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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호부 승격, 거제유학 신수오 상소문(巨濟幼學辛受五)

작성자수돌이(최찬집)|작성시간26.06.23|조회수1 목록 댓글 0

 

<거제도호부 승격, 거제유학 신수오 상소문(巨濟幼學辛受五)>

 

(1) 신수오(辛受五) 선생의 기록.

 

① 먼저 거제선비 신수오(辛受五)선생의 옛 사료를 살펴보면, ① 승정원일기 상소기록(1707년), ② 경상도 유학 성명 기록(1748년), ③ 거제반곡서원 창건 기록으로 나눌 수가 있다.

송시열(宋時烈)선생이 그의 나이 73세 때인 1679년 3월 25일에서 1680년 5월15일까지 거제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이때 그의 거제제자 중에 한분인 신수오 선생의 나이가 10대 초반쯤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죽천 김진규 선생이 1689년에서 1694년까지 거제에서 유학을 강학하셨는데 반곡서원을 창건한 윤도원(尹道元), 옥삼헌(玉三獻), 김일채(金一彩), 윤명한(尹命翰), 허유일(許愈一), 신수오(辛受五)가 그의 제자이다. 그러므로 신수오 선생은 1670년 전후에 태어나서 적어도 1748년까지는 생존하여 장수하신 것으로 판단된다.

 

② 거제의 신씨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거제토착 '아주 신씨(鵝洲 申氏)'와 조선전기에 입도한 '영산·영월 신씨'(莘氏)로 나눌 수가 있다. 그 중에 '영산·영월 신씨'(莘氏)의 시조(始祖)는 고려 인종(仁宗,재위1122년~1146년)때 재상(宰相)인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를 지낸 신경(辛鏡)이다. 1952년 임진왜란(壬辰倭亂)때 거제의장(巨濟義將) 영산 신씨 신응수(靈山 辛應壽)는 고현성 주장(主將)으로써 전투에 임하였고 신응수는 국사봉 굴속에 숨어서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왜병을 습격하였다. 하청(河淸)장터에서 분탕질하던 왜군을 습격하여 섬멸하였으니 이를 설욕전이라 전하며 이 당시 넘던 고개가 연초면 덕치(德峙)고개라 전한다. [주] 거제3장사는 신응수(辛應壽), 윤영상(尹榮祥), 김희진(金希璡)이다.

 

③ 임진왜란 후, 거제도는 해안 방위의 절대적인 필요성에 의해 숙종30년 1704년 2월19일~ 1705년 12월까지 거제현령을 역임한 변진영 부사를 승진 파견한다. 1711년 5월25일 거제에 도착한 변진영은 거제 초대 부사를 맡게 된다. 그러나 거제도호부로 승격된 일은 관찰사의 장계 이전, 1707년 거제 유학 신수오(辛受五)의 상소에 의해, 조정에서 오랜 검토 후에 내린 일이며, 당시 우리 거제민의 희망이 이루어진 역사적 결과였다. 아래 글은 거제유학 신수오의 상소문과 숙종의 하명을 소개한다. 당시 거제현에서 거제부로 승격되는 과정과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④ 또한 승정원일기에는 '거제부 승격' 사유 '신수오' 상소문 기록이 2건 전해온다. ① 숙종 33년 5월 26일, 1707년, "거제현(巨濟縣)은 동래(東萊)와 한산(閑山)의 사이에 있고 내양(內洋)으로 들어오는 길목이므로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방어사(防禦使)를 두어 8진(八鎭)을 통괄하게 해야 한다는 신수오(辛受五)의 상소". ② 숙종 34년(1708) 2월 3일 승정원일기에 "거제(巨濟) 유학(幼學) 신수오(辛受五)가 상소하여 동남 해상 방어 형편을 논하고, 거제현을 방어사(防禦使)로 승격하여 주도록 청하였다. 이곳을 승격시켜 방어사 병영을 두는 일은 중란(重難)하므로 지금 가볍게 의론하기 어렵다."하였다.

 

(2) 신수오(辛受五) 상소문

거제 유학 신수오(幼學辛受五)가 상소를 올려 말하길, "엎드려 아룁니다. 신은 바다 섬의 마을 백성입니다. 세상에 고루하고 식견이 없어 촌스러우나, 물리치지 마시고 이에 임금님의 현명한 판단 있으시길 기대하옵니다. 비록 시골 농부가 드리는 글이지만 물리치지 마시길 바라며,, 정성을 다해 올립니다. 재주와 지혜가 용렬하며 듣고 본 경험이 단지 궁벽하나 진실로 보고들은 것을 빠뜨릴 수 없어 소신의 마음속의 뜻을 (헤아려) 정성으로 아룁니다. 이에 목격한 것을 마음깊이 헤아려 보았습니다. 정확히 부족한 부분을 준비하고 나라를 지키는데 한 부분을 보태어, 국토방어에 이로움이 있사옵니다. 곧 마음속에서, 나의 어리석고 주제넘음을 참기 어렵더라도 이에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한 말씀 구별하여 올립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임금님의 밝은 지혜로 헤아려 결정해 주소서. 신이 삼가 생각하니, 우리나라 남쪽 변방에는 왜구와 서로 상접해 있어 돛단배가 갑자기 나타나도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바람을 따라 향해 나아가며, 연해가 수천여리나 됩니다. 아닌게아니라, 병사가 지키는 곳인 부산과 동래는 대마도와 서로 마주하고 있어 육지로 상륙하는 요처의 길목이라, 적의 세력을 뒤쫓게만 됩니다. 그런데 만약에 내해로 그 배가 달아나면 호남으로 침노하여 들어가게 되어 서쪽 바다로 달려가야 합니다. 즉 거제는 그 입구를 올가미로 묶게 하는 요해처입니다. 한산도와 통영은 그 다음이며, 동래는 (그 길목을) 지킬 수 없습니다. 천리가 산만하여 육지를 방어하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거제를 지키지 않으면 곧, 양 호남에 출몰하여 바다를 지키기 어렵습니다. 임진의 난 때, 적은 육지 동래를 점령하고 바다섬 거제를 노략질했으며, 저돌적으로 마음대로 농락했습니다. 다시 바로잡기가 불가했습니다. 다행이 버틴 충무공신 이순신이 한산도에서 한번 적을 누르고 재차 명량에서 적을 제압했습니다. 적으로 하여금 수군과 육군이 아울러 만나지 못하여 중흥의 업적이 되었고 이에 그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명량대첩은 다행이도 이순신의 성공적인 작전이었습니다. 적이 이미 깊이 들어와 여러 진영이 산산이 흩어지고 고립된 군사가 혈전을 벌이여 아무리 하여도 목숨을 건질 수 없을 때, 가까스로 승리했습니다. 범과 같이 호령하며 북을 치며 나아감이 이미 한산도대첩과 같지 않았으며 침착하고 조용히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곤경에 빠진 적군은 끝내 죽음을 맞이했으며 화살과 돌팔매에 생명이 다하였습니다. 이는 지혜의 힘뿐만 아니라 전후가 다른 사실입니다. 참으로 어렵고도 쉬운 일입니다. 깊고 얕음에도 구별이 있으니 고로 당연히 때가 있는 것입니다. 김여물(임진난 때 전사)이 옥사에 있을 때, 적을 막기 위한 계책을 말하길, "우리나라는 외양에서 적을 막아 능히 방어할 수 있다. 설령 적이 한번 들어와도 죽음의 땅이 된다는, 어찌할 수 없는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이와 같이 자세하고 시급한 일을 말함이며, 선비의 오랜 생각입니다. 그런즉, 적으로 하여금 움직일 수 없는 법칙이 된다는 것입니다. 동래 거제를 지키는 방어에는 이것이 무시할 수 없는 것이며, 명백한 것입니다. 조정에서는 임진왜란 수륙의 성패를 거울삼아 그 행운을 소홀이 말아야 하며, 요행은 없다는 이유입니다. 미리 위험한 일을 방비하고 오로지 동래부에서 주의 경계해야합니다. 그리고 거제를 이같이 예사롭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특히 적의 장기를 알지 못하니 여러 전선을 최고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맞이한 적은 수로가 가장 중요하고 긴요할 것입니다. 대략 거제 한 섬은 동래와 한산도 사이에 끼여 있어, 적이 수로를 통하여 내해로 들어온다고 해도 필히 그 전에 앞서 옛 길로 지나가야하니 단지 거제에 우뚝 솟은 주진으로 하여금 망루에서 지켜보며 충분히 스스로 지킬 수 있으며 전함들을 충분히 요격할 수 있습니다. 적은 반드시 화살을 쏠 수도 없고 돌볼 수도 없어 바로 내지를 침범한다면 한산도 통영의 수비군이 진압합니다. 그러하여 적으로 하여금 이미 움직일 수 없게 만듭니다. 거제의 방어 역할은, 더욱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그러나 거제는 하나의 현령 관직일 뿐, 섬 하나를 빙 둘러 배치된 (거제도 수군 진영)8진에 한가한 벼슬이 많아 권력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주객이 바뀌어 체통이 어지러워 온갖 실마리로 백성의 여러 물건을 빼앗고 여러 갈래로 명령을 호령하니 섬 백성은 평상시에 더욱이 그 삶이 편안할 수 없습니다. 위태로움에 이르게 되었으며 당연히 어지럽고, 또한 그 희망을 우두머리들이 막아 버리니 아비와 형이 (가족을)지키겠습니까? 신이 청컨대, 조목조목 그 부족함을 진술하였으며 또한 그 폐단이 작은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신이 진실로 세세히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큰일이기도 합니다. 곧 이제, 소위 한가한 벼슬이 많아 앞서 지나가지도 못하니 권력을 구별하여 주소서. 주객이 바뀌어 체통이 어지럽습니다. 온갖 실마리로 백성의 여러 물건을 빼앗고 여러 갈래 명령으로 호령하니, 이는 여러 가지 어지러운 일들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권력을 나누면 공격과 수비가 마음대로 안 되고 체통이 서질 않습니다. 한가한 벼슬이 많으면 이지러지는 이치입니다. 온갖 실마리로 백성의 여러 물건을 빼앗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임금이 전교하기를(傳曰, 一國三公), 한 나라에 삼공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구구한 의견을 제시하여 누구의 말을 좇아야 할지 모른다 하는구나. 이에 누가 나의 명령을 오로지 따르겠느냐. 형편상, 관할(통솔)하는 곳이 없다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이 매우 급하니, 변진영(거제 초대부사)에게 2번째로 거제 관직을 맡아 이익과 손해를 속 깊게 헤아려라. 일반 여론을 잘 듣고 모아서 돌아가 하나로 된 상소를 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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