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편)만남 신외숙 홍대 앞에서 그를 만났다. 헤어진 지 근 30년만이었다. 전철 역사(驛舍)를 나와 길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누군가 내 팔을 잡아챘다. 낯선 그러나 어딘지 낯이 익은 초로(初老)의 얼굴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누구? 기억 속에 통증이 일었다. “혹시 잘못 봤나 했지?” ....... 발걸음을 돌이키고 싶었다. “이게 얼마만이지? 잠깐 이야기나 할까?” 속에서 알 수 없는 수치심과 함께 생각지도 않은 말이 나왔다 “반말하지 마세요.” “미안. 저리로 옮겨서 이야기합시다.” 내키지 않았지만 근처에 있는 2층 카페로 올라갔다. 젊은 대학생들과 유학생인지 히잡을 쓴 여자와 러시안인 중국인들이 술을 마시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온갖 인종들이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젊음 속에 두 사람은 고령층으로 보였다. 당연했지만. 그는 칵테일을 나는 원두커피를 주문했다. 스테레오에서 최근 유행한다는 아이돌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가 술을 홀짝이더니 말했다. “건강은 좋습니까?” “괜찮을 리가 있겠어요? 나이가 있는데요. 그러는 선생님은요?” “저도 그렇습니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줄담배를 피우더니 손이 조용했다. 아니 카페 안 자체가 금연지역이라 그런지 모른다.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만나는구나. 반가움보다 분노가 가슴을 치받고 일어났다. 30년이라는 세월이 두 사람의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고 있었다. 서로의 안색을 살피던 두 사람은 궁금증을 숨긴 채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가 망설임 끝에 물었다. “선생님 소설 속에 나오는 그 장교는 대체 누구입니까?” 아니 이게 웬 시츄에이션? 그렇다면 이 인간이 그동안 내 소설을 읽고 있었다는 팩트? 그런데 말속에 질투 섞인 항의가 있었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닌 여러번씩이나.” 그렇다면 내가 소설 쓸 때 니 허락을 받고 써야 하냐? 어이가 상실되는 순간이었다. 이 인간이 30년이라는 세월 속에 나를 잊지 않았다는 뜻도 된다. 어떤 식으로 말해야 이 인간한테 한방 먹이는 꼴이 될까? “그게 선생님과 무슨 상관이죠?” 내 말에 그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현실 속 인물 맞습니까?” 갑자기 말이 정중해졌다. “네 맞아요.” “첫사랑이었던 것도?” “그건 왜 묻죠? 그게 왜 궁금하죠?” “난 소설 속에 몇 번이나 등장했는데?” 말이 짧아졌다. “그걸 내가 왜 대답해야 하죠? 그건 작가 자유 아닌가요?” “그냥 궁금해서.” “그 사람은 이미 고인이에요, 40년 전에 하늘나라로 이사 갔어요.” 난 일부러 처량한 음성으로 말했다. 순간 그의 얼굴 표정이 숙연해졌다. 후회라는 단어가 그의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늘나라로 이사 갔는지.” “내 소설 읽었다면서요, 거기 다 나와 있잖아요.” 갑자기 짜증이 났다. 그때였다. 그의 핸드폰에서 카톡 발신음이 울렸다. 그가 카톡 내용을 확인하더니 만면에 미소가 번져났다. 낭보가 전해진 모양이었다. “아들 녀석이 이번에 취직을 했어. 대학 졸업하고서 계속 백수로 지내더니 지난달에 중소기업체에 들어갔지 뭐야, 오늘 월급 탔다고 한턱 내겠다고 하네.” 그의 입가에서 연신 웃음이 번져났다.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자랑질을 했다. “녀석이 집사람을 닮아 얼마나 총명하고 재주 있고 예의바른지 몰라. 휴! 날 안 닮기 다행이지, 아내가 교육자 출신 집안에다 아동 심리학을 전공해서 아들 하나는 똑똑하게 잘 키운 셈이지. 그런데 대학 진학할 때 사실 속을 많이 썩였어.” 속에서 차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글세 이 녀석이 느닷없이 문학을 하겠다는 거야, 그것도 소설작가가 되겠다나?” 나는 물론 집사람도 엄청 반대했지, 녀석은 고집을 꺽지 않더니 기어코 국문과를 지망했지. 그런데 보기 좋게 낙방한 가야, 얼마나 다행이던지.“ 그는 말을 하다 말고 내 눈치를 살폈다. ”미안하군, 대한민국 작가 앞에서 이런 말을 하다니.“ 그는 또다시 자랑질을 이어 갔다. ”녀석이 태어났을 때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몰라, 5대 독자가 태어났나고 집안 잔치를 했지, 항렬을 따라 이름을 짓는데 꼬박 일주일이나 걸렸다니까.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더니....” “그래서 이름이 뭔데요?” 말해 놓고 나서 후회했다. 그걸 알아서 뭣하게? 속에서 자책이 일었다. “응 요셉이야.” “네?” 깜짝 놀랐다. 내가 아는 그의 집안은 제사를 일년에 열 번도 더 지낸다는 유교 전통 가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시대에 걸맞지 않은 주장을 하는 바람에 가끔 왕따가 되곤 했었다. 의아심과 함께 이상하게 분노가 치밀었다. 그의 말이 자꾸 짧아지고 있었다. 그와 말하는 사이 또다시 발신음이 들렸다. 그것도 아주 크게, 그가 수신자를 확인하더니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응 당신이야? 어디에 있냐고, 응 오랜만에 예전에 알던 지인을 만나 지금 이야기하는 중이야, 알았어, 일찍 들어갈게.” 그는 짧게 통화를 마치고는 또다시 이야기 보따리를 풀 참이었다. 방금 전까지 내 소설 속 인물을 향해 질투를 쏟아놓더니 어느새 처자식 자랑을 하려는 것인가. 생각지도 않은 분노와 허탈감이 가슴 속 가득 몰려왔다. 세월의 공백을 깨뜨리는 굉음과 함께. “그런데 제가 소설가가 되었다는 건 어떻게 아신 건가요?” “응 그건.......” 그는 잠시 망설임 끝에 말했다. “그야, 유투브를 검색하다 알았지. 구글만 검색해도 나오잖아.” 새삼스럽게 별걸 다 묻는다는 표정이었다. 대답이 그렇게 간단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망설임 끝에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이 이름이 요셉인가요? 성경 속 인물로 짓다니 이해가 안 가서요.” “집사람이 시집오자 오자마자 집안을 개종시켰어, 아들도 낳고.” 그러는 너는? 속에서 반문이 일었다. 아직도 술을 마시는 걸 보니 그는 불신 같았다. “그런데 왜 왜 여적 독신인 거야? 혹시 나 때문에?” 속에서 부아가 치밀었다. “아니에요. 전 제 꿈을 위해 현실을 포기한 거예요.” “꿈을 위해 현실을 포기한다, 그 그럴 둣하군.” “전 어릴 적 그 사람과 약속했어요, 반드시 소설작가가 되겠다고,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 유투브 인공지능 시대가 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만요.” “요즘은 책도 안 팔린다는데 생활은 어떻게 해?”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대답해 줄 필요가 없었다. 분노가 활화산처럼 일어났다. 나이가 육십 고개를 넘고 나자 분노조절 장애가 왔는지 걸핏하면 분노가 솟았다. 분노 속에 기억이 가물거리면서 방금 했던 질문을 재차하는 실수도 잇따랐다. 예전에도 난 너그러운 성격은 못 되었다. 자존심에 조그만 상처가 나도 그대로 분노를 터뜨리고는 금세 후회하곤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우격다짐하는 일도 빈번했다. 유전이었다. 생전의 아버지가 걸핏하면 이웃과 쌈박질을 하며 집안을 뒤집어 놓곤 했었다. 엄마는 한술 더 떴다. 아버지와 대거리를 하다 쌈박질이 나면 손톱부터 휘둘렀다. 보다 못한 막내가 나서서 둘 다 이혼하라고 한 적도 있었다. “자식들 보고는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고 하고는 왜 툭하면 쌈박질이냐고 차라리 이혼해버려.” 그러자 언제 그랬냔 듯이 시침 뚝 떼고 말했다. “언제 싸웠다고 그러냐, 우린 싸운 일 없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 싸운 적 없다고? 둘이서 한번만 더 싸우면 둘 다 내보낸다,” 막내의 겁박에 갑자기 집안에 웃음보가 터졌다. “막내 무서워서 부부 싸움도 못하겠구먼.” 세월 따라 마음은 더 굳어지고 쌓여진 경험에 의해 고집은 강화된다. 세상사 마음대로 안 된다는 거 잘 알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울컥울컥 짜증부터 난다. 그보다 더 황당한 건 때도 시도 없이 치미는 분노감이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분노와 욕설을 내뱉는 노인들을 얼마나 경멸했던가? 본인의 화(火)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입을 피해는 생각지 않고 똥고집만 부린다고 뒷담화만 실컷 날렸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에게도 그런 치명적인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30년만에 만난 그의 모습에 내가 보이는 분노는 어떤 것일까.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나는 지난날의 그의 감정을 재분석하고 있다. 나는 창밖 거리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홍대 앞 거리는 한마디로 젊음의 아성(牙城)이었다. 상업예술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영화 세트장처럼 보였다. 캐리어를 끄는 외국인들과 춤과 노래 공연이 상시 펼쳐지는 무대장, 청춘을 위한 국제 명소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내가 젊었던 시절에는 꿈도 못 꾸었을 기괴한 정면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는 사이 나는 조용히 카페를 빠져 나왔다. 계단을 내려서는데 무릎이 시큰거렸다. 슬픈 노년의 아픔이 마음보다 몸에 먼저 찾아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작년 이맘때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 상숙이를 생각했다. 평생을 가난과 핍박 속에 살다 겨우 살만해지니까 암병 걸려 세상을 하직한 그녀는 떠나기 전 내게 마지막으로 부탁했었다. “그래도 내 아픈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위로한 사람은 너 하나뿐이었다. 너무 고마웠어 마지막 부탁인데 내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발표해 줘.” 뜻밖의 부탁에 난 아연실색했다. 너무나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면서 자신감마저 내비치고 있었다. 어쩌면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거절할 구실도 자신감도 없어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어서 일어나기나 해, 니가 그동안 살아온 세월 내가 왜 모르겠니? 스토리를 해피앤딩으로 끝낼 수 있게 다시 일어나, 멋진 소설 작품 하나 완성해 보자, 그럼 우리 하늘나라에서 만나 또 이야기하자.” 나는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하면서 울컥 울음이 솟았다. “그래 고맙다. 내 가슴 속에 쌓인 원한 다 풀린 느낌이야.” 상숙이는 내 초등학교 친구였다. 찢어지게 없는 가정에 태어나 부모 사랑 제대로 못받고 오히려 멸시 천대 속에 자랐다. 술 중독자인 아버지는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씨잘데 없는 딸년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세울 거 없는 집안에 아들이 무슨 필요가 있다고 아들 타령하더니 막상 아들이 태어나자 태도가 돌변했다. 처음에는 아들 위한답시고 딸에게 온갖 희생을 강요하더니 아들이 기대에 못 미치자 허구한 날 술주정을 하며 불화를 일흐켰다. 혼란한 집안 분위기에 공부가 잘 될 리가 없었다. 상숙이는 늘 멍한 상태에서 가끔 정신을 놓곤 했다. 멍 때리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놀림감이 되는 횟수도 많아졌다. 이치에 맞지도 않는 말을 하며 울음을 터뜨리는데 사람들은 질색을 했다. 또 시작이구먼, 혀를 차며 외면했다. 집안 불화 속에 덜컥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또다른 환란풍파가 들이닥쳤다. 장례식 비용도 없는 형국에 아버지가 재혼을 하겠다며 친척들에게 중매를 부탁한 것이다. 막 상처(喪妻)한 홀아비에게 그것도 평생을 술주정뱅이로 산 무능력자에게 어떤 여자가 재취 자리로 들어오겠는가. 친척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저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저런 꼴 보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장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돈 문제로 난장판이 벌어져 사람들을 또 혀를 끌끌 찼다. 당장 돈이 없으니 외상으로 하자는 아버지의 말에 장의사들이 안 된다고 하자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아버지의 삶은 무능력 자체였다. 술주정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모멸감만 쏟아질 뿐이었다. 간신히 친척들이 나서서 겨우 장례가 끝났다. 상숙이는 거의 멘붕 상태에 빠져 기력을 잃었다. 그때 그녀가 내 귓가에 대고 한 말은 단 한마디였다. 나 이제 이 집안을 떠나고 싶어, 나도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 하지만 그녀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린 남동생이 그녀의 발걸음을 막고 있었다. 상숙이는 집안살림에 돈벌이까지 하느라 날마다 허리가 휘도록 일했다. 아버지는 재혼을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날마다 술중독에 빠져 하우적거렸다. 평생 무위도식으로 지내다 할 일이라곤 가족들 괴롭힌 것밖에 없는 주제에 항상 황제 대접 받고 싶어 했다. 그 부분에 가면 상숙과 나는 동시에 분노에 사로잡혀 심장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어쩌다 제정신이 들면 죽은 마누라가 생각나는지 눈물을 흘리며 꺼이꺼이 울었다. 상숙은 그때마다 분노에 사로잡혀 숨이 막혔다고 했다. 상숙은 멀리 도망가고 싶었지만그마저 하지 못했다. 그래도 피붙이인데. 남동생은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일자리를 구해 지방으로 떠나버렸다. 어느날 상숙은 결혼을 결심했다. 나이가 삼십 고개를 넘어서자 갑자기 미래가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안정된 가정의 행복과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도 생겼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마음속에 거대한 먹구름이 드리우는 것 같았다. 맞선 상대가 하나같이 불운한 처지의 남자들이었다. 직업도 변변찮은 게다가 아내의 막대한 희생을 강요하는 후안무치도 있었다. 상숙에게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상숙은 결혼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꿔 보길 원했다. 아무려면 이놈의 집구석만 못할까. 아! 그때 나는 깨달았다. 상숙이가 원하는 건 가정의 행복이 아닌 여태껏 자신을 둘러쌓던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란 걸. 그중의 한 남자가 상숙의 마음을 점령했다. 아주 달콤한 말솜씨로. 나는 단호히 말했다. “그 남자는 널 사랑하는 게 아니야, 너를 이용하기 위해 작정한 거라고.” 그 말에 상숙은 불같이 화를 냈다. “사람의 진심을 그런 식으로 곡해하면 안 되지. 그 사람은 처음으로 내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어, 처음으로 내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어.” “그게 다가 아니야, 내 말은.” 상숙은 더 이상 듣기 싫어했다. 보아 하니 이미 몸과 마음을 다 허락한 상태였다. 남자는 결혼하자마자 처갓집으로 달려가 술에 찌든 장인을 꼬드겨 집문서를 요구했다. 협박과 욕설도 곁들였다. 당신이 부모로서 딸한테 해준 게 무엇인가. 평생 술 먹고 구박한 거밖에 더 있냐. 사위가 사업 자금으로 집문서 저당 잡히겠다는데 그것도 못해주냐? 상숙은 철저하게 남편 편이었다.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당장 집문서를 내놓으라고 했다. 아버지는 눈물 흘리며 말했다. “그래 알았다.” 그때였다. 지방에 있던 남동생이 막 돌아온 것이다, 우연치곤 기막힌 우연이었다. 남동생은 막 집문서를 꺼내려는 아버지에게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동생은 누나와 매형을 향해 발길질을 하며 내쫒았다. 순 악랄한 사기꾼 같이니.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어림도 없다. 계획이 무산되자 남편은 상숙에게 온갖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나가서 돈을 벌어오든지 친정 집문서를 가져오라 했다. 상숙이는 몇 번인가 친정에 가 집문서를 요구했다. 그 길밖에 살길이 없다고 생각했다. 집문서를 남편 품에 안기면서 나밖에 없지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번번이 남동생의 반발로 무산되고 남편은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다 상숙이 보고 미친년이라고 욕했다. 서방에 눈멀어 친정 살림 거덜내려는 흉악한 년이라고 욕했다. 그런데도 상숙이는 집 나간 남편 기다리며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해 돈을 벌었다. 남편은 그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다. 남편은 이따금 집에 들려 하룻밤을 지내고는 그동안 모아둔 돈을 가지고 다음날이면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상숙이는 별다른 불평도 없이 다음날이면 또다시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섰다. 상숙이는 아이를 세 번이나 유산하고도 돈을 벌러 다녔다. 아이가 유산될 때마다 가슴을 치고 울었다. 물론 남편은 곁에 없었다. 그녀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여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절데 그럴 사람 아니다. 일거리가 안 잡혀서 여기 저기 다니느라 그런 것이다, 남편에 관해선 항상 긍정적이고 관대했다. 돈을 가져갈 때면 주먹도 휘두르지 않았고 아내의 귓가에 달콤한 말도 자주 했다. “그래도 당신밖에 없구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처복은 있는 놈이여.” 그녀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은 확고한 믿음을 심어주며 돈을 갈취해 갔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은 여자를 데리고 와서 이혼을 요구했다. 자기도 이제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며 가장(家長)도 노릇 제대로 하며 싶다고 했다. 알고 보니 상숙에게서 뜯어간 돈으로 여자 만나는데 탕진한 것이었다. 여자는 남편 빽을 믿고 상숙에게 험한 말을 내밷으며 이혼을 요구했다. 상숙은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며 울며불며 난리치다 남편에게 심하게 얻어맞고는 까무러쳤다. 남편과 내연녀는 수시로 찾아와 이혼을 요구하며 괴롭혔다. 그때는 돈도 요구하지 않았다. 내가 차라리 이혼해 주라고 하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이혼은 절대 안해 준다. 누구 좋으라고 이혼해 주냐. 그러던 어느날 상숙이 남편에게 말했다. 위자료 주면 이혼해 주겠다. 남편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위자료는 무슨, 그동안 살아준 것만으로도 감사해라, 너 같이 못 생긴 여자를 누가 데리고 살아주겠냐,” 그 말에 상숙은 완전히 무너졌다. 사실 그녀의 외모는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작은 키에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험한 인상이었다. 평생 고생에 찌들려 사랑이라곤 전혀 경험해 본 적 없는 거기에다 욕구불만에 가득차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상숙이가 얼마나 사랑에 목말라했던 가를. 사랑에 대한 욕구불만으로 더 큰 상처에 노출돼 있었다는 것을. 결국 상숙은 이혼 도장을 찍어주고 말았다. 위자료 한푼 못 받고 그대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그동안 그 인간이 나한테 가져간 돈이 수천만 원은 더 될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밤낮없이 뼈빠지게 일만 했으니.” “그러게 내 말을 들었어야지.” 상숙이는 말했다. “부모 복 없는 년이 무슨 서방복이 있겠냐. 내 한몸 편하게 살다 가면 그만인 것을, 내가 준 돈으로 그 년놈들 좋은 일만 시켰구먼.” 재혼한 상숙의 전 남편은 상간녀와 아들 낳고 잘 사는가 싶더니 어느날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다. 상간녀는 보상금으로 한동안 편하게 지내는가 싶더니 얼마 안 가 재혼했다. 그것도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남친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상숙이는 죽은 남편만 불쌍하다고 밤새도록 꺼이꺼이 울었다. 사람들은 또 말했다. 미친년. 열녀났구먼. 가지가지 한다. 등신도 저런 등신은 없을거구먼. 저 싫어서 딴 년이랑 살다 죽은 놈이 뭐이가 좋다고 울고 지랄한담. 아무도 상숙이의 상처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를 얕보고 악담만 되풀이 했다. 말의 요지는 그녀가 사리분별 못하고 어리석고 멍청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녀는 감정조절이 안되고 사랑욕구에만 충실했다. 우스운 건 나 역시 그 범주에 속한다는 거였다, 홍대 앞 거리는 운집한 젊음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상가마다 외국어로 표기하고 음식점도 마찬가지였다. 퇴락한 민심이 간판마다 너울거렸다. 국제 명소로 변하면서 문화의 거리가 외국인들의 지상 낙원처럼 보였다. 노포 음식점은 역한 튀김 냄새를 풍기고 빌딩마다 늘어뜨린 대형 스크린 광고로 거대한 영화 세트장 같았다. 속에서 슬픔이 꾸역꾸역 치밀어 올랐다. 그냥 돌아서 갈 걸. 공연히 카페에 따라 올랐구나. 후회가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그러나 반문이 생겼다. 내가 뭘 그리 잘못한 게 있다고?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나를 두 번 울게 했다, 한번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가 말하는 장교이고 또 한번은 방금 전에 만난 그였다. 여고 2학년 때 만난 그는 내게 삶의 의미에 대해 처음으로 질문을 던진 사람이었다. 난 그를 처음 봤을 때 알 수 있었다. 내가 영원히 못 잊을 사람이란 걸 운명처럼 느꼈다. 어려서라고 표현하기엔 그렇지만 난 직감했다. 상처와 분노에 찌든 어린 가슴에 그가 희망을 주었다. 방치된 채 살아온 죽음의 언저리에서 간신히 숨만 붙어 있던 내게그가 삶의 의미에 대해 알게 한 것이다. 나는 한참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전 글을 쓰는 작가가 될 거예요.” “장르는?” “소설이요.” “꿈은 삶의 원동력이야,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작가가 될 수 있어. 내가 필요한 자료를 구해다 줄 테니 꼭 작가가 되어야 해.” 그 말 한마디가 내 운명을 갈랐다. 당시 어린 나는 정신분열 되기 직전이었다. 안팎으로 쏟아지는 불난으로 숨을 쉬고 살 수 없을 정도로 난 피폐해져 있었다. 겨우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 이전까지 나는 어둠과 무능감 속에 자신을 방치하다시피 살았다. 일상이 자포자기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습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심지어 죽음의 유혹마저도 그 끈을 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와 약속을 지켜야 했다. 꼭 소설작가가 될 것이라는. 멘붕 직전 상태에서도 소설 완성을 위해 노력했다. 내 유일한 삶의 의지였다. 나는 소설 속에 그를 수시로 등장시켰고 그의 죽음마저도 단골 소재로 이용했다. 그가 아니었더라도 나는 소설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려면 그에 필요한 가공할 인물이 등장해야 하는데 그가 바로 그 인물이었다. 내가 소설로 수없이 많이 울궈 먹었던 그는 가공 인물이자 실존 인물이었다. 언젠가 여행 중에 그가 다녔던 중학교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시골 읍내에서 보기 드믄 사학(私學)이었다. 교문 입구를 들어서자 대망의 길이란 돌 표지판이 보였다. 신축된 학교 교사 너머로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학교 입구에 편의점이 있었고 도로 건너편에 시외버스 터미널이 보였다. 터미널 안에는 자동 발매기와 대기실이 응접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고급 나무 탁자 옆으로 커피 자판기가 보였고 대형 TV가 각종 예능 프로를 방영하고 있었다. 어쩌다 버스가 도착하면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쭈뼛하고 밖을 내다보았다. 터미널 밖은 끝없이 펼쳐진 논이 향기로운 봄꽃과 같이 대자연을 연출하고 있었다. 인근 산에는 봄꽃으로 새하얗게 샛노랗게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바위마다 숨어 핀 진달래는 봄의 서정시를 말하고 있었다. 눈을 들어보니 긴 신작로 옆으로 천주교 성당이 보였다. 오랜 전통을 간직한 성당은 높은 십자가 탑의 위용을 나타내면서 동네 전체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성당을 향해 자동차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성당 주변으로 길이 네 갈래로 나 있었다. 직선으로 난 길을 걸어가면 전통시장이 나왔다. 중간 중간 면에서 실시하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알리는 현수막이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읍내로 향하는 길목에 보건소와 도서관이 있었다. 잠시 들어가 내가 쓴 책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쳤다. 커피숍과 음식점 종묘상 병원 옷가게로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역(驛) 주변으로 개나리와 진달래가 한창이었다. 전동차가 기치를 올리며 빠르게 전진하고 있었다. 갑자기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무릎에서 뚜둑하고 소리가 났다. 나이가 60대를 넘어서면서 늙음의 신호가 시시각각으로 들리는 것 같다. 언젠가 유투브에서 보았던 ‘정은 늙지도 않아’란 드라마가 생각난다. 50년대 전후반에 걸쳐진 고전 드라마인데 현 시대에 맞지 않지만 가슴 뭉클한 장면이 많이 있다. 대를 이을 아들을 못 낳은 본처가 첩에게 향한 불타는 질투가 나중에는 서로를 감싸고 돌보며 생을 마감한다는 스토리다. 남편은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서 태어난 아기를 본처에게 보여주며 말한다. “여보 우리 사이에서 태어난 당신 아기야, 안아봐.” 본처는 아기를 안으며 행복한 눈물을 흘린다. 아기는 본처와 친모의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고 자랑거리가 된다. 본처는 성장한 아들의 절을 받으며 행복감에 눈물 흘린다. 세상에 흔해 빠진 불륜 이야기가 아니다. 질투가 용서와 사랑으로 변하면서 자아내는 감동 드라마이다. 이곳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던 소설 속 주인공 양문혁은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한 뒤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평범한 외모에 중산층에도 못 미치는 집안의 장남으로 동생만 5명이나 거느린 그가 선택한 건 사관학교였다. 자기 하나 희생해서 동생들의 앞길에 도움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지냈던 소읍에 많은 미련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에서 전교 일등하는 여학생과 추억이 있었다. 그 여학생은 서울에 있는 여고에 진학해 명문여대에 입학했고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수재에다 뛰어난 외모의 여대생한테 장래가 촉망되는 남자들이 줄을 이었던 건 당연한 일이다. 그는 한번도 사관학교에 면회 오지 않는 그녀를 섭섭해 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에게도 댓쉬하는 여대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졸업 후 군 복무 중 대위로 임관하자마자 순직했다. 군사 정권 시절이라 순직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나는 그의 죽음을 4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와 교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나에게 최초로 관심을 보이며 인생의 비전을 물었던 그였다. 누군가는 인생을 질풍노도와 같다고 표현한다. 누구에게나 고난과 상처는 있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공평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내 주변에는 어려운 빈민들의 삶에 대해 거짓말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 꾸며낸 것이라며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자기가 살아온 환경과 너무 동떨어져 아니면 너무 끔찍해서일지 모른다. 부모로부터 이어진 재력과 좋은 유전자로 특혜를 누리며 산 까닭이리라. 나는 차라리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일생(一生)이란 한번 산다고 해서 일생이라고 한다. 두 번이 아닌 한번뿐인 인생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그는 짧은 인생을 살다 간 셈이다.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 권력이 있다. 인생이 힘과 재능과 능력이 있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함수와 운때라는 것이 있다. 함수와 운때가 잘 맞아떨어져 성공의 운을 탔다 하더라도 그것도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힘의 불균형에 따라 늘 변수가 있기 마련이니까. 세상 풍조가 바뀜에 따라 금수저 흙수저 무수저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난다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가치관도 천지가 개벽할만큼 많이 변했다. 극도의 개인주의로 결혼이나 출산도 꺼리는 세상이 되었다. 얼마 전에 지인들 중에 아들이 결혼한 사람이 있었다. 아들에게 결혼 자금으로 2억을 주었다. 아파트 구입 자금으로 주었는데 아들과 며느리가 얼마간 보태 꽤 널찍한 아파트로 입주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가 한 말이 가관이었다. 아들 내외는 결혼 조건으로 자녀를 낳지 않겠다고 했다. 부모는 기가 막혔지만 결혼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또다른 케이스가 있다. 결혼한 신혼부부는 엄청난 재력가인 부모 밑에서 자란 고액의 연봉을 받는 엘리뜨 출신이었다. 재력가인 부모가 손주만 낳아주면 억대 용돈을 주겠다고 했단다. 딸을 출산했는데 약속대로 2억이라는 용돈을 받았다. 부모는 아들 손주를 원했다. 원하는 모든 조건을 다 들어줄 테니 아들 손주를 낳아달라고 했다. 그러나 억대 연봉을 받으며 한참 잘 나가는 며느리는 거절했다. 지금은 너무나 중요한 시기이다. 승진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데 결코 놓칠 수 없다. 아이는 딸 하나로 충분하다. 아이를 낳는다 하더라도 누가 키워줄 것인가. 자녀보다 가정의 행복보다 자신의 성공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요즘 여자들은 옛 어머니와는 달리 자식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우선시 한다. 자녀를 위해 내 한몸 희생해서 가정을 지키겠다는 의지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찾아 결정하고 행동한다. 또 결혼해서 똑같이 맞벌이 하면서 친정 시댁 양가 신경쓰랴 아이 출산과 양육을 동시에 해내며 힘들게 사느니 차라리 독신으로 여유를 즐기며 살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자신만을 위한 현명한 판단일지 모른다. 나 역시 그 부류였으니까. 내가 젊었던 시절만 해도 남녀평등은 말뿐이었다. 그 말을 뒤집으려 꾸며댄 말이 여성 상위시대였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가정폭력이 다반사였다. 경제 능력이 없으니 남편한테 맞고 살면서도 이혼할 엄두를 못냈다. 말로는 자식 때문에 이혼 못한다 하지만 그것도 핑계일 뿐이다. 평생을 봉사와 희생으로 일관했던 엄마는 내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양육했다. 여자는 그저 남편 말에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여자가 잠잠해야지 자꾸만 자기 주장을 하면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다. 그러더니 어느날은 나보고 결혼해서도 맞벌이를 하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맞벌이는 공무원이 아닌 이상 흔한 일이 아니었다. 웬만한 직장은 결혼과 동시에 퇴직이 당연지사 고정관념이었다. 그런데 맞벌이라니? 엄마는 그 이유로 여자도 벌어야 가정에서 큰소리를 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어느날인가부터 아버지한테 욕을 했다. 드라마 장희빈의 마지막 장면을 시청하던 때였다. 악녀 장희빈이 사약을 발로 걷어차자 강제로 입을 벌려 사약을 넣는 장면이었다. 수저로 입을 벌리려 하자 장희빈이 발악을 했다. 그러자 상궁으로 보이는 여자 두명이 팔과 다리를 잡고 한명은 사약을 입에 부었다. 다시 또 한사발의 사약이 장희빈의 입속에 부어졌다 콸콸. 그러자 그 장면을 보고있던 아버지가 말했다. “그래도 자기 부인인데 저렇게 사약을 억지로 먹여 죽일 필요가 있나” 곁에서 듣던 엄마가 화를 내며 큰소리로 말했다. “저년이 무슨 부인이냐? 첩년이지 어디서 첩년 편들고 있냐?” 당장이라도 아버지한테 한 대 칠 기색이었다. 아버지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 뒤에 대고 엄마는 또 욕을 했다. “사내놈들이란 게 첩질 좋아한다마는 요즘 세상은 법이 있어서 못된 짓거리 해봐라 곧바로 감옥 보낸다. 어디서 첩년 편들고 지랄이야 죽고 싶어 환장했지.” 홍대 앞 로데오 거리에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국적이 불분명한 해괴한 발음으로 요란한 춤사위를 펼치는데 온통 환호성이 거리를 메웠다. 언 듯 언 듯 들리는 가사 내용은 하나같이 사랑을 빙자한 섹스였다. 만남과 이별 자체가 엄청난 후회로 감정의 소모로 이어지고 형국이었다. 트롯 가사도 마찬가지였다. 원 나잇을 주제로 한 낯 뜨거운 가사가 감정의 리듬을 타고 있었다. 사랑이 쾌락과 둥일시 되면서 감정적 타락을 부추기고 있다. 가사 내용 자체가 이별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으로 급조된 사랑을 대변하는 격이었다. 세월 따라 가치관과 관념이 변하는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아무리 동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순수했던 옛 감정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더구나 어린 마음에 심겨진 그리움은. 홍대 앞 거리는 어딜 봐도 대형 전광판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광고 물결이다. 눈과 마음을 빼앗는 일등 공신이다. 전찰을 타기 위해 지하 계단을 내려서는데 핸드폰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방금 전 카페에서 만났던 그가 보낸 문자메세지였다. 만나서 반가웠노라고 앞으로 종종 만나자는 흔해빠진 문구였다. 그런데 저 인간이 어떻게 내 핸폰 번호를 알았을까. 내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하긴 내 정보를 아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으리라. 공인이니까. 그는 내가 양문혁의 죽음을 알고 난 후 심하게 허우적거릴 때 만난 직장 동료였다. 매일 탁자 건너편에서 얼굴 맞대하며 카피라이터였다. 그 직장에서 일 년간 근무하고 나왔는데 그가 어느날 전화로 프로포즈했다. 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붙잡아 줄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언젠가 술자리에서 그에게 죽은 양문혁 이야기를 한 것도 같다. 그러나 재차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양문혁에 관해 내 지인에게조차 말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그가 말한 의도는 순수한 의미의 것이었는지 모른다. 나도 그때쯤 진정으로 안정되고 싶었다. 과거의 미망에서 벗어나 미래로 힘차게 나아가고 싶었다. 그가 내민 손을 맞잡고 싶었다. 한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는 전화루 프로포즈를 하더니 갑자기 연락이 뚝 끊겼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가 한 프로포즈는 일과성으로 곧바로 후회로 점철되고 있었다. 느닷없이 인생을 함깨 싶다는 프로포를 하고는 곧바로 잠수를 탄 곳이다. 실수였다. 그 실수를 난 잘못 받아들이고 엉뜽한 착각에 빠진 것이었다. 수치와 분노로 한동안 정신이 얼얼했다. 이어 얼마 안 가 그의 결혼 소식이 들려왔다. 그때는 상처와 분노로 땅속으로 꺼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자책했다. 그가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을 포로포즈로 알고 잘못 해석한 나 자신을. 어쩌면 그가 내게 한 말은 술김에 한 내가 꾸며낸 거짓말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순간이나마 그와 미래를 생각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숨조차 쉬기 싫었다. 상숙이는 수시로 전화로 자기의 신세를 한탄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떤 동질감을 느꼈다. 그녀와 나는 똑같이 허수(虛數)라는 것을. 그녀를 향했던 비난이 어느새 나에게 향해 있었다. 나쁜 자식 책임도 못 질 말을 왜 해가지고 사람을 괴롭힌담. 그렇다면 넌 그자가 한 말을 진실이라고 믿었었냐, 믿은 니가 잘못이지. 스스로 자문하며 자괴감에 빠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져 갔다. 그와 사귄 것도 아니고 연인관계는 더욱 아니었기에 기억 속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어느날인가부터 나는 죽은 양문혁을 내 소설 속에 수없이 등장시켰다. 어떨 때는 프로필을 그대로 사용했고 바꾸기도 했고 생과 사를 동시에 번복했다. 그러다 어느날 상숙이에게 연락이 왔다 병원 입원실에 있다고 했다.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영화의 한 대목을 보는 듯했다. 그녀의 험난했던 삶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순식간에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럴 땐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난감했다. “혹시 방법은 없는 거라니?” “너무 늦게 발견해서 소용이 없다나봐. 방금 전 퇴원 조치 내렸어.” “내가 갈게. 어느 병원이야.” “올 거 없어, 여기서 소개해 준 요양병원으로 갈 거야.” “알았어, 거기로 찾아갈게.” 요양병원에서 만난 그녀는 쓴 웃음 끝에 말했다. “평생 가족 뒷바라지 하며 살았는데 이제야 내가 번돈으로 병원비 감당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야.” 남편과 헤어진 후 상숙이는 친정 아버지와 남동생 뒷바라지 하며 살았다. 그래도 피붙이가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남편한테 미쳐서 집 문서 요구했던 지난날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그랬는지도 모른다. 평생 일속에 파묻혀 살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돈 한푼 쓰지 못하고 절절 맸다. 친정 아버지는 요양원으로 모시고 남동생은 결혼해 안정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누나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나는 그녀가 부탁한 것을 소설로 완성했다.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게 내 신조였다. 2호선 전동차는 극심하게 혼잡했다. 퇴근 시간도 넘었는데 발 디딜 틈 없이 승객들로 꽉 차 있었다. 전동차가 한강 다리를 건너고 지하와 지상을 번갈아 지난 뒤 나를 목적지에 내려 주었다. 길거리를 지나며 나는 나지막한 소리로 자신에게 말했다. “너를 소재로 한 소설은 단 한편도 쓴 적이 없었다. 이 바보야. 집에 도착한 나는 그동안 발표하지 않은 단편을 문예지에 이메일로 발송했다. 상숙이의 삶을 소재로 한 단편이었다. 컴퓨터 전원을 끄고 나자 평화가 스르르 잠속으로 몰려왔다. 기막힌 하루였다. 인생은 우연과 필연이 겹쳐가며 이루어지는 스토리의 과정이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소설 구상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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