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밤(八月十八夜), 처절한 피리소리 차마 듣기 어려워라> 고영화(高永和)
인간이 무조건 오래 산다는 것이 과연 축복(祝福)일까? 아마 아닐 것이다. 특히 가진 재산도 적고 제 몸이 아프거나 속을 썩이는 가족이 있기라도 한다면? 또한 치매라도 걸린다면? 장수(長壽)가 결코 복이 아니고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거기다가 삶의 의미도 없고, 친구라도 하나 없이 홀로 쓸쓸한 노년을 보낸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집사람보다 우짜던지 빨리 죽어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그래야만 집안도 편하고 나도 편안할 것 같아서다.
다음 시편 ‘팔월 십팔일 밤(八月十八夜)’는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갑자사화로 인해 1506년 거제도 상문동에서 귀양살이 했던 용재(容齋) 이행(李荇) 선생이, 1520년 43세, 이른 가을에 쓴 7언 절구이다. 외로운 달밤에 백발의 몸으로 누각에 올라 피리소리를 들으니, 저승으로 먼저 떠나보낸 친구들이 생각난다. 달 밝은 밤에 들리는 피리소리는, 제 명에 못살고 먼저 죽은 벗들이 생각나 슬프기 그지없다. 오롯이 홀로 살아남은 자의 고독감이 짙게 배여 난다.
<‘팔월 십팔일 밤(八月十八夜)’> 이행(李荇 1478∼1534) 운자(韻字)는 ‘靑’
平生交舊盡凋零(평생교구진조령) 평소에 사귀던 친구들 모두 세상을 떠나고
白髮相看影與形(백발상간영여형) 백 발된 이 몸의 형체는 그림자만 마주 하네
正是高樓明月夜(정시고루명월야) 때마침 달 밝은 밤, 높은 누각에 앉았는데
笛聲凄斷不堪聽(적성처단불감청) 처절한 피리소리 차마 듣기 어렵구나
● 이 시를 썼던 때는 1520년 음력8월 18일이었다. 이미 그의 친한 벗인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 1479~1504), 권민수(權敏手 1466~1517), 정희량(鄭希良 1469~1502) 등은 물론, 가까운 지인들은 이미 갑자사화 등등에 연루되어 비명횡사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 1519년 11월에는 기묘사화가 일어나, 또 한 번 그의 지인들이 대거 숙청되었던 미묘한 시기에 이 시를 지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한편 이행(李荇) 선생의 시(詩)는 조선전기 당시의 전통에서 벗어나 기발한 착상과 참신한 표현을 강조하는 기교적인 시를 써서 새로운 시풍을 일으켰다고 평가 받고 있다.
◯ 한시 시평에 탁월했던 허균(許筠, 1569~1618)은 그의 평론집 성수시화(惺叟詩話)에서 이 작품을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나라 시로는 이용재(李容齋)를 첫째로 함이 마땅하다. 그의 시풍은 침착하고 화평하며 아담하고 순숙(純熟)하다. 오언고시(五言古詩)는 두보(杜甫)와 진후산(陳後山)의 품격과 비슷하여 고고(高古)ㆍ간절(簡切)하여 글이나 말로는 찬양할 수가 없다. 이 시는 내가 평소에 즐겨 읊던 절구 한 수다. 감개가 무량하여 이를 읽노라면 가슴이 메어진다.’
우리는 일찍 죽은 친구를 떠올리면 슬픈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하물며 절친한 친구였다면 말해 무엇 하겠는가. 허균(許筠)이 왜? ‘감개가 무량하여 이를 읽노라면 가슴이 메어진다.’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