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서리하는 아이들, “영감탱이 내년까지 살 수는 있을라나?“ 천재 시인 손곡(蓀谷) 이달(李達)> 고영화(高永和)
조선중기 삼당시인(三唐詩人)이었던 손곡(蓀谷) 이달(李達 1539~1612)선생의 한시, <대추 터는 노래(撲棗謠)>를 감상해 보자. 동네 어린아이들이 노인 몰래 대추 서리를 하다가 들켜 도망친다. 그때 아이들이 홱 돌아보며 “영감탱이 내년까지 살 수는 있을라나?“며 노인을 놀린다. 아이들의 발랄하고 익살스러운 모습, 짓궂으면서 왁자한 분위기, 노인의 호통소리와 다급하게 달아나는 발걸음 소리가 귀에 닿을 듯 생생하다. 대추 몇 알 따먹는다고 큰 일 날 일도 아니건만 저렇게 그악스럽게 아이를 내쫓는 늙은이가, 옛날 동네엔 꼭 한 분씩 있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노인의 인색함이나 아이들의 놀림에 대해 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골마을 한 때의 일상을 아름답게 그려내었다. 또한 정겨운 시골의 한 장면에서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 역시 정경 묘사를 통해 마음속의 그림을 그려내게 만든다. 우리는 이런 작품을 ‘마음속의 그림(心畵)’이라 부른다. 시를 통해 마음속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고, 그로인해 우리 생각을 정화함으로써 세상을 한층 더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힘을 준다.
<대추 터는 노래(撲棗謠)> 손곡(蓀谷) 이달(李達 1539~1612)
隣家小兒來撲棗 동네 꼬마가 남의 집에 와서 대추를 터네
老翁出門驅小兒 주인 늙은이 문을 나와 꼬마를 내쫒네
小兒還向老翁道 꼬마가 홱 돌아서며 늙은이에게 하는 말
不及明年棗熟時 내년 대추 익을 때까지 살지도 못할 거면서
◯ 손곡(蓀谷) 이달(李達)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기까지 살다간, 시대의 낭만적인 리얼리스트였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재능에 비해 불우한 삶을 살았다. 얼굴이 단정하지 못하고 성품이 호탕하여 예법에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성미라 가는 곳마다 업신여김을 당하며, 몸 붙일 데가 없는 비렁뱅이, 천덕꾸러기로 자유분방하여 한 곳에 정착해 있지 못하여 유랑하였고, 시와 술을 즐기면서 일생을 불우하게 보냈다. 이러한 배경에는 어머니가 기생이었던 탓에 글재주가 뛰어나도 세상에 쓰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시의 대가로 문장과 시에 능하고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서자라는 신분적 한계로 인해, 뛰어난 재능을 세상에 발휘해 보지 못하고 비렁뱅이로 천하게 살다가 죽었으나, 몇 편의 빛나는 시로 인해 오늘에 이르도록 이름을 잃지 않고 있다. 이달(李達)의 작품들은 무심한 어느 날의 정경을 보여줄 뿐인데도, 사람들은 마음속에 그림을 하나 그려내면서 다양한 생각을 이어 붙인다. 이런 것이 시인의 능력이요, 힘이 아닐는지.
● 다음 제총요(祭塚謠) 시(詩)는, 임진왜란 때 아들을 먼저 보낸 할아버지가 손주를 데리고 아들 묘에서 술 한 잔 따르고 난 후, 취하여 돌아오는 모습이다. 당시 임진왜란(倭亂)으로 말미암아 농촌의 젊은이들이 징집되어 얼마나 많은 목숨을 잃었는지 무덤이 늘어섰다고 적혀 있다. 아마 죽은 아들의 기일을 맞아 노인은 어린 손자를 데리고 묘를 찾았을 것이다. 무덤 앞에 쪼그려 앉아 어린 손자를 바라다본 노인은 세상을 원망하며, 한 잔 두 잔 기울인 술에 그만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손주는 할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비틀거리면서 밭 사이 길을 걸어간다. 세상 물정 모르고 앞서 가는 두 마리의 무심한 개,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시편 내용을 음미하니, 애달픈 조선 민중의 삶이 가슴을 아프게 찔러 댄다.
<제총요(祭塚謠) 제사를 마치고> 손곡(蓀谷) 이달(李達 1539~1612)
白犬前行黃犬隨 흰둥개는 앞서가고 누렁이 따라가는
野田草際塚纍纍 들밭 풀 가에는 무덤들이 늘어섰네
老翁祭罷田間道 제사를 마친 늙은이는 밭두둑 길에서
日暮醉歸扶小兒 저물녘 손주의 부축 받고 취하여 돌아오네.
○ 전쟁으로 말미암은 비극성을 고발한 작품인데 전란의 참상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전혀 없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그리듯 한 장면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 행간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얼마나 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는가? 두 마리의 무심한 개를 등장시켜 비극성을 돋보이게 한 것도 기발한 착상이 아닐 수 없다. 가히 명품이라 할 만하다.
● 손곡(蓀谷)은 사암(思菴) 박순(朴淳, 1523-1589)의 영향을 받아 낭만과 서정성이 짙은 당시(唐詩)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 당시는 사화와 당쟁 그리고 임진왜란 등으로 세상이 매우 어지러웠던 때였다. 그리하여 현실에 대한 불만이 실사구시의 학풍을 싹트게도 했지만 한편으론 복고적인 온건성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게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시에서는 인간 감정의 자연스런 발로를 중요시했던 당시(唐詩)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 1539-1583),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 1537-1582) 등이 그런 경향을 지닌 대표적인 분들이라 할 수 있다. 손곡은 이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데, 세상은 유사한 시풍을 지닌 이들을 함께 일러 ‘삼당(三唐) 시인’이라 불렀다. 그리고 허균과 허난설헌의 시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래서 손곡(蓀谷)의 생을 동기(動機)로 삼아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이 지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