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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포구에서 감회가 일어나....

작성자수돌이(최찬집)|작성시간26.06.23|조회수2 목록 댓글 0

 

 

<거제도 포구에서 감회가 일어나....>

 

다음 시(詩)는 해수공(海叟公) 김우정(金禹鼎)이 정유재란(1598년) 때 일본에 포로로 끌려가서 형조좌랑 강항(姜沆)을 만나

1600년 음력5월 고국으로 돌아 올 때, 거제도 장목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지은 시다.

 

① 장문포(長門浦, 장목) / 해수공(海叟公) 김우정(金禹鼎).

夜到長門浦下宿 야밤에 장문포에 도착해 거처에서 잠을 청하는데

聞君言語是鄕音 주위 소리 들으니 고국의 말이로다.

鴃舌且莫咻冡楚 오랑캐 독설로 아픈 기억, 다시는 신음소리 내지 않으리라

强挑蠻燭共論心 (다짐하며) 억지로 촛불 돋우며 서로 속내를 터놓네.

 

◯ 의병장 강항(姜沆 1567~1618)은 일본에 끌려 간지 4년 후인 1600년 5월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권솔 10여명과 다른 포로 30여명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때 김우정(金禹鼎)선생도 함께 돌아왔다. 이 때 장문포에 도착한 포로 중에는, 동래 출신 김우정(金禹鼎), 하동 출신 강사준(姜士俊) 강천추(姜天樞) 정창세(鄭昌世), 함양 출신 박여집(朴汝楫), 태안 출신 전시습(全時習), 무안 출신 서경춘(徐景春) 등이 있었다.

밤이 깊어 도착한 거제시 장목의 임시 거처에서 여럿이 함께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는데 밖에서 들려오는 거제도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며, 아~ 여기가 우리나라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피곤한 몸이지만 꺼져가는 촛불을 다시 돋우면서 함께 왔던 분들과 이제야 그간의 어려웠던 일들을 터놓고, 밤새 마음껏 회포를 푸는 장면이 떠오르는 칠언절구이다.

 

[주] 김우정(金禹鼎) : 1551(명종 6)년 출생, 호는 해수(海叟), 아버지는 생원 국평(國平), 해수(海叟) 김공(金公)의 휘(諱)는 우정(禹鼎),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동래에서 거주했었다.

 

② 거제 나루터에서[巨濟津上] 홍면숙과 더불어 서로 바라보며 즉시 짓는다.(與洪勉叔相見卽事) / 김지수(金地粹)

海上相逢罷 해상에서 서로 만나 헤어지는데

江蘺獨自春 강리(江蘺)는 저 홀로 봄이구나.

年華未宜客 세월은 나그네를 시리게 하여

物色重愁人 봄의 빛깔에도 더욱 시름겹도다.

暮雨來山鬼 저물녘 비에 산속 귀신 돌아오고,

蠻家祭水神 변방의 집에선 물 신(神)께 제사를 지낸다.

誰憐瘴癘地 누가 장려(瘴癘)의 땅을 가련히 여길까?

多病一孤身 외로운 이내 몸, 병은 잦은지..

 

[주1] 강리(江蘺) : 굴원이 지은 이소경(離騷經)에 “강리와 벽지로 옷을 해 입고, 가을 난초 엮어서 허리에 둘렀노라" 라는 구절이 있다. 강리와 벽지는 모두 향초(香草)인데, 이것을 입고 패(佩)를 만드는 것을 군자(君子)가 아름다운 덕을 닦는 데에 비유한 것이다.

[주2] 장려(瘴癘) : 예전 사람들이 더운 濕氣(습기)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생긴다고 여긴 병. 보통 虐疾(학질)이라 부른 감염성 질병인 '말라리아'가 장려이다. 예전 사람들은 장려와 학질이 말라리아임을 모르고 서로 다른 병이라 생각했다.

[주3] 김지수(金地粹) : 1585년(선조 18)∼1639년(인조 17). 조선 중기의 문신.

 

③ 술에 취해 청송당을 지나며[醉過聽松堂] 구름 걷힌 거제의 초당에서(申巨濟霽雲草堂) / 정운희(丁運煕)

野外尋春步 들 밖으로 봄나들이 갔다가

山中帶醉歸 산 중에서 취기 띠어 돌아온다.

溪橋棲鳥盡 시냇가 다리에 살던 새도 사라지고

風露滿荷衣 바람과 이슬이 하의 옷깃 젖히는구나.

 

[주1] 荷衣(하의) : 기하의(芰荷衣). 마름이나 연잎을 결어 만든 옷. 세속을 초월한 사람이 입는 옷.

[주2] 정운희(丁運煕)1566(명종 21)∼1635(인조 13).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지회(之會), 호는 고주(孤舟). 아버지는 정호(丁浩)이며, 어머니는 고성채씨(固城蔡氏)로 채희옥(蔡希玉)의 딸이다. 1589년(선조 22)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이 명량(鳴梁)에서 싸울 때 백진남(白振南)과 함께 군량미 지원에 힘쓰는 한편 의병을 모집, 이순신과 협력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1612년(광해군 4) 명나라 절강총병(浙江總兵)이라는 자가 조선이 일본과 내통, 명나라를 치려는 음모가 있다고 신종(神宗)에게 무고하여 이를 조사하기 위하여 온 황응양(黃應暘)에게 서찰을 보내어 해명하였다. 그 뒤 흥서봉(洪瑞鳳)의 천거로 1626년(인조 4) 강릉참봉(康陵參奉)에 제수되었다가 만기가 되어 귀향,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경사(經史)를 깊이 연구하였으며, 고문(古文)과 변려문(騈儷文)에 능하였다. 『공자가어(孔子家語)』·『가례』 및 기타 여러 경적을 간행하기 위한 책판의 조조(彫造)에도 공적이 많았다. 저서로는 『고주집(孤舟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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