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일신수필(馹汛隨筆) 거제(車制)

작성자수돌이(최찬집)|작성시간19.08.19|조회수143 목록 댓글 0


열하일기 일신수필(馹汛隨筆) 거제(車制)

 

타는 수레는 태평차(太平車)라 한다. 바퀴 높이가 팔꿈치에 닿으며 바퀴마다 살이 서른 개인데, 대추나무로 둥글게 테를 메우고 쇳조각과 쇠못을 온 바퀴에 입혔다. 그 위에는 둥근 방을 만들어 세 사람이 들 만하다. 방에는 푸른 베 혹은 공단이나 우단으로 휘장을 치고 더러는 주렴을 드리워 은 단추로 여닫게 되었다. 좌우에는 파리(玻璃)를 붙여서 창을 내고, 앞에 널판을 가로 놓아서 마부가 앉게 되었으며, 뒤에도 역시 하인이 앉게 마련이다. 나귀 한 마리가 끌고 갈 수 있으나 먼 길을 가려면 말이나 노새 수를 더 늘린다.

짐을 싣는 것은 대차(大車)라 한다. 바퀴 높이가 태평차보다 조금 덜한 듯하며 바퀴 살은 입(廿) 자의 모양으로 되었고, 싣는 수량은 8백 근으로 정하여 말 두 필을 메우고, 8백 근이 넘을 경우에는 짐을 보아서 말을 늘린다. 짐 위에는 삿자리로 방을 꾸미되 마치 배 안같이 하여 그 속에서 자고 눕게 되어 있다. 대체로 말 여섯 필이 끄는데 수레 밑에 커다란 왕방울을 달고 말 목에도 조그만 방울 수백 개를 둘러서 그 댕그랑댕그랑 하는 소리로 밤을 경계한다. 태평차는 겉 바퀴로 돌며, 대차는 속 바퀴로 돈다. 그리고 쌍 바퀴가 똑같이 둥글므로 고루 돌아가고 빨리 달릴 수 있다. 멍에 밑에 매는 말은 제일 튼튼한 말이나 건실한 나귀를 사용하며, 수레 멍에를 쓰지 않고 조그만 나무 안장을 만들어 가죽끈이나 튼튼한 바로 멍에 머리에 얽어매어서 말을 달았다. 멍에 밑에 들지 않은 말들은 모두 쇠가죽끈으로 배띠를 하고 바를 매어서 끌게 되었다. 짐이 무거우면 바퀴채보다도 훨씬 더 밖으로 튀어 나오고 때로는 높이가 몇 길이나 되며, 끄는 말도 많으면 십여 필이나 된다. 말 모는 사람을 ‘칸처더[看車的]’라 부르며, 그는 짐 위에 덩실 높이 앉아서 손에는 긴 채찍을 쥐고 길이 두 발이나 되는 끈 두 개를 그 끝에 매어서, 그것을 휘둘러 때리되 그 중에 힘내지 않는 놈은 귀며 옆구리며 헤아리지 않고 때리고, 손에 익으면 더욱 잘 맞는다. 그 채찍질하는 소리가 우레처럼 요란스럽다.

독륜차(獨輪車)는 뒤에서 한 사람이 칫대를 잡고 수레를 밀도록 되었다. 한가운데쯤 바퀴를 달았는데 바퀴가 수레바탕 위로 반이나 솟았으며, 양쪽이 상자처럼 되어 싣는 물건이 꼭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 바퀴 닿는 곳에는 북을 반쯤 자른 것같이 보이며, 바퀴를 가운데로 하고 짐은 사이를 두고 실어서 바퀴와 짐이 서로 닿지 않도록 하였다. 칫대 밑에 짧은 막대가 양쪽으로 드리워서, 갈 때는 칫대와 함께 들리고 멈출 때는 바퀴와 함께 멈추어서, 이것이 버팀나무가 되어 수레가 쓰러지지 않게 마련이다. 길가에서 떡ㆍ엿ㆍ능금ㆍ오이 등을 파는 장사들도 모두 이 독륜차를 이용하며, 또 밭둑 길에 거름 내기에 가장 편리하다. 언젠가 보니, 시골 여자 둘이 양쪽 상자에 타고 앉아서 각기 어린애 하나씩을 안고 가는 것도 있으려니와 물을 긷는 데는 한 쪽에 대여섯 통씩 싣는다. 짐이 무겁고 많으면 끈을 달아서 한 사람이 끌고, 때로는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이 마치 배를 끌 듯이 한다.

대개, 수레는 천리로 이룩되어서 땅 위로 가는 것이며, 땅 위를 다니는 배요, 움직일 수 있는 방이다. 나라의 쓰임에 수레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주례(周禮)》에 임금의 가멸함을 물었을 때 수레의 많고 적음으로써 대답했다 하니, 수레는 비단 싣고 타는 것뿐이 아님을 말함이다. 수레 중에도 융차(戎車)ㆍ역차(役車)ㆍ수차(水車)ㆍ포차(砲車) 등이 있어서 천백 가지의 제도가 있으므로 이제 창졸간에 이루 다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타는 수레, 싣는 수레는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어서 시급히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내 일찍이 담헌(湛軒) 홍덕보(洪德保), 참봉(叅奉) 이성재(李聖載)1)와 더불어 거제(車制)를 이야기할 제,

 

“수레의 제도는 무엇보다도 궤도를 똑같이 하여야 한다. 이 이른바 궤도를 똑같이 하여야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한 것일까. 두 바퀴 사이에 일정한 본을 어기지 않음을 이름이다. 그리하면 수레가 천이고 만이고 간에 그 바퀴자리는 하나로 통일될 것이니, 이른바 거동궤(車同軌)2)는 곧 이를 두고 말함이다. 만일 두 바퀴 사이를 마음대로 넓히고 좁힌다면 길 가운데 바퀴 자리가 한 틀에 들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말한 일이 있었다. 이제 천 리 길을 오면서 날마다 수없이 많은 수레를 보았으나, 앞 수레와 뒷 수레가 언제나 한 자국을 도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쓰지 않고도 같이 되는 것을 일철(一轍)이라 하고, 뒤에서 앞을 가리켜 전철(前轍)이라 한다. 성 문턱 수레바퀴 자국이 움푹 패어서 홈통을 이루니 이는 이른바 ‘성문지궤(城門之軌 《맹자(孟子)에 나오는 구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전혀 수레가 없음은 아니나 그 바퀴가 온전히 둥글지 못하고 바퀴 자국이 틀에 들지 않으니, 이는 수레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늘 하는 말에,

 

“우리나라는 길이 험하여 수레를 쓸 수 없다.”

하니, 이 무슨 말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쓰지 않으니까 길이 닦이지 않을 뿐이다. 만일 수레가 다니게 된다면 길은 저절로 닦이게 될 테니 어찌하여 길거리의 좁음과 산길의 험준함을 걱정하리오. 전(傳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배와 수레 이르는 곳,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곳.”

이라 하였으니, 이는 수레가 어떠한 먼 곳이라도 이를 수 있다고 하는 말이다.

중국에도 검각(劍閣) 아홉 굽이의 험한 잔도(棧道)와 태항(太行)과 양장(羊腸)처럼 위태한 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수레가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그리하여 관(關)ㆍ섬(陝)ㆍ천(川)ㆍ촉(蜀)ㆍ강(江)ㆍ절(淛)ㆍ민(閩)ㆍ광(廣) 등지와 같은 먼 곳에서도 큰 장사치들이나, 또는 온 가족을 이끌고 부임(赴任)하러 가는 벼슬아치들의 수레바퀴가 서로 잇대어서 저의 집 뜰 앞을 거니는 것이나 다름없이 다니고, 우렁차게 굉굉거리는 수레바퀴 소리가 대낮에도 늘 우레치듯 끊이지 않는다. 이제 이 마천(摩天)ㆍ청석(靑石)의 고개와 장항(獐項)ㆍ마전(馬轉)의 언덕들이 어찌 우리나라의 것보다 덜 위험하겠는가. 그 큰 바위에 막혀 험준한 것은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도 목격(目擊)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수레를 폐하고 다니지 않음이 있던가. 이러므로 중국의 재산이 풍족할뿐더러 한 곳에 지체되지 않고 골고루 유통(流通)함은 모두 수레를 쓴 이익일 것이다. 이제 비근한 예를 든다면, 우리 사행이 모든 번거로운 폐단을 없애버리고 우리가 만든 수레에 우리가 올라 타고 바로 연경에 닿을 텐데 무엇을 꺼려서 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리하여 영남(嶺南) 어린이들은 새우젓을 모르고, 관동(關東) 백성들은 아가위를 절여서 장 대신 쓰고, 서북(西北) 사람들은 감과 감자(柑子)의 맛을 분간하지 못하며, 바닷가 사람들은 새우나 정어리를 거름으로 밭에 내건만 서울에서는 한 웅큼에 한 푼씩 하니 이렇게 귀함은 무슨 까닭일까. 이제 육진(六鎭)의 마포(麻布)와 관서(關西)의 명주(明紬), 양남(兩南 영남과 호남)의 딱종이와 해서(海西)의 솜ㆍ쇠, 내포(內浦 충청남도 서해안)의 생선ㆍ소금 등은 모두 인민들의 살림살이에서 어느 하나 없지 못할 물건들이며, 청산(靑山 충청북도에 있다)ㆍ보은(報恩)의 천 그루 대추와 황주(黃州 황해도에 있다)ㆍ봉산(鳳山)의 천 그루 배와 흥양(興陽 전남 고흥)ㆍ남해(南海)의 천 그루 귤(橘)ㆍ유자[柚], 임천(林川 충청남도에 있다)ㆍ한산(韓山)의 천 이랑 모시와 관동의 천 통 벌꿀 들은 모두 우리 일상생활에서 교역해 써야 할 것인데도, 이제 이곳에서 천한 물건이 저곳에서는 귀할뿐더러 그 이름만 알고 실지로 보지 못함은 어찌된 까닭일까. 그것은 오로지 멀리 나를 힘이 없기 때문이다. 사방이 겨우 몇 천 리밖에 안 되는 나라에 인민의 살림살이가 이다지 가난함은, 한 말로 표현한다면 수레가 국내(國內)에 다니지 못한 까닭이라 하겠다. 어떤 이가,

 

“그러면 수레는 어찌하여 다니지 못하는 거요.”

하고 묻는다면, 역시 한 마디 말로,

 

“이는 사대부(士大夫)들의 허물입니다.”

하고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소에 글을 읽을 때에는,

 

“《주례》는 성인이 지으신 글이야.”

하고는, 또 윤인(輪人)이니, 여인(輿人)이니, 거인(車人)이니, 주인(輈人)이니 하고 떠들어대나, 끝내 그것을 만드는 기술이나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도무지 연구하지 않으니, 이는 이른바 한갓 글만 읽을 뿐이니 참된 학문에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아아, 슬프도다. 황제(黃帝)가 수레를 창조하였으므로 헌원씨(軒轅氏)라 불린 뒤에 백천 년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몇 성인의 심사(心思)ㆍ목력(目力)ㆍ수기(手技)가 마멸 되었고, 또 몇 사람의 수(倕)처럼 공교한 손을 거쳤으며, 또 상앙(商鞅)이사(李斯) 같은 이들의 제도 통일을 가져왔으니, 이는 실로 저 현관(縣官)들의 학술에 비한다면 몇백 배나 나을 것이다. 그들의 정미로운 연구와 행하기 간편함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이는 진실로 민생의 살림에 이익되고 나라 경영에 큰 그릇이 되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날마다 눈에 나타나는 놀랍고 반가운 것들을 이 수레의 제도로 미루어 모든 일을 짐작할 수 있겠으며, 또한 어렴풋이나마 몇천 년 모든 성인의 고심(苦心)을 알 수 있겠다.

밭에 물을 대는 것으로 용미차(龍尾車)ㆍ용골차(龍骨車)ㆍ항승차(恒升車)ㆍ옥형차(玉衡車) 등이 있고, 불을 끄는 것으로서 홍흡(虹吸)학음(鶴飮) 등의 제도가 있으며, 싸움에 쓰는 수레로는 포차(砲車)ㆍ충차(衝車)ㆍ화차(火車) 등이 있어서 모두 서양의 《기기도(奇器圖)》와 강희제(康熙帝)가 지은 경직도(耕織圖)에 실려 있고, 그 글로 설명된 것은 《천공개물(天工開物)》ㆍ《농정전서(農政全書 명 서광계(徐光啓)의 저)》에 있으니 이에 뜻있는 이가 잘 연구하여 그 제도를 본받는다면 우리나라 백성들의 극도에 달한 가난병도 얼마쯤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내가 본 불끄는 수레의 제도를 대략 적어서 우리나라에 돌아가 이를 전하려 한다.

북진묘(北鎭廟)에서 달밤에 신광녕(新廣寧)으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성밖의 어떤 집이 저녁 나절에 불이 나서 이제 겨우 불길을 잡은 모양인데, 길 위에 수차(水車) 세 대가 있어서 방금 거두어 가려는 것을 내가 그들을 잠깐 멈추어 세우고 먼저 그 이름을 물었더니, 수총차(水銃車)라 한다. 그 제도를 살펴본즉 바퀴가 넷에 그 위에 큰 나무 구유가 놓였고, 구유 속에 커다란 구리그릇이 있으며, 구리그릇 속에는 구리통 둘을 두었는데, 구리통 사이에는 목이 을(乙) 자 모양으로 생긴 물총을 세웠다. 물총은 발이 둘이어서 양쪽 구리통에 통하였고, 양쪽 구리통은 짧은 다리가 있어서 밑에 구멍이 뚫렸으며, 구멍은 얇은 구리쇠쪽으로 문짝을 만들어서 물의 오르내림을 따라 여닫게 되었다. 그리고 두 구리통 주둥이에는 구리반으로 뚜껑을 해 달되 그 둘레가 구리통에 꼭 알맞게 되었다. 그 구리반 한복판에 쇠기둥을 세워서 나무를 건너지르고 그 나무가 구리반을 누르기도 하고 들기도 할 수 있게 되어서 구리반의 드나들고 오르내림이 그 나무에 달렸다.

그리고는 물을 구리동이 속에 붓고 몇이서 나무를 밟으면 구리반이 솟았다 내렸다 하여, 대체로 물을 빨아들이는 조화는 구리반에 있다. 구리반이 구리통 목에까지 솟으면 구리통 밑에 뚫린 구멍이 갑자기 열리면서 바깥 물을 빨아들이고, 이와 반대로 구리반이 구리통 속으로 떨어지면 그 밑구멍이 세차게 닫히어서 이에 구리통 속에 물이 가득 차서 쏟아질 곳이 없으므로, 물총 뿌리로부터 을(乙) 자로 생긴 물총의 목으로 내달아서 위로 치솟아 내뿜으니, 여남은 길이나 물발이 서고 가로는 3, 40보에 뻗는다.

그 제도가 생황(笙簧 관악기(管樂器)의 일종)과 비슷하고 물 긷는 이는 연방 나무 구유에 물을 들어부을 따름이다. 옆에 있는 두 물차는 그 제도가 이것과도 다르고 더욱 무슨 곡절이 있는 듯싶으나 창졸간에 상세히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물을 빨아들이고 뿜는 묘리는 거의 같았다.

물건을 찧고 빻는 데는 큰 아륜(牙輪 치륜(齒輪))이 두 층으로 되어서, 쇠궁글 막대로 이를 꿰어 방 안에 세워두고 틀을 움직여서 돌리게 되었다. 아륜이라는 것은 마치 자명종(自鳴鍾)의 기계 속처럼 이가 들쭉날쭉하여 서로 맞물게 된 것이다. 방 안 네 구석에 두 층으로 맷돌반을 두고, 맷돌반의 가장자리 역시 들쭉날쭉하여 아륜의 이와 서로 맞물게 되었다. 그리하여 아륜이 한번 돌기만 하면 여덟 맷돌 반이 모두 다투어 돌며, 순식간에 밀가루가 눈처럼 쌓인다. 이 법은 시계의 속과 비슷하다. 길가의 민가들은 각기 맷돌 방아 하나와 나귀 한 마리씩이 있고 곡식 빻는 데는 항상 돌곰배를 쓰며, 더러는 나귀를 끌어서 방아공이를 대신하기도 한다.

가루 치는 법은 굳게 닫힌 방 안에 바퀴가 셋이 달린 요차(搖車)를 놓았는데, 그 바퀴는 앞이 두 개, 뒤가 한 개이다. 수레 위에 기둥 넷을 세우고 그 위에 두어 섬들이 큰 채를 두 층으로 간들거리게 놓았다. 윗채에 가루를 붓고, 아래채는 비워 두어서 윗채의 것을 받아서 더 보드랍게 갈리도록 되었다. 그리고 요차 앞에는 막대기 하나를 바로 질렀는데 그 막대기의 한쪽 끝은 수레를 잡아 달리고 또 한쪽 끝은 방 밖으로 뚫고 나가 있다. 밖에 기둥 하나를 세워서 그 막대기 끝을 잡아매고, 기둥 밑에는 땅을 파서 큰 널빤지를 놓아 막대기 밑이 이에 닿게 했다. 그 널빤지 밑 한가운데에 받침을 놓고, 그 양쪽을 뜨게 하여 마치 풀무를 다루듯 한다. 사람이 널빤지 위에 걸터앉아서 다리만 약간 움직이면 널빤지의 두 머리가 서로 오르내리며 널빤지 위의 기둥이 견디지 못하여 흔들린다. 그러면 그 기둥 끝에 가로지른 막대기가 세게 들이밀고 내밀고 하여 방 안의 수레가 나섰다 물러섰다 한다. 방은 네 벽에 열 층으로 시렁을 매어서 그릇을 그 위에 올려 놓아 날아오는 가루를 받게 되었다. 방 밖에 앉아 있는 사람은 발을 놀리면서 책도 읽고 글씨도 쓰고 손님과 수작도 하여 못하는 일이 없다. 다만 등 뒤에 약간 요란한 소리가 들릴 뿐 누가 그러는지 알지 못한다. 대체로 그 발 움직이는 공력은 아주 적으면서도 일은 많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자들이 몇 말 가루를 한 번에 치려면 머리도 눈썹도 삽시에 하얗게 되고 팔이 나른해지니, 그 어느 것이 힘이 덜들고 편리한 것인가. 이와 비교해 보면 어떤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치 켜는 소차(繅車)는 더욱 묘하니 마땅히 본받아야 한다. 이는 아까 곡식 빻는 것과 같이 커다란 아륜을 쓰되 소차의 양쪽 머리에 아륜이 달리고, 그 역시 들쭉날쭉한 이가 서로 맞물려서 쉴 새 없이 저절로 돌아간다. 소차는 별 것이 아니요, 곧 몇 아름드리가 되는 큰 자새이고, 수십 보 밖에서 고치를 삶되, 그 사이에는 여러 층 시렁을 매고 높은 곳에서부터 차츰 낮은 데로 기울게 하고, 시렁 머리마다 쇳조각을 세워서 구멍을 바늘귀처럼 가늘게 뚫고 그 구멍에 실을 꿴다. 틀이 움직이면 바퀴가 돌고, 바퀴가 돌면 자새가 따라 돌되 그 아륜이 서로 맞물려서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천천히 실을 뽑는다. 그 움직임이 거세지도 않고 몰리지도 않게 제대로 법도가 있으므로 실이 고르지 않거나 한데 얽히거나 하는 탈이 없는 것이다. 켠 실이 솥에서 나와 자새로 들기까지에 쇠구멍을 두루 지나서 털도 다듬어지고 가시랭이도 떨어져 버렸으며, 또 자새에 들기 전에 실몸이 알맞게 말라서 말쑥하고 매끄러우므로, 다시 재에 삭히지 않아도 곧 베틀에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고치 켜는 법이란 다만 손으로 훑기만 할 뿐이지 수레를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놀림이 그 타고난 바탕 제대로의 성질에 맞지 않아서, 빠르고 더딘 것이 고르지 않다. 어쩌다 홀치고 섞갈리면 실과 고치가 성내는 듯 놀래는 듯 뛰어 내달려서 실켜는 널판 위에 휘몰리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고, 무거리가 나서 덩이가 지면 저절로 광택을 잃게 되며 실밥이 얽히어 붙으면 실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므로, 티를 뽑고 눈을 따려면 입과 손이 모두 피로하다. 이를 저 고치 켜는 수레와 비교하면, 그 우열이 또한 어떠한가. 나는 그들에게 고치가 여름을 나도 벌레가 생기지 않는 방법을 물었더니, 약간 볶으면(찌면) 나비도 나지 않고, 또 더운 구들에 말리면 나비도 나지 않고 벌레도 먹지 않으므로 겨울철이라도 켤 수 있다 한다.

길에서 날마다 상여(喪轝)를 만났는데, 그 제도는 한결같지 않으나 가장 거추장스럽게 보인다. 거의 두 칸 방만하고 오색 비단으로 휘장을 치고, 거기다 구름ㆍ꿩ㆍ참새 같은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렸으며, 당마루턱에는 혹은 은실을 땋아 늘이었다. 양쪽 대채의 길이는 거의 일곱여덟 발이나 되는데, 붉은 칠을 하고 누런 구리를 올려서 금빛으로 꾸몄다. 횡강목(橫杠木)은 앞뒤에 각기 다섯씩인데 길이는 역시 서너 발이나 되고 그 위에 짧은 막대기를 걸쳐서 양쪽을 어깨에 메게 되었다. 상여꾼은 적어도 수백 명이고, 명정(銘㫌)은 모두 붉은 비단에 금자(金字)로 썼다. 명정대는 세 길이나 되는데 검은 칠을 하고 금빛 나는 용을 그렸다. 깃대 밑에는 발을 달고, 거기에 역시 막대기 두 개를 가로 놓아서 반드시 아홉 사람이 멘다. 붉은 일산 한 쌍, 푸른 일산 한 쌍, 검은 일산 한 쌍, 수레 앙장 대여섯 쌍이 이에 따르고 그 다음에 저ㆍ퉁소ㆍ북ㆍ나팔 등 악대가 서고, 승려와 도사들이 각기 그 구색을 차리고 불경과 주문(呪文)을 외면서 그 뒤를 따른다. 중국의 모든 일이 간편함을 위주하여 하나도 헛됨이 없는데 이 상여만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물론 본받을 것이 못 된다.

 

[주1]이성재(李聖載) : 이광려(李匡呂). 참봉은 벼슬이요, 성재는 자.

[주2]거동궤(車同軌) : 《중용(中庸)》과 《좌전(左傳)》 소(疏)에 나오는 말.

[주3]육진(六鎭) : 두만강(豆滿江) 기슭에 있는 여섯 고을. 곧 종성(鍾城)ㆍ경원(慶源)ㆍ회령(會寧)ㆍ경흥(慶興)ㆍ온성(穩城)ㆍ부령(富寧).

[주4]윤인(輪人) …… 주인(輈人)이니 : 이 넷은 모두 《주례》 중에 나오는, 옛날 수레를 맡은 관리의 벼슬 이름.

[주5]글만 읽을 뿐 : 전국 때 장수 조괄(趙括)의 고사.

[주6]수(倕) : 중국 황제(黃帝) 때의 유명한 공장(工匠)의 이름.

[주7]상앙(商鞅) : 전국시대 정치가. 위인(衛人)으로서 형명(刑名)의 학으로 진 효공(秦孝公)을 도와 부국강병의 실적을 이룩하였다.

[주8]이사(李斯) : 전국시대 정치가. 진 시황(秦始皇)을 도와서 육국을 통일하였다.

[주9]홍흡(虹吸) : 굽은 관(管)으로 만들어서 액체(液體)를 이 그릇에서 다른 높은 그릇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한 기계.

[주10]학음(鶴飮) : 홍흡과 비슷한 기계일 것이나 자세한 제도는 알 수 없다.

[주11]기기도(奇器圖) : 곧 《기기도설(奇器圖說)》. 서양 사람 등옥함(鄧玉函)의 저. 전중(轉重)ㆍ취수(取水)ㆍ전마(轉磨) 등 39도(圖)에다 각기 설명을 붙였다.

[주12]천공개물(天工開物) : 명 송응성(宋應星)의 저. 중국의 천산(天産)과 인공(人工)에 관한 저서. 그 원본은 일본제국도서관(日本帝國圖書館)에 간직되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