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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애정 시조 15편을 오언절구로 한역(漢譯)한 동인지가(東人之歌)

작성자수돌이(최찬집)|작성시간26.06.19|조회수0 목록 댓글 0

 

 

<민중의 애정 시조 15편을 오언절구로 한역(漢譯)한 동인지가(東人之歌)> 고영화(高永和)

 

우리나라는 왕조시대 학자, 문인들 중에 우리 고유의 시가(詩歌)를 한자어로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한역(漢譯)하신 분들이 종종 있었다. 이후 조선후기로 넘어오면서 ‘여항 시인이나 실학파 시인 그리고 유배인들’이 백성들이 불렀던 우리 고유의 민중시가(民衆詩歌)였던 시조, 민요, 가사, 사설시조, 잡가(雜歌) 등을 본격적으로 한역(漢譯, 한문으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한역 대부분은 우리의 노래가 구전으로만 읊어지다가 없어짐을 한탄하여, 기록으로써 후세에 전하고자 노력한 결과였다. 처음엔 오언절구(五言絶句)로 번역을 시도했으나 원시가의 뜻을 담기에 부족하여 이후부터 민중의 노래를 담기에 용이한 칠언절구(七言絶句) 또는 칠언시(七言詩)로 전부 한역화(漢譯化)하기 시작했다.

 

◉ 이번 지면을 통해서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 시조(時調)를 한역(漢譯)한 <동인지가(東人之歌), 우리 노래>의 내용을 소개하겠다. 우리 노래 민중의 애정 시조 15편을 오언절구(五言絶句)로 한역(漢譯)한 <동인지가(東人之歌)> 15수(首)는 조선후기 북학파 실학자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의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에 수록된 작품들이다.

○ 먼저 <동인지가(東人之歌)>에서는 취락(取樂)과 애정(愛情)의 주제만을 다루었으며, 사설시조나 잡가(雜歌) 등 세속적인 장르들 또한 번역해 놓았다. 특히 애정 주제를 월등히 많이 다루었는데, 이전에는 한 번도 번역된 바 없었던 노골적인 애정시조들을 한역함으로써 여항시가의 진면목(眞面目)를 포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동인지가>는 한역시가의 형식을 오언절구(五言絶句)로 고정시켜 놓았기에, 원시가를 충분히 재현하지 못했다는 한계 또한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동인지가>에 내재된 의미와 한계가 후대의 한역시가(漢譯詩歌) 작품들에서 각기 발전적으로 계승되거나 극복된 양상을 알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이다.

<동인지가>에서 보여준 여항시가에 대한 포용은 이후 19세기의 한역시가들로 이어졌으며, <동인지가>의 형식적 한계는 칠언절구(七言絶句)라는 보다 적절한 한역시가 형식에 대한 모색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되었다. 무엇보다, 적극적인 시가비평과 시가한역을 결합시킨 <동인지가>의 구성방식은 이후 한역시가 작가들에게 계승되어 선례가 되었음을 살폈다. 이상에서 보았을 때,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의 한역시가 <동인지가>는 전후대의 주요 시가비평 및 한역시가들을 매개한 중추적인 작품이었다.

 

◉ 한편 <동인지가>가 수록되어 있는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는 유득공의 비망기이자 일기로, 서얼 출신인 그가 정조의 파격적인 인사 정책 덕으로 막 관료가 되었을 때부터 죽기 몇 년 전까지 20여 년의 세월 동안 작성한 약 300편에 달하는 짧은 글을 모은 책이다.

유득공은 흔히 역사와 관련해 호명되어 왔지만 실제 그는 역사뿐 아니라 수많은 분야에 방대한 관심과 열정을 쏟은 인물이었다. 그의 사고가 드넓은 영역에 걸쳐 있었던 탓에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에 수록된 글들은 그 소재에서는 역사를 비롯해 언어, 풍속, 지리, 문학, 괴담, 동식물과 신변잡기적인 사물까지 아우르고 형식에서는 소설이나 만담부터 시와 역사에 대한 평론까지 겸한다.

 

◉ 덧붙여, 우리나라 시가(詩歌)문학 ‘시조(時調)’는 고려후기에서 조선전기에 걸쳐 정제된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로, 문학 갈래로서의 명칭은 단가(短歌)가 널리 사용되었고, 노래를 뜻하는 말인 가요(歌謠)·가곡(歌曲)·영언(永言)·시절가(時節歌)·신성(新聲)·시여(詩餘) 등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시조’라는 명칭의 원뜻은 시절가조(時節歌調), 즉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뜻이었으므로, 엄격히 말하면 시조는 문학 갈래 명칭이라기보다는 음악곡조의 명칭이다. 노래로 부르며 즐기던 갈래로 곡조는 16세기 무렵부터는 장중한 가곡(歌曲)창으로, 18세기 경에는 시조창으로 노래하기 시작하였으며, 20세기에 창작된 것들은 노래하지 않는다. 음악적 특성은 변했어도 문학 갈래로서의 특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이번 지면에 소개하는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의 15수(首) <동인지가(東人之歌)>의 서문(序文)에서 이르길,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거리의 아이들과 마을 아낙들이 순전히 우리말로 자기 성정을 표현해 부르는 노래를 기록하거나 글을 짓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왜?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부르는 사(詞)를 짓지 않고 중국의 사(詞)를 짓는지 모르겠다. 사대부들이 중국의 자구(字句)를 그대로 따르고 그 평측(平仄)을 본뜨고 이전 중국의 고사를 끌어다 인용하고 예전의 시를 표절하고 도습할 뿐이다. 심히 가소롭고 부끄럽다. 내가 많이 기억하지는 못하나 그 십여 수를 번역하였는데 대략 뜻만 따라서 엮고 운을 붙인다.’고 적었다.

당시 그가 지닌 우리민족의 주체성과 자결성을 읽을 수 있다. 거짓된 일부 한시체는 사라져야 하고 민족어시가(民族語詩歌)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는 점에서, 또한 민족어 시가 중에서도 민중의 작품이 사대부가 지은 것보다 더 가치 있음을 단언하였다는 점에서 <동인지가> 서문(序文)은 전대의 시가론보다 한층 진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하 <우리 노래(東人之歌)> 15수(首)의 한시는 우리 시조로 전해 온 것들을 한역(漢譯)한 것이므로 본래의 모습과 비교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작품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영남대학교 심재완(沈載完) 교수가 지금까지 전해오는 시조들을 모아 편찬한 《정본시조대전(定本時調大全)》(일조각, 1984)에서 본래의 형태를 찾아 주석으로 덧붙여 놓았다.

 

○ 15편의 시조 내용을 보면, 대체로 즐겁게 희롱하는 어조로 노래한 낙희조(樂戲調)로써 풍자와 해학을 통해 청취자와 공감하는 방식으로 노래한 것들이다. 이 시조들을 통해 우리나라 서민들의 삶에서 배어나는 농밀한 삶의 저변에서 묻어나는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 무위자연을 노래한 작품,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주장하거나, 사랑과 배신 그리고 이별을 노래한 점, 더하여 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외치는 노래들인데 대부분 작가미상의 여성 시조(時調)인 사랑가이다. 이 시가들은 우리 선조들이 예로부터 시조시를 읊으며 부른 노래이자 바로 우리에게 친근한 가곡들이다.

<우리 노래[東人之歌]>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 1748~1807)

굴평(屈平 굴원)은 초나라 사람이라서 풍아(風雅)를 짓지 않고 〈구가(九歌)〉를 지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중국의 사(詞)를 짓는다는 자들은 몹시 가소롭다. 그 자구(字句)를 그대로 따르고 그 평측(平仄)을 본뜨면서 “이건 〈여몽령(如夢令)〉이다.”, “이건 〈만정방(滿庭芳)〉이다.”라고들 하니, 고루함만 드러내 보일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詞)’이다. 더러 사대부라는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사’라는 것은 이전의 고사를 끌어다 인용하고 예전의 시를 표절하고 도습할 뿐이어서, 도리어 거리의 아이들과 마을 아낙들이 순전히 우리말로 자기 성정을 표현해 부르는 노래가 가히 즐거운 것만 못하다. 내가 많이 기억하지는 못하나 그 십여 수를 번역하였는데 대략 뜻만 따라서 엮고 운을 붙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고는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사인 줄을 깨닫고 더 이상 〈여몽령〉이니 〈만정방〉이니 하는 것을 짓지 않았으면 한다.

[屈平 楚人 不作風雅 作《九歌》 東人塡詞者 甚可笑 依其字句 效其平仄 曰“此《如夢令》也” “此《滿庭芳》” 適足見其陋而已

東人之歌卽東人之詞也 其或出於士大夫之口者 援引前事 剽襲古詩 反不如街童 巷婦之純以俚語道其性情之爲可喜 余不能多記 飜其十餘首 略以意點綴而韻之 使東人見之 知此爲東人之詞 而不復作《如夢令》《滿庭芳》也]

【一】 ‘葉’ 운(韻)

蛺蝶靑山去 나비야 청산 가자

相隨虎蛺蝶 범나비 너도 가자

日暮花間宿 저물거든 꽃에 자고

花嗔宿於葉 성내거든 잎에 자자

【二】 ‘庚’ 운(韻)

城上布穀鳥 성 위의 저 뻐꾹아

問爾何故鳴 물어보자 왜 우느냐

梧桐舊葉落 오동의 묵은 잎 지고

萋萋新葉生 무성한 잎 새로운데

【三】 ‘覺’‘屋’ 통운(通韻)

今日何寥寥 오늘이 어찌 이리 쓸쓸도 할까

且爲行軍樂 행군 군악 소리도 울려 대는데

卿去復卿去 그대 떠나시네 그예 가시네

城上孤生木 성 위엔 홀로 돋은 외그루 나무

【四】 ‘眞’ 운(韻)

非二非三生 둘도 셋도 아닌 인생

無四無五身 넷 다섯 없을 이 몸

生借身是夢 빌린 인생 꿈속의 몸

遊戲在何辰 놀아 보기 언제런가

【五】 ‘質’ 운(韻)

今日是今日 오늘이 오늘이어라

明日是今日 내일도 오늘이어라

朝朝復暮暮 아침마다 저녁마다

今日只是一 오늘은 한결 같아라

【六】 ‘侵‘ 운(韻)

莫踐波底沙 물 아래 가는 모래 밟지 말아요

沙纖迹還沈 가는 모래 밟아도 자국 없지요

卿言甚愛我 그대 나만 사랑한다 말씀하지만

我何知卿心 어떻게 알겠어요, 당신 마음을

【七】 ‘陽’ 운(韻)

滄波汎汎鳥 창파에 둥실 뜬 새

汎汎鴛與鴦 둥실둥실 쌍 원앙

莫言知深淺 깊고 얕기 안다 말라

深淺誠難量 헤아리기 어려우니

【八】 ‘語’ 운(韻)

魚入我池中 내 못에 든 고기들아

可憐誰驅汝 누가 너를 몰았느냐

魚言無人驅 몰아 온 이 없지마는

一來不復去 와선 가질 못하네요

【九】 ‘庚’ 운(韻)

綠陰芳草谷 녹음방초 골짜기

有一端坐鶯 단정한 저 꾀꼬리

可憐聲相似 어여쁠 손 그 소리

似我佳人聲 우리 임의 목소리

【十】 ‘語’ 운(韻)

屛間缺齒貓 병풍 속 앞니 빠진 고양이

相對小香鼠 조그만 사향쥐를 노리고 섰네

人言貓狡獪 고양이 교활하다 말들 하는데

蹲蹲思捕汝 노리고 앉아서 너를 잡았으면

【十一】 ‘陽’ 운(韻)

此身化爲鵑 이 몸이 죽어 가서 접동새 되어

梨花深處藏 이화 깊은 곳에 들어 있다가

夜半苦苦叫 야반에 괴로이도 울어 댄다면

必能斷君腸 정녕코 우리 임 애를 끊으리

【十二】 ‘語’ 운(韻)

荳田烏犢子 콩밭에 든 검송아지

打打不知去 때려도 가질 않네

休踢衾底郞 이불 속 임 차지 말라

今夜去何處 이 밤중에 어딜 가랴

【十三】 ‘梗’‘迥’ 통운(通韻)

纏情復纏情 사랑을 친친 감아 동여 얽어서

一擔上高嶺 한 짐을 꾸려 메고 준령 오르네

寧爲情壓死 그 사랑에 깔려서 죽을지언정

棄之本不肯 버리고 떠날 마음 애초 없어라

【十四】 ‘敬’ 운(韻)

別後當相思 이별 뒤엔 그립거니

相思詎無病 그리우면 병들 테지

病者所不活 상사병은 못 산다니

莫如今夜竟 오늘 밤을 지새우리

【十五】 ‘支’ 운(韻)

今夜與君歡 이 밤 님과 지내려오

君歸問何時 그대 언제 오시나요

畫屛雄黃鷄 그림 병풍 누렁 수탉

鼓翼唱咿咿 홰를 치며 꼬꾜 우네

 

[주1] 풍아(風雅) : ≪시경(詩經)≫의 풍(風)과 아(雅). 곧, 시(詩). 풍류(風流)와 문아(文雅). 고상(高尙)하고 멋이 있음.

[주2] 구가(九歌) :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난 뒤에, 민간에서 여러 귀신에게 제사 지내며 부르는 노래를 가공하여,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뜻을 부친 시가이다. 굴원(屈原)이 지은 동황태(東皇太)ㆍ운중군(雲中君)ㆍ상군(湘君)ㆍ상부인(湘夫人)ㆍ대사명(大司命)ㆍ소사명(小司命)ㆍ동군(東君)ㆍ하백(河伯)ㆍ산귀(山鬼)ㆍ국상(國殤)ㆍ예혼(禮魂)을 말함. 왕일(王逸)의 《초사장구(楚辭章句)》에 의하면, 굴원이 추방당해 완수(沅水)ㆍ상수(湘水) 사이의 지역에서 울분에 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지방의 예악(禮樂)이 비루함을 본 굴원은 구가의 곡을 지어, 위로는 귀신 섬기는 공경을 펴고, 아래로는 자신의 맺힌 원한을 표현해서 임금에게 풍간(風諫)하였다. 그러므로 11편의 문장이 동일하지 않다 한다. 그리고 이 가사는 총 11편인데, 왜 구가라고 했을까 하는 문제에는 많은 설들이 있다. 임운명(林雲銘)은 산귀ㆍ국상ㆍ예혼이 합쳐서 1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장기(蔣驥)는 상군ㆍ상부인이 합쳐서 1편, 대사명ㆍ소사명이 합쳐서 1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9라는 숫자는 아무 의미 없는 글자이고, 11편이 원래부터 있는 편수라는 설 등이 있고, 이외에도 구구한 많은 설들이 있다.

[주3] 여몽령(如夢令) : 송사의 곡조 중에 하나. 옛 사패명(詞牌名)이다. 일명 억선자(憶仙姿)라고도 한다. ‘꿈처럼’이라는 뜻의 ‘여몽’에 악곡 빠르기를 뜻하는 ‘영(令)’이 붙은 제목이다. 사(詞)의 제목 뒤에, ‘만(慢)ㆍ영(令)’ 같은 곡조 빠르기를 나타내는 말이 붙기도 하고, 연창법(演唱法)을 나타내는 ‘최자(嗺子)’, 서곡(序曲)을 의미하는 말인 ‘인자(引子)’ 같은 말이 따라 붙기도 한다.

[주4] 만정방(滿庭芳) : 사패(詞牌)의 명칭이며, 뜰에 가득한 꽃이라는 뜻이다. 본사(本詞)의 운목(韻目)은 ‘지(支)’인데, 운자 두 개가 해당 운목이 아닌 것을 쓰고 있다. ‘비(肥)’는 ‘미(微)’ 자 운목에 속하며, ‘예(倪)’는 ‘제(齊)’ 자 운목에 속한다. 참고로 본사의 사패 형식은 다음과 같다. 사패의 형식이 대체로 지켜지기는 하지만, 어떤 사는 사패 형식 자체가 여러 유형인 것도 있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주3] 사(詞) : 여기서 ‘사(詞)’란 반드시 남송 시기에 완성된 문학 양식으로서의 사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전통의 정서와 구어적 특징이 드러나는 노래를 말한 것이다.

[주5] 우리나라 사(詞) : 이러한 인식은 김만중, 홍만종 이래 박지원, 이덕무 등 유득공과 문학 활동을 함께했던 사람들의 발언과 상통한다.

[주6] 그 십여 수를 번역하여 뜻에 따라 엮고 운을 붙인다. : 이하 15편의 한시는 우리 시조로 전해 온 것을 한역(漢譯)한 것이므로 본래의 모습과 비교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작품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정본시조대전(定本時調大全)》(심재완, 일조각, 1984)에서 본래의 형태를 찾아 주석으로 덧붙였다.

[주7] 나비야 …… 자자 : 나뷔야 청산 가쟈, 범나뷔 너도 가쟈. 가다가 져무러든 곳듸 드러 자고 가쟈. 곳에서 푸졉거든 닙헤셔나 고 가쟈. 《정본시조대전, 116쪽》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날 저물면 꽃잎에 쉬어가자 꽃잎이 푸대접커든 잎에서 자고 가자.’

[주8] 둘도 …… 언제런가 : 人生이 둘가 셋가 이 몸이 네다섯가, 비러온 人生이 에 몸 가지고셔, 平生에 사롤 일만 고 언제 놀녀 니. 《정본시조대전, 621쪽》

[주9] 오늘이 오늘이어라 …… 한결같아라 : 오이 오이쇼셔 매일에 오이쇼셔, 졈그지도 새지도 마르시고, 새나마 晝夜長常에 오이 오이쇼셔.

[주10] 물 …… 마음을 : 물아래 細가랑모 아모리 밟다 발최 나며, 님이 날을 아모만 괸들 내 아옵더냐, 님의 情을 狂風에 지부친 沙工치 기픠를 몰나 노라.

[주11] 창파에 …… 어려우니 : 萬頃滄波之水에 둥둥 는 불약금이 게오리들과 비솔금셩증경이 동당강상너시 두루미드라, 너 는 물 기픠를 알고 둥 는 모로고 둥 는, 우리도 의 님 거러두고 기픠를 몰나 노라.

[주12] 내 …… 못하네요 : 압못세 든 고기드라 네 와 든다 뉘 너를 모라다가 너커늘 든다, 北海淸沼를 어듸 두고 이 못세 와 든다, 들고도 못나 情이야 네오내오 다르냐. 《정본시조대전, 482쪽》 ‘앞 못에 든 고기들아, 네 와 듣느냐 누가 너를 몰아다가 넣었기에 들어 있느냐. 북쪽 바다와 같은 맑고 큰 물을 어디 두고, 이 못에 와 들었느냐, 들고도 나오지 못하는 정은 너나 나나 다를 것이 있겠느냐.’

[주13] 녹음방초 …… 목소리 : 綠陰芳草 우거진 골에 꾀꼬리哢 우는 져 리야, 네 소 어엿다 마치 님의 소도 틀시고, 아마도 너 잇고 님 겨시면 아모긘 줄 몰라. 《정본시조대전, 167쪽》

[주14] 병풍 …… 잡았으면 : 屛風에 압니 근동 부러진 괴 그리고 그 괴 알 됴고만 麝香쥐를 그려시니, 고 요 괴  부론 양야 그림에 쥐를 믈냐고 좃니고나, 우리도 새님 거러두고 좃니러 볼가 노라. 《정본시조대전, 322쪽》

[주15] 이 …… 끊으리 : 이 몸이 싀여져셔 졉동새 넉시 되야, 梨花 퓐 가지 속닙헤 혓다가, 밤中만 하져 우러 님의 귀에 들니리라. 《정본시조대전, 600쪽》

[주16] 콩밭에 …… 가랴 : 콩밧 드러 콩닙 더 먹는 감은 암소 아무리 츤들 그 콩닙 두고 제 어듸 가며, 니불 아 든 님을 발로 툭 박차 미젹미젹며 어서 나가소 들 이 아닌 밤에 날 바리고 제 어듸로 가리. 아마도 호고 못 니즐슨 님이신가 노라. 《정본시조대전, 789쪽》

[주17] 사랑을 …… 없어라 : 랑을  얽동혀 뒤 설머지고, 泰山峻嶺을 허위허위 넘어갈제 그 모른 벗님네는 그만야 리고 가라 건마, 가다가 자즐녀 죽을만졍 나 아니 바리고 갈가 노라. 《정본시조대전, 360쪽》

[주18] 이별 …… 지새우리 : 오늘도 져무러지게 져믈면은 새리로다 새면 이 님 가리로다, 가면 못 보려니 못 보면 그리려니 그리면 病들려니 病 곳 들면 못 살리로다, 病드러 못 살 줄 알면 자고 간들 엇더리. 《정본시조대전, 530쪽》 ‘오늘도 저물어가 저물면 샐 터이라, 새면 이 님 가리라 가면 못 보려니 못 보면 그리려니 그리면 병들려니 병 곧 들면 못 살려니 병들어 못 살줄 알면 자고 간들 어떠리.’

[주19] 이 …… 우네 : 노 노 每樣長息(언제나) 노 밤도 놀고 낫도 놀, 壁上에 그린 黃鷄 숫닭이 홰홰쳐 우도록 노 노, 人生이 아츰이슬이니 아니 놀고 어이리. ‘노새 노새 매양 쟝식 노새 낮도 놀고 밤도 노새. 壁上(벽상)의 그린 黃鷄(황계)수탉이 뒤나래 탁탁 치며 긴 목을 느리워서 홰홰쳐 두도록 노새그려. 인생이 아침 이슬이라 아니 놀고 어이리.’

 

● 참고로, 저자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은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이자, 서얼출신 규장각검서관이었다. 3차례 중국 사행을 다녀온 후 실사구시의 방법으로 중국에서 문물을 수입하여 산업진흥에 힘쓸 것을 주장한 북학파 실학자이다. 본관은 문화. 자는 혜보·혜풍, 호는 영재. 아버지는 진사 관이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여 1779년(정조 3) 규장각검서가 되었으며 포천·제천·양근 등의 군수를 지냈다. 외직에 있으면서도 검서의 직함을 가져 이덕무(李德懋)·박제가·서이수 등과 함께 4검서라고 불렸다. 첨지중추부사에 승진한 뒤 만년에 풍천부사를 지낸 바 있으나, 죽은 해는 명확하지 않다.

또한 발해사를 한국사의 체계 안에서 파악·연구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규장각검서로 있었기 때문에 궁중에 비치된 국내외의 자료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저서를 남겼다. 그는 한국사의 독자적인 발전과 체계화를 위해 역사연구 대상을 확대했다. 발해사를 최초로 체계화시킨 〈발해고〉에서 한반도 중심의 역사서술 입장을 벗어나서 고구려의 옛 땅인 요동과 만주 일대를 민족사의 무대로 파악했으며 고구려의 역사 전통을 강조했다. 또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를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이를 한국사의 체계 안에 포함시켜야 함을 주장했고, 신라와 발해가 병존했던 시기를 남북국시대로 파악했다. 또한 〈이십일도회고시 二十一都懷古詩〉는 단군조선에서 고려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이 세운 21개 도읍지의 전도 및 번영을 읊은 43편의 회고시로서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민족의 주체의식을 되새겨보려는 역사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경도잡지 京都雜志〉는 조선시대 서울의 생활과 풍속을 전하고 있는 민속학 연구의 필독서이다. 그 밖의 저서로 〈영재집〉·〈고운당필기 古芸堂筆記〉·〈앙엽기 盎葉記〉·〈사군지 四郡志〉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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