아래로 온몸 낮추어 목마름 길어 올
렸다. 그 침묵의 깊이가 나무를 버티게 했다
뿌리가 밀어 올린 치열한 하루하루, 나무 중심에 고스란히
고여 한 줄기 둥근 선이 되었다. 기뻤던 그 봄날의 연한 살
과 눈물겹던 겨울의 단단한 테두리
보아라, 밑동에 새겨진 둥근 파문 들을. 그건 상처가 아니라
거센 풍파 이겨낸 훈장, 시간이 나무의 몸에 새긴 육필肉筆
뿌리 보이지 않게 넓어질 때, 나이테는 소리 없이 깊어지나니,
삶의 뿌리 흔들리는 오늘날에도 내 마음 중심에는 또 하나의
둥근 나이테가 굵어지고 있다네
전생을 떠다니는 바람이여, 나이테 부피 더해 갈 때, 뿌리도
더 단단해져 떠도는 자의 영혼 편히 쉬게 할 수 있는, 푸른
평안의 그늘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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