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
그 옛날, 새가 날아서도 넘기 힘들었다는 한양과 영남의 선비들을 이어주던 과거길.
새재. 조령.
지금부터 가지 않았다고 상상하고 싶습니다. 구비구비 울울창창한 숲속으로 구비구비 고갯길이 펼쳐지는 옛길.
과거길의 선비들이 학문의 이상을 펼치러 한양으로 떠납니다.
가는 길은 세 갈래.
그래봤자 하루나 이틀 상간이지만,
추풍령은 낙엽처럼 떨어진다니 피해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진다니 피해가고
그렇구나, 글월 문 경서 경, 문경새재로 가야겠구나.
5월 16일 문경새재, 조령산.
가는 곳마다 사랑에 빠지겠다 마음 다잡는 것은 아니지만,
어이하여 가는 곳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산은 이토록 멋진 자료를 뽑아놓고 기다리는지.
아, 산은 정말 위대했습니다. 먼바다의 출렁임같은 먼산들의 등뼈가
물결이 되어 밀려오는 것 같은 산들의 파노라마는 어지럽습니다.
아름다운 위엄을 잃지않는 바위산이 사람의 발길을 쉬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저 준봉의 능선을 두고
더 신기한 것은 백두대간의 줄기를 가려내는 그 눈놀음.
하늘 한 번 바라보느라 고개 한 번 들어보면
끝도 없을 것 같은 능선의 구불거림.아, 어이하여 다 같은 산줄기를 보고도
대간꾼을 거느리게 하는 저 찬란함은 무엇이런가.
눈맛이 시원한 백두대간 깊고높은 신의 영역으로 우리는 드디어...오르는 것이다.
"돌이님~ "
특유의 미소님 씩씩하고 활달한 목소리가 남산돌이님을 여전히 그 톤으로 부릅니다.
늘 함께 사는 둘을 꼭 부러 앉혀서 이 영광스런 풍경앞에 인쇄를 하라는 뜻이 사실은 고마웠습니다.
이왕 온 걸음, 한 곳이라도 더 봐야 직성이 풀리고
이왕 느낄 거, 온갖 감탄으로 소리 내어야 마음이 자연으로 가 닿는다는 걸 아는 사람,
우리들의 스치는 발걸음에 그냥 소외받는 안타까운 작은 꽃 하나 있을까봐
오늘도 카메라는 손 안에서 분주합니다.
그냥 보고 스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꼼꼼하게 눈에 넣을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늘 후미에서 무엇을 하는지, 제아무리 늦어도 못보던 보라색 꽃하나가 발길을 끌면
그것 보고 외우기 공부하느라 늦을 때도 있었음을 이제야 밝힙니다.
마음을 알기 위해선 늘 듣는 말이라도 자꾸 써먹어야 귀에 못이 박히고
귀에 못이 박히니 드디어 그 사람의 노랫말이 이 뜻이었구나 알게되는 것이 세상이치.
미소님 그 흔하던 감탄사, 이제보니 세뇌교육이었습니다.
작은 몸이 바지런하다는 걸 날마다 겪는 저의 익숙한 눈에
미소님의 쾌활한 시냇물같은 웃음소리가 없다면 후미에 서는 후미그룹은 무슨 맛으로 산행을 할까요?
무릇 산에선 저렇게 산을 닮아버린 넓은 품의 사람, 그런 사람 있어야 장관을 봐도 맛이 더 하답니다.
우리는 그래서 후미에서 더 행복합니다. 다 미소언니 덕분이라고 이제야 글로서 고백합니다.
친구는 어렵게 산행에 나섰습니다.
지난 구병산 이후 처음 나섰으니 그동안 묵혔던 몸이 산맛을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연두색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소녀같은 마음이 연둣빛이 지천에 있어도 저리 고개를 숙이고 마는 것은,
산행에 익숙한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과 긴 휴식이 주는 부담감.
결국 중간그룹에서 서둘러 걸었으며, 즐기며 가는 것을 배우기보다
처지지 않기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익혔기 때문입니다.
5월의 새순이 연둣빛으로 어룽어룽 물들었는데 말입니다.
서둘렀던 발걸음은 결국 모든 하중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듯 가슴으로 치고 왔을 겁니다.
거친 숨소리와 절망같은 낭패감이 친구의 얼굴위로 포개어질 때
무엇을 말하고 달래는 것도 서툴러 보였습니다.
저 또한 산에서의 지식이 얕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딘지 모를, 무언지 모를 안도감이
체온처럼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솔바우님의 묵묵한 동행.
단순 간결한 말씀이 친구에게도 약으로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저대로 참된 말은
여러 말의 변주가 아님을 알 것 같았습니다. 참말은 굽이돌지 않고 가슴에 바로 꽂힐 수 있으면서도
상처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쓴 것은 몸의 피를 돌게 하는 것처럼 오랜만의 첫산행이 쓴맛을 던지는 교훈처럼 읽히길 바랍니다.
즐기면서, 느긋하게, 익숙한 것들보다 낯선 것들과 교류해가며, 한걸음 한걸음 걷는 재미.
그것도 신들의 영역인 산에서 더욱...알겠지, 친구야?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제가 참으로 좋아하는 말이자 여러번 써먹었던 말입니다.
산에선 지식이 곧 경험입니다, 그 어느 것보다 더욱.
알량한 책갈피의 허울이 산에선 통하지 않으니 얼마나 매력적인지 모르겠습니다.
산사람에게선 향수보다 근사한 바람의 냄새가 있습니다.
헬스장에서 흘리는 땀보다 가치로운 땀이 옷을 적시고 얼굴을 타 흘러도 구슬처럼 빛납니다.
세련된 달변이 다양하게 메아리치는 것도 아니면서
백두대간 능선을 읽는 웅숭깊은 목소리로 지금 우리에게 백두대간
이화령에서 조령산으로, 마패봉에서 부봉으로,
끊으면서 붓질하는 인상파 화가들보다
한 획에 달마대사의 외피를 다 그려넣었던 달마상의 붓질처럼 산의 능선이 이어가는 것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달마상은 한 획으로 그어서 대가의 붓놀림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산 백두대간은 신의 작품 중에서도 획을 그은 신의 작품 같습니다.
우리 산우회의 마스코트로 성장해가는 최창호님은 후미에서 다양한 누님들에게 둘러싸여
재롱을 맘껏 발산합니다.
스타일에 어울리는 포토존에서 괜히 한 번 서 있어도 알아서 찍어 드립니다.
얼굴되면 키가 안되거나, 키가 되면 얼굴이 안되거나,
세상은 대충 그렇게 조합이 이루어져 왔는 것 같은데...
욕심껏 다 누리는 자에게서 산의 향수인 바람냄새마저 짙어진다면
누님들 사이에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지요, 네?
드디어 이런 장면, 아, 만나고 말았네.
전통적인 지리의 눈으로 볼 때
산의 정상을 신의 영역이라 이름지었고
그 산의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능선을
신들이 오가는 하늘길이라 이름하였다는데,
이 장면을 두고 무엇을 더 말하리.
저 하늘이 열린 흔적과 그 하늘길의 교감이 빚어낸
이토록 선명한 자국을 두고...
우리는 서서히 바위를 보면 목울대가 묵직해오는,
이제는 죽어 역사가 된 자의 어떤 삶을 상념할 것입니다.
5월이 오면 광주를 부르던 오랜 짓눌림이
이제는 봉하마을 부엉이바위 아래
깊고 쓰린 눈물의 한 흩뿌리려 달려갈 것입니다.
노래도 잘 부르지 못했고 말도 잘 하지 못했던
그러나 인간적이었던 그 사람의 1년 전 어느 하루를
목울대가 쉬어도 좋을 하루로 삼고 싶은 건 저만의 계획만이 아니겠지요.
이런 장면 보는데 이상하게 옛시절 숨어서 불러야했던
민중가요 한 소절 떠올리는 겁니다.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나 이미 떠났다고
한없는 죽음의 시절 꿈도 없이 누웠다가
나 이미 큰 강되어 떠났다고 대답하라...>
여기
대통령이면서 시민이고자 했고
정치인이면서 정의롭고자 했으며
권력을 잡고도 힘없는자 편에서
현자였으나 바보로 살아
마침내 삶과 죽음까지 하나가 되도록
온몸으로 그것을 밀고갔던
한 사람이 있으니
그를 미워하면서 사랑했던 우리는
이제 그를 보내며 영원히 우리 마음에
그를 남긴다.
-공지영-
-뿌리-
삶이란 때때로
눈물보다 거룩한 무심함으로
설명보다 심오한 질문으로
나에게 인생이 무어냐 물어오며 길을 안내한다.
단순한 바위와
노모처럼 기울어진 소나무란다.
이제 제발 인생이 무어냐
이런 질문만은 삼가다오.
이 날은 누구에게라도 다른 약속 또한 중요한 하고많은 날이었을 겁니다.
저에게도 한우산 철쭉제에 가야 할 수많은 이유가 있었던 하루였습니다.
의령문인들의 시화전시가 있었고, 저는 마땅히 몸을 굽혀 인사해야 할 신입의 몸이었습니다.
이후의 제 행로를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그 고민의 여과를 어떤 배짱으로 걸러
산행을 하고 말았는지...부끄러운 시의 행방이 궁금하였지만
산을 가는 것이 또다른 글의 세계로 인도하는 마음의 안내자가 되었습니다.
그것 뿐입니다.
내년 5월엔 이 날이 제발 겹치지 않기만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산을 가며 가장 많이 한 고민이었습니다.
자매의 얼굴은 참 곱습니다.
언니는 말없이 언니답게 동생을 바라보고
동생은 언니에게 익숙한 재롱을 펼쳐야 기분 더 좋아집니다.
언니가 오랜만에 산을 타느라 긴장이 되었음을,
오래된 산행에 단련된 몸인데도 동생은 그런 언니의 보행에
마음을 맞춥니다.
백두대간 산행이 목표였음에도 험난한 바위산에 겁먹은 언니를 위해
동생은 마음그릇을 빨리 비워 B코스를 선택하려 했습니다.
그 마음의 헤아림을 알리없는 저는 산에 미친 지 얼마 되었다고
B코스 결사반대 궐기를 하듯, 약한 모습 보이지 말라 타이르기조차 하였습니다.
결국 전원 A코스로 가는데
역시 호락호락한 대간이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데,
언니의 무릎이 신호를 해 왔습니다.
절름거리는 걸음이 일전에 제가 겪었던 그런 동작이었음을 잘 알겠는데
하산길은 아직이고, 눈을 사로잡는 능선의 내달림도 지루하지 않게 끝없는데,
이럴 땐 어떡할까요?
그저 언니에게 위로의 눈웃음 함빡 터뜨리며
기대어 넌지시 응원가나 불러줄 밖에요...언니, 한동안 무릎걸음 계단 오르내릴 때마다 힘겨워도
지나고 나면 무릎보다 더 오래남을 한 장의 추억을 위해,
미성이 숨은 마음 잘 생각해 가며 활짝 웃으셔요.
지금 사진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한편의 마음시를 권장합니다.
부는 바람의 소리를 감상하기도 하시고
초록의 협곡 저 아래 기웃거리는 마을의 사연도 맡겨 보렵니다.
자꾸만 쓰다보면 아직도 제 마음이 떨고 있음을 들킬까 조바심 내가며
우리나라 70%를 차지한다는 산의 예술세계,
산의 평정심, 산의 우직함, 산의 배려심...
그런 것 다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어 보시길 권장합니다.
길이 어디 곧게 편다고 아름다운가요?
국토를 어디 초호화로 뒤덮어야 사람답게 사는 건가요?
운하를 파는 길은 무엇을 걸고 역사에 내놓는 걸까요?
길의 포장은 걷는 맛을 살리던가요?
두서없는 질문을 마구마구 던지고 싶은 미완성의 완벽함.
땅에서 책상에서 빌딩에서
와이셔츠 깃으로는, 과시성 양심으로는
도저히 끝끝내 알지 못할 국토의 비밀이
이 숲속에 다 들었습니다. 부디 산을 다녀본 자가 대통령이 되는
그런 세상은 올 수 없는 걸까요?
-사랑-
너에게 묻는다
우리의 사랑이 아직도
화석이 되고도 아직도인지.
다정하게 팔짱을 껴도 당연한 권리같은 오래된 지기.
후미의 행복한 산행은 느긋함의 여유에
애교같은 웃음의 보따리를 간직한 사람들의 행위에서 더 맛이 납니다.
친구는 제게 사진 아래 무언가 쓸 거리를 제공하는 애교를 던져 주었고
회장님은 늘 하던대로 묵묵히 소리없이.. 그러나 은근히.. 즐길 따름입니다.
저는 또 시키는 대로 이렇게 끄적거릴 따름이고요...대신 속내를 간파해가며..ㅎㅎ
약한 체력으로 7시간의 여정을 산에서 보냈습니다. 잘 보냈습니다.
흙길 위에서 미처 짓밟히지 못한 낙엽의 수난도 바라보았고
아직도 진달래가 만개하는 초봄의 현장을 늦봄에 만끽하는 계절의 혼돈도 경험하였습니다.
한 가닥 로프에 불신의 육체를 기대다 팔꿈치가 찍히기도 하였고
손가락 끝이 쓰릴만큼 로프에 지나치게 의지해 손끝도 저려왔습니다.
바위와 바위를 건너 뛰지 못해 좀더 강하지 못한 체육기질에 자존심도 상했고
급한 오르막길과 급한 내리막길이 직벽의 바위처럼 공존했던 것도 가까스로 겪어 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가파름 어떻게 견뎌냈나 모를만큼 대견한 산행이었습니다.
향희랑 미광이 언니랑 힘든 여정 끝까지 버텨내어 더 남달랐을 산이 될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그 모든 험난함에도 이것이야말로 이름값을 하는 산임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최대의 수확을 던진 산이 되었습니다.
첫사랑같은 북한산이 마지막 사랑의 조령산을 능가하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정말 황홀한 산행이었습니다. 틀리기 쉬운 보기를 던지는 능글맞은 문제보다
앗싸리 어려워서 더 쥐어짜며 고심하다 마침내 성취감을 맛보게 하는 고수들의 수학문제처럼,
백두대간 이화령-조령구간의 우뚝우뚝한 산맛은
최고의 점수를 논하지 않아도 성취감으로 희열이 되는 산.
그 바위, 그 소나무, 더없이 가까이 왔던 하늘의 숨결이던 그 바람의 맛.
잊지못하게 하는 지나간 산행처럼 잊지 못하게 하는 당연한 또 하나의 산이
크게, 그것도 아주 크게 가슴에 남겨질 것입니다.
아, 가지 못한 사람에게 미안해지는 더없이 거만해지는 이 마음도
어찌보면 당연해지는 마음의 순서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아주 거만하게 산행을 음미합니다.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