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酒)’ 야누스의 두 얼굴, 삶의 활력소 무아경(無我境)> 고영화(高永和)
술은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취하는 음료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마실수록 취기가 더해진다. 아시다시피 술은 기분이 좋을 때나 슬플 때나 가리지 않고 마신다. 여럿이 어울러 마시거나, 지음과 더불어 마시는 게 일반적이지만 요즘에는 ‘혼술’이 유행이라고 한다.
옛 선조들은 곤궁하게 살면서도 전원에서 주흥(酒興)을 즐기고 도를 지키겠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추구했다. 이웃과 함께 농사일도 하고 산수구경도 즐기면서.... 그리고 집안의 대소사에도 늘 잘 익은 술을 걸려 주연을 열었다. 또한 선비들은 시(詩)도 지어 부르고 노래도 흥얼거리면서 벗과 더불어 언제나 술을 마셨다. 또한 주객(酒客)들은 청주(淸酒)를 성인(聖人)이라 부르고, 탁주(濁酒)를 현인(賢人)이라 칭하며 즐겼다.
“萬壽山 萬壽蜂에 萬壽井이 잇더이다
그물로 비즌 술을 萬年酒라 하더이다
진실로 이잔 곳 자브시면 萬壽無疆하오리다“
그러나 술이 아무리 좋다 해도 무한정 마실 수는 없다. 일정한도를 넘으면 술은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불러온다. 따라서 적당히 마셔야 한다. 술을 현명하게 마시기 위한 선조들의 당부는, 술을 끊으라는 말이 아니고 술을 알맞게 줄여 마시라고 강조한다. 적당한 술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편 술은 우리에게 중요한 기호식품이자 문화유산이다. 그러니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에 가장 어울리는 것이 바로 음주(飮酒)이다.
“이 잔 잡으소서 술이 아닌 잔이로새
한무제 승로반(承露盤)에 이슬 바든 잔이로세
이 잔을 다 셔신 후면 수부무강(壽富無疆) 하리이다.“
한편 “그 사람은 풍류(風流)가 없어.”라든지 “풍류를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한다면 멋도 없고 음악도 모르고 여유도 없는 옹졸하고 감정이 메마른 틀에 박힌 꽁생원쯤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때 풍류(風流)란 자연을 가까이 하는 것, 멋이 있는 것, 음악을 아는 것, 예술에 대한 조예, 여유, 자유분방함, 즐거운 것 등 많은 뜻을 내포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선조들이 가치 있고 운치 있다고 믿었던, 소중한 멋인 ‘풍류(風流)’에는 술이 빠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술 없는 풍류는 앙꼬 없는 찐빵’인 것이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풍류는 예술에 의한 탈속성(脫俗性)과 술에 의한 무아경(無我境)이 풍류의 주요소였음을 알 수 있다.
“쟙으시오 쟙으시오 이 슐 한쟌 잡우시오
니 슐 한 쟌 쟙우시면 쳔만년니나 사오리라
이 슐이 슐이 아니라 한무졔 승노반(承露盤)에 이슬밧은 것이오니
쓰나다나 잡으시오 권헐젹에 잡우시오“
위 가사에서, 이 술을 마시면 천만년을 살 수 있다고 축수한다. 이렇게 축성된 술은 평범한 술이 아니다. 여기서 승로반(承露盤)은 이슬을 받은 그릇이기도 한데, 한(漢) 무제(武帝)가 신선술에 현혹된 나머지 불로장생을 위해 감로(甘露)를 받아 마시려고 세운 것으로, 높이가 스무 길이고 둘레가 일곱 아름이나 되었다. 구리로 만들었으며 위쪽에 선인장(仙人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권할 적에는 반드시 마시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래서 흔히들 말하길, 술은 권해야 제 맛이라고 한다. 하지만 술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과하면 해로운 법이다. 술이 그렇다. 현명하게 절제하면서 즐길 줄 안다면 술맛 또한 더욱 좋아진다.
○ 다음 한시는 선조들이 유유자적하면서 낙원을 꿈꾸며 술과 벗, 자연의 긴밀함을 노래한다.
그리고 술과 함께라면 죽은 뒤 천년의 이름보다 낫고 가난마저 즐겁다고 읊는다.
1) 산인권주[山人勸酒] 산 사람이 술을 권하다. / 정두경(鄭斗卿 1597~1673).
山人勸美酒 산 사람이 권한 술을 잔뜩 마시고
醉後長歌發 취한 뒤에 긴 노래를 불러 대누나
莫道山家貧 산속 생활 가난하다 말하지 마소
松間有明月 솔 사이에 밝은 달이 떠오른다오
조선 인조(仁祖)에서 현종(顯宗) 때까지 문신ㆍ학자이다. 본관은 온양(溫陽). 이항복(李恒福)의 문인으로,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을 지내고 대제학(大提學)에 추증되었다.
위 <산인권주(山人勸酒)>는 정두경(鄭斗卿)의 악부(樂府) 금곡가사(琴曲歌辭) 가운데 하나이다. 이 〈산인권주〉는 《동명집》 초간본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이 시에 대해 《국역 임하필기(林下筆記)》 제35권 〈벽려신지(薜荔新志)〉에는 “정동명(鄭東溟)의 이 시는 왕마힐(王摩詰)이 이따금 눈 속에 파초를 그린 것과 같은 격의 시이다.”라고 평하였다. 그리고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시의 비판에 앞장을 섰던 김창협(金昌協)조차도 ‘동명의 악부시는 한위시(漢魏詩)와 이백ㆍ두보의 시를 섭취했다.’라고 인정할 정도였으니, 동명에게 있어서 악부시야말로 그를 이해하는 첩경이 된다.
2) 술을 권하며 작별을 고하다[勸酒留別] / 조임도(趙任道 1585~1664) 오언고시(五言古詩)
眼前一杯酒 눈앞의 한 잔 술과
身後千載名 죽은 뒤 천년의 이름
爲問坐上客 앉아 계신 손님들께 묻노니
較之誰輕重 둘을 비교하면 어느 것이 나은가?
江花向人笑 강가에 핀 꽃은 사람을 보고 웃고
山月當戶明 산에 뜬 달은 문 앞을 밝히네
況有斷金友 더구나 마음이 통하는 벗이 있는데
命駕百里程 수레를 타고 백 리 길을 가라다니
淸標度白雪 맑은 그 모습 백설과 견주고
逸氣干靑萍 빼어난 기상은 청평검(名劍)을 능멸하네
提壺慰寂寞 술 단지 당겨 적막함을 위로하고
相對肝膽傾 서로 마주 앉아 간담을 터놓네
四美旣云具 네 가지 아름다운 일은 이미 갖추어졌고
二難亦已幷 어진 주인과 좋은 손님도 벌써 함께 했네
此時不快飮 이러한 때 시원하게 마시지 않으면
意氣何由平 의기가 어떻게 가라앉을까
杯行莫停手 술잔 돌아가니 손을 멈추지 말고
爛醉期忘形 몸을 잊을 때까지 거나하게 취해 보세
明朝各分散 내일 아침이면 제각기 뿔뿔이 흩어져
落落如晨星 새벽별처럼 스러져 갈 터이니
[주] 사미(四美) : 네 가지 아름다운 일, 곧 좋은 시절, 아름다운 경치, 구경하는 마음, 즐거운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양신(良辰), 상심(賞心), 미경(美景), 낙사(樂事).
● 술에 관련한 고사성어(故事成語)로는, 술은 모든 약 중에 첫째간다는 뜻으로, 술을 기려 이르는 ‘주백약지장(酒百藥之長)’, 술 주머니와 밥 푸대라는 뜻으로, 무지하고 무능하여 오로지 놀고먹기만 하는 사람을 비꼬아 이르는 ‘주낭반대(酒囊飯袋)’, 술을 마시는 사람은 장이 따로 있다는 ‘주유별장(酒有別腸)’, 술이 들어가면 혀가 나온다는 뜻으로, 술을 마시면 수다스러워진다는 ‘주입설출(酒入舌出)’, 술이 못을 이루고 고기가 수풀을 이룬다는 뜻으로, 매우 호화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이르는 ‘주지육림(酒池肉林)’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