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 소곡(素谷) 윤광소(尹光紹)>
윤광소(尹光紹)는 1708(숙종 34) ~ 1783(정조 10),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本貫) 파평(坡平), 자는 치승(稚承), 호는 소곡(素谷), 이조판서 동규(東奎)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신창맹씨(新昌孟氏)로 숙장(淑章)의 딸이다. 19세 때 생원시에 급제하고 1739년(영조 15) 의릉참봉(懿陵參奉)을 제수 받았다. 1740년(영조 16)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1744년(영조 20)에 시강원 겸 설서가 되었다. 같은 해에 홍문관 수찬을 제수방아 이조 판서(吏曹判書)인 이종성(李宗城)과 같이『 속오례의(續五禮儀) 』를 수찬했다. 이때 그는 개원례(開元禮)에 의거하여 원본을 개정하는 한편, 그 차이점을 상세히 밝히고 문구를 교감하여 별도로『 고이(考異) 』를 첨가하기도 하였는데 그뒤 예(禮)에 밝다고 인정받아 여러 편찬사업에 참가하였다. 뒤에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으며, 이어 교리(校理) · 사간(司諫) · 필선(弼善) · 승지(承旨) · 공조참의(工曹參議) · 이산 부사(理山府使) · 병조 참판(兵曹參判) 등을 지냈다. 1755년 윤 지(尹 志)의 난에 관련되어 을해옥사(乙亥獄事 - 나주괘서사건) 때 투옥되었고 1776년(정조 즉위) 부사직(副司直)으로 정후겸(鄭厚謙)의 일파로 몰려 거제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무고함이 밝혀져 복직되었다. 1786년 자헌대부지돈녕부사(資憲大夫知敦寧府事)가 되어 기로소에 들어갔다. 저서로는 『 소곡유고 』22권이 있고 편서로는 『 명재연보(明齋年譜) 』가 있다.
아래 시는 윤광소(尹光紹)선생께서 1776년 거제시 거제면에 유배 와서 지은 한시(漢詩)다. 세상을 호령하는 높은 벼슬을 했는데(허리에 찬 패옥) 문득 돌아보니 지금 낯선 타향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다. 꿈속에서 가끔, 패옥소리 듣고는 놀라 잠에서 깬다. 유배지 뒷산 수정봉에 올라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 거제도 경치를 구경하고 유람하는 것도 성은이리라" 라며 겸연쩍어하는 모습이 눈에 서린다. 아마도 임금을 원망 했으리라..
1) 등수정봉(登水晶峯) 수정봉에 올라 (거제시 반곡서원 뒷산).
世刦歸來一命存 세상을 으르다 목숨하나 부지하고 돌아 온 이곳에,
瓊雷昔事梦驚聞 허리에 찬 패옥소리 예전 일인데도 꿈에서 듣고 놀라 깼다네
水晶峯上瞻涯海 수정봉 위에서 바닷가를 바라 보며 생각건대
此地同遊亦聖恩 "이 지방에서 함께 노니는 것도 성은이리라".
/ 거제는 진도와 한 바다로 서로 통한다. 손가락을 가리키며 모두 정신이 팔려있다(巨濟,珍島一海相通 俱入指点)
2) 한백남 방문(訪韓伯男). 객주무한정(客酒無限情) 한없는 정이 담긴 객주.
日下柴扉滄海明 태양아래 사립문에 창해가 드러나니
漁村處處暮煙生 어촌 이곳저곳 저녁연기 피누나.
主人有酒勸歸客 술 가진 주인이 나그네에게 권하는
垂柳落花無限情 한없는 정(情)에, 수양버들 꽃잎 흩뿌리네.
넓고 푸른 바다가 사립문 사이로 보이고 저녁 밥 짓는 연기가 거제어촌마을을 뒤덮고 있는 황혼 무렵에 천 리 멀리서 손님이 찾아왔다.
때마침 주인장이 손님 왔다고 가진 술을 내어 놓으니 온 동네 수양버들 꽃잎이 함박눈처럼 흩날리며 반긴다.
봄날 거제어촌의 한가로운 저녁풍경과 후한 인심을 노래한 이 시(詩)는 칠언절구로 운(韻)은 ’庚’이다.
3) 우음(偶吟) 우연히 읊다. / 윤광소(尹光紹 1708~1783)
海棠花落花開雨 해당화 피고 지는 빗속에
漁釣人來人去天 어부는 하늘아래 오고간다.
獨閉柴門君不到 홀로 여닫는 사립문인데 그대 오지 않으니
坐看庭下草芊芊 앉아 바라본 뜰아래 풀만 무성하네.
村逕煙常碧 시골길 안개는 늘 푸르고
庭前草不除 뜰 앞의 풀을 뽑지 않아도
故人今始至 옛 친구 이제야 도착하니
童子爲開廬 동자가 오두막집 문을 열고나.
위 시의 해당화(海棠花)는 동백꽃을 일컫는 말이다. 양력 4월 초순경 저 멀리 바다에는 어부들이 바삐 오고간다. 보고픈 그대 친구여~ 온다고 기별 넣고 어찌 오질 않는고? 무성한 풀 뽑지 않음은 천지자연이 되어가는 대로 따르리라. 기다리는 그대 오지 않아도 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기대와 체념 속에 한탄의 아쉬움이 섞여 뒤숭숭할 때, 마침 친구가 오두막집 사립문을 열고 들어온다.
◯ 위 글이 수록된 소곡선생유고(素谷先生遺稿)는 1855년(철종 6) 경 간행, "18세기 문신 윤광소(尹光紹,1708~1786)의 시문집이다. 저자가 직접 편차(編次)하였고, 사후 후손이 간행하려 했으나 재력이 부족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1855년(철종 6) 5대손 윤교병(尹喬炳)과 그의 족형 윤혜병(族兄 尹惠炳)이 함께 교정하여 간행하였다. 저자의 부친은 윤동규(尹東奎)이며 어머니는 맹숙장(孟淑章)의 딸이다. 이종성(李宗城)과 함께 《속오례의(續五禮儀)》를 편찬하였고, 이때 〈고리(考異)〉를 작성하여 예(禮)에 밝다고 인정받았다. 편저로는 《명재선생윤증년보(明齋先生尹拯年譜)》가 있다. 문집의 내용 가운데 권14의 〈변무록(辨誣錄)〉은 성혼 윤선거 윤증(成渾ㆍ尹宣擧ㆍ尹拯)의 무고(誣告)를 논핵한 글로 소론(少論)의 입장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글이다. 본서는 윤광소의 학문은 물론 노소 분기(老少 分岐) 등 정치사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