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or Stravinsky(1882-1971)
①. ‘스스로를 예술가와 음악가로서 자각하고 살아간 삶의 시작’
오늘 소개할 러시아의 작곡가는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1882-1971)입니다. 저는 스트라빈스키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의 나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곡가들은 일반적으로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데 비해, 스트라빈스키는 무려 88세까지 살았기 때문입니다. 언뜻 생각하기에도 스트라빈스키보다 150년 일찍 태어나 76세까지 살았던 하이든Franz Joseph Haydn(1732-1809) 이후에 가장 오래 산 작곡가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1882년 러시아의 로모노스프Lomonosov라는 곳에서 태어났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였습니다. 그래서 정작 러시아에서 지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고 하나, 러시아에서 보냈던 그의 어린 시절에서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어린 시절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그의 아버지인 표도르 스트라빈스키Fyodor Stravinsky(1843-1902)가 재능 있는 전문 성악가였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음악원을 졸업한지 3년 만에 마린스키 극장에서 데뷔를 하였고, 차이콥스키Pyotr Il'ich Tchaikovsky(1840-1893)나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
orsaskov(1844-1908)의 오페라 초연에서 비중 있는 배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아버지를 따라 처음으로 마린스키 극장에 발을 들여놓은 날, 극장 로비에서 잠깐 스쳐 지나간 대작곡가 차이콥스키의 모습에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뒤로도 그는 아버지가 준 극장 통행권을 최대한 활용하여 러시아 작곡가들의 오페라뿐만이 아니라,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니체티Gaetano Gonizetti(1797-1848)와 베르디Giuseppe Verdi(1813-1901)등의 작품들도 알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의 스트라빈스키에게 마린스키 극장에서 오페라를 관람하는 일은 곧 일상이 되었으며,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심이 가는 작품이 있으면 아버지의 서가에서 악보를 찾아 혼자서 더 깊이 연구해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②. 림스키코르사코프를 사사하다
일반적인 천재들과는 달리, 스트라빈스키는 어릴 때부터 재능이 뚜렷하게 들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음악을 좋아하기는 했으나 뛰어나게 잘한다고 할 수는 없었지요.그는 나중에 자신이 이론적 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여 ‘나는 음표 하나도 제대로 기입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한마디로 나는 무지無知속에서 영글어간 셈이다.’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쩌면 조금 늦은 나이일지도 모르는) 9살때부터 정식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를 가르쳤던 두 여선생님은 시주視奏(처음 본 악보를 그 자리에서 연주하는 것)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적극 권장한 반면, 즉흥 연주는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대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다.’ 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피아노 연주에 탁월한 실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스트라빈스키의 어린 시절에는 특별히 피아노와 관련 된 기록이 없는 것을 보니, 피아노를 눈에 띄게 잘 쳤던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스트라빈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1901무렵부터, 작곡 개인 교습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법학 대학 동기인 블라디미르의 소개로 러시아 음악계의 원로인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Andreevich Rim´skii Kor´sakov(1844-1908) 를 만나게 됩니다.(블라디미르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아들이라고 함) 스트라빈스키는 그동안 자신이 작곡한 서툰 소품을 모아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보여주며 내심 칭찬을 듣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하나, 별로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형식적으로는 서툴기 그지없지만) 스트라빈스키의 독창성만은 높이 평가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얼마 후 그를 제자로 받아드립니다. 여기서, 바로 얼마 전에 아버지를 잃은 스트라빈스키에게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곧 아버지를 대신할 존재가 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스트라빈스키가 절실히 필요로 하던 형식적인 부분을 너무 틀에만 얽매이지 말라는 따뜻한 충고와 함께 가르쳐 주었고, ‘형식과 오케스트레이션을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독립체로 간주해야 한다’며 그에게 첫 번째 과제곡으로 <교향곡 E플렛 장조>를 내주었습니다.
이 교향곡을 포함하여, 그 당시에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곡들은 다른 작곡가들을 많이 모방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처음보는 것이라도 짧은 시간안에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은 앞으로 들어날 그의 천재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③. Igor Stravinsky, <The Firebird>
지금부터는 스트라빈스키의 대표작이자 20세기 발레음악의 걸작 중 하나인 <불새>라는 작품을 알아보겠습니다.
사실, ‘러시아 발레단’(이하 발레 뤼스) 창립자인 댜길레프Sergei Pavlovich Dyagilev(1872~1929)가 처음부터 <불새> 주제를 가지고 스트라빈스키를 찾았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 댜길레프가 일순위로 생각했던 작곡가는 아나톨리 랴도프Anatoly Konstantinovich Lyado(1855~1914)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곡가가 작곡하는데 애를 먹자, 댜길레프는 라도프의 후보격인 니콜라이 체레프닌Nikolai Nikolaevich Cherepnin(1873~1945)에게 <불새>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체레프닌 또한, 댜길레프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프로젝트에서 하차하고 말았습니다.
발레 뤼스의 다음 시즌 오프닝 공연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댜길레프는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던 스트라빈스키를 찾아가게 됩니다. 당시 스트라빈스키는 작가였던 친구의 강력한 권유로 <나이팅게일>을 원작으로 한 짧은 오페라를 작곡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댜길레프의 제안이 더 매력적이었던지라 스트라빈스키는 <나이팅게일>은 잠시 접어두고, <불새> 작업에 들어가게 됩니다.
<불새>의 시나리오는 러시아 전통 문화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요소만을 골라 융합한 것이라고 합니다. 마법의 불꽃으로 온몸이 뒤덮인 불새가 불로불사의 마왕 카셰이에게 붙잡힌 왕자와 열세 명의 공주를 구출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동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괴물과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두편에 등장한 캐릭터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상징하는 발레의 마지막 장면은 스트라빈스키의 아이디어로 추가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불새는 ‘러시아의 여러 민속 신화가 한데 뒤섞여 혼재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스트라빈스키는 작곡을 하는데 있어서 기존 러시아 음악을 우선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모방이나 차용을 넘어서 각각의 음악 언어를 충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다음에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저는 불새 공연을 영상으로 보았는데, 솔직히 영상만 봐서는 스토리를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굉장히 신비로우면서도 자연적인 느낌을 주어 편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구성이지만, 억지로 꾸몄다기보다는 오히려 깨끗하게 정리된 느낌을 주기 때문에, 현대음악이라도 큰 거부감 없이 들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은 스트라빈스키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 이지만, 모차르트나 베토벤만큼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작곡가는 아닙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스트라빈스키는 조금 생소한 작곡가라, 그의 삶을 전체적으로 이야기해 드리기가 버거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방송에서는 그의 어린 시절과, 작곡가로 막 활동을 시작하던 20대 중 후반까지의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하였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스트라빈스키 삶의 후반부도 이야기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musictomusic 카페 회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