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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흑산도 유배문학 1.2.3.

작성자수돌이(최찬집)|작성시간26.06.12|조회수3 목록 댓글 0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흑산도 유배문학 1.>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 선생은 널리 알려진 애국지사로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찬겸(贊謙), 호는 면암(勉菴),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대(岱)의 아들이다. 6세 때 입학해 9세 때 김기현(金琦鉉) 문하에서 유학의 기초를 공부하였다. 1873년에 올린 <계유상소 癸酉上疏>는 1871년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대원군이 그 위세를 몰아 만동묘(萬東廟)를 비롯한 서원의 철폐를 대거 단행하자 그 시정을 건의한 상소다. 이 상소를 계기로 대원군의 10년 집권이 무너지고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었다. 1873년부터 3년간의 제주도 유배생활을 계기로 관직생활을 청산하고 우국애민의 위정척사의 길을 택하였다. 1876년<병자지부복궐소 丙子持斧伏闕疏>를 올려 일본과 맺은 병자수호조약을 결사반대하였다. 이 상소로 흑산도로 유배되었으나 그 신념과 신조는 꺾이지 않았다. 우국애민의 정신과 위정척사사상은 한말의 항일의병운동과 일제강점기의 민족운동·독립운동의 지도이념으로 계승되었다.

 

◯ 그의 나이 44세 때인 1876년 초봄에, 일본과의 수호조약을 파기하라는 상소를 올리고 결사반대하다가, 흑산도 유폐령이 내려졌고, 2월 16일(음)에야 비로소 목적지 흑산도(黑山島 우이도)에 도착했다. 그가 도착해 말하길, “수로(水路)가 험악하고 풍토가 척박함이 탐주[耽州 제주도(濟州道)]에 비하여 10배나 심하니, 지극히 흉악하여 천지간에 용납될 수 없는 자만을 내던져 가두기에 적합한 곳입니다. 악을 벌주는 이치는 분명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천명(天命)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 다만 마땅히 그대로 받아야 할 따름입니다.”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대흑산도와 우이도(소흑도,小黑山) 모두를 ‘흑산도(黑山島)’로 지칭하였고 유배자는 우이도(牛耳島) 또는 대흑산도 어느 곳에서나 귀양살이 하던 별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정약전이나 최익현 모두 최초의 흑산도 배소는 우이도였는데 이후 흑산도로 옮겨 살기도 했다. 그가 처음 우이도(牛耳島) 유배지에 도착하자, 그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던 나주 목사 김선근(金善根)은 5천 패(貝)와 3마리의 어포(魚脯) 및 초를 내려 주었고, 우이도(牛耳島) 주진장(主鎭將)인 흑산별장(黑山別將) 김상룡(金尙龍)도 최대한 편의를 제공했다.

최익현은 1877년 봄에 여러 제군들과 함께 대흑산도를 방문했는데 장마(瘴雨)로 인해 40일간 체류한 후에야 우이도(소흑도)에 돌아왔다. 그는 당시 진촌(鎭村 진리)에 배를 정박하고 약 10리가 넘는 심촌(深村)에 가서, 선유봉(仙遊峰)과 골구미(骨九尾)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문암봉(門岩峯)에 올랐다가 문암(門巖)를 보고 왔다. 이를 계기로 섬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이 살던 現 흑산도로 이주하기로 결정하였다. 그해 7월경(음) 대흑산도(大黑山島)로 들어가서 서재를 정돈하고, 현판을 일신당(日新堂)이라 명명하곤 마침내 예닐곱 동자들을 가르쳤다. 아마도 귀양살이의 경제적인 상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흑산도에서 아동들을 가르치면서 선유봉(仙遊峰)으로 놀이를 가기도 했고 사촌(沙村) 인가(人家)에 머물기도 했다. 또한 영산(永山) 앞바다에서 자주 뱃놀이를 하다가, 영산도(暎山島)에 들어가 주인(主人) 최권중(崔權仲)의 집 벽에 시를 쓰기도 했다. 지장암(指掌巖)에 글자를 새긴 후, 얼마 되지 않은 1879년 2월 9일(음), 향리로 방축하라는 어명이 내려져, 약 3년간의 흑산도(우이도 포함) 유배생활의 종막을 고할 수 있었다. 이에 그달 2월 하순경에 사면서를 받고 육지로 나올 수 있었다. 그는 떠나기 전, 마지막 소회로 흑산(黑山) 일신당(日新堂) 서재에서, “지장암 곁에 작은 비석 세워 주게”라고 읊었는데, 현재 그의 소망대로 유허비가 서 있다. 흑산도 3년 동안 그가 남긴 시문(詩文) 약 40편 정도 전하고 있다.

 

1) 흑산도(黑山島 우이도)에서 회포를 펴다

僻地誰憐楚客悲 궁벽한 곳 그 누가 내 슬픔을 알리오 邂顔今日感親知 우연히 만난 그대가 참으로 감사하네 石田未半當年食 돌밭에선 일년 양식의 반도 안 나오고 海艦平看萬里危 바다 배는 만 리의 위태함을 보겠네 彿馬殘形迷往跡 불마의 옛 형상은 지난 자취 아득하고 絃歌餘俗問前期 현가의 남은 풍속은 장래를 묻더라 人情分合於斯別 인정이 나뉘는 것 예서 달라지니 請亂離騷一曲詩 이소경 한 곡조를 읊어나 보게 一抹孤城闢戍城 외로운 성이 변방 성을 지었으니長年絕罕海氛晴 여러 해 바다 기운 갤 날이 드무네 不關層壁干霄立 하늘 높이 닿은 절벽이 무슨 관계있으랴 旋喜編廬著岸生 언덕 위에 초가집이 더욱 좋네千里保障陰雨計 천리의 보장 음우의 꾀라면百年謫守幾人情 백 년의 귀양살이 몇 사람 정일까深春病榻無餘事 깊은 봄 병상에서 할 일이 없으니佇向中江聽櫓聲 강에서 노 젓는 소리 들으며 오래 서 있네好與諸君倚短城 그대들과 작은 성에 의탁하니 좋은데層溟五月楚山晴 험한 파도 오월에 초산이 개었구나樛枝擁列孤鎭小 벌어진 가지 벌려서니 외론 진영이 작은데 斷壑中平一澗生 끊어진 구릉 평평한데 시냇물이 흐르네 秋黃大麥蘇民病 보리가 익으니 백성들 병이 낫고 翠滴蘩陰爽客情 푸른 그늘에는 손님 마음 상쾌하네 只惟落日徘徊地 다만 해지는 석양이면 배회하는 곳에怕聽怒濤激岸聲 성난 파도 바위에 부서지는 소리 듣기 두렵네

 

[주]현가(絃歌) : 거문고와 노랫소리. 즉 예악(禮樂)이 있는 고장임을 뜻한다. 《論語 陽貨》

 

2) 흑산도(黑山島)의 가을 회포. 우이도(牛耳島) 소흑도(小黑島)에서.

半壁孤燈獨不眠 외로이 등불만 반짝이고 잠 못 이루어

蒼葭玉露曲江邊 굽은 강변 푸른 갈대에 이슬만 가득하네.

心懸故國傷多病 마음은 고국에 있어 병이 되고

跡滯殊鄕感逝年 몸은 타향에 있어 가는 해 슬퍼하네.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흑산도 유배문학 2.>

 

◯ 최익현은 1906년 1월 충청남도 노성의 궐리사(闕里祠)에서 수백 명의 유림을 모아 시국의 절박함을 호소하고 일치단결하여 국권회복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의병을 모아 활동하다 붙잡혀 일본군사령부로 넘겨져 끈질긴 회유와 심문에도 굴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임병찬과 함께 쓰시마 섬[對馬島]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단발을 강요당하자 단식으로 사절(死節)하기로 결심하였다. 곧 단발조치가 철회되자 단식을 중지했으나 그해 11월 병을 얻어 12월 30일 순국했다. 이듬해 1월 유해가 봉환되었다. 문집으로 〈면암집〉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그는 일생동안 제주도 흑산도 대마도 등, 총 3번의 유배형을 받았으며 결국 마지막 유배지 대마도에서 순국했다. 일생동안 정학(正學)인 성리학과 정도(正道)인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고(위정), 성리학 이외의 모든 종교와 사상을 사학(邪學)으로 보아서 배격하였다.(척사) 이에 그의 작품 속에서 드러난 위정척사에 대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3) 대흑산(大黑山)을 향하면서 배에서 부름. 정축년 1877년

聖時無棄物 태평성대에 버린 사람이 없는데

絶域老孤臣 먼 지역에 이 몸만이 늙었구나

欲强殘骸力 쇠한 몸 억지로 일으켜서

拂巾問海津 옷 떨치고 바다로 나갔네

搖櫓波心碧 노를 저으니 물 밑이 푸르고

懸篷客意新 돛을 다니 나그네 마음 서러워라

回頭山更遠 고개를 돌이키니 산은 점점 멀어지니

疑是向南閩 아마도 남쪽 땅을 향해 가겠지

孤槎出沒莫言艱 조각배 가는 것을 위험하다 말라

萬里風烟談笑間 머나먼 풍경 담소하는 사이에 지나가네

最愛靈山如引客 사랑스러운 명산이 나를 맞는 것 같아

故敎微雨洗孱顔 일부러 가랑비로 내 얼굴을 씻어 주네

世味經來百險艱 세상길은 험하고 험해

此行應在是非間 간 곳마다 시비가 많네

西風振處船如矢 가을바람은 불고 배는 살 같으니

今日差開病裏顔 오늘에야 병든 얼굴 웃어 볼거나

 

4) 저물녘에 진촌(鎭村)에 대다. 흑산도 진리에 도착.

窮源到處眼偏明 물 막다른 곳 당도하니 눈이 문득 밝아라

短壁層巒縱復橫 작은 절벽 층층으로 이리저리 둘렀네

借問居人何所事 묻노니 이곳 사람은 하는 일이 무엇인가

澤魚山麥做平生 평소에 고기 잡고 농사짓는 일이지

 

5) 심촌(深村)에서 자다 문암봉(門岩峯) 남쪽에 있으니, 진촌에서 약 10리가 넘는다.

結廬堪愛占淸幽 깨끗한 곳에 집 한 채 지었는데

古木荒藤閱幾秋 고목 등덩굴은 몇 해를 지났을까

多謝村翁勞遠客 고마워라 먼 손을 위로하는 촌옹들

引傾大白勸遲留 막걸리 부어 주며 못 가게 만류하네

 

6) 문암봉(門岩峯) 두 산 사이가 문과 같아서 문암이라 하고, 또는 운암(雲岩)이라고 함.

山在南溟浩渺端 남쪽 바다 드넓은 끝에 있는 이 산

登臨五月凛生寒 올라보니 오월에도 냉기가 선뜻선뜻

宛然天地無形外 참으로 이 천지는 가없구려

一望水雲不盡間 바라보면 구름만 자욱하네

耽景何嫌雙脚苦 경치를 탐하여 피로를 모르고

尋眞只許寸心寬 진경을 찾으니 마음이 너그러워라

謪來猶有踈狂態 귀양살이에도 소탈한 기질은 여전해

纔躡瀛洲更此攀 제주를 구경한 뒤 바로 이곳에 왔네

 

7) 다시 대흑산도(大黑山島)에 들어가서 서재를 정돈하고 현판을 일신당(日新堂)이라 했다.

마침 예닐곱 동자들이 조석으로 와서 글을 물으니 심히 귀양살이에 위로가 되었다.

三黜行裝慣問津 삼출에 행장이 문진에 익숙한데

會同半是挾書人 모인 사람 태반이 글을 읽는다네

却嫌孤塾無題字 오직 서재의 이름 없음을 한하여

故向今朝揭日新 오늘 아침에 일신이란 글자를 걸었네

 

[주1] 삼출(三黜) : 세 번 관직에서 내침을 당하는 것. 유하혜(柳下惠)가 세 번 벼슬을 물러났으되 분한 마음이 없었다는 고사.

《論語 微子》

[주2] 문진(問津) : 자로(子路)가 걸닉(桀溺)에게 나루를 물은 일로 인하여 학문의 진로를 가르쳐 주기를 청하는 것. 《論語 微子》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흑산도 유배문학 3.>

 

7) 다시 대흑산도(大黑山島)에 들어가서 서재를 정돈하고 현판을 일신당(日新堂)이라 했다.

마침 예닐곱 동자들이 조석으로 와서 글을 물으니 심히 귀양살이에 위로가 되었다.

三黜行裝慣問津 삼출에 행장이 문진에 익숙한데

會同半是挾書人 모인 사람 태반이 글을 읽는다네

却嫌孤塾無題字 오직 서재의 이름 없음을 한하여

故向今朝揭日新 오늘 아침에 일신이란 글자를 걸었네

[주1] 삼출(三黜) : 세 번 관직에서 내침을 당하는 것. 유하혜(柳下惠)가 세 번 벼슬을 물러났으되 분한 마음이 없었다는 고사.

《論語 微子》

[주2] 문진(問津) : 자로(子路)가 걸닉(桀溺)에게 나루를 물은 일로 인하여 학문의 진로를 가르쳐 주기를 청하는 것. 《論語 微子》

 

8)초승달[初月]

誰將崑玉削如鉤 누가 곤륜산 옥으로 갈고리 만들어

掛在雲霄萬里頭 저 높은 하늘에 걸어 두었는가

依俙淡影侵虛室 맑은 달빛이 빈 집에 들어오니

異域孤臣謾賦秋 고신은 타향에서 부질없이 가을을 읊네

 

9) 부질없이 지음[漫成]

西氣驕白日 서쪽 기운이 대낮에 기승을 부리니

斯道一何孤 우리 도는 어찌 이렇게 외로운가

容易迷寰宇 온 세계를 미혹하기 쉬우니

居然穢版圖 이 땅도 어느덧 더러워졌네

蹶天難自擎 기울어진 하늘을 괴기 어렵고

危廈更誰扶 위태한 집 다시 누가 지탱할까

先聖垂遺訓 옛 성인이 교훈을 남겼으니

修明但在吾 밝히는 일은 나에게 달려 있을 뿐이네

 

10) 사촌(沙村) 인가(人家)에서 자다.

春深處處樂羣生 곳곳마다 봄이 깊어 모든 생물 즐거워

十里携朋瀉客情 그대와 십리 길 오며 나그네 정이 흠씬

浦戶重尋周歲約 한 해 언약은 갯집에서 다시 찾고

月光添得半宵明 달빛은 한밤중에 더욱더 밝구나

短原連麥迷通逕 얕은 언덕 보리 잇닿아 오솔길 묻히는데

列峀交陰翠作城 둘린 산이 그늘을 지우니 푸른 성을 짓네

纔喜仙源咫尺在 즐겁다 이미 선경이 가까운데

更看海味錯縱橫 또 수없는 바닷고기를 보겠네.

 

11) 영산도(暎山島)에서 주인(主人) 최권중(崔權仲) 의 집 벽에 씀.

借問何時奠此居 그대는 언제 이 땅에 이거했던가

晩來猶味少年書 늙으니 젊을 때 읽던 글이 좋을세라

僻江曾道生涯窄 강이 궁벽하니 생활이 넓지 못하고

古墓今看歲月餘 옛 무덤 보니 세월도 오래 되었구나

培荳石田閑事業 돌밭에 콩 심으니 사업이 한가하고

結廬竹藪養淸虛 대숲에 집을 지어 맑은 마음 기르네

偶然三宿成眞趣 우연한 사흘 밤에 좋은 취미를 이루었으니

且講前緣莫自疎 장차 앞 인연을 찾아 성글게 하지 마오

 

12) 지장암(指掌巖)에 글자를 새긴 뒤에 운자(韻字)를 뽑다.

化工分却一枝山 조물주가 한 산을 나누어서

擲入洪濤活渺間 드넓은 파도 속으로 던졌구나

强半衣冠會避俗 많은 선비들 속세를 피하여 들어오고

尋常炎瘴苟偸閒 심상한 염장이라 구차스레 한가했네

地連箕域書無證 땅은 기역에 닿았으나 증거 될 서적 없고

曆玩崇禎歲幾還 역서는 숭정을 보니 세월이 얼마나 되었나

此刻雖微關係大 글자를 새기는 일 하찮으나 뜻은 크니

爲敎洞主莫輕刪 마을 사람아 가벼이 깎아 버리지 말게

一部陽秋問碧山 한 부의 의리를 푸른 산에 물으니

摩挲佇立草堤間 만 가지 만지면서 풀 언덕에 서 있구나

居人莫謂乾坤窄 사람들아 하늘 땅 비좁다 말라

隙地從看日月閒 좁은 곳에도 일월은 한가하구려

非有良工心裏運 양공의 마음에 얻은 것이 아니면

誰模舊迹眼中還 누가 옛 모양을 다시 보도록 했으리

職方版籍隨時變 이 땅 경계는 비록 변할 때 있으나

老石千年應不刪 돌에 새긴 글자는 언제나 없어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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