哭殷遙(곡은요) 耶律楚材(야율초재)
- 객사한 벗 은요의 죽음을 슬퍼하며 통곡하다 -
送君返葬石樓山(송군반장석누산) 돌아온 그대 보내려 석루산에 장사 지내니
松柏蒼蒼賓馭還(송백창창빈어환) 송백은 짙푸른데 손님은 말 타고 돌아가네
埋骨白雲長已矣(매골백운장이의) 흰구름 속에 뼈를 묻었으니 영영 끝났는데
空餘流水向人間(공여류수향인간) 헛되이 남아 흐르는 물 세상으로 흘러가네
< 번역 효송 曉松 >
殷遙(은요)는 성당(盛唐)시대의 시인으로 선생의 친구로 알려진다.
返葬(반장)은 반구(返柩, 객지에서 죽은 사람의 시체를 고향으로 데려옴)하여 장사지내는 것을 말한다.
賓馭(빈어)는 장례에 참여한 손님들이 타고 온 마차를 가리킨다.
담연거사(湛然居士) 야율초재(耶律楚材, 1190~1244년) 선생은 몽골 제국의 정치가, 지식인으로 학문이 뛰어나서 칭기즈 칸이 아낀 인물이다. 거란족 출신으로 1215년 칭기즈 칸이 중도(中都)를 함락시켰을 때 발탁되어 비치그치(Bichighchi : 書記)에 임명되었고,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오고타이 칸이 위제를 계승한 후 야율초재는 국책을 정하고 조의(朝儀)를 세웠으며, 중국 전통제도에 따라 다스릴 것을 주장하여 그의 의견을 국정에 많이 반영시켰다. 또한 군(軍)과 민을 분리시켜 주군(州郡)의 장리(長吏)는 민정을 담당하고 만호부는 군정을 총괄하게 할 것을 주장했다. 금의 변경(汴京)을 함락시켰을 때 항복하지 않은 성민(城民)을 모두 학살하는 옛 제도를 폐지하자고 건의했다. 또 문화·교육의 진흥과 유학의 채택을 주장했다. 관직은 중서령(中書令)에 이르렀다. 저서로 <담연거사집 湛然居士集>과 칭기즈 칸을 따라 서역 정벌에 나섰다가 서역에서 약 6년을 머무르면서 각지의 길, 마을, 산천, 산물과 도중에서 얻은 견문들을 기록한 <서유록 西遊錄> 1권이 전한다.
( 사진은 인터넷에서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