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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科文)을 팔아 생계를 삼았던 거벽(巨擘) ‘유광억전(柳光億傳)’

작성자수돌이(최찬집)|작성시간26.06.10|조회수2 목록 댓글 0

 

 

<과문(科文)을 팔아 생계를 삼았던 거벽(巨擘) ‘유광억전(柳光億傳)’> 고영화(高永和)

 

한문 단편 소설 <유광억전(柳光億傳)>은 조선후기 진보적인 문인 문무자(文無子) 이옥(李鈺 1760~1815)의 작품으로, 과거시험의 부정과 타락한 사회상을 비판한 글이다. 작가의 별호인 외사씨(外史氏)와 매화외사(梅花外史)를 등장시켜 과거에 부정행위가 만연한 당시 세태와 유광억에 대한 논평을 덧붙이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옛날의 한문 문체 ‘전(傳)’은 오늘날의 소설과 비슷한 문학 양식이긴 하나 엄밀히 따지면 ‘소설 또는 수필’이라고 단정하여 말하기가 애매하다. 전(傳)은 기록할 만한 사람을 가려 그 사람의 특징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표적인 일화 몇 가지만을 추려서 가공의 문학 양식으로써 기록한 짤막한 글이기 때문이다. 이 <유광억전>은 악부체의 대가 담정(潭庭) 김려(金鑢 1766~1822)가 편찬한 『담정총서(藫庭叢書)』 권22 「매화외사(梅花外史)」에 실려 전한다.

 

◉ 한편 우리나라 과거시험은 고려 광종 때 처음 시작되었다. 실력 중심의 관리임용제도였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제도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왕조시대 출세를 위한 최상의 방법이 과거이다 보니, 과거 급제를 위한 온갖 부정도 후대로 내려올수록 점차 부정행위가 확대되어 갈 수밖에 없었다. <성종실록>과 <지봉유설>에 따르면 과거시험장에, 예상 답안지를 갖고 가는 행위, 시험지 바꿔치기, 채점자 매수, 시험장 밖에서 작성한 답지 들여보내기 등 기상천외한 부정행위들이 등장하였다. <성호사설>, 박제가의 <북학의>, 한양의 풍물을 노래한 <한양가> 등에 따르면 과거시험장은 난장판이었다. 가장 심각하고 충격적인 존재는 거벽(巨擘)이다. 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의 답안지 내용을 전문적으로 대신 지어 주던 사람, 일종의 대리시험 전문가다. 그런데 가장 심각하고 충격적인 존재는 거벽(巨擘)이다. 조선시대에, 과거시험의 답안지 내용을 전문적으로 대신 지어 주던 사람, 일종의 대리시험 전문가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서울의 고봉환, 송도의 이환룡, 호남의 이행휘, 호서의 노긍, 그리고 영남의 대표적인 거벽 유광억이 있었다. 그는 뛰어난 글재주를 지녔지만 부정행위 말고는 달리 그 재주를 발휘할 곳이 없었던 불행한 문인이었다.

 

◉ 이번 주제 <유광억전(柳光億傳)>은 유광억이라는 인물을 통해 과거시험지를 사고파는 행위가 만연한 사회의 타락상을 비판하고 있다. 글재주를 팔며 살았던 주인공 거벽(巨擘) 유광억(柳光億)은 영남의 합천 사람이다.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주인공이 남의 과거시험 답안을 대리로 작성해 살아가는 처지를 드러내면서도 이 세상에 팔지 못할 것이 없는 타락한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작가는 논평을 통해 가난해도 글재주를 통해 양심을 판 유광억이 죽어 마땅하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한편 맹자의 진심장구(盡心章句)에 '무치지치 무치의(無恥之恥 無恥矣)'란 말이 나오는데 '부끄러움이 없음을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이 작품에선 염치(廉恥)의 도(道)가 사라진 사회현상의 극단을 보여 준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 중에 하나가 바로 염치다. 그리고 동양철학의 핵심인 사단(四端) 중에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있다. 즉 ‘의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을 이른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염치 없는 인간이 난무할수록 인간 세상은 야만의 세상으로 변할 것이다.

 

◉ 「유광억전(柳光億傳)」의 특징을 살펴보면, 내용 문맥상, 본디의 형체(形體)나 체재(體裁)가 바뀌는 변체형식(變體形式)을 취하고 있다. 주인공의 내력을 전(傳)의 서두에 기록하는 것으로부터 작품이 시작되지 않는다. 이익(利)을 경계하는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는 “외사씨왈” 이하의 논평 다음에 유광억의 행적이 기술되고 있다. 게다가 유광억의 행적에 대한 비판을 되풀이하고 있다. 유광억의 죽음이 마땅한 것이라는 “군자왈” 아래에 당대의 논평을 소개하고, 이어 “매화외사왈” 다음에 작가 자신의 평결(評結)을 싣고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유광억을 비판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법에는 뇌물을 준 자나 받은 자나 같은 죄를 받는다.”고 하여, 글을 파는 행위를 하도록 만든 사회에도 비판을 가하고 있다.

 

● 다음 이옥(李鈺 1760~1815)의 <유광억전(柳光億傳)>은 도입부, 전개부, 논평부 3단계로 구성되어 있는 한문 단편 전(傳)이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겠다.

[도입] 세상이 이익만을 숭상하여 사고팔지 못하는 것이 없는 세태가 되었다. 그러나 ‘군자는 이익(利)을 말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이익을 위하여 죽기까지 한다’ 장사치들은 각기 자신들에게 부족한 물품을 남에게 구하여 이익을 취하는데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다’는 장사꾼의 극성을, 외사(外史)의 말이라며 자신의 평결을 덧붙인다.

[전개] 일찍이 주인공 유광억이 영남 향시에 급제하여 서울로 시험을 치르러 올라가다가 어느 부잣집으로 인도된다. 그는 부잣집 주인의 아들을 위해 과거시험의 답안을 대신 작성해 준다. 이후 주인 아들은 진사가 되고 그는 후한 대가를 받는다.

이후로 신분이 낮고 가난한 유광억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과거시험 답안을 대리로 작성해 이익을 취하였고 그는 널리 알려진 거벽(巨擘)이 된다. 그러던 중 경상도에서 감사와 경시관이 유광억의 글을 찾아내는 내기를 하는데, 경시관이 과장에서 뽑은 1등, 2등, 3등의 시험 답안에는 유광억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경시관이 몰래 알아보니, 시험 답안들은 모두 유광억이 돈을 받은 액수에 따라 차등을 두고 지어 준 것들이었다. 경시관은 감사와 내기를 한 터에, 감사가 자신의 안목을 믿지 않을까 염려하여 증거를 얻기 위해 광억을 잡아 오게 한다. 광억은 지레 겁을 먹고 잡혀가면 죽음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술을 마신 뒤 강물에 빠져 죽는다. 사람들은 광억의 죽음을 애석해하였고 군자는 그가 죽어 마땅하다고 한다.

[논평] 작가의 별호인 매화외사와 외사씨를 등장시켜 저자의 생각을 대변하고 유광억의 행위와 세태에 대해 논평한다.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재능을 팔았던 유광억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더불어 과거 답안 매매가 만연한 세태를 비판하였고,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폭로한다. 아무리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세상일지라도 마음만은 팔아서는 안된다며, 주는 것이나 받는 것 모두가 죄다면서 끝맺었다.

<유광억전(柳光億傳) 원문> 문무자(文無子) 이옥(李鈺 1760~1815)

[도입부] 천하에는 많은 사람들이 온통 이익을 위해 오고 간다. 세상이 이익을 숭상한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익으로 사는 자는 반드시 이익으로 죽기 때문에 군자는 이익(利)을 말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이익을 위하여 죽기까지 한다’

서울은 장사치들이 모이는 곳으로 대체로 팔 수 있는 물품이라면, 가게가 별처럼 나열되어 있고 바둑처럼 펼쳐있다. 어떤 이는 손과 손가락 솜씨를 팔고, 어떤 이는 어깨와 등의 솜씨를 팔며, 또 뒷간을 깨끗이 치우는 이도 있고, 칼을 두드리며 소를 잡는 이도 있으며, 얼굴을 화려하게 꾸며 몸을 파는 이도 있으니 천하의 사고파는 일이 이곳에서 극성을 이룬다.

외사(外史, 작가의 별호)씨가 말했다. “나체의 나라엔 실과 비단의 시장이 없고 살아 있는 것을 때려잡는 세상에선 음식을 담는 시루를 팔지 않으니 그것을 구하려는 이가 있어야 파는 이가 생겨날 것이다. 큰 대장간의 집엔 집게와 망치를 자랑하질 못하고 힘써 농사짓는 집안에선 쌀을 지고 지나더라도 ”쌀 사시오.“라는 소리가 없으니 자기에게 없는 것을 남에게 구하는 것이다.”

[전개부] 유광억(柳光億)은 영남 합천군 사람이다. 거칠게 시를 이해했고 과체(科體)를 잘해서 영남에 이름 났지만 집안은 가난했고 지위는 또한 낮았다. 먼 지방의 풍속에는 많이들 과거 글을 팔아 생계를 삼았는데 광억 또한 그걸 이익으로 삼았다. 일찍이 영남에서 도시(都試)에 급제하여 장차 서울의 관리 시험을 보러 가는데 한 부인이 수레로 길에서 맞이했다. 이르니 붉은 문이 몇 겹에 화려한 당이 몇십 채였다. 얼굴은 희고 엉성한 수염 난 사람 몇명이서 곧바로 한지를 펴고 글솜씨를 시험하는데 낫고 모자름을 들었다. 유광억을 안채에 묵게 하고 날마다 다섯 번 진수성찬을 제공하며 주인집 자제는 3~4번 아침마다 그를 공경하길 자식이 잘 봉양하는 것처럼 했다. 이윽고 회시(會試)를 거쳐 주인집 아들은 과연 광억의 문장으로 진사에 급제했고 곧이어 행장(行裝)을 꾸려 그를 전송했다. 한 마리 말과 한 머슴으로 집으로 돌아오니 2만 냥으로 와서 만나려는 사람이 있었고 읍에서 빌렸던 쌀은 경상감사가 이미 갚았다. 광억의 글은 매우 고상하진 않았지만 다만 득의양양하여 날카로움으로 재주를 삼았기 때문에 또한 도시(都試)에서 급제했던 것이다. 광억이 이미 노쇠해졌지만 더욱 나라에 명성이 났다.

경시관(京試官)이 경상감사에게 들러서 “영남의 재주 중 누가 최고입니까?”라고 물었다. 경상감사(監司)가 “유광억이란 자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시관(京試官)이 “이번 시험에서 나는 반드시 장원으로 선발하겠네.”라고 말했다. 경상감사가 “그대가 식별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고 경시관은 “할 수 있지요.”라고 말했다. 마침내 서로 논란하다가 광억의 과체(科體)로 내기를 했다. 경시관이 과장(科場)에 올라 ‘영남 시월 중양절에 모임을 열었지만 남과 북의 기후가 같지 않음을 탄식하며(嶺南十月設重九會 嘆南北之候不同)’라는 시제를 제출했다. 곧바로 한 권이 제출되었는데 그 시문은 다음과 같았다. “중양절이 또한 시월(重陰)에 있으니 북쪽의 손님(경시관)이 남쪽에서 발효시킨 술에 흠뻑 취했네.(重陽亦在重陰月 北客强醉南烹酒)”라고 하였다.

경시관이 그 시를 읽고서 “이 시가 유광억의 시가 틀림없다.”라고 말했다. 붉은 먹으로 점을 묻히고 이하(二下)로 등급 지으며 장원으로 뽑았다. 또 하나의 시권이 매우 합당한 작품이기에 2등으로 선발했고 또 하나의 시권을 얻었으니 3등을 선발했다. 풀칠한 곳을 열었지만 광억의 이름은 없었고 몰래 알아보니 모두 광억이 남의 돈을 받고서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앞뒤에 있게 한 것이었다. 경시관은 비록 그걸 알았지만 경상감사가 자신의 글을 보는 안목을 믿지 못할까 걱정되어 광억의 초사(招辭)를 받아서 증거로 삼고자 했다. 합천에 이관하여 광억을 잡아 전송하게 했지만 일찍이 옥사(獄事)를 일으킬 뜻은 없었다.

광억은 합천군에서 잡혀 장차 이송당하려 할 때 스스로 걱정하며 ‘나는 과적(科賊)으로 가더라도 또한 죽으리니 가지 않는 것만 못하다.’라고 생각했다. 밤에 친척과 한껏 술을 마셔대고 몰래 강에 투신해 죽으니 경시관은 또한 듣고 애석해했고 사람들은 그 재주를 아까워하지 않음이 없었다. 군자들은 “광억의 죽음은 여기(과체)에 있지 않으니 마땅하다.”라고 평가했다.

[논평부] 매화 외사(梅花外史)씨가 다음과 같이 평론했다. 천하가 물건을 팔지 않음이 없다. 몸을 팔아 남의 머슴이 되고 미세한 털이나 꿈의 형체 없는 꿈까지도 모두 사고 팔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판 이는 없었는데 어찌 사물이 모두 팔 수 있음에도 마음만 팔 수 없는 것이겠는가? 유광억 같은 이는 또한 마음을 판 자로구나. 아! 누가 알았으랴. ‘천하의 파는 것 중에서 지극히 천박한 매매를 글 읽는 자가 하였다는 사실을 누가 생각했겠는가? 법에는 ‘주는 것이나 받는 것 모두 죄다.’라고 쓰여 있다.

[天下穰穰 利來利往 世之尙利 久矣 然以利生者 必以利死 故君子不言利 小人殉利 京師工賈之所萃也 凡可售之物 廛肆星羅而碁布 有爲人賃手指者 有賣其肩與背者 有淘圊者 有鼓刃而血牛者 有華其面嫁者 天下之賣買 極于此矣 外史氏曰 “裸壤 無絲錦市 搏生之世 無鬻甑 有需之者 貨之者生 大冶之門 不以鉗鎚衒 力農之家 負米者過而無聲 無諸己而後求諸人” / 柳光億 嶺之陜川郡人也 粗解詩 以善科體名於南 其家窶地又汚 下鄕之俗 多以賣擧子業爲生者 而光億亦利之 嘗中嶺南解 將試于京有司 有以婦人車要於路 至則朱門數重 華堂數十所 面白而疎髥者 數人 方展紙試腕力 以聽其進退 舘光億於內 日五供珍羞 主人公 三四朝敬之 若子之能善養者 旣經會闈 主人子 果以光億文 登進士 迺裝送之 一馬一僕 歸其家 有以二萬錢來會者 其所貸邑糴 監司已償之矣 光億之詞 無甚高 但沾沾以銛利爲才 以是亦得意於試 光億旣老 尤有聲於國 京試官過監司問 “嶺南才 誰爲最?” 曰 “有柳光億者” 京試官曰 “今行 吾必置壯元” 監司曰 “子之鑑然乎?” 曰 “能” 遂相與難 以光億爲賭 京試官旣登場 出詩題曰 ‘嶺南十月設重九會 嘆南北之候不同’ 俄有一券來呈 其文曰 ‘重陽亦在重陰月 北客强醉南烹酒’ 試官讀之曰 “此光億也” 以朱亂點 等二下 擢爲魁 又有一券 頗合作 置之二 又得一券 爲第三 及坼糊 無光億名 陰諜之 皆光億受人錢貨 以貨之多少 而先後之也 試官雖知之 而恐監司不信己 欲得光億招 以爲契 移關于陜 使執光億送 而未嘗有起獄意 光億爲郡所收 將被送 自恐懼以爲 ‘我科賊也 去亦死 不如不去’ 夜與親戚縱酒飮 仍潛投江死 試官亦聞而惜之 人莫不憐其才 而君子謂 “光億之死 不在是 宜矣” / 梅花外史曰 天下無不賣物 有賣身爲人奴 至毛之微 夢之無形 皆有買賣 而亦未有賣其心者 豈物皆可賣 而心不可賣耶? 若柳光億者 其亦賣其心者耶? 噫! 誰謂 ‘天下至賤之賣而讀書者爲之’ 乎? 法曰 ‘與受同罪’]

 

[주1] 나양(裸壤) : 나라 이름이다. 이 나라는 사람들이 무례하여 옷을 입지 않고 알몸으로 생활을 한다고 한다.

[주2] 경시관(京試官) : 조선 시대, 3년마다 지방에서 과거를 치를 때, 서울에서 지방에 파견하는 시험관을 이르던 말

[주3] 과체(科體) : 조선시대 과거의 진사시에서 부과하던 독특한 시 형식으로, 과시(科詩), 행시(行詩), 혹은 심지어 고시(古詩)라고도 부른다. 조선 세종때 변계량(卞季良)이 고안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숙종때에는 격식이 고정되었던 듯하다. 김만중은 조선의 시가 좋지 못한 이유의 하나로, 고시를 과제에 사용하는 점을 거론하였는데, 그 때의 고시는 곧 과체를 말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과체는 고시문 가운데 한 구절을 제목으로 삼고 제목 가운데 한 글자를 운자로 삼아 제4련 포두(鋪頭) 글자를 압운자로 사용하면서, 7언 18운(혹은21운)으로 짓는 격식을 지켜야 하였다. 2구씩 한 짝(이것을 또 구句라고 한다)이 세 개가 모여 한 단락을 이루어 모두 18개의 짝(즉 여섯 개 단락) 내지 21개의 짝으로 구성되는 운문이다. 과문이라고도 불렀다.

[주4] 발해(發解) : 도시(都試)에 급제하는 것을 말한다.

[주5] 과적(科賊) : 조선시대,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온갖 부정행위를 하는 사람을 이르던 말

[주6] 시제, ‘영남 시월 중양절에 모임을 열었지만 남과 북의 기후가 같지 않음을 탄식하며’ : “중양절이 또한 시월(重陰)에 있으니 북쪽의 손님(경시관)이 남쪽에서 발효시킨 술에 흠뻑 취했네.(重陽亦在重陰月 北客强醉南烹酒)” 경시관의 시제는 기후의 다름에 빗대어 인재의 차이를 말했다. 유광억은 시를 통해 북쪽 손님인 경시관이 영남의 술에 취했다고 하며 인재의 차이가 없다고 밝힌 것이다.

[주7] 초사(招辭) : 사송(詞訟)이나 옥송(獄訟)을 판결하기 전에 당사자 또는 죄인의 구두 진술을 받는 것을 말한다.

[주8] 매화 외사(梅花外史) : 외사(外史), 이옥의 별호. 조선후기 문인 이옥(李鈺 1760~1815)의 전·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 이옥의 호(號)이기도 하다. 『매화외사』는 이옥의 친구 김려(金鑢)가 편찬한 『담정총서(藫庭叢書)』 제11책 권21에 실려 있다. 이옥이 33세 즈음에 쓴 것으로, 「유광억전」도 여기에 수록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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