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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詠懷,寄柳謙庵應見 西厓而見兄弟(영회,기류겸암응현 서애이현형제) 二首 정탁(鄭琢)

작성자수돌이(최찬집)|작성시간26.06.11|조회수4 목록 댓글 0

 

 

詠懷,寄柳謙庵應見 西厓而見兄弟(영회,기류겸암응현 서애이현형제) 二首 정탁(鄭琢)

- 회포를 읊어 겸암 유응현과 서애 이현 형제에게 건네다 -

 

(其二)

歲晩陰風緊(세만음풍긴) 세모에 음산한 바람 세차게 불고

頑雲日暮新(완운일모신) 날 저물자 먹구름이 새로 이는데

乾坤竚㬉律(건곤저난률) 온 세상 따뜻한 기운을 기다리니

復見一元春(부견일원춘) 다시 한해의 새 봄을 만나겠구려

 

< 번역 효송 曉松 >

유응현(柳應見)은 유운룡(柳雲龍, 1539~1601년)의 자(字)로 호(號)는 겸암(謙庵)이다. 음사(陰仕)로 전함사 별좌

(典艦司別坐)에 제수되었다. 인동 현감

(仁同縣監) 등을 지내고 임진란 후에는 풍기 군수(豐基郡守)와 원주목사(原州牧使)를 역임하였다.

이현(而見)은 유성룡(柳成龍, 1542~1607년)의 자(字)이고, 호(號)는 서애(西厓)이다.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이황의 문하에서 조목(趙穆), 김성일과 동문 수학하였으며 성리학에 정통하였다. 죽을 때까지 청렴하고 정직한 삶을 살았던 청백리이면서 ‘조선의 5대 명재상(名宰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약포(藥圃) 정탁(鄭琢, 1526~1605년) 선생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곽재우, 김덕령 등을 천거했으며, 이순신이 옥에 갇혔을 때에는 온힘을 다해 죽음을 면하게 했다. 1597년 이순신이 전장에 나아가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한산도에서 압송되었을 때 선조에게 이순신을 변호하는 1298글자의 신구차 상소문을 올렸다. 이 일로 이순신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한 공으로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70 노구를 이끌고 몸소 전장에 나가 사기를 돋우려했으나 왕이 만류하기도 했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1599년 관직을 사퇴했다가 이듬해 다시 등용되었다. 판중추부사, 영중추부사를 거쳐 1603년 모든 관직을 사양했다. 경사, 천문, 지리, 상수, 병법 등 다방면에 능통했다. 저서로 ≪약포집≫, ≪용만문견록≫ 등이 전한다.

( 그림과 사진은 인터넷에서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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