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주인이 되라/ 묵연
마음은 수시로 변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만큼은 그래도
어느 정도의 중심을
유지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마음이란 것 자체가
순간순간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덕쟁이가 아닌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말이
기분 나쁠 수 있지만
사실이고 진실이며 현실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먹고 살기 위한 것만 가르친다.
마음에 대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에 대해
그러니까
흔히 하는 말로
진리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는 곳이 없다.
종교가 있지 않느냐고?
절이나 교회 가보라!
모든 종교의 서적을 뒤져 보라.
진리는 거기 없다.
무슨 소리냐고?
진리는 오직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만 있다.
그런 까닭에
그것을 배우는 것은
자신의 결심에 달려 있다.
그 자신의 결심의 순도에 따라
우주가 그 길을
이끌 것이지만
종교생활을 하고
종교서적을 읽는 것으로
진리를 배울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쥐꼬리만큼 아는 걸로
<아는 체> 하는 흉한 모습만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수시로 변하는 마음으로는
그러니까 <올바른 결심>이 아니고서는
진리의 마을로 갈 수 없다.
나는 28년동안 절밥을 먹고 있다.
불교에서는 올바른 결심,
도를 그리워 하는 마음을
발심이라고 한다.
마음을 일으킨다는 말이다.
마음을 움직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게 안되기 때문에
진리의 여정은 시작도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중도하차하고 만다.
사실은 중도하차도 아니다.
시작도 못했으니 말이다.
자기마음이
수시로 변하는 줄은 모르고
사람들은 대부분
남을 탓하거나 상황을 탓한다.
수시로 변하는 마음은
어리석은 에고의 속성이다.
그런 사람들이 사실은 대부분이다.
이 글을 읽는 그대들은
그 대부분에 속하지 않도록 하라.
마음에 확고한 중심을 가지고 살아라.
사랑을 하든
진리를 찾든
내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남을 탓하지 않아야 한다.
이 세상은
아무리 고상한 종교라 하더라도
진리를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다.
종교조차
사람이 만든 조직에 불과하며
그대의 변덕스런 마음을
꾸짖을 생각이 없다.
그냥 자기절이나
자기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엔
진리를 가르쳐주는 시스템이 없다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진리는 오직
자기자신이 발심하여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중심을 잡고
전진할 때에만
우주가 가르쳐 줄 수 있을 뿐이다.
오직
각자의 내면에
그 시스템이 있을 뿐이며
그것을 가동하는 것도
오직 자기자신이다.
이것은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이다.
나의 주장이 아닌 것이다.
종교는 이것을 가르쳐야 종교다.
나머지는
종교조직의 장사에
지나지 않는다.
수시로 변하는 마음으로
누굴 사랑하려는가?
죽끓듯 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찾아 떠난다고?
뭐?
묵연스님을 존경해?
수시로 변하는 마음이나
잘 돌봐주기 바란다.
30년이 다 되가는
승려생활 동안
그 마음이 변치 않고,
예의를 알고,
흔들림 없이 꾸준한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승려나 세상사람이나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그저 내 꼴이나 살피며 살려 한다.
인간관계만큼
깨지기 쉬운 것은 없다.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게
우리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인정하든 않든 그것은 진리다.
나는 내 꼴이나 살핀다.
그대들도 자신을 살피기 바란다.
아무도 우리들 자신을
살펴주고
끌어주지 않는다.
오직 자기자신만이
삶의 중심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석가모니의 가르침,
마음의 주인이 되라!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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