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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石壕吏(석호리) 杜甫(두보)

작성자수돌이(최찬집)|작성시간26.06.14|조회수0 목록 댓글 0

 

石壕吏(석호리) 杜甫(두보) 

- 석호촌 아전들의 횡포를 목격하고 읊다 -

 

其二

吏呼一何怒(리호일하노) 아전 호출은 어찌 그리 분노스러운지

婦啼一何苦(부제일하고) 할머니 울음은 어찌 이리도 괴로울까

聽婦前致詞(청부전치사) 할머니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 듣는데

三男鄴城戍(삼남업성수) 아들 셋은 업성으로 수비하러 갔다네

 

​< 번역 효송 曉松 >

石壕村(석호촌)은 중국 하남성 삼문협시 섬현(陝縣)에 있는 한 마을의 이름이다.

鄴城(업성)은 중국 삼국지 시대의 대표적 도시로서, 위(魏)나라의 수도였으며, 조조(曹操)가 한중(漢中)에서 출발해 이곳을 점령하며 위왕(魏王)에 즉위했다. 이후 촉한(蜀漢)과 오(吳)의 연합군이 조조의 대군에 맞서 싸운 적벽대전의 배경이 되었다. 남송(南宋) 시기에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서, 남송의 황제들이 이곳에 머물며 군사적 준비와 후방 안정에 힘썼으며, 금(金)나라와 전쟁할 때는 전략적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이 시는 두보 선생이 석호촌에 머무는 동안 직접 목격한 아전들의 횡포를 읊은 것으로 집주인 할머니 가족에게 일어난 고난을 서사시 형식으로 엮었다. 안록산의 난(安史之亂, 755~763년)이 터지기 직전, 당시 관료들의 폭정과 부패를 폭로하고, 민초들의 고난을 동정하는 마음을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두보(杜甫, 712~770년) 시성(詩聖)은 이백(701~762) 시선(詩仙)과 함께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진다. 중국 당(唐)나라 때의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이다. 이백(李白)과 병칭하여 이두(李杜) 라고도 불리운다. 뛰어난 문장력과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두보의 시는 후세에 시로 표현된 역사라는 뜻으로 ‘시사(詩史)’라 불리기도 한다. 근체시의 모범이 되는 율시(律詩)와 당시의 시대적 아픔을 담은 1,500여 수의 시를 남겼으며, 작품으로 ‘북정(北征)’, ‘추흥(秋興)’ 등이 있다.

( 사진과 그림은 인터넷에서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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