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干行(장간행) 許蘭雪軒(허난설헌)
- 장간을 왕래하면서 -
<비운의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고영화(高永和)
아마도 우리나라 성인 치고 허난설헌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이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여류 문인의 한사람이며, 서경덕 문하에서 학문을 수학하고 홍문관 부제학을 지낸 초당(草堂) 허엽(許曄)의 여식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누나인 허난설헌(許蘭雪軒) 허초희.... 불우하기 그지없는 그의 삶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암담한 시대의 울타리에 갇혀 처절한 자신의 삶을 아름다운 시어로 승화시켰던, 비운의 천재 여류시인이었다. 만약에 그녀가 오늘날과 같은 여성에 대한 억압과 구속이 비교적 자유로운 시대의 시인이었다면 어떨까를 생각해보니, 그의 불우한 삶이 더욱 가슴을 저미게 한다. 서예와 그림에도 능했던 그녀는 300여 수의 시와 기타 산문, 수필 등을 남겼으며 213수 정도가 현재 전하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에 그녀의 묘가 있다.
1) <장간을 왕래하면서[長干行]>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家居長干里 집이 장간리에 있어
來往長干道 늘 장간리 길 오고간다네.
折花問阿郞 꽃을 꺾어 임에게 묻는 말
何如妾貌好 “꽃이 좋아요 제가 좋아요”
난설헌의 작품은 왠지 쓸쓸한 자신의 독백 같은 여운을 남긴다. 그녀의 작품을 읽고 난 후에는, 내용과 관련 없이 도리어 처연함이 거꾸로 생겨난다. 아마도 그 이유는 남편의 바람, 고부간의 갈등, 자식의 죽음 등으로 슬픔과 외로움 속에서 절망적인 결혼생활을 영위하다 27세 꽃다운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2) 연밥 따는 노래[採蓮曲] / 허난설헌(許蘭雪軒 1563~1589)
秋淨長湖碧玉流 해맑은 가을 호수 옥처럼 파란데
荷花深處繫蘭舟 연꽃 우거진 곳에 목란배 매어두었지.
逢郞隔水投蓮子 임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지다
遙被人知半日羞 행여나 뉘 봤을까 한나절 부끄러웠네.
이백(李白)의 연밥 따는 노래(採蓮曲)를 본보기로 많은 시인들이 연을 주제로 채련곡을 썼다. 27세로 요절한 허난설헌도 채련곡을 지었다.
장간행(長干行)과 마찬가지로 시 속의 표현과 관계없이 쓸쓸한 반어(反語)적 여운을 남기니 마음 한켠이 아리고 시리다.
3)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 꿈에 광상산에서 노닐다.> 허난설헌(許蘭雪軒)
碧海浸瑤海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靑鸞倚彩鸞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芙蓉三九朶 부용꽃 삼십 아홉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紅墮月霜寒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허난설헌은 어느 날 붉은 연꽃 삼십 아홉 송이가 지는 꿈을 꾼다. 그리고 꿈에서 본 대로 “부용꽃 서른아홉 송이는 곧 스물일곱 살의 자기 죽음을 징험한 것이다.” 결국 스물일곱의 나이에 그 꽃처럼 지고 말았다. 뛰어난 식견과 시재(詩才)로 오히려 남편 김성립과 시어머니로부터 냉대와 멸시를 받았던 설움, 어린 자식을 연달아 잃는 통절한 아픔, 스물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하직해야 할 때 그동안 써온 시편들을 다 불사르면서 가졌을.... 한 맺힌 허난설헌의 삶이었다.
“비단 띠 깁 저고리 적신 눈물 자국, 여린 방초 임 그리운 한이외다. 거문고 뜯어 한 가락 풀고 나니 배꽃도 비 맞아 문에 떨어진다. 달빛 비친 다락에 가을 깊은데 울안은 비고 서리 쌓인 갈밭에 기러기 내려앉네. 거문고 한 곡조 임 보이지 않고 연꽃만 들못 위에 떨어지네.” 《허난설헌집》 〈규원(閨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