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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여행

작성자신외숙|작성시간26.06.05|조회수31 목록 댓글 0

춘천 여행

 

 

신외숙

 

6월의 뜨거운 여름날 춘천역에 내렸다.

어두침침한 하늘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너른 벌판에 공사 현장이 보였다. 대규모 시설단지인 것 같은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직 시공도 못하고 있었다. 역사(驛舍) 앞에는 막국수와 닭갈비를 파는 음식점 창문에 테이크 아웃이란 글자가 행인들의 눈길을 당기고 있었다. 도로 맞은편에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오일장이 열리는 장터로 가는 버스는 20분 후 도착이었다. 시계를 보니 4시가 넘어 있었다. 장터에 도착하면 4시 반이 넘을 터였다. 비도 오는데 장마당도 벌써 파했을 것이다. 조급한 나는 기다리는 것에는 영 자신이 없다. 그냥 걸어서 명동으로 가기로 했다.

직선으로 난 인도(人道)를 걷는데 빗방울이 듣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엄청난 기세로 퍼붓기 시작했다. 캐리어에 빗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지퍼 틈새로 난 곳에 비닐로 덮어 빗물을 막았다, 다행히 캐리어는 안전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인성병원이 보였다. 좀더 걸으니 명동 입구가 나왔다. 걷다 보니 배가 몹시 고팠다.

중간에 음식점이 있어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주인이 친절했다. 창밖으로 빗줄기가 엄청나 기세로 쏟아붓고 있었다. 전혀 낭만스럽지 않은 거친 빗방울이 용수철처럼 퉁겨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낭만심리도 사라지는가. 이젠 여행에서 오는 설렘이나 기대도 현저히 사라지고 있다.

40여년 전, 춘천 거리를 걷던 기억이 바로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강원도  도 교육위원회에 발령장을 받기 위해 가던 날, 공무원 연수를 위해 청사를 찾던 날. 난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젊었을 땐 꿈을 먹고 살고 늙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체면이나 예의도 관심 밖이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게 된다. 무의식 속에 쌓인 쓴뿌리 때문인지 조급증과 짜증은 더한 편이다. 그저 마음속에 안정기조가이루어지면 그걸로 만사 오케이다. 오감만족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유와 낭만심리가 느껴지면 그 자체로 만족이다.

나이 70을 바라보는 마당에 무슨 큰 호사를 바라겠는가. 그저 사는 날까지 건강하고 마음 편하면 그만인 것을.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허전함과 분노가 스멀스멀 치솟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가. 인생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화두로 많은 글을 썼건만 아직도 결론을 못 내고 있다.

나는 다시 자신에게 묻고 있다. 너는 과연 인생을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생각해 보니, 사랑보다 미움을 용서보다 원한을 포용보다 비난과 정죄를 더 많이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상처와 분노로 세월을 더 많이 흘려보내고 후회와 가책이 더 많았다. 슬픔으로 나락 간 순간은 얼마나 많았던가.

험악한 세월 속에 난관 아닌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내게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어리벙벙하고 자주 넘어지고 쓰러졌다. 집중하거나 긴장하면 온몸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갔다. 끈기는커녕 자포자기가 일상이었다. 인간관계의 악재도 일상이었다. 현실도피가 목적인 것처럼 살았다.

귀막고 눈감고 나서 무인도에 가 살고 싶었다. 내게는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불안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건 철저한 자신감의 결여였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무능감에 시달리는 건 거의 재앙 수준이었다. 자신감이 없으니까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제대로 된 판단력이나 분별력도 없이 피해망상 속에 떠밀려 살았다. 그런데 나는 병()에 치이고 꼼짝할 수 없는 환경속에 갇혀 지내면서도 꿈을 놓지 않았다. 소설작가가 되어 내 꿈을 펼쳐 보이리라. 내가 삶속에서 포기하지 않는 두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습작과 기도였다.

나는 자주 넘어지고 쓰러지고 포기하면서 드디어 등단의 언덕을 넘어섰다. 그걸로 끝내려고 했다. 그런데 상황이 나를 전업작가로 이끌어 갔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졌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내 뒤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내 평생 처음 경험해 보는 형통의 축복이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 바로 이런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란 것이구나.

글을 쓰면서 나는 자신과 무수히 싸웠다. 누군가 말했다. 가장 큰 적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그렇다 가장 큰 적은 내 안에 있었다. 자신에 대해 방관하는 자포자기 그건 나의 가장 큰 적수(敵手)였다. 그 적과 싸우며 자존감을 높이려 무진장 애를 썼다. 주변의 악한 입술과도 영적 전쟁을 벌였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며 내게도 인정(認定) 받는 기회가 찾아왔다. 평생 가난과 멸시속에 찾아온 기회였지만 난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타는 목마름 같은 것에 함몰되었다간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끔찍한 고난 속에서 나는 신유의 기적을 체험했다. 불치병인 퇴행성 관절염을 신유로 치유받은 것이다.

내적치유도 경험했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상처가 분노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 또한 내가 치러야 할 숙제인 것 같다. 이제 등단 30년 차에 들어서려는 순간 생각지도 않은 복병이 찾아왔다. 이제 안정되는가 싶었는데 이명(耳鳴) 증상이 발생한 것이다. 안정이 급선무였다.

스트레스를 최대로 줄이고 안정기조를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성격 자체가 모가 많고 스트레스에 민감한 나다. 게다가 쓸데없는 근심 걱정으로 억눌리는 내게 안정기조를 유지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몇번인가 알바현장에 나서려다 이내 포기하고 눌러 앉았다.

통장의 잔고는 계속 비어가는데 귀에서는 매미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공 예배 외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길에 오른다. 여행은 힐링이다 주장하며. 그런데 나이 탓인가. 여행에서 오는 힐링 효과도 반감되는 느낌이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도 귓가에선 이명이 끊임없이 아우성을 친다.

전동차 밖으로 지나가는 초록풍경에도 그다지 설렘이 없다. 스마트폰으로 유투브 동영상에 몰입한다. 정치평론에 몰입했다 고양이 동영상에 미소가 절로 난다. 드디어 전동차가 종착역에 닿는다. 서둘러 역사(驛舍)를 빠져나오고 이제는 낯익은 거리 풍경에 잠시 안도를 한다.

늦은 오후 춘천 거리를 걷는다. 춘천은 내 젊었을 적 기억이 묻어 있는 곳이다. 난 이 거리를 걸으며 40년이 넘는 세월을 한순간에 추억한다. 낭만에 취하려 하지만 감성은 메말라 별 감흥이 없다. 유투브로 80년대 동영상을 시청하며 가슴 속에 이는 메아리를 듣는다.

후회와 가책이 가슴을 때린다. 좀더 성숙할 걸, 좀더 신중하게 처신할 걸. 최선을 다해 말씀과 기도에 매진할 걸.

세월 탓인가. 거리는 폐업한 상가가 줄을 잇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삶은 편리해졌는데 팍팍한 인심이 정신을 멍때리게 한다. 나이가 고령으로 치달을수록 세월은 내게 묻는다. 노후대책에 대해서. 작가인생으로 대신하겠다고 달려온 내 인생이 갑자가 무가치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난 자신에게 말하고 싶다. 난 결코 세월은 방관하지 않았노라고. 내 아름 석저 남겨 놓았노라고. 세월은 또다시 묻는다.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춘천 명동에서 약사동 고개를 넘는데 금계국 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하얀 개망초꽃도 눈길을 당겼다. 나는 손을 뻗어 샛노란 금계국 꽃을 꺽었다 개망초꽃도 꺽어 손에 들었다.

향기가 진동을 했다. 어느새 한웅큼 꺽어진 꽃을 들고 전동차에 올랐다. 집에 도착해 페트병에 꽂으니 온 집안이 꽃향기로 진동을 했다. 나는 피곤한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켰다. 자판 위에 글자를 수놓으며 자신에게 다짐했다.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었다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음을.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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