班婕妤(반첩여) 三首 王維(왕유)
- 궁녀 반첩여의 한 많은 삶을 읊다 -
(其一)
玉窓螢影度(옥창형영도) 옥 창문에 반딧불 지나가는데
金殿人聲絶(금전인성절) 황금 궁전엔 말소리가 끊겼다
秋夜守羅幃(추야수나위) 비단 휘장 가을밤을 지키는데
孤燈耿明滅(고등경명멸) 외로운 등불 빛만 깜박거리네
< 번역 효송 曉松 >
班婕妤(반첩여)는 전한(前漢) 시대 성제(成帝)의 후궁을 가리킨다. 첩여는 상경(上卿)에 해당하는 궁중의 여관(女官)으로, 처음엔 소사(少使)로 궁중에 들어왔다가 대행을 입어 첩여가 되었다. 어질고 우아하여 처음엔 성제의 총애를 독차지 하였지만 조비연(趙飛燕) 자매가 궁에 들어온 후로 총애가 식었다. 홍가(鴻嘉) 3년(BC 18년)에 자신이 조비연 자매에게 미치지 못함을 알고 또 모함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장신궁(長信宮>으로 물러나 태후(太后)를 모시며 지냈다. 부(賦)를 잘지어 <자도부 自悼賦>, <도소부 搗素賦>, 원가부<怨歌賦> 등을 지었다. 성제가 죽자 봉원릉(奉園陵)으로 있다가 죽었다.
羅幃(나위)는 얇은 비단으로 만든 휘장을 말한다.
왕유(王維, 699~759년) 선생은 중국 성당(盛唐)의 문필가이면서 유명한 화가였으며 음악에도 뛰어나 현종의 형제 제왕이나 귀족의 모임에서 예술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나 망천(輞川=지금의 허난성)에 별장을 짓고, 그 별장의 경물을 소재로 하여 많은 시를 지었다. 남송화(南宋畵)의 시조(始祖)로도 추앙받고 있는 선생은 "왕유의 시를 읽으면 시 중에 그림이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400여 수의 주옥 같은 시를 남겼다.
( 그림과 사진은 인터넷에서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