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URO2000 예선전 잉글랜드와의 경기 스토이치코프(좌) 요한 크루이프(우)
1994년 '올해의 유럽 축구선수',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불가리아가 낳은 올해 33살의 이 스트라이커에게 지금 제2의 축구인생이 열리고 있다.
지난 6월 EURO 2000 5조예선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끝으로 현역 은퇴를 결정한 그는 17살에 처음 불가리아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후 A매치 83회 출전에 37골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나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의 첫 지도자 실전 수업은 지난 10월 룩셈부르크와의 EURO 2000 조별 마지막 예선전.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경기는 불가리아의 본선 탈락이 이미 확정된 상태에서 치러져 그에겐 말 그대로 '수업적' 성격이 강한 경기였다.
디미타르 디미트로프 감독의 보조 코치로 나서 선수가 아닌 스태프로 참가한 스토이치코프는 3-0 승리를 안았다. 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불가리아를 4강에 올려놓으며 일약 유럽을 넘어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그는 이제 자신의 새로운 목표를 EURO 2000 본선진출 좌절로 하향곡선을 그리는 불가리아 축구의 재건으로 설정했다.
그는 자신의 지도자 변신의 이유로 "불가리아 축구의 부활은 근본적인 수준에서 시작해야 한다. 유소년 및 청소년 축구의 재건은 지역 축구에 활력소가 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불행히도 청소년 축구발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구단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면서 출사표를 던지고 자신의 전성기시절 인연을 맺은 네덜란드 축구영웅 요한 크루이프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전했다.
"그만한 지도자는 어디에도 없다. 유럽 각처에서 우린 거의 1주일마다 만나면서 축구경기를 관람하고 평가하면서 중요한 문제는 의견을 교환한다"고 말하는 스토이치코프에게 크루이프는 거의 절대적인 존재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올해초 FIFA산하 역사통계위원회로부터 '20세기를 빛내 유럽의 축구선수'로 선정된 크루이프는 현역시절 74, 78년 서독 및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출전하며 오렌지군단 네덜란드를 '토탈 사커'의 원조로 만든 장본인이면서88 ~ 96년까지 스페인 명문 바르셀로나 감독생활 8년 동안 리그우승 3연패를 비롯해 92년에는 유럽 클럽들의 경배 대상인 챔피언스컵 우승을 일궈내는 등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92년 당시 스토이치코프는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절로 크루이프와의 인연은 그의 전성기와 일맥상통한다. 그의 은퇴경기였던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치러진 잉글랜드와의 EURO 2000 예선전에 크루이프가 초청된 사실은 따라서 결코 우연이 아닌 것. 90년 CSKA 소피아에서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것도 크루이프의 정확한 감식안의 결과다. 당시 이적액은 미화 4백만달러로서 이제 막 사회주의의 붕괴를 거치면서 변화의 바람을 맞이하기 시작한 동구권의 불가리아에게 있어 그것은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화려했던 현역생활을 마감하며 지도자 수업으로 제 2의 축구인생을 걷기 시작한 그에게 조국은 자신을 길러준 젖줄로서 이제 누려온 부와 명예를 보상해야 할 곳임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작금의 불가리아 축구 부진의 원인으로 사기 결여와 연습량 부족을 꼽는 그는 "선수들은 우선 돈을 받고 플레이하고 싶어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면서 선수들의 경제적 안정을 걱정했다. "그러나 항상 말하지만 축구란 영리한 사람에겐 한결 단순한 경기"라면서 유소년 및 청소년 양성에 우선순위를 두는 그에게 지금 불가리아 축구계의 바람은 그라운드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그의 영리한 플레이가 그라운드밖에서도 그대로 발현되는 것이리라. -99.11.13[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