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클래식 음악이 누구를 위해 작곡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고상한 신사숙녀나 교양인을 위해 작곡된 것 같나요? 아니면 양식 레스토랑에서 고급 스테이크를 먹으며 듣는 부자들을 위한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클래식 음악이 고상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어울려서 듣기가 거북했던 분들을 위해 오늘은 노동자의 음악, 대중들의 음악을 만들었던 작곡가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반항아 ‘루트비히 판 베토벤’입니다.
베토벤 하면 항상 따라오는 수식어가 반항아인데요, 저는 베토벤이 무엇에 그토록 반항적이었는가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베토벤이 반항한 것은 다름 아닌 사회적인 신분제도였습니다. 복종의 예의가 중시된 봉건적 계급사회에서 가난한 집에 아들로 태어났지만 그 당시 사회적 지배계층인 귀족들에게 전혀 위축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길거리에서 수많은 신하들을 거느린 황제를 만나면 모자를 짓누르고 그 행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팔자걸음으로 거들먹거리며 걸어갔다는 일화는 현재 그 진위가 의심되고 있지만, 그가 당시의 지배계층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 당시 음악가들이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귀족이나 황제의 지원을 받고 궁정에서 일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귀족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써야 했고 그들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베토벤은 자신의 후원자인 리히노프스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페하, 페하의 지위는 태어날 대부터 주어진 것이지만 지금 저의 위치는 피나는 노력으로 얻은 것입니다. 제후는 수천 명, 수만 명도 있을 수 있지만 베토벤은 세상에서 저 하나뿐입니다.”
그렇다면 베토벤이 대중들을 위한 곡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귀족들에게 반감을 가진 탓도 있겠지만, 베토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770년에 태어나 1827년에 죽은 베토벤은 수백 년의 봉건체제가 무너지고 민주적 혁명이 막 시작된 격동적인 시대를 살았습니다. 절대왕정 및 귀족과 성직자의 특권 지배에 대한 시민계층의 반발에서 비롯된 프랑스 혁명을 통해 베토벤은 당시 사회적인 한계에 끊임없이 부딪쳤던 대중들의 슬픔, 고뇌, 분노, 갈등, 긴장, 그리고 웃음과 기쁨을 온 몸과 마음으로 느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삶을 뛰어넘은 곳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죽기 사흘 전 그는 마지막 메모를 남겼습니다. “박수를 쳐라, 친구들이여, 연주는 끝났다.” 반항아로서 사회적인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대중들을 위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베토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