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은 산중음이란 타이틀로 여러편의 시를 발표했다. 산을 타면서 산속에서 읊는 시라는 뜻이다. 산사나이가 된 시인 백석...산중음은 순서를 매겨 산숙과 향악 그리고 야반과 백화의 순이다....
산 숙(山宿)
여인숙이라도 국수집이다
메밀가루포대가 그득하니 쌓인 웃간을 들믄들믄 더웁기도 하다
나는 낡은 국수분틀과 그즈런히 나가 누어서
구석에 데굴데굴하는 목침(木枕)들을 베여보며
이 산(山)골에 들어와서 이 목침들에 새까마니 때를
올리고 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얼굴과 생업(生業)과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
때는 가을같기도 하다. 아니 지금처럼 초겨울 날씨의 분위기 같다. 여행을 좋아했던 백석은 이런 여인숙에서 나처럼 하룻밤을 묵어 갔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이 아니 내가 묶는 이곳이 여인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누추하고 더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이니 그럴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여튼 백석은 그런 더러운 곳에서 생활하면서 시를 얻기 위해 여행을 다녔을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고 삶이니 말이다.
향 악(鄕樂)
초생달이 귀신불같이 무서운 산(山)골거리에선
처마 끝에 종이등이 불을 밝히고
쩌락쩌락 떡을 친다
감자떡이다
이젠 캄캄한 밤과 개울물 소리만이다
외롭고 외로운 시다. 아마도 인간이 외롭다는 것을 자인하고 살아가는 시인의 모습에 백석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만일 백석의 곁에 여자라도 있으면 아마도 이런 시를 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시에 백석이 외롭게 혼자 있다는 생각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야 반(夜半)
토방에 승냥이 같은 강아지가 앉은 집
부엌으론 무럭무럭 하이얀 김이 난다
자정도 활신 지났는데
닭을 잡고 메밀국수를 누른다고 한다
어느 산(山) 옆에선 캥캥 여우가 운다
혼자 자면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혼자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메밀국수 생각도 났을 것이다. 백석은 지금 산속에 들어와서 있는 것이다. 그곳이 여인숙인지 아니면 일반 민가인지 말이다.
나중에 백석이 민가를 얻어 짬짬히 생활을 하였다고 하니 아마도 그런 곳이었을 것도 같다.
백 화(白樺)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山) 너머는 평안도(平安道) 땅도 뵈인다는 이 산(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