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나이는 측천무후의 50대 후반 혹은 60대의 모습으로 추정이 됨. 624년에 태어나 705년에 죽었을 정도로 장수했고 당나라의 최고 권력자로서 실질적인 통치행위까지 포함하면 무려 50년이 넘게 통치를 했다. 그 와중에 1명의 딸과 2명의 아들을 독살하여 자신의 권력욕의 희생양이 되게 하였다.>
얼마전부터 측천무후를 드라마로 보게 되었다.
드라마의 중간부터 보았지만 측천무후는 내가 일찍부터 책을 보아서 잘 아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책에 있는 내용과 드라마의 내용은 사뭇 달랐다.
주인공이 측천무후여서 그런가. 측천무후의 배역부터가 비범하고 원숙한 여성의 이미지였다.
정관 10년에 당태종의 부인격인 장손황후가 죽자 정관 13년에 당태종은 이쁜 여자를 뽑아 후궁전으로 들이라는 조서를 발표했고 정관 14년에 뛰어난 재능으로 유명했던 호주의 서혜가 뽑히여 재인이 되었다.
재인이란 황제의 근처에서 맴돌면서 간택을 바라는 여성들을 말하고 있었다. 한번 몸을 바치면 그때부터 재인이 되었다.
한번 몸을 탐한 황제는 그녀의 이름을 "무미"라고 하였다.
그렇다고 계속 몸을 바치면 품계가 자꾸 올라가지면 한번 초야를 바치고 나서 황제가 멀리하면 그냥 계속 재인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재인이라고 하면 남자들은 청운의 꿈을 품고 공부하는 학생들을 의미했다. 즉 미래의 관직을 맡을 인물을 지칭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황제의 예비 섹스파트너라는 뜻이었다. 문제는 정관 15년에 태종은 무사확의 15살 된 딸 무미가 재인으로 뽑혀 궁에 들어온 것이었다.
무미는 황제의 어복을 담당하는 상의라는 관직에 임명되어 시녀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재인 무미는 후궁전에서 3명의 부인과 9명의 빈 그리고 27명의 세부 중에서 품계가 가장 낮은 직급이었지만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미가 얼마나 당찬 여자였는가 하면 황제 당태종에게 정말 사나운 말 한필이 있었는데 어느 누구도 그 말을 다룰수가 없었다.
그러나 재인들중에 무미만이 유독 그 말을 다룰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저에게 3가지 물건만 있으면 그 말을 다룰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채찍이고 둘째는 철퇴이고 나머지는 비수입니다. 말이 말을 듣지 않으면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 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철퇴로 내리치면 됩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비수로 목을 따버리면 됩니다."
이 말에 황제 이하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이런 강인하고 황당한 발언을 한 무미는 당태종이 호기심에 한번 자 본 은혜를 배풀었을 뿐 더이상 무미를 부르지 않았다.
당시 황제는 궁중에서 가녀리고 힘없는 여성을 좋아했다. 그래서 한해 일찍 재인으로 뽑힌 재녀 서혜가 요염함을 풍기면서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문무를 겸비한 당태종은 이런 가녀린 여자를 좋아했지 무미 같은 강철과 같은 심성을 가진 무미를 경험한 이후에는 더이상 좋아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런 강한 면몬의 무미를 좋아하는 남자가 또 있었다. 바로 나약한 황태자 이치였다. 이치는 자신 스스로가 병약하고 나약하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였지만 무미라는 재인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정관 23년 5월 당태종 이세민이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52세의 나이로 말이다. 그러자 막내 아들인 이치가 당나라 3번째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치가 고종으로 당의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후궁전에 있던 당태종의 섹스파트너들은 관례에 따라 전부 궁중에서 관리하는 절에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어야만 했다.
거기에는 4명의 황후와 9명의 빈 그리고 27명의 세부와 81명의 어녀들이 대상이었다. 이들은 모두 감업사의 여승으로 전락을 하였다. 거기에 무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무미의 아니는 22살이었다. 머리를 깍고 장안의 감업사에서 승려생활을 하던 무미는 영휘 원년 5월에 아버지 태종이 죽은지 1년이 되던 해에 새로운 황제는 아버지의 묘에 가서 분향을 한다는 핑계로 감업사를 지나다가 무미를 만나 감격의 눈물 포옹을 하게 된다.
이런 소식을 들은 고종의 부인이자 황후인 왕황후는 쾌재를 불렀다. 그것은 비록 자신이 황후지만 고종의 총애는 소숙비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무미를 이용하여 고종이 소숙비를 멀리 한다는 야무진 계획에 따라 왕황후는 무미를 궁중으로 불러들였고 그 결과 소숙비는 무미의 현란한 테크닉에 넉다운에 된 고종의 심경변화에 독방에서 눈물로 지내게 되었고 또한 무미를 함부러 궁중으로 불러들인 왕황후도 고종의 무미에 대한 완벽한 총애에 결국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생을 마치게 되었다.
소숙비와 왕황후는 무미에 의해서 폐위가 되어 후궁전의 밀실에 감금이 되어 생을 마치게 될 상황에서 어느날 고종은 문득 그들이 생각이 나서 그들을 찾아 보았다.
가서 보니 햇빛이 들어오지 않은 밀실의 감방에 갖혀서 세월을 보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고종은 두 여자의 간절한 소망 "햇볕을 보게 해 주세요"라는 말에 그들을 꺼내주려고 했으나 측천무후가 된 무미는 그 소식을 듣고 노발대발하였다.
그것도 모르는 고종이 그들을 꺼내주려고 하는 계획을 하고 있을 즈음에 측천무후는 먼저 손을 써서 밀실의 감옥에서 두여자를 100대씩 피범벅이 나도록 때리게 하였다.
그런 다음에 손발을 잘라 술독에 빠드려 버렸다. 무측천의 지령을 받아 술에 손발이 젖어 흠뻑 취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손발이 다 잘린 두 사람은 몇일 동안 술에 쩔어 있어서 산 사람이 아니었다. 벌레보다 못한 상태가 된 것이었다.
할수없이 두 사람을 풀어줄 생각을 포기한 고종은 뒤이어 무측천의 요구에 못이겨 두 사람에게 사약을 받게 했다.
2명의 라이벌이 완전히 사라진 이때부터 무미 즉 측천무후의 시대가 활짝 펼쳐진 것이다.
나는 이 이후에서부터 십여년이 지난 측천무후가 30대 중반부터 나오는 내용의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드라마의 무측천은 그야말로 영민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이었다. 자비심많고 이해심도 깊은 천하의 여황제의 모습이었다.
드라마가 사람을 이렇게 변화를 시킨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역사서에 있는 것이다. 무측천 즉 측천무후는 권력을 잡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잔인했지만 권력을 완전히 잡은 후에는 당나라 백성들을 매우 편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컬 하게도 당나라가 가장 융성한 시기는 측천무후가 정권을 잡은 시기라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측천무후를 주인공으로 드라마를 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아름다운과 품위를 측천무후에게 집중시키니 이 드라마는 측천무후를 영웅으로 만드는 드라마였다.
공과 과가 있는 측천무후...그녀는 뛰어난 정치인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시대에 당나라가 가장 융성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50년 이상을 당나라의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인물...
분명히 매력적인 여황제였음은 역사가 기록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