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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

班婕妤(반첩여) 三首 王維(왕유)

작성자수돌이(최찬집)|작성시간26.06.23|조회수0 목록 댓글 0

 

 

班婕妤(반첩여) 三首 王維(왕유) 

- 궁녀 반첩여의 한 많은 삶을 읊다 -

 

(其二)

宮殿生秋草(궁전생추초) 궁전에는 가을풀이 자라나는데

君王恩幸疏(군왕은행소) 황제의 은총행차는 멀어졌구나

那堪聞鳳吹(나감문봉취) 어찌 봉취 소리 들릴 수 있겠나

門外度金舆(문외도금여) 문밖으로 황금수레가 지나가네

 

​< 번역 효송 曉松 >

班婕妤(반첩여)는 전한(前漢) 시대 성제(成帝)의 후궁을 가리킨다. 첩여는 상경(上卿)에 해당하는 궁중의 여관(女官)으로, 처음엔 소사(少使)로 궁중에 들어왔다가 대행을 입어 첩여가 되었다. 어질고 우아하여 처음엔 성제의 총애를 독차지 하였지만 조비연(趙飛燕) 자매가 궁에 들어온 후로 총애가 식었다. 홍가(鴻嘉) 3년(BC 18년)에 자신이 조비연 자매에게 미치지 못함을 알고 또 모함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장신궁(長信宮>으로 물러나 태후(太后)를 모시며 지냈다. 부(賦)를 잘지어 <자도부 自悼賦>, <도소부 搗素賦>, 원가부<怨歌賦> 등을 지었다. 성제가 죽자 봉원릉(奉園陵)으로 있다가 죽었다.

鳳吹(봉취)는 생황(笙), 퉁소(簫) 따위의 악기를 말한다.

왕유(王維, 699~759년) 선생은 중국 성당(盛唐)의 문필가이면서 유명한 화가였으며 음악에도 뛰어나 현종의 형제 제왕이나 귀족의 모임에서 예술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나 망천(輞川=지금의 허난성)에 별장을 짓고, 그 별장의 경물을 소재로 하여 많은 시를 지었다. 남송화(南宋畵)의 시조(始祖)로도 추앙받고 있는 선생은 "왕유의 시를 읽으면 시 중에 그림이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400여 수의 주옥 같은 시를 남겼다.

( 그림과 사진은 인터넷에서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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