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사대부 장사꾼 권국진과 송별하며 지은 서사적 노래(送權國珍歌)> 고영화(高永和)
이번에 소개하는 <권국진가(送權國珍歌)>는 1748년(영조 24)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소문난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 1712~1775)가 몰락한 사대부 권국진(權國珍)과 송별하며 지은 한시(漢詩)이다. 숙종 이후 당쟁으로 몰락한 남인계 양반들의 불우하였던 처지를 반영하면서 그러한 현실에 대한 작자의 비판적 의식을 담은 한시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작자 신광수의 문집 『석북집(石北集)』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은 모두 5수(首)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수는 칠언고시 33구(句), 제2·3수는 칠언율시, 제4수는 칠언절구, 제5수는 오언절구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제1수가 총 33구 231자로서 가장 길고 주된 작품이다. 1748년 동짓날, 작자의 친구인 권국진(權國珍)이 찾아와 남쪽지방으로 떠난다고 작별을 고하자 지어준 시이다.
이 시는 송별시(送別詩) 형식으로, 원래 5수(首)로 되어 있으나 그중에 제1수만 서사적 내용을 담았다. 작품을 지은 때가 영조 25년(1748) 동지(冬至)일로 밝혀져 있는데 바로 작중의 현재다. 그래서 송별하는 시에서 당사자 권국진(權國珍)의 행적과 함께 인간상을 서사적 필치로 그렸다. 사대부의 신분을 타고났던 사람이 마침내 행상으로 나서게 되고, 그리하여 장사치들과 너나들이 하는 사이로 발전한 사실이 흥미롭다. 그리고 노비들의 속전을 받으러 가는 일은 야담의 화제로 흔히 등장하지만 서사시에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이 시는 양반계급의 분화현상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옛날에는 수명도 짧고 교통과 통신이 불편하고 사고도 많았던 관계로 인해, 한 번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가까운 벗이나 지인이 먼 길을 떠나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했다. 그래서 사대부들 사이에 송별시(送別詩)가 많이 전해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작중 주인공 권국진(權國珍)은 원래 명문 사대부의 후손이었으나 당쟁으로 몰락하여 각 지방으로 행상을 다니는 인물인데, 작자는 궁한 신세에 처한 그에 대한 강한 연민의 정(情)을 주된 정조(情操)로 하여 전편에 걸쳐 표출하고 있다. 권국진의 5대조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권위(權偉)이고 4대조는 호조판서 권대재(權大載)이며 증조는 종2품 병조참판 권해(權瑎 1639~1704)이다. 그러나 집안이 숙종 때 당쟁에서 밀려난 이후부터 가세는 기울고 그의 집안이 남인 일파인 허목의 청남(淸南)인이라는 이유로 인해, 후손들은 조정에 출사가 제한되었고 더 이상 세상에 나아가질 못해 곤궁한 처지에 내몰렸다.
○ 저자 석북(石北) 신광수(申光洙 1712~1775)는 조선후기 시인이자 문장가로, 늦은 나이인 52세 이후부터 관료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연천현감, 영월부사, 우승지를 지낸 관료이다. 그러나 그는 인생 초중반기까지는 궁핍과 빈곤 속에서 전국을 유람하며, 민중의 애환과 풍속을 시로써 절실하게 노래했다. 그런 후에 시골에서 칩거생활을 했으나, 갈수록 궁핍해져서 가산과 노복들을 청산하고 땅을 빌려 손수 농사를 지었다. 특히 여행의 경험을 통해서 아름다운 자연과 향토의 풍물에 대한 애착을 느끼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민중의 애환을 그린 그의 저서 〈석북집(石北集)〉은 뛰어난 작품집으로 알려져 있다.
◉ 이 글 3수(首)에서 언급한 바, 작중의 주인공 권국진(權國珍)이 1747년 잠시 함께 다녔던 승려화가는 유뢰(幽賴)였다. 유뢰는 조선후기 「설경산수도」, 「임심옥루도」, 「송림산수도」 등의 작품을 그린 서화(書畵)를 겸비한 화가였다. 권국진은 전국을 떠돌며 장사를 하면서도 한양에 거주하던 허필(許佖, 학자 서화가)과 승려 유뢰(幽賴), 길보(吉甫), 소재(素齋), 신광수(申光洙), 강세황(姜世晃), 이인상(李麟祥) 등 당대 최고의 시인묵객 선비들과 교유하였던 듯하다.
게다가 숙종 17(1691)년 8월 열린 7명 부인들의 수연(壽宴)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칠태부인경수연도(七太夫人慶壽宴圖)>의 마지막 서문에는 권해의 증손 권국진(權國珍)의 부탁으로 당대의 유명한 문인화가이자 서예가인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이 1745년 추서(追書)하였음이 밝혀져 있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 비록 권국진이 몰락한 남인 양반 상인이기는 하나 사대부 명문가 후손으로, 당대의 뛰어난 소인묵객(騷人墨客)들과의 교류 또한 빈번히 이어갔음을 알 수 있다.
● 이 5수(首)의 송별시(送別詩)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칠언고시(七言古詩) 33구(句)의
제1수(其一)에서는 벌열층(閥閱層) 자제의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과 몰락양반의 빈한하고 초라한 몰골을 대조시키면서,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사대부 신분을 버린 채 평민들과 더불어 상업에 종사하고 있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작중의 주인공 권국진(權國珍)은 옛날 재상(卿相)이었던 권해(權瑎 1639~1704)의 증손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몰락한 남인 집안의 사대부로 현재 머슴 한명과 말 한 마리와 함께 다니며 장사를 한다. 사대부 집안에 태어나 나이 20살에 집안이 풍지박산이 나서 넋 나간 사람이 되었다가, 가족을 위해 남해 바닷가를 떠돌며 물고기를 팔고 소금을 팔아 어버이를 봉양한다. 이후 서해에서 동래까지 돛을 걸고 배를 몰아 일본의 물건까지 팔았다. 마침내 나이 30살이 되도록 장사꾼으로 떠도니 완전히 남아의 삶이 바뀌었다. 문경세재와 섬진강까지 드나들면서 범과 표범과 강인한 도적을 물리치며 올해도 늘 그렇듯 말을 타고 떠나간다.
제2수(其二)는 ‘寒’ 운(韻)의 칠언율시로, 올해도 변함없이 여기저기 다니다보니 벌써 한 해가 저물어간다. 충청도와 영남 지방을 오고가며 처자식과 부보님이 거주하는 두 곳의 살림을 꾸려나가자니 세상살이 괴롭고 인정(人情)도 예전 같지 않아 장사하기도 쉽지 않다.
제3수(其三)는 ‘陽’ 운(韻)의 칠언율시로, 장사꾼이 늘 그렇듯 타향을 향해 정처 없는 발걸음을 옮긴다. 지난해엔 아홉 고을로 화가를 데리고 다녔고 배를 타고 생선 장사를 하기도 했다. 돈이 떨어지면 곤궁한 처지로 내몰리고 이윤을 챙기는 경박한 풍속에 흰머리만 어수선하다. 인간세상의 시비(是非)에서 언제 빠져 나오려나.
제4수(其四)는 ‘麻’ 운(韻)의 칠언절구로, 저자 신광수(申光洙 1712~1775)가 1748년 북풍이 몰아치는 눈 내린 동지(冬至)날에 영남으로 떠나는 장사꾼 권진국(權國珍)과 송별하며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 없는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시이다.
제5수(其五)는 ‘蕭’ 운(韻)의 오언절구로, 세밑의 동짓날, 천 리 먼 영남으로 떠나는 벗과 헤어지는 이별의 아픔을 그려내었다. 떠나는 순간 서로 말도 없이 묵묵히 쳐다보다가 시인으로서 두보(杜甫)의 초당(草堂)을 인용해 자신의 마음을 담아 내었다.
<사대부 상인 권국진을 송별하는 노래(送權國珍歌)> 신광수(申光洙 1712~1775)
1) 기일(其一) 사대부 장사꾼 권국진의 상인행로
歲暮北風天雨雪 세밑에 북풍 불고 하늘엔 눈 내려
山橋野店行人絶 산 다리 주점엔 행인 끊겼네.
長安子弟身重裘 서울의 자제들은 두꺼운 가죽옷 입고
洪爐密室苦稱熱 화로 있는 밀실에서 괴로이 ‘덥다’고 말하네.
出入㺚馬高於屋 달마로 출입하는데 집보다 높고
銀鞍照市電光掣 은색 안장이 저자를 비추니 빛들이 억눌리네.
此時權生破衣裳 이때에 권생(권국진)이 해진 옷을 입고
一馬一奴鞭百折 한 말과 한 머슴으로, 구불길 채찍질하며 가네.
告我將見南諸侯 나에게 말하네. “장차 남쪽 제후를 만나서
贖奴持錢償逋物 머슴 풀어주고 돈 가지고 포물(逋物) 변상하려네.”
權生舊日卿相孫 권생(권국진)은 옛날에 재상(卿相)의 자손으로
少年落落稱俊逸 어렸을 땐 뜻이 커서 준걸하다 일컬어졌네.
嗚呼時命不謀身 아! 당시의 운명이 자신을 도모하질 못해
二十遂爲落魄人 스무 살에 마침내 넋 나간 사람이 되었네.
五年流離南海上 5년을 남해 바닷가를 흘러 다니며
賣魚販塩勤養親 물고기 팔고 소금 팔아 어버이를 부지런히 봉양했네.
驅馬西關蹋黃塵 말을 서쪽 관문으로 몰아 황사를 차면서
掛席東萊窺赤日 동래에서 돛을 걸고 일본을 엿보았네.
江湖估客有時逢 강호의 장사꾼과 이따금 만나면
半是爾汝相促膝 한창 너나하면서 서로 무릎을 맞대었지.
秖今年紀三十餘 다만 이제 나이가 서른이니
男兒生理轉蕭瑟 남아의 삶이 뒤바뀌어 쓸쓸해졌네.
父母不飽妻子啼 부모는 배불리 먹지 않고 처자는 울어
生乎雖賢亦奚爲 삶이야 비록 낫다 해도 또한 어이할 거나?
窮塗惘然東南行 곤궁한 길에서 망연히 동남쪽으로 가러
出門寒日照征衣 문을 나서니 차가운 해가 나그네 옷을 비추네.
鳥嶺蟾江路不盡 새재와 섬진강 가는 길이 끝이 없으니
虎豹强盜晝敢窺 범과 표범과 강인한 도적이 대낮에 감히 엿본다네.
權生咫尺視四海 권생(權生)은 사해 보길 지척처럼 하니
馬上冥冥鴻鵠飛 말 위에는 아득히 기러기와 고니 난다네.
黃金得失那可論 황금의 얻고 잃음 어찌 논하랴?
不知者笑知者悲 알지 못하는 이는 웃고 아는 이는 슬퍼하네.
權生歲暮欲何之 권생은 세밑에 어딜 가려하는가?
[주1] 속노(贖奴) : 노비를 면제시켜준다는 뜻이다. 자기 집의 문서에 올라 있는 노비를 양인으로 풀어주는 조건으로 돈을 받아, 그 돈으로 빚을 갚겠다는 것이다. 이때 받는 돈을 속전(贖錢)이라 한다.
[주2] 포물(逋物) : 체납한 물건
[주3] 낙락(落落) : 뜻이 커서 세상과 서로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즉 정도를 걷는 것이 세상과 부합되지 않음을 뜻하는 말이다.
2) 기이(其二)
高陽狂客歲將闌 고양(高陽) 땅의 미친 나그네로 한해가 저무는데
走馬南行行路難 말을 타고 남쪽으로 가니 세상살이 험하고 어렵구나.
兩地一身貧父母 한 몸이 두 지역에서 가난한 부모를 모시고
靑雲紫閣舊衣冠 푸른 구름 은자가 사는 곳에서 옛 의관을 입었네.
湖中共鴈明年至 충청도에서 기러기와 함께하다 다음 해가 되었는데
嶺外聞鷄數郡寒 영남 밖에서 닭소리 들으며 몇 고을을 쓸쓸히 다녔더냐.
到處人情非昔日 가는 곳마다 인정(人情)이 지난날 같지 않으니
經過且莫滯征鞍 지나갈 때마다 가던 말이 지체된다 말하지 마시게.
[주1] 고양광객(高陽狂客) : 고양주도(高陽酒徒) 고양 땅의 술꾼이라는 말. 미치광이
[주2] 인정(人情) : 남을 동정하고 이해하는 따뜻한 마음. 본래의 욕망
[주3] 정안(征鞍) : 나그네의 안장. 전쟁터로 나가는 말. 여행하는 사람의 안장을 지운 말
3) 기삼(其三)
憐君失意向他鄕 가련한 그대는 타향을 향해가며 실의에 빠지고
知己寥寥狂更狂 쓸쓸한 지기(知己)는 미친 듯 정처 없이 떠도네.
九郡前年携畫客 지난해엔 아홉 고을로 화가를 데리고 다녔고
孤舟萬里夢漁商 외딴 배를 타고 만 리를 다니며 꿈인 듯 생선 장사를 했다.
窮途只爲黃金盡 그러나 돈을 다 소진하고 나니 곤궁한 처지가 되었는데
薄俗還敎白髮忙 오히려 경박한 풍속에 흰머리만 어수선하네.
湖海歸來元一笑 바다와 호수로 돌아오니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此身那免是非塲 이 몸은 시비(是非) 장(塲)에서 어떻게 벗어나리까.
4) 기사(其四)
一夜山陰雪作花 하룻밤새 산음(山陰)에 내린 눈이 꽃 같고
北風吹滿戴公家 대공(戴公) 집에 북풍이 불어 가득하다.
嶺南來日君千里 내일은 영남 천리 길 가야하니
何處寒梅別恨賖 어드메 찬 매화 아래서 이별을 한탄할까.
[주1] 산음(山陰) : 중국의 지명. 산음승흥(山陰乘興)은 산음에 흥이 일어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주2] 대공(戴公) : 대안도(戴安道). 이름은 규(逵). 진대(晋代) 사람. 박학하고 서화(書畵)를 잘 하였다. 산음에 살았음.
5) 기오(其五)
歲暮不可別 세모에 작별을 어이할까
嶺外劇蕭蕭 영남은 아득하고 쓸쓸하여라.
臨行兩無語 떠나는 마당에 서로 말도 없이
南塘萬里橋 남녁의 연못, 만 리 먼 다리.
[주] 남당만리교(南塘萬里橋) : 영남의 특정 위치를 표현한 것이나 두보(杜甫)의 완화초당(浣花草堂)이 만리교에 있었으므로 상징적인 의미로 씀. 두보가 50세 무렵 지금의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에 완화초당(浣花草堂)을 짓고 살았다. 완화는 이 지역의 맑은 시내 완화계(浣花溪)의 약칭이다. 남들은 완화초당을 두보초당(杜甫草堂)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